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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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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5일 23시 13분 등록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다.

                                                                                       사도 바울의 말씀인가?!.....


집을 나선다는 것이 내게는 힘이 들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폐쇄적이고 사람에 대해서 부정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돌아오는 길이 이유없이 멍하고 허전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거리를 바라보면은 표정이나 생김새를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고 사람들의 걸음새나 그 몸짓들을 바라볼 때... 왠지 외로움에 지쳐 헤메이는 듯한 느낌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항상 어느 순간부터 이방인처럼 그들과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것들을 보고 있으면서도 다른 것을 생각하고 다른 것을 느낀다. 문득 문득 ... 내가 뭔가 잘 못되어 있지는 않은가 걱정스러운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까닭에 무시해버린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오늘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자고 나면 기억은 멀기만하다.

나뿐 아니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어제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 조차 기억하기 힘든 바쁘기만한 삶으로 머릿속은 엉망이지만 아무도 그것들에 대해 심각해하지 않는다.

새벽녘에 잠이 들어서 12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그렇게 오후는 지나가고 있었다.

저녁 나절이 되어서야 비비적 거리다가 문을 나섰다. 조카가 전화를 해서 몇 번이나 몇 번이나 확인을 하고 있다.  열시가 넘어서야 나는 책상 앞에서 일어섰다. 항상 잠이 부족해서 느린 속도로 운전을 하는 것을 너무 싫어한다. 나는 그저 생각 없이 가만히 있으면 밀려오는 졸음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길이 밀리는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꼼짝도 하기 싫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할 때는 늦은 밤이나 이른 꼭두새벽에 집을 나선다.

차는 성산대교를 채 건너기도 전부터 막혀버렸다. 젠장...  녹음기의 이어폰을 귀에 꼽았다. 차안에 라디오에서는 박경림이가 특집이라고 컬컬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늘어 놓는데 ... 그냥 그렇게 라디오를 켜둔채 이어폰을 귀에 꼽고 녹음기 속의 노래로 생각을 옮겼다.

견인차가 묘한 소리를 내며 불을 껌벅이고 있길 래 길을 비켜 줬더니 뒤에서 빵빵거리며 지랄이다. 옘뱅할... 길도 막히는데  성질까지 돋구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깜박거리는 불빛을 따라 기어가는 차들과 함께 다리 위를 한참이나 간 뒤에서야 사고난 차들을 볼 수 있었다. 차선을 바꾸어지나면서 줄지어 추돌한 차들을 바라보다가 많이 부서지지도 않았구만... 빨리 옮길것이지...  차선이 늘어나자 차들이 쭉쭉 빠져 나간다... 금방 녹음해놓은 노래 3 개를 반복해서 듣는다 듣고 또 듣고 그러다가 ... 항상 졸음이 올 때는 담배를 피우거나 노래를 고래고래 부르는게 그런대로 졸음을 예방하는 나의 졸음퇴치법이다.. 다행히 차는 언제나 혼자서 타고 다니기때문에 내가 노래를 부르는 건지... 악을 쓰며 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 흠.  아마도 남들이 들으면 미친놈이라고 하겠지만... 언젠가 선루프를 열어놓은 걸 깜박 잊고 부른 까닭에 옆 차가 스윽... 멈추더니... 나를 보는 묘한 표정.... 그 ‘너 혹시 맛이 간거 아냐? ’ 하는 ... 어쨋거나 제 잘난 맛에 산다고 남 한테 피해주지 않는다면 뭔짓을 못해 볼거나...

서서울 톨게이트로 가는 그 길은 항상 밀려서 지랄이기는 하지만 가장 가까운 루트여서 그래도 별 수 없이 다닌다.  늦은 밤 아니 이른 새벽에 씽씽 다니다가... 벌금딱지 한 두장 뗀게 아니다.  카메라 감지기의 볼륨을 최대한으로 늘려놓았지만 나는 항상 딱지를 떼곤 한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아무튼 날아온 벌금딱지에 형이 할 말을 잊은지 오래다. 종래는 흥분하다가...  ‘돈이 문제가 아니다 잠 좀 자라 잉! 명대로 살려면...‘ 으로 바뀐지 오래다.

다리를 건너는데 30분이 더 걸렸다...

