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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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다에서는 300불(우리돈으로 30만원쯤 된다.)이면 이혼을 끝낼 수 있다는 전단이 여기 저기 붙어있다.이것을 보면 이혼 수속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것이고 이것을 손쉽게 처리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요즈음 이혼이 성행한다고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카나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만큼은 아니다.물론 정확한 통계나 세대별로 구분되어 있는 것을 보지 않았으니 저들과 우리의 차이를 사실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다.
저들은 벌써 오래전부터 선진국이었으니 이것도 선진되어 있을 것이다.우리는 이제사 속속들이 개명되어 따라가다 보니 최근에 우리 주위에 이혼이 눈에 자주 띄게 된것이다.
하여튼 벌써 우리 주위에 흔해진 이혼이 그에 상응하는 대접만큼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이것을 쉽게 얘기할 수 없는 부분때문에 아무리 중요한 인간사라고 해도 가볍게 화제로 삼지를 못한다. 그힘든 부분을 한번 정리를 해보았다.
첫째로 이것은 사례마다 사람모습만큼이나 다르니 일반적으로 얘기하기가 쉽지 않고
둘째로 결함하고 나서 경우에 따라서는 허니문때에 벌써 갈라서기도 하지만 대부문을 경우 한참을 살아보다가 많은 사연이 쌓인다음에 이루어진 일이니 그사연이 복잡할 수 밖에 없다.
셋째로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의 풍조 때문에 이혼을 수치스럽게 생각해서 들어내기를 꺼리기 때문에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그냥 쉬쉬하고 만다.그러나 워낙 중요한 일이라 빠른 속도로 쉽게들 얘기하는 것으로는 되어간다.
넷째로 법률적으로는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리고 그냥 둘만의 관계라고 하지만 딸린 아이들, 주위부모 형제간이나 다른 인간관계 내지 사회생활을 생각해서 쉽게 결론을 못낸다.
다섯째 가톨릭신앙인한테는 결혼한 다음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혼이 정식으로는 허용이 아니되니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
이상의 이유말고도 더 있을 것이나 다른 사람한테 맡기자.
과거에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요즈음 왜 이리 야단을 치느냐 하는 것부터 짚어보자. 그것은 사회적으로 이혼을 하고 싶어도 제약사항이 너무 많았다.사회통념상 이혼은 극단적인 금기사항이어서 쉽게 맘을 먹지 못했다.아무리 하고 싶어도 주위시선이나 분위기 때문에 엄두를 못낸 것이다.
갈라설려면 기본적으로 먹고 살 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여자측에서 이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쉽지가 않았다.
이것만 놓고 보면 이혼이 많아진 것은 인간사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말하자면 자유의 신장이고 복지의 향상이고 의견표현의 확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이 꼭 이런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꼭해야 되는 이혼이 많기도 하겠지만 번면에 해서는 아니되는 이혼이 왜 없겠는가.이것을 극단적으로 뒤집어 보면 이세상에 모든 이혼은 해서는 안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모든 결혼은 다이혼할 수 있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그럭 저럭 살뿐이다라고 못할 것도 없다.
그래서도 이것이 쉬운일이 아니겠지만 얘기를 이런 식으로 끌고 가다보니 이 짧은 글로 이혼학을 논할 수도 없고 이런 일반적인 얘기는 이정도로 하고 나머지는 전문가한테 맡긴다.내 얘기의 구체적 배경을 얘기하자 보니 좀 길었다.
요즈음 우리 주위에 이혼이 많아진 것은 아무래도 서양사회 영향이 컷다고 본다.거기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급속도로 해외에 빠져 나가다 보니 자연스레 저들의 생활 습관중 이 좋은 것(?)을 우리것으로 해보고 싶은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카나다에 가면 가장 많이 가는 곳이 토론토다. 이곳은 거리가 멀고 춥고 해서 살기가 힘이 드나 제일 큰도시이고 생업이 상대적으로 쉽다고 해서 직업을 가져야 하는 사람한테는 어쩔 수 없이 이곳을 선택한다.
여유가 있고 요즈음 흔한 기러기 가족이나 그냥 영어 공부를 위한 사람은 가까운 뱅쿠바를 택한다. 여기 뱅쿠버에서 우리나라 이민자들의 이혼 사례나 위험한 부부관계가 많이 눈에 띈다.토론토에서도 이혼하는 사례가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먹고 살기가 바쁘다 보면 이혼할 여유가 없는 집이 많다.
