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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7일 11시 51분 등록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_7



최근에 윌 듀란트의 <역사 속의 영웅들>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철학과 마주앉아 영웅들의 줄거리를 듣는 책입니다. <우파니샤드>, <향연>, <데카메론>, <햄릿> 따위의 다양한 고전들을 인용하여 지면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성경>에 대해서는 한 장 전체를 할애하였는데, 그 내용도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 (5장 구약 성서의 철학과 시)

<성경>과 관련된 장을 읽으면서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모두 기독교인은 아니겠지? 비록 <성경>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있긴 하지만, 기독교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는걸? 이런 식이라면, <성경>도 꽤 재미있는 소재가 될 수 있겠군.”

그래서 또 생각했습니다. “<성경>과 관련해서 재미있게 써보자. 기독교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어떻습니까? 제 생각이 좀 맹랑했나요? 그래도 한 번 시도해 볼 셈입니다. 칼을 뽑았으니 호박이라도 갈라보아야지요. 이번에는 <성경>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우선 논란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약간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두어야겠습니다.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손가락에 힘을 좀 주는 것도 나쁠 것 없지요. 안전제일이니까요. 대신, 이후부터는 달려가겠습니다.

1)이 글의 목적은 ‘정보제공’입니다. 주장이나 설득은 최소화 할 셈입니다. 독자는 ‘앎의 즐거움’을 위해 읽는다면 무리가 없겠습니다.

2)<성경>을 둘러싼 논의는 매우 많지만, 그 중 가장 뜨겁게 회자되는 것은 무오설(<성경>은 오류가 없다는 주장)에 관한 것입니다. 한 쪽에서는 <성경>이 ‘일종의 신화’라고 주장하며, 다른 한 쪽에서는 ‘신의 계시’라고 주장합니다. 저의 입장은 분명하지만, 이런 류의 변증은 피하겠습니다. 컬럼 수준에서 맺어질 이야기가 아닙니다.

3)제공하려는 정보는 ‘기독교의 줄거리’입니다. 기독교의 함의를 벗어난 곳으로부터 날아오는 화살에 대해서는 “맞네, 틀리네” 의 평가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애초부터, “<성경>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은 이런 것입니다”가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 이기 때문입니다.

4)신학을 전공한 전문가들에게는 그저 그런 이야기일 것임이 분명합니다. “겨우 이런 내용 가지고 그렇게 폼을 잡았던 거야?” 라는 호전적인 질문에 이 글은 무방비입니다. 대상 독자는 ‘기독교의 줄거리에 관심이 있는 대중’입니다.

준비가 다 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준비되셨겠죠? 이제, 약속대로 달려볼까요?

<성경>을 기록한 사람은 40명 정도가 됩니다. 모세,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베드로, 바울 등등 직업과 시대가 천차만별입니다. 왕, 어부, 의사, 부랑자, 선생 따위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BC 1,500년부터 AD 100년까지 1,600여 년에 걸쳐 기록한 것입니다. 기원 전의 기록을 구약(Old Testament: 옛 약속)이라고 하며, 기원 후의 기록을 신약(New Testament: 새로운 약속)이라고 합니다. 구약이 총 39권이고, 신약이 총 27권입니다. 흔히 <성경>이라고 하면, 구약과 신약을 모두 합친 66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성경 전서>라고도 합니다.

직업과 시대가 다른 40여 명이 기록한 66권의 책이지만, 주제는 모두 동일합니다. 복음(Gospel: 복된 소식), 즉 “메시야가 오셔서 그의 백성을 구원한다”가 <성경 전서>의 주제입니다. 여기서 기독교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제시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시대와 직업이 각기 다른 40여 명의 글이 어떻게 하나의 주제를 가질 수 있었을까? 한 방에 모여 앉은 대여섯 사람의 의견도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데. 이것은 신의 계획과 섭리임이 분명하다.”

