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 김진
  • 조회 수 3837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08년 5월 16일 12시 31분 등록
1996년쯤 지하철에서 이어폰으로 FM 방송을 듣는데 나레이터가 들려주던 시를 듣고는 다음날 곧바로 서점에가서 샀던 시집 "꿈을 불어로 꾼 날은 슬프다" (염명순)의 시.

--------------------------------------------------------------
세한도


내 생애는 끝내
쓸쓸한 지붕 얹고 그 안에
찬바람을 듣는 두 귀만 밝아
들판에 가득한 달빛을 문풍지에 담는다

무너진 세월의 고랑사이
추억처럼 흰 눈이 내리는 날
인적 없는 마음에 불을 지피고
담담한 먹빛 풀어
유배의 방은 물들고
언뜻언뜻 끊어졌다 이어지는
시린 눈발 끝에 고개 숙인
나는 늙은 소나무

나도 한때는 저 마을의 불빛을 그리워했으리
해소기침 밭은 숨 몰아쉬며
누군들 고고 싶지 않았으랴
한 시절 꾸던 꿈과
제주 앞바다를 솟구치던 파도 잠재운 뒤
흰 화선지에 한 획씩 더해지는
젊지 않은 나이도 고마우이

나이 들어 눈 대신 밝아진 마음 하나로 심지 돋우고
밤새 난초를 치다보면
하나 둘 꽃망울로 맺히는 그리움도
이젠 아름다우니
이 마음 먼 물길을 건너
뭍을 오를 때엔 이미
환하게 꽃피어 있으리
IP *.20.4.60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08.05.17 00:46:37 *.36.210.11
와! 멋지네요. 시조 같은 고풍스런 여운이 감돌면서요.

요즘 나이들어감이 어쩐지 약간 우울한 듯 하기도 했는데 정갈하고 담백한 수묵화를 그리며 일상을 음미하는 여유가 고고한 우아함을 느끼게 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한희주
2008.05.17 09:09:36 *.221.78.72
'매경한고발청향(梅經寒苦發淸香)'
대학 다닐 때 자주 가던 찻집의 벽에 붙어 있던 한시 한 귀절이 떠오릅니다.
매화는 매서운 추위를 견뎌 내야 맑은 향을 발 할 수 있듯, 우리네 삶도 땀과 눈물을 쏟아내야 무엇 하나를 이룰 수 있지 않나싶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