뱅쿠버에에서는 이런 저런 여유를 즐기다 보니 자연히 과거에 묻어둔 문제를 끄집어 내서 필생의 대사업인 이혼을 슬슬 시작하는 집이 많아진 것이다.
여기 구체적인 한집의 얘기를 가지고 이문제를 현실문제로 부각시키고 독자들의 반응을 알아보고 싶다.
이집은 2년이 조금 안되는 시기에 뱅쿠버에 이민을 와서 한적한 신흥외곽주택단지에 집을 마련해 살고 있다.아들이 하나 있는데 우리로 치면 국민학교 6학년이다.이녀석이 7삭동이로 3삭을 어머니 뱃속이 아니라 병원에서 채우고 나왔다.
그과정에서 작은골의 성장을 통제하는 뇌세포미세부분이 문제가 생겨 다리하나를 약간 끌면서 걷는다.저전거를 탈 정도는 되나 뛰지는 못한다.사실 이집은 이녀석이 이민온 중요이유중의 하나다.한국에서는 3급장애자로 지내었는데 여기서 장애자를 위한 복지가 잘되어 있다고 해서 왔는데 이런 아이들이 많이 모여서 그런지 한국처럼 큰 장애자 취급을 아니한다.
적어도 한달에 한번은 성장상태를 점검하고 악화되지 않게 하기위해 물리치료를 꾸준하게 해주어야 한다.카나다는 한의학이 정상적인 의료시술로 보지 않아 불편하고 물리치료도 의료보험이 아니되고 또 비싸서 재미가 없다. 이것을 모르고 이민을 왔는데 지금에 와서는 어쩔 수가 없다.
어찌되었든 이녀석이 지금 까지는 부부관계를 밀착시키는 한요인이 되었다.남자는 투박한 부산토박이고 여자는 원래는 뿌리가 함경도이나 부모님이 만주에 사시다가 해방전에 충청도에 와서 살다가 얼마후 서울살이를 했다.
여자는 교회를 다니는 분위기에서 컸다.남자는 우리의 보통사람처럼 불교나 유교식으로 살았고 맏이로 기제사만 일년에 5번이나 지낸다.두사람다 결혼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데 이번에는 15년이나 같이 잘 살았다.그것도 외형적으로는 서로 끔직이 생각하면서 살았다.
카나다에 이민을 왔다가 남자는 한국에 다시 가서 1년정도를 직장생활을 했고 제사는 카나다에 와서 지내고 다시 한국에 갔었다.여자는 집의 일부를 남한테 세를 주고 샌드위치 가게에서 헬퍼를 하면서 지내었다.
여자 혼자 아이를 데리고 살면서 너무 힘이 들어서인지 다니기를 오래전에 중단했던 교회에 발을 들여 놓기 시작한 것이다.교회에 열심이신 친정어머니가 6개월여 기간동안 장기 체류하면서 이제는 교회에 다니는 것을 그만 둘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그러다가 지난 3개월여전에 남자는 한국의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가족과 합류하면서 서로의 충돌이 시작되었다.
남자는 여자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다.그렇다고 남자는 제사를 포기할 수는 더더욱 없다.여자가 제사지내는 것을 협조를 하겠다고 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고 아이까지 교회신자로 만들어 놓았으니 남자는 제사밥을 얻어먹기가 틀렸다고 생각하니 세상 살맛이 싹 가셔버린 것이다.
이렇게 해서 15년 동안 잘 지내던 결혼 생활이 힘들어 진 것이다.
남자는 여자가 다니지 않던 교회를 다니는 것은 헤어지자는 것이고 여자는 종교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인데 왜 그리 반대를 하냐고 대드는 것이다.
그런 중에 남자가 교회목사를 만나 사정을 얘기를 해보니 이 목사는 가정을 깨는 책임은 지기 싫은지 그러면 교회를 다니지 말라고 해서 남자한테 손을 들어 주었다.그러나 여자는 그렇다고 물러설 일이 아니라고 한다.
지금 상태로랴면 여자 얘기가 틀린 것은 아닌데 과거 일종의 무언의 약속을 깬것이 아니야 하고 남자가 주장하는 것도 일리는 있다.
