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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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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8일 09시 58분 등록
늑대의 죽음


1
구름은 불길 위를 날아가는 연기처럼
붉은 달 위을 달리고
숲은 땅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우리들은 묵묵히 젖은 풀숲을 밟으며
총총한 잡목, 키 큰 가시나무 속을 걸어가고 있을 때
문득 랑드 지방의 솔 비슷한 전나무 숲 아래
우리들이 쫓던 그 떠돌이 늑대들이 남긴
큰 발톱 자국들을 보았다.
우리는 귀를 기울였다. 숨도 삼키고
발걸음도 멈춘 채-숲도들도
숨소리 하나 공중에 내지 않았다. 단지
바람개비만이 황량하게 하늘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바람이 땅 위로부터 높은 곳으로 불어
발꿈치로 외롭게 선 첨탑을 스치고 갈 뿐
땅 위에 딱갈나무들은 바위에 몸을 기대고
팔굽을 베고 누워서 잠이 든 듯했다.
천지가 고요한 이 때 늑대떼를 찾고 있던
포수 중 제일 연장자가
몸을 눕혀 모래 바닥을 살폈다. 이윽고
아직 한번도 틀린 적 없는 이 노인은
낮은 목소리로 방금 생긴 이 발자국들은
두 마리의 큰 살쾡이와 그들의 두 새끼들의
걸음걸이와 억센 발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들은 모두 사냥칼을 갖추고
너무 희게 빛나는 총부리를 감춘 채
나뭇가지를 헤치며 한 발 한 발 걸어나갔다.
세 명의 포수가 걸음을 멈춘다. 그러자 나는 그들이 보고 있는 쪽을 찾다가
갑자기 이글이글 타는 두 눈을 보았고
그 뒤쪽으로 네 개의 희미한 형상이
달빛 아래 잡목 덩굴 속에서 춤추는 것을 보았다.
마치 주인이 돌아오면 좋아 날뛰는 사냥개들이
큰 소란을 피우며 뛰노는 늘 보던 그런 모습이었다.
그들은 형태도 뛰는 모습도 비슷했다.
그러나 새끼 늑대들은 소리없이 놀고 있었다.
이는 바로 지척지간에 인간이란 그들의 적이
그의 집안에서 깊이 잠들지 않고 있음을 잘 알고 있음으로써이다.
아비 늑대는 서 있고 그 뒤로 좀 떨어져 어미 늑대는
나무 옆에서 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옛날 로마인들이 숭앙하고 그 털난 가슴에
반신 레무스와 로물루스를 춤었던 대리석 늑대 상과 같았다.
아비 늑대는 앞으로 나와 앉았다. 두 앞발을 세우고
갈퀴 같은 발톱을 모래 속에 박았다.
뜻밖에 당한 일이므로 살 길이 없다고 판단했다.
퇴로는 차단되었고 모든 길은 막혔다.
그러자 늑대는 불타는 듯한 입으로
가장 용맹스러운 개의 헐떡이는 목덜미를 물었다.
그의 살을 꿰뚫은 총탄에도
무쇠 집게와 같이 그의 넓은 배창자 속을
십자로 꽂는 날카로운 비수에도
그의강철같은 턱은 벌리지 않았다.
목 졸린 사냥개가 그보다 훨씬 앞서 죽어
그의 발 아래 내동그라진 최후의 순간까지도.
그제야 늑대는 개를 놓고 나서 우리들을 쳐다본다.
우리의 칼들은 그의 허리에 손잡이까지 꽂혀
피로 흥건한 풀밭 위에 그를 못박아놓았으며
우리의 총부리는 험상한 초승달처럼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는 계속 우리를 쳐다본다. 그러고는
입가에 질펀한 피를 핥으면서 다시 눕는다.
그리고 어떻게 자기가 죽게 되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큰 눈을 다시 감으면서 아무 소리도 지르지 않고 죽어간다.



2

나는 화약 빠진 총대에 이마를 대고
생각에 잠겨, 남은 암 늑대와 그의 두 새끼들을
뒤쫓을 일조차 결심할 수 없었다.
이 세 식구는 모두 아비 늑대를 기다리고자 했으며
내가 생각컨대 이 아름답고 슬픈 빛의 암 늑대는
그의 두 새끼만 없었던들 그가 홀로 이 큰 시련을 받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미의 의무는 자식들이 굶주림을 잘 참으며
인간이 비열한 가축들과 맺는 도시인의 협약에
절대로 말려들지 않도록 가르치기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는 일이다.
이 노예 근성의 가축들은 그들의 참자리를 얻기 위해 인간의 앞에 서서
숲과 바위의 원 소유자들을 몰아내고 있는 것이다.



3

나는 생각했다. 아아, 인간이란, 이 위대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나약한 우리들 인간을 나는 얼마나 부끄럽게 생각하는가!
사람이 이 세상과 인생의 모든 고난을 어떻게 떠나야 하는지
그것을 아는 자는 너희들, 고귀한 짐승들아!
우리가 지상에서 무엇이었으며 무엇을 남기고 가는지 생각할 때
무언만이 위대할 뿐 그 외의 모든 것은 연약한 일
-아아, 야성의 방랑자여, 이제 너의 뜻을 깨달았으니
너의 마지막 눈초리는 나의 가슴까지 와 닿았다.
그 눈초리는 말하였다, "그대가 할 수 있다면
꾸준히 노력하고 가장 높은 인종의 자존지경에 이르도록 하라
숲 속에 태어난 우리들이 처음부터 올라선 이 높은 곳으로,
탄식도 눈물도 기원도 다 모두 비겁한 일
운명이 그대를 부르고자 한 길에서
그대의 오래고 무거운 과업을 힘차게 다하라.
그리고 나와 같이 소리없이 괴로워하고 죽어라."

☞ 알프레드 드 비니의 『 늑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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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교과서에 나오는 시가 전부였다.

'세계의 명시'라는 이름으로 여러 시인들의 시를 묶여서 낸 문고판 시집을 한권 접하게 되었다.

50개 혹은 100개.. 하여간 많은 시들이 그 시집에 실려 있었는데,
그중에 특이한 시가 2개가 기억에 남는다.

교과서에 실리는 시들은 모두 짧아서 선생님의 강압에 의해 외울수도 있는 길이였는데, 그 시 둘은 어떻게 외울까라고 고민되는 시들이다. 그 중의 하나는 [애너벨 리]이고, 그 중의 하나는 이 시 [늑대의 죽음]이다.
이야기가 시로 엮일 수도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늑대의 죽음]에서는 강렬한 인상이

시를 읽고나서는 쏘아는 보는 늑대의 눈이 계속 따라다녔었다.

아마도 이 시를 강하게 느꼈던 것은 그때가 사춘기였기 때문이라고 할 밖에 ....... 늑대같은 친구가 하나 있었다고 할 밖에.....



아무말이 없이 고집스럽게 꼭 다문 그녀석의 입술.
상황에 대해 한마디 말이라도 하며 꾹꾹 담아둔 감정을 풀어보기라도 하지,
그저 옆에서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으로 대신했던 친구.

말하지 않으니 물을 수 없었다.
IP *.72.15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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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주
2008.05.18 15:46:29 *.221.78.72
포우의<에너벨 리>는 우리 때 영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었지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여고 시절의 영어 선생님이 우릴 어찌나 닦달 하셨던지 지금도 처음 몇 구절은 기억하고 있어요.

'늑대의 죽음', 처음 접하는 시입니다.
왠지 섬뜩해지네요.
제 성향이 식물성이라서 그러나 봐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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