66권의 책들은 크게 세 부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역사서, 예언서, 교훈서’가 그것입니다. 모세 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비롯한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 역대 상하, 등이 대표적인 역사서이며,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따위의 선지서(선지자들이 쓴 책)들도 얼마간 역사서로 볼 수 있습니다. ‘얼마간’이라고 쓴 것은 선지서가 교훈서, 혹은 예언서의 성격을 모두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시가(詩歌: 시와 노래)로 구분하는 시편, 잠언, 아가, 전도서는 교훈서로 볼 수 있으며, 신(God) 변증서로 통하는 욥기 역시 교훈서로 보면 됩니다. ― 구약의 분류였습니다.

신약에서는 초대교회 사도들의 행적을 담은 사도행전만이 ‘유일한 역사서’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중에게도 매우 잘 알려져 있는 요한계시록이 신약의 ‘유일한 예언서’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교훈서입니다. 공관복음, 이방인을 위한 교리, 히브리인을 위한 교리, 교회에 대한 가르침, 목회서신 따위의 다양한 분류가 있긴 하나 이곳에서는 논의로 삼지 않겠습니다.

여기까지가 <성경>의 모양새입니다. 큰 그림만 그려보았습니다. 지루해지지 않기 위해 최대한 “크게, 크게” 그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오히려 “조밀, 조밀” 그려볼 셈입니다. 여기서부터는 그래야 재미있습니다. 바로 <성경>의 내부. 줄거리입니다. 앞부분보다 이곳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성경>의 내부에는 굉장히 많은 내용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윌 듀란트도 이것을 중심으로 구약성경을 풀이했습니다. 그는 이 밖에도 시편과 아가에서 몇 구절의 시구를 가져와 소개하였으며, 욥기의 내용도 얼마간 거들었습니다. 그의 풀이는 훌륭했지만, 앞 뒤로 조금 생략된 내용이 있었던 것과 신약의 풀이가 빠진 것이 아쉬웠습니다. 이것을 보충하여 줄거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만 해도 충분히 많은 내용이기에 시편, 아가, 욥기 따위의 논의는 제하겠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인류의 역사’쯤으로 읽히면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의 첫 장, 첫 구절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이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합니다. 첫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 세상이 창조되며, 마지막 날인 여섯째 날에 인류의 조상으로 일컬어지는 아담과 하와가 창조됩니다. 이들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오손도손 예쁘게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금지한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에서 추방됩니다. 이들은 가인과 아벨이라는 두 아들을 낳았는데, 시기심에 사로잡힌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입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새로이 아들을 낳는데, 그의 이름이 셋입니다.

셋의 자손 중에 노아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유명한 ‘노아의 방주’의 주인공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너는 큰 방주를 만들어라. 이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 찼으니, 내가 물로써 세상을 심판하리라.” 이어 세상은 대 홍수로 완전히 물에 잠기고, 방주에 타고 있던 노아의 가족만이 살아남습니다.

그렇게 살아남은 노아의 후손 중, 아브라함이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너는 너의 조상 땅인 갈대아 우르 지방을 나와,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고향 땅을 떠납니다. 그는 백 세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의 이름이 이삭입니다. 이삭의 아들이 에서와 야곱입니다. 후에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뀌는 야곱은 열 두 명의 아들을 낳습니다. 이 열 두 아들이 지금 이스라엘(유태인) 12지파의 조상입니다. 현재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 네트웍은 12지파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열 한 번째 아들의 이름이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이웃나라인 애굽(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그러나 그는 애굽의 왕인 바로(파라오: 왕을 지칭하는 말)의 꿈을 해석함으로써 바로의 신임을 얻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됩니다. 요셉의 꿈 해석대로 전국에 7년 동안 풍년이 들고, 이어 7년 동안 흉년이 듭니다. 7년 흉년 기간 중, 요셉의 관리로 애굽 땅에만 식량이 남아 있게 되자, 이웃나라에서는 애굽으로 식량을 구하러 찾아옵니다. 이때, 요셉의 형들도 식량을 구하러 찾아오는데, 요셉은 형들을 용서하고 아예 애굽 땅에 거처를 마련해줍니다.

