- 지희
- 조회 수 4167
- 댓글 수 3
- 추천 수 0
옛날의 그집 / 박경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발표지면: 『현대문학』2008년 4월호
문단의 현존하신 분 중 태산같던 분이 가셨습니다.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249 | 천재가 되는 법_6 [4] | 개구쟁이 | 2008.05.10 | 4702 |
2248 | 쓰는 즐거움 [6] | 구본형 | 2008.05.10 | 3772 |
2247 | 어버이날 불효 [5] | 한정화 | 2008.05.09 | 3274 |
2246 | 정치얘기 삼가하기 [1] | 이수 | 2008.05.09 | 3272 |
2245 | 서시 [2] | 유촌 | 2008.05.08 | 3002 |
2244 | 한 여름밤의 꿈중에서 [1] | idgie | 2008.05.08 | 3173 |
2243 | 바람에 레몬나무는 흔들리고 [1] | idgie | 2008.05.08 | 3911 |
2242 | 맛있는 기도 [2] | idgie | 2008.05.08 | 2995 |
2241 | 어느 메모에서 | idgie | 2008.05.08 | 2917 |
2240 | 홀로서기 - 서 정윤 [9] | 김영철 | 2008.05.07 | 12553 |
2239 | 처음처럼 - 신영복 선생님 | 햇빛처럼 | 2008.05.07 | 3121 |
2238 | 이혼에 대하여 [5] | 이수 | 2008.05.07 | 3498 |
2237 | 어머니-박경리 [5] | 한희주 | 2008.05.07 | 3131 |
» | 옛날의 그집 / 박경리 [3] | 지희 | 2008.05.07 | 4167 |
2235 | 그 사람을 가졌는가(함석헌) [1] | 미카엘라 | 2008.05.06 | 3364 |
2234 | 아름다운 초록이들 [1] | 현운 이희석 | 2008.05.06 | 2906 |
2233 | 길-도종환 [2] | 신소용 | 2008.05.06 | 3391 |
2232 | 그와 나/ 이성선 | 각산 | 2008.05.06 | 3213 |
2231 | 안도현 - 바닷가 우체국 [2] | 소은 | 2008.05.06 | 4053 |
2230 | 다른 나라에 비해 열심히 일하는데 급여는 작을까? [2] | 빠르미 | 2008.05.05 | 28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