이정도가 되니 서로의 묵은 감정이 튀어 나와서 문제를 더욱더 복잡하게 한다. 예를 들면 남자는 투박한 부산말에 평소 언성이 잘 높아지는 것도 시비가 된다. 여자는 좀 점잔아야 할 자리에서는 비어를 쓰지 말라고 하고 남자는 그것은 부산 사투리지 비어가 아니라고 한다 언성이 높아지는 것도 부산사람들의 생활 습관이지 특별히 감정이 있어서 그런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도 충청도 양반한테는 뱃놈들의 못된 습관이니 바꿔야 한다고 한다.
부부는 서로 좋아하고 진하게 사랑을 할 때는 부족한 부분도 이쁘게 보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열이 식으면 좋아하던 부분도 밉게 보인다.한번 알아져 버린 것은 모른다고 할수도 없고 지나온 세월을 다시 돌려 볼 재간이 없다.
인생은 엄밀하게 얘기하자면 혼자 산다.주위사람한테 주었던 마음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으면 억울해지기도 한다.그래서 멀쩡하던 관계가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늙으막에 헤어지기도 한다.사람은 혼자 살기도 하지만 어차피 섞여 살 수밖에 없어 가까운 사람과 잘 지내어야 인생이 즐거워 지는 것이다.
가까운 사이로 치자면 부부만한 사이가 어디 있나. 부모형제보다 결혼 생활에서는 더 가까운 것이다.주위사람과 잘 지낸다는 것은 결국 일정한 부분은 희생을 주고 보답을 받는 것이다.문제는 그거래를 공정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거래가 천태만상이니 공식이 있을 수 없고 그누가 공정하게 저울을 달아줄가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는 수 밖에.
여기 이사례를 두고 그냥 헤어지라고만 하지 말고 옆에서 보기에 하도 딱해서 같이 사는데 좋은 타협안이 없을가 해서 글을 올려 본다.
좋은 안이 나오면 본인들한테 전할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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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세월이 흐르고 입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집니다. 남편은 아내가 결국 어느 하나는 진심으로 따르지 않을 것에 대해 미리부터 염려하는 것이네요. 자신이 바뀔 수 없음에 대한 확고함과 상대의 행위만 있을 뿐 마음이 일치하지 않을 것에 대한 서글픈 쓸쓸함이 밀려옵니다.
자신은 모든 것을 다 포기하다시피하며 아내와 아이를 위해 뒤늦게 이국만리 타향 살이를 감행하였는데 새로운 터전에서는 자신을 위하고 바라봐 주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으니 가뜩이나 막막함 가운데 뿌리 내리지 못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마냥 얼마나 당황되고 외로울 지요.
그러나 바깥에서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고 힘들었겠지만 안에서 살림하며 제사상 차리고 살기도 여간 버거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앞으로 아이가 나아지는 것에 대해서도 거의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일 테고 이국 땅에서 적응하여 버티며 살다 보니 현실 적응력에서 여성이 더 뛰어나게 기질을 발휘하고 적극적으로 앞서 나가는 것은 아니겠는지요. 이제 여자는 혼자 살아도 얼마든지 살 수 있고 더 편하니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할 바에야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며 의지를 굽히고 싶지 않을 테죠.
이혼은 비용 이전에 얼마든지 쉬운 일입니다. 서류상 결혼 생활을 유지하며 살아도 이혼한 사람만도 못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요는 어떻게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냐의 가치관과 정신상태 이지 무슨 형태를 취하며 살아가고 있느냐가 다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말도 계약으로 얼마든지 유효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것을 사람들은 간과하려 드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고, 종이 서류에 사인을 한 것 만이 유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놈의 착각이 문제가 아니겠는지요.
남편께서도 아주 반대만을 하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다만 편리 위주로 흘러만 가는 듯한 변화의 회오리가 두려운 것은 아닐 런지요? 조상을 모시고 안 모시고 교회에 나가고 안 나가고의 문제보다 둘의 마음이 어긋남이 안타까운 것일 테지요. 아이는 둘 사이를 보며 저 편한 대로 생각하고 느끼며 선택할 거고요.
하지만 이혼을 주장하는 쪽이 여성이 아니라 남편 쪽이라고 한다면 남자분께서 한 발 양보하는 편이 어떨지요. 조상님들도 변화해야 먹고 사는 후손에 대하여 그 밥그릇을 탐하지 않으리라 생각되고 어떻게 해서라도 내외가 화합하여 잘 살아주기를 바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목사님들이 주례뿐만이 아니라 재판관의 역할까지 맞게 되었는지 우려가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진정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주의에서도 그러한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만 목사가 교회를 다녀라 말라 할 권한도 없고 법도 쥐어지지 않았지요.