애굽 땅에 거처를 마련한 이스라엘 민족(야곱의 자손들)은 점차 번성하여 큰 무리를 이루게 됩니다. 요셉도 죽고, 요셉을 신임하던 바로도 죽고. 새로운 애굽의 왕은 자신의 땅에 이스라엘이라는 이(異)민족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는 애굽 땅에 자리잡은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민족에게 고난이 찾아옵니다.

이후, 애굽의 왕은 급기야 이스라엘의 갓난 아이를 모두 잡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는데, 이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아이가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는 강물에 떠내려가던 중 바로의 딸에게 발견되는데, 그것을 계기로 황실에서 자라게 됩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자라지만, 자신의 출생신분을 알게 된 이후, 애굽 땅에서 노예 생활을 하는 동족(이스라엘 민족)의 삶에 연민을 느낍니다. 그러던 중 이스라엘 민족을 학대하는 한 애굽 병정을 살해하고는 광야로 달아납니다.

광야에서 목자로 지내던 중,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네가 애굽으로 가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해내야겠다. 가라. 가서 내 백성을 데리고 나오라.” 모세는 애굽으로 돌아가 바로에게 이스라엘 민족을 풀어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바로는 그의 요구를 거절합니다. 하나님이 내린 열 가지 재앙을 겪은 후에야,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을 풀어줍니다. 이것이 출애굽(Exodus) 사건입니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여리고 성을 점령한 이들은 가나안 땅의 나머지 부분도 차례로 점령해 갑니다. 이후 삼손, 이새, 에훗, 기드온 등의 사사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갑니다. 사사들의 통치로 다스려졌다 하여, 이 시기를 ‘사사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에 이르러, 이스라엘 민족은 왕정을 요구합니다. 자신들도 이웃나라들처럼 왕이 통치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게 아니었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끝까지 왕정을 원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초대 왕, 사울을 필두로 왕정체제에 들어갑니다. 사울의 다음이 다윗 왕, 다윗의 다음이 솔로몬 왕입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입니다) 다윗과 솔로몬 때, 이스라엘은 전성기를 맞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이스라엘은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분열되고 맙니다. 남 유다는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이 통치했으며, 북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신하였던 여로보암이 통치했습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남 유다에 속했으며, 나머지 열 개 지파가 북 이스라엘에 속했습니다. (지파의 이름은 야곱의 열 두 아들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유다 지파에서 다윗과 솔로몬, 그리고 예수가 나옵니다) (예수는 다윗과 솔로몬의 후손인 셈입니다)

잠깐 숨을 좀 돌리겠습니다. 여기까지가 창세기부터 사무엘 상까지의 내용입니다. 이후부터는 왕을 중심으로 기술되는 역사입니다. 사실, 여기서부터가 좀 복잡합니다. 성경의 배열은 여기까지만 시대 순입니다. 이후부터는 중간 중간에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따위의 선지서들이 삽입됩니다. 어디가 어디인지 찾아가며 읽기 시작해야 합니다. 여기서부터는 복잡한 부분을 조금 크게 그리며 뛰어넘겠습니다.

선지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에스겔 정도입니다. 십여 개에 이르는 나머지 선지서들은 이번 논의에서 제하겠습니다. 명쾌함을 위해 그게 낫습니다.

