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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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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5일 00시 44분 등록

퇴근길, 연신내에서 703 버스를 탔다. 파주에서 서울역까지의 노선도 길고
사람이 많은지라 보통은 한대 보내고 좀 여유있어 보이면 탄다.
그런데 오늘은 반팔을 입고 나왔더니 추워서 첫번째 오는 버스에 냉큼 올랐다. 타자마자 쓱 보니 자리가 없다.

앞에 앉은 여고생이 고개를 흔들며 자는 모양을 보자니 왜 이리 부러운지 모르겠다. 다음부턴 한 정거장 앞에 가서 타야겠다 생각을 해 본다.
한 20분 가자니 구두를 신은 발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면 이제 금방 내릴거야.. 스스로를 달래고 있는데 반대편 좌석쪽에 창문을 누가 열었다.
안 그래도 추운데 바람을 맞고 있으려니 감기 들것 같아 서 있는 위치를 오른쪽으로 한 보 옮겼다. 내가 막고 있는 바람이 앉아있는 여고생에게 바로 불어대니 졸면서도 추운지 몸서리를 친다.

내 옆에 서 있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버스 천장의 에어콘 통풍구를 만지작거리시더니 방향을 본인 쪽으로 바꾸신다. 에어콘 바람 때문에 여고생이 추워한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팔을 뻗어 한참을 이리저리 통풍구를 만지셔서, 창문이 열려서 그래요 말씀을 드렸다. 그러냐고, 할아버지는 반대편으로 가셔서 다른 사람들이 추워하니 창문을 닫자고 말씀하셨다.

창문은 닫히고 버스 안은 다시 따뜻해졌다. 계속 고개를 떨구고 자는 여학생과 서 계신 할아버지를 보자니 내가 참 나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어른께선 어찌 그런 마음 씀씀이를 가지셨나 싶고, 넒은 등판으로 한 10분 더 막아줄 생각을 못한 내가 참 몰인정한 인간인 것 같다.

주위 사람을 살피는 마음은 나이가 들어도 저절로 생기지 않는 것인데,
난 어찌 된 셈인지 있는 마음도 까먹고 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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