철없는 후배 여자들 중에 제사가 싫으니 결혼하면 교회에 나가겠다고 하는 당돌함에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깜찍한 악의를 띤 경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종교든 정치든 자신들의 이익 집단으로의 편향된 권력이 쥐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희생과 헌신은 단지 세 치 혀바닥에 흘러나오는 떠벌이 말로 해결되는 것이 결코 아닐 테니까요. 또한 어느 한 쪽에서만 잘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둘 다 서로의 어려움과 상태를 이해하고 받아주려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 시작해 놓고 지치고 상황이 나빠졌다고 해서 헌신짝 버리듯 버리는 것은 옳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앞으로 누구를 만나도 상황이 수월치 않을 남편쪽의 고단함이 예견 되어 있는 상황에서 분풀이 하듯 이혼을 서두르거나 논리적으로 이기려 하는 것은 무리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최상과 최선의 해결 가능한 적합한 변화를 찾아야 겠지요.
우리들 대부분 모두의 일상에서는 화합할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미쳐 나누지 못한 오해의 골이 더 먼저 깊은 것은 아닐 런지요. 너무 정직하게 살아온 삶이 때로 융통성 발휘를 억압하기도 합니다. 서로의 입장을 잘 새겨서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할 때 해결의 실마리는 보다 가까워질 것입니다. 정말 숨막히게 대화가 되지 않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닐 것입니다. 나쁜 상황보다 더 나쁜 것은 나쁜 결과로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게 저의 경험이네요. 그러니 상황보다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결의 방향을 풀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의 양보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랑은 하는 것보다 지켜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되니까요. 모쪼록 신의 가호 아래 좋은 해결 방안이 찾아지기를 바라겠습니다.
자신은 모든 것을 다 포기하다시피하며 아내와 아이를 위해 뒤늦게 이국만리 타향 살이를 감행하였는데 새로운 터전에서는 자신을 위하고 바라봐 주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으니 가뜩이나 막막함 가운데 뿌리 내리지 못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마냥 얼마나 당황되고 외로울 지요.
그러나 바깥에서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고 힘들었겠지만 안에서 살림하며 제사상 차리고 살기도 여간 버거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앞으로 아이가 나아지는 것에 대해서도 거의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일 테고 이국 땅에서 적응하여 버티며 살다 보니 현실 적응력에서 여성이 더 뛰어나게 기질을 발휘하고 적극적으로 앞서 나가는 것은 아니겠는지요. 이제 여자는 혼자 살아도 얼마든지 살 수 있고 더 편하니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할 바에야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며 의지를 굽히고 싶지 않을 테죠.
이혼은 비용 이전에 얼마든지 쉬운 일입니다. 서류상 결혼 생활을 유지하며 살아도 이혼한 사람만도 못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요는 어떻게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냐의 가치관과 정신상태 이지 무슨 형태를 취하며 살아가고 있느냐가 다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말도 계약으로 얼마든지 유효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것을 사람들은 간과하려 드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고, 종이 서류에 사인을 한 것 만이 유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놈의 착각이 문제가 아니겠는지요.
남편께서도 아주 반대만을 하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다만 편리 위주로 흘러만 가는 듯한 변화의 회오리가 두려운 것은 아닐 런지요? 조상을 모시고 안 모시고 교회에 나가고 안 나가고의 문제보다 둘의 마음이 어긋남이 안타까운 것일 테지요. 아이는 둘 사이를 보며 저 편한 대로 생각하고 느끼며 선택할 거고요.
하지만 이혼을 주장하는 쪽이 여성이 아니라 남편 쪽이라고 한다면 남자분께서 한 발 양보하는 편이 어떨지요. 조상님들도 변화해야 먹고 사는 후손에 대하여 그 밥그릇을 탐하지 않으리라 생각되고 어떻게 해서라도 내외가 화합하여 잘 살아주기를 바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목사님들이 주례뿐만이 아니라 재판관의 역할까지 맞게 되었는지 우려가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진정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주의에서도 그러한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만 목사가 교회를 다녀라 말라 할 권한도 없고 법도 쥐어지지 않았지요.