이사야는 분열된 남 유다의 히스기야 왕 때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히스기야는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의 후손입니다. 즉, 르호보암의 아들, 그의 아들, 또 그의 아들, 이렇게 내려가다 보면, 히스기야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 시기의 왕들을 모두 나열하는 것 보다는 ‘르호보암의 후손 히스기야의 때’ 라고 하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이때가 대략 BC 750년 전후 입니다. 이사야의 활동시기입니다. 그는 AD의 인물인 예수에 대해 많은 예언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다음은 예레미야입니다. 예레미야는 남 유다 멸망 직전부터 멸망 직후까지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이사야의 활동시기가 BC 750년 전후였고, 남 유다의 멸망이 BC 586년 이니까, 두 선지자의 활동시기는 200년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남 유다는 BC 586년에 바벨론 제국에게 멸망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두 개의 <성경>을 썼습니다. ‘예레미야서’와 ‘예레미야 애가서’ 입니다. 특별히 예레미야 애가서는 남 유다의 멸망을 지켜보며 그 슬픔을 기록한 것입니다.

남 유다를 정복한 바벨론 제국은 이집트에 잠깐 머물렀다가 본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갑니다. 다니엘과 에스겔은 이때 끌려간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남 유다 멸망 직후까지 활동했던 예레미야보다 약간 이후의 인물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들은 각각 ‘다니엘서’와 ‘에스겔서’를 썼습니다. 다니엘서는 신약의 요한계시록과 함께 읽는 <성경> 입니다. 예언서의 성격이 강합니다. 에스겔서 역시 예언서의 성격이 강한데, 골자는 “이스라엘이 지금은 멸망 당하여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지만, 이후 이러이러하게 회복될 것이다. 상심하지 말라” 입니다.

정리하면, 이스라엘의 분열 이후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에스겔 등의 선지자들이 남 유다에서 활동했으며, 그 활동시기는 이사야(BC 750년 전후), 예레미야(남 유다 멸망 전후), 다니엘(바벨론 포로기간), 에스겔(바벨론 포로기간) 순이 되겠습니다. 참고로 남 유다와 함께 분열된 북 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합니다. 남 유다의 멸망보다 130년 가량 앞선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에 대한 논의가 적은 것은 성경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에스겔 이외에도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고, 이들의 목소리 역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멸망과 회복을 예언했다는 측면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허나, 모두를 언급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을 듯하여, 선지서는 이 정도로 해두겠습니다. 소개해 둔 4명의 선지자들을 통해 대략의 내용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잠깐 이 시기가 어떤 때였는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주변국이나 유럽, 아시아의 역사와 비교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시기는 알렉산더 대왕이 나오기 250여 년 전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BC 336년에 활동했던 인물이니까요. 유럽에서는 아테네, 아크로폴리스가 건립되어 민주정치가 시작된 시기입니다. 소크라테스 이전입니다. 소크라테스는 BC 300년대 사람이니까요. 이 시기에 공자가 태어납니다. 공자는 BC 552년에 태어났습니다. 남 유다가 멸망한 것이 BC 586이니까 30여 년 후입니다. 사마천의 <사기>가 다루고 있는 범위는 BC 700년 ~ AD 100년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BC 722년에 멸망했으니까, <사기>의 시작부분이 북 이스라엘의 초토화 시기와 비슷합니다. 우리나라는 보이지도 않습니다. 삼국시대가 BC 100년경에 태동하니까, 아직 멀었습니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오겠습니다. BC 400년부터 AD 년도가 시작되는, 약 400년간의 사건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시기는 <성경>에서 암흑기입니다. 신약과 구약 사이에 400여 년의 공백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400년의 공백기 동안, 남 유다를 멸망시켰던 바벨론이 무너지고, 페르시아, 헬라, 로마가 차례로 이스라엘을 통치합니다. 신약의 배경이 되는 AD 1년부터 100년까지는 로마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시기이며, AD 135년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완전히 멸망하여, 전 세계로 흩어지는 디아스포(Diaspora)라 시기입니다.

다음은 신약입니다. 신약의 역사서는 사도행전 하나입니다. 간략합니다. 사도행전의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고 죽은 후, 그의 열 두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집니다. 자신들의 스승이 죽음으로써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부활하여 그들 앞에 여러 차례 나타나면서, 이들은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바로 부활에 대한 희망입니다.

