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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2일 13시 41분 등록

김밥을 먹었다.
계동길을 따라 나와서 중앙고교로 오르는 길로 접어들었다가
왼쪽으로 돌아서 훤씰한 큰 키 꼭대기에 해바라기만한
이름모를 연노랑빛 꽃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엄마학교]앞을 지나
남몰래 담배피우는 자들의 골목이 되어버린
타고 흐르는 곡선 골목에 들어갔다.
그 골목은 재동초등학교 뒷담과 동네의 한옥벽이 만들어내는
내가 두 팔을 벌리지도 못할 좁은 길이다.


그 길에는 우엉잎과 토란대가 시원한 풀냄새를 가만히 건넨다.
그런데 오늘 너무 놀랐다. 진노랑꽃 채도가 높은 다섯장의 꽃잎을 지닌
수세미 꽃들과 수세미들이 덩굴을 이루면서 수세미꽃담을 만들고 있었다.

그 길에서 순도높은 채도높은 가을 정오의 빛을 즐긴다.
눈감아도 하양게 부서지는 빛이 눈에 가득하다

가회동사무소앞 횡단보도를 건너 좁은 길로 또 찾아들어가
김밥집에 가서 로뎀김밥을 시켰다.
손님이 많아서 영주언니가 혼자 너무 바빴다.
그 와중에 내 김밥을 챙겨주셨다.
그 행동 하나하나가 감동인 사람이다.
그것을 가지고 나와 다시
신호등을 건너려는데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가 함께 건너가자 하신다.
같이 가요.
예, 영광이에요 할머니
그분의 곱슬머리 커트가 가을햇볓에 더욱 눈부시게 빛난다.
젊은이는 힘이 있으니 좀 건너기가 나아요.
예, 할머니 편히 가세요.
나는 명인미술관과 재동초등학교 사잇길을
지나면서 올해도 새빨강 꽃사과열매같은 열매들을
후드러지게 매달려고 푸른 열매를 열심히 키운 대견한 나무를
제작년 작년부터 주목하게 되었다.
열매 하나를 줍는다. 열매들이 얼마나 많이 달렸는지 어지럽도록
그리고 이내 미끄러져 락고재와 찔레꽃으로 담을 친 할머니집 사이로 지나
청원산방으로 갔다.

말없는 시 같은 그런 순간이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한국미를 알리고 돌아오신
창호 무형문화재 심용식선생님과 그 부인께서 일에 여념이 없으신 와중에도
나를 반갑게 맞아주신다.

김밥집에 또 사람들이 많아서요.
그럼, 내가 언제든 자리없으면 오라고 했쟎아요.
친절한 그분의 흔들림없는 단아한 눈매가 너무도 아름답다.
우리가 보고 있으면 먹기 불편한테니 하시며 보름달문을 닫아주시기전에
따뜻한 물과 함께 마시라며
정수기쪽으로 손짓을 해주신다.
장인이 만든 식탁위에서 김밥을 먹는다.
우리 동네 꽃담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식탁위에 그 책에서 첫머리부터
이태백의 이별사를 담은
아미산을 떠나면서 가을 달을 노래한 시를 읽었다.
가지고 다니는 엽서에 빠르게 적어내려갔다.

[아미산의 달 노래]

아미사의 달은 가을 반달인데
달빛만 평강강 물속으로 들어가 흐른다
밤에 청계를 떠나 삼협으로 항하니
그대 그리되 만나지 못한 채 유주로 내려간다.

시성 이태백이 스물세 살에 처음으로 고향인 촉나라 땅을 떠나면서 이별의 아쉬움과 함께 양자강을 따라 내려가는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솔직 담백하게 담아냈다.

경복궁 교태전의 후원 일곽 뒤뜰에 경회루의 연못을 판 흙을 쌓아 만든 작은 가산(假山)으로 백두대간이 금강산,북한산,백악산을 거쳐 이곳 아미산까지 연결한다는 철학을 담고 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 우리 동네 꽃담중에서 > 이종근 글, 유연준 사진. 생각의 나무

중국에 있다는 아미산은 '아름다운 여인의 양쪽 눈썹'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중국여인들이 눈썹을 밀고 초승달모양, 물감으로 눈썹에 그렸다고 전해진다.
교태전 후원에 쌓은 흙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던 듯하다.




너무나 풍부한 묘사로도 풀어내기 힘든 한국의 정취라는 것
잡을듯이 잡을 수 없는 선(禪)의 미학 .. 침묵의 미학을 묘사하느라
발로 짚어내려간 것들을 종이위에 손으로 써내려간 그분의 문화사랑이  
친절히 건네는 손을 잡으면서 그 책 몇 페이지를 넘겼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18분전에 보석함 속으로 나와
눈부신 보석이 되어 본다.

대원사에 가서 몇 장의 카드를 고른다.
엇 3분 남았다.
엘리베이터앞에서 서성이다.
재빨리 타고 오른다.
지갑에서 메모를 꺼내들고 고개를 숙이며 읽어간다.

보잘것없는 나를
편안하게 정성껏
점심때마다 맞아준 로뎀김밥과 청원산방에서
오전의 일과를 잊는다.

이땅은 어느 공교한 자가 지니고 있는 신비한 보석함
나는 그 광대한 보석함속에 온갖 보석들과 함께 찾아낸 값비싼 진주
상상이 펼쳐진다. 갑작스레 지금 이순간.

오전에 위축됐던 마음이 풀린다.

IP *.193.19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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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탄
2008.09.13 17:50:15 *.254.16.31
우엉잎, 토란대, 수세미꽃, 꽃사과, 꽃담, 영주언니, 단아한 눈매...
점심시간에 만난 것들만 모아도
보석함이 되고도 남겠네요. ^^
프로필 이미지
buyixiaozi
2010.10.12 15:08:06 *.141.2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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