철없는 후배 여자들 중에 제사가 싫으니 결혼하면 교회에 나가겠다고 하는 당돌함에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깜찍한 악의를 띤 경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종교든 정치든 자신들의 이익 집단으로의 편향된 권력이 쥐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희생과 헌신은 단지 세 치 혀바닥에 흘러나오는 떠벌이 말로 해결되는 것이 결코 아닐 테니까요. 또한 어느 한 쪽에서만 잘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둘 다 서로의 어려움과 상태를 이해하고 받아주려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 시작해 놓고 지치고 상황이 나빠졌다고 해서 헌신짝 버리듯 버리는 것은 옳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앞으로 누구를 만나도 상황이 수월치 않을 남편쪽의 고단함이 예견 되어 있는 상황에서 분풀이 하듯 이혼을 서두르거나 논리적으로 이기려 하는 것은 무리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최상과 최선의 해결 가능한 적합한 변화를 찾아야 겠지요.
우리들 대부분 모두의 일상에서는 화합할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미쳐 나누지 못한 오해의 골이 더 먼저 깊은 것은 아닐 런지요. 너무 정직하게 살아온 삶이 때로 융통성 발휘를 억압하기도 합니다. 서로의 입장을 잘 새겨서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할 때 해결의 실마리는 보다 가까워질 것입니다. 정말 숨막히게 대화가 되지 않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닐 것입니다. 나쁜 상황보다 더 나쁜 것은 나쁜 결과로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게 저의 경험이네요. 그러니 상황보다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결의 방향을 풀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의 양보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랑은 하는 것보다 지켜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되니까요. 모쪼록 신의 가호 아래 좋은 해결 방안이 찾아지기를 바라겠습니다.

이수
개구쟁이씨의 댓글 남자가 양보하는 것이 해답인것 같습니다.하는 얘기 잘 알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결이라는 것이지요. 십분 이해갑니다.댓글 고맙습니다.
써니씨의 성의 있는 답변도 고맙습니다.
뼈아픈 경험으로 적당히 양념을 처서 버무른 긴 처방
약발이 먹힐 것같습니다.
서로 자기 주장만 하다보면 답이 없을 것이고
같이 사는 것이 헤어지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서로 적당한 선에서 양보를 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을 테니까요.헤어지고 나면 그다음에는
엎어진 물그릇일 테고 일이 벌어지기 전에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고 그다음에는 이것을 잘 감당하는 방법을
고민해두는 것이지요.
이런 일을 두고 얘기를 할때 헤어지는 것을
전제로 하기는 쉽지가 않더라구요.
그러나 솔직하게 얘기를 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풀어 볼려고 하다보니
그리고 나중에 후회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얘기지
다른 뜻은 없는 것을 본인들이 십분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생각같아서는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가.그리고 헤어져서 벌어질 일을 잘 감당이
아니될 것같으면 눈 딱 감고 서로의 주장을 철수를 하고
교회도 제사도 모두 포기하는 것이 어떨가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그것은 아무래도 현실적인
답이 아니고 모두 그것이 절실하기 때문에
여기 까지 온것아니겠어요.
그래서 서로 대화를 해서 적당한 선에서 말하자면 기간을 자르던지
정도를 자르던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본인들은 꼭 살아야 된다면
적당한 타협안이 나올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각자 주장하는 그 강도를 옆에서 가늠할 수가 없고
그것은 서로 대화를 통해서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니 좀 힘들어도 대화를 해라 했지만 이미 서로
차분한 대화는 어렵다고 하더군요.
사람은 누구나 과거 경험의 축적이 현재 생각의
결정체이니 이것을 끄집어 내서 그 강도나 현재의 상태를
점검해나가는 수 밖에요.그런 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이나
오해는 걸러질 것이고 군더더기는 빼고 알맹이만 가지고
대화를 해보는 것이 어떨가 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문제가 좀 간단해지고
서로의 오해도 상당부분 해소가 될 것이고
양보해야 할 부분도 훨씬 줄어 들지 않을 가합니다.
만약에 이것을 본인들이 하기 힘들면
헐 수 없이 상담 전문가의 도움을 빌리는 수 밖에요.
전문가도 아닌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얘기가
한계가 있을 수 밖에요.
이정도로 우리의 얘기를 끝내고 기다릴 친구한테
전할 가 합니다.
개구쟁이씨 써니씨의 귀한 의견이 효과가
있다면 기회봐서 한턱 내리다.