마침내, 오순절 날 다락방에 모인 그들에게 성령(하나님의 영)이 임합니다. 이들은 이 체험을 계기로 초대교회를 시작합니다. 이들은 사도라는 이름으로 여러 지방을 다니며 예수의 부활을 전합니다. “사도들의 행진을 기록하였다” 하여 이 성경의 이름이 사도행전입니다. 사도행전에는 바울의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의 여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 여기까지가 성경의 대략적인 줄거리입니다. 정리해보겠습니다. 단어만 쭈욱 나열해도 그림이 그려질 거라 믿습니다. 천지창조, 아담과 하와, 에덴동산, 추방, 노아의 방주, 아브라함, 열 두 지파, 요셉, 7년 풍년과 7년 흉년, 애굽 이주, 노예가 된 이스라엘 민족, 모세, 출애굽, 사사시대, 왕정시대, 다윗과 솔로몬,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분열, 북 이스라엘 멸망, 이사야의 예언, 예레미야의 예언, 남 유다 멸망, 다니엘, 에스겔. 여기까지의 역사 기록이 구약 성경의 줄거리입니다. 그 외의 ‘시편, 잠언, 아가, 욥기, 전도서’ 따위의 성경은 이 역사의 주인공들이 썼던, ‘시, 노랫말, 변증서, 교훈의 말씀’ 정도로 읽히면 되겠습니다.

신약도 단어만 나열하겠습니다. 예수 탄생(AD 1년), 예수 십자가형으로 죽음(AD 32년), 예수 부활하여 열 두 제자들에게 나타남, 오순절 다락방 사건, 초대교회 시작, 사도들의 전도 여행, 마가복음 기술(최초의 신약성경 기술, AD 50년경), 나머지 신약 성경 기술(AD 100년까지), 유대인 멸망과 디아스포라(AD 135년). 여기까지가 신약의 줄거리입니다.

신약에 대해서 조금만 부연하겠습니다. 사도 중 바울이라는 자가 27권의 신약 성경 중, 16권을 기록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베드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의 제자들이 기록하였습니다. 신약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기록한 것으로, 교훈서나 역사서의 성격보다는 예언서의 성격이 강합니다. 이것은 구약의 다니엘서와 함께 읽습니다. 역사서인 사도행전과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을 제외한, 전 신약성경은 교훈서로,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 지침’ 정도로 보면 됩니다.

지금까지 <성경> 안쪽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바깥쪽의 이야기를 잠깐 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너무 길어졌네요. 에두름 없이 달리겠습니다.

책에 대해서라면, 저는 ‘고전(古典)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상당한 지식과 통찰을 기반으로 독자들에게 양질의 정보와 강한 자극을 전하는 책.” 실제로 사람들은 고전을 읽고 정보를 얻으며, 삶에 대한 자세와 가치관을 바꾸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고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성경>만한 고전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성경>은 역사서일 뿐만 아니라, 그 안에는 인생과 자연에 대한 상당한 통찰도 담겨 있습니다. 지난 2,000년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탐독해 왔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고 가치관을 바꾸었으며, 어떤 이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어가기도 했습니다. ‘정보와 자극’이라는 측면에서, <성경>은 당당히 고전인 셈입니다.

간혹, <성경>에 대해 오해를 하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인생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 그 무능력에 대한 패배감을 보상받고 싶은 사람들. 그래서 종교라는 도피처에 기대야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위한 답답한 책이 바로 <성경>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이지 오해입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났고, 가장 순수했던 영혼들이 <성경>을 사랑해 왔었다는 사실.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성경>이라는 굳건한 반석을 의지한다.” – 윈스턴 처칠

“우리는 하나님의 <성경>이야말로 가장 고상한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심오한 역사를 보아도 성경에 나오는 기록만큼 정확성을 가진 것은 없다.” – 아이작 뉴턴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는 이 복된 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찌하여 사람들은 길을 잃는가?” – 마이클 페러데이

“고상한 책, 만인의 책, 그 진실성과 단순성 및 그 아름다운 음률의 위대함이여.” – 토마스 칼라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책. (2,700여 개의 언어로 번역, 세계 통용어 6,500여 개의 약 41%)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세계에서 가장 많은 버전이 있는 책. 누구든 그 책의 인용구를(어떤 구절이든) 한 번쯤은 들어 본 책. 많은 위인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는 책.

