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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8일 13시 54분 등록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같은 나이를 선배님이라고 부르기 싫어서 재수를 마다하고 대학에 들어가 두세 살 위의 또래들도 그저 친구로 삼아 지내던 때,

철이든 그녀는 집안 살림도 도맡아 하다시피 해가며 착실하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삼수생으로 사색을 즐기는 신뢰할 만한 친구였다.

그녀에게는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간혹 여러 시들을 주고 받으며 간직하는 노트에는 일기와 함께 한 쪽 편에는 편지와 시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여러 시들이 있었지만 그녀가 아끼던 시들 가운데에 내게 들려준 두 가지는 특히 오래 기억에 남았다. 유치환의 <행복>, 그리고 이형기의 <낙화>다.


나는 때로 뜬금없이 이 시를 내 생활 여기 저기에 함께 붙여 써먹고는 한다.

대학 입학 전 첫 미팅에서 만났던 그러나 차이?가 나는 의젖한 재원과 헤어질 때에도

그리고 중년에 들어서 내 인생의 긴 이별, 이혼을 할 때에도 나는 이 시를 떠올렸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되뇌이면서...

어느 날 벗 가운데 말없이 사라진 친구가 하나 있기도 했지만 이따금씩 나는 그녀를 생각하며 이 시를 떠올리고는 한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았던게 아니었을까 하고. 그리고 말없이 사라져간 깊은 고마움도 함께 느낀다. 혼자서 격고 있을 외로움까지도 살차게 동반한 그녀의 숨죽인 고요함에서.


나 또한 일상의 삶 가운데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의 한 귀절의 싯기와 일치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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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주
2008.05.18 15:13:45 *.221.78.72
아름다움을 마음껏 드러내며 우리를 유혹하던 봄꽃 들도 어언 자취를 감췄고, 그 자리엔 초록의 잎새들이 자리하고 있네요.
시간이 지나면 꽃진 자리엔 또 탐스러운 열매가 맺히겠지요.

피면 지고, 맺히면 풀어지는 게 섭리인지라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여름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리는 오후, '낙화' 를 읽으며 다음을 채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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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
2008.05.18 19:21:19 *.174.185.53
약간 방향을 틀어 다른 관점으로 보아도 좋은 시네요.

가야할 때를 알지 못하는 것도 그렇지만 알면서도 미련을 두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게 요즘의 제 모습 같습니다.

차 타고 배 타고 비행기 타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정신없이 바쁘긴 한데 정작 손에 쥔 게 없는 느낌이라 허전합니다. 소중한 것에 대한 자각이 아직도 부족한가 봅니다.

제 가을은 어디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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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5.19 11:17:58 *.36.210.11
희주 언니야를 보면 그 절간의 고즈넉한 쨍! 한 단아함이 생각납니다. 모쪼록 올곧은 참 생명의 뜻을 이루소서.





갈매기 끼룩, 비행기 함께 날고




차 타고 배 타고




사람들 머리 위로 발 밑으로




바람처럼 물결따라 넘실대는 그대여!





형산 아우님, 망망대해 끝없는 바다를 넘나드는 것, 바로 우리의 삶이 그런 것 아닐까합니다. 늘 건강하시면 무엇이 걱정이겠어요. 당신의 가을은 한 뼘의 가슴 팍에 온세상을 드리우고 넘실넘실 춤추는 당신이라는 꼿꼿한 의지와 숨결 속에 이미 가득 차 있겠지요. 우리가 원하고 바라고 탐하고 기도하는 것, 그저 단순히 오늘 하루 평안함일지 모릅니다. 그것 보다 더 위대한 것 오늘 없는 내일은 없을 것이니까요. 내일 죽을 것처럼 우리 살고 있잖아요. 빈 손과 시린 맨 주먹으로 세상을 까부수며 살아가고 있잖아요. 가져 갈 수 있는 것과 놓고 가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 보는 거지요. 몸 마음 늘 건강하세요. 아자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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