고맙습니다.
써니씨의 성의 있는 답변도 고맙습니다.
뼈아픈 경험으로 적당히 양념을 처서 버무른 긴 처방
약발이 먹힐 것같습니다.
서로 자기 주장만 하다보면 답이 없을 것이고
같이 사는 것이 헤어지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서로 적당한 선에서 양보를 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을 테니까요.헤어지고 나면 그다음에는
엎어진 물그릇일 테고 일이 벌어지기 전에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고 그다음에는 이것을 잘 감당하는 방법을
고민해두는 것이지요.
이런 일을 두고 얘기를 할때 헤어지는 것을
전제로 하기는 쉽지가 않더라구요.
그러나 솔직하게 얘기를 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풀어 볼려고 하다보니
그리고 나중에 후회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얘기지
다른 뜻은 없는 것을 본인들이 십분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생각같아서는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가.그리고 헤어져서 벌어질 일을 잘 감당이
아니될 것같으면 눈 딱 감고 서로의 주장을 철수를 하고
교회도 제사도 모두 포기하는 것이 어떨가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그것은 아무래도 현실적인
답이 아니고 모두 그것이 절실하기 때문에
여기 까지 온것아니겠어요.
그래서 서로 대화를 해서 적당한 선에서 말하자면 기간을 자르던지
정도를 자르던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본인들은 꼭 살아야 된다면
적당한 타협안이 나올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각자 주장하는 그 강도를 옆에서 가늠할 수가 없고
그것은 서로 대화를 통해서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니 좀 힘들어도 대화를 해라 했지만 이미 서로
차분한 대화는 어렵다고 하더군요.
사람은 누구나 과거 경험의 축적이 현재 생각의
결정체이니 이것을 끄집어 내서 그 강도나 현재의 상태를
점검해나가는 수 밖에요.그런 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이나
오해는 걸러질 것이고 군더더기는 빼고 알맹이만 가지고
대화를 해보는 것이 어떨가 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문제가 좀 간단해지고
서로의 오해도 상당부분 해소가 될 것이고
양보해야 할 부분도 훨씬 줄어 들지 않을 가합니다.
만약에 이것을 본인들이 하기 힘들면
헐 수 없이 상담 전문가의 도움을 빌리는 수 밖에요.
전문가도 아닌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얘기가
한계가 있을 수 밖에요.
이정도로 우리의 얘기를 끝내고 기다릴 친구한테
전할 가 합니다.
개구쟁이씨 써니씨의 귀한 의견이 효과가
있다면 기회봐서 한턱 내리다.
고맙습니다.

이수
여기 사이트에서는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읽는 편에 드는
글이 되어서 그 후일담이 궁금한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몇자 적어 둡니다.
저는 이글을 그대로 문제가 되었던 당사자한테 읽게 했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전화로만 얘기를 들었는데
개구쟁이씨의 의견과는 다르게 여자쪽에서 좀 양보를 해서
교회다니는 것을 자제하기로 했답니다.
일시적인 휴전인지 계속 그럴 것인지는 알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둘중에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양보하게 되어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솔로몬의 판결인 셈이지요.그리고 많이 양보하는
사람이 결국은 이기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랑싸움에서
이기고 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마는.
아니면 남자의 의견이 워낙 강하다보니 여자가 다음을
위해서 이번에는 양보를 하고 다음에
무슨 중요한 건이 있으면 남자의 양보를 구할려는 고단수
인게지요.여자는 원래 남자보다 이런 일에서는 항상 그렇듯이
말입니다.
글이 되어서 그 후일담이 궁금한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몇자 적어 둡니다.
저는 이글을 그대로 문제가 되었던 당사자한테 읽게 했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전화로만 얘기를 들었는데
개구쟁이씨의 의견과는 다르게 여자쪽에서 좀 양보를 해서
교회다니는 것을 자제하기로 했답니다.
일시적인 휴전인지 계속 그럴 것인지는 알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둘중에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양보하게 되어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솔로몬의 판결인 셈이지요.그리고 많이 양보하는
사람이 결국은 이기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랑싸움에서
이기고 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마는.
아니면 남자의 의견이 워낙 강하다보니 여자가 다음을
위해서 이번에는 양보를 하고 다음에
무슨 중요한 건이 있으면 남자의 양보를 구할려는 고단수
인게지요.여자는 원래 남자보다 이런 일에서는 항상 그렇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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