이쯤 되면, ‘기독교 경전으로서의 그것’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읽어볼 만 한 고전 중의 그것’이 될 법도 하지 않을까요?
IP *.235.3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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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
2008.05.18 21:55:12 *.253.124.54
잘 읽어보았습니다!
상당히 잘 정리하셨네요..

저에게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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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쟁이
2008.05.20 11:40:30 *.52.236.185
도움이 되셨다니, 저도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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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8.05.21 11:25:15 *.169.188.175
아주 사소하지만 오타인지 잘못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공간복음은 공관복음일 것 같군요..


자신의 눈에 들보는 모르면서
남의 티끌을 쉽게 찾아내는 사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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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8.05.21 11:29:18 *.169.188.175
어느 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그 책을 읽고 어떤 식으로 이해를 하는가가 항상 문제겠지요.

성경을 읽고 성경을 가지고 남을 재단하는 자로 쓴다면 독약이 될 것이고 성경을 읽고 자신을 비쳐보는 거울로 쓴다면 좋은 약이 되겠지요.

=

마지막 부분에 위대한 사람들이 성경을 읽었다거나 호텔에 가면 아무도 보지 않는 "기드온"인지 뭔지 하는 곳에서 뿌린 성경이 난무하는 것을 알고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되었느니 가장 많이 팔렸다니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으로 저는 생각되는 군요.

마치 베스트셀러 판매상과 같은 논조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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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8.05.21 11:31:21 *.169.188.175
이런 식이었으면 어떨까 생각을 합니다.

성경을 읽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인생이 바뀌었다...

종교이야기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기는 하지만 성경이 몇권씩 있는 집이 수두룩한 한국교회가 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보면 결코 성경이 사람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품을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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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쟁이
2008.05.21 21:55:24 *.235.31.78
햇빛처럼님. 안녕하세요. ㅎ

제가 또 공관을 공간으로 썼네요. 전에도 한 번 그렇게 써서 지적을 받았었거든요. 손가락이 그렇게 기억하나봐요. 수정하겠습니다. ^^

그리고. 역시 마지막 부분은 넣지 않는 것이 좋을 뻔 했나봐요. 지금 마지막에 사족처럼 붙어버린 것이 실은 맨 앞 부분에 나올 내용이었거든요.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서론 부분을 다시 썼드랬죠. 헌데, 그냥 버리기가 좀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약간 수정해서 뒤에다 갖다 붙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지적을 받네요. 엉거주춤했던거죠.

그러나 뒷 부분을 지우지는 않을게요. 어떤 분들께는 의미있는 내용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햇빛처럼님과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시는 분들도 분명 계실테니까요.

읽어 주신 것도 감사한데, 피드백까지 해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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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8.05.22 13:22:01 *.169.188.175
개구쟁이님..

그렇게 받아주시니 감사합니다. 글이라는 것이 특히 저의 마음과는 다르게 남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많이 목격하는데 제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주시는 것 같아서 고맙습니다.

사실 요즘 저도 성경을 제대로 읽어야겠다는(특히 영어 원서 성경)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답을 달 수 밖에 없었지요.
(남이 하라면 이상하게 싫어하는 측면도 있어요. ^_^)

공관과 공간 오타와 같은 경우를 실착행위라고 하더군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어쨌든 좋은 하루 보내시고 언제 오프라인에서 만나뵐 수 있는 인연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만남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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