밀려오는 도로위의 하얀 점선들과 중앙 분리대... 그리고 멀리서 달려오는 빨간 차폭등...그렇게 남안성 톨게이트가 나올 때까지 나는 노래를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르고... 있었다. 다행이 애꿎은 담배는 피울 필요가 없었다.  그저 새로나온 덩어리가 꽤 큰 껌을 간간히 한 번에 두 세 개씩 단물만 빨아먹고 몇 번 우물거리다가 휴지에 뱉어내고 또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열두시가 다 돼서야 도착했다.

늦은 시간 널찍한 거실로 들어서자 조카 녀석이 반긴다. 형은 광주에서 아직 올라오지 않았다. 무슨일이 있어도 명절에는 고향에 성묘를 다녀오는 형은 언제나 큰 애를 데리고 다녔다. 은퇴한 후에도, 또 조카 녀석이 다 커서 따라가기 싫어해도 막무가내로 형은 데리고 다녔다. 오늘은 녀석이 내일 펜션에 사람이 오기로 해서 먼저 청소한다는 이유로 내려갔다가 먼저 온 것이다.

밥먹었냐는 누나의 말에 배고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탁위에 내려놓는 접시들을 바라보다가 김치찌개에 밥을 말고 부침들을 먹으며 조카가 스토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텔레비전을 보며 복숭아와  유과를 먹다가 식곤증에 ...  널찍한 소파에  누워서 가물거리는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혼자지내면서 오랜 습관중의 하나가 움직이지 않으면 먹지 않는 버릇이 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 습관은 오랜 훈련 때문에 쉬는 시간은 그저 자다가 먹다가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책을 보거나 글을 쓰게되면 잠도 자지않고 책상앞에  때를 잊고 몇 시간이고 앉아 있기 때문에 먹는 것을 잊는 것은 당연히 예사였다. 그저 죄없는 담배를 줄창 물고 있거나  괜찮은 우롱차를 마시는 것이 전부였다.

마당가로 방부목으로 만든 테이블과 의자가 붙은 나무벤치가 하나 더 늘어 있었다.

담배를 물고 깎아 놓은 잔디 위를 예전의 습관처럼 왔다 갔다 하며 ... 저녁 물가를 바라보았다. 서늘해진 공기... 그리고 물위로 흐르는 희미한 불빛... 저편 모퉁이의 좌대 들...

더 멀리.. 낮으막한 산들,,, 그리고 먹먹한 하늘... 별 몇 개... 그렇게 그것들이 달 빛 아래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그냥 거기에 그대로 있었다.

그 많은 생각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지만 생각을 불러일으키던 생각 없는 것들은 여전히 거기 그대로 있었다. 있는 그대로...  밤이 깊으면 이 곳엔 항상 바람이 멈추고 호수에 찬 물들도 잠이 든 것처럼 고즈넉하다... 그렇게 깊은 밤마다 거기... 오래 오래 서 있곤 했다.

소나무 숲 사이로 오락 가락 나무들을 비켜 길을 내고, 시도 때도 없이 허스키와 래브라도 골드, 롯트와일러 그리고 풍산개 토돌이를 데리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온 갖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녀석들을 보이지 않는다. 텅빈 개집만 까진 언덕배기에 덩그렁할 뿐이다.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고 늑대처럼 고개를 치켜들고 우우거리던 허스키는 농장으로 보내졌고 우멍하니 앉아있다가 확 달려들어서 줄에 묶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덕배기 쪽에 있는 바베큐장으로 가던 손님들을 덜컥 주저앉게 했던 벌겋게 충혈된 눈을 꿈벅이던 롯드 와일러는 토돌이하고 사이에 낳은 열한마리 새끼를 모두 제대로 돌보지 못해 죽여버리자 한 겨울에 어떻게 한 마리라도 구해 볼려고 애쓰던 매형은 뒷 산에 죽은 놈들을 묻을 때마다 속상해 하시더니 종내는 아무리 첫 배라지만 지새끼 하나 못 돌본 녀석이 보기 싫다고 겨울 어느 날,  다른 집으로 보내버렸다. 나를 보기만 해도 궁딩이를 뒤뚱거리며 춤을 추고,  테니스 공을 물고와서 놀자고 머리를 디밀던 순한 눈을 가진 맹인인도견인 래브라도 종인 토람이는 나중에 집에 다시 왔지만 마당가에서 혼자 턱을 내려놓고 우두커니 눈만 끔벅이다가 또 어리론가 보내져버렸다. 사람들이 너무 커서 무서워하고 저녁에 풀어놓으면 물가에 밀려온 죽은 고기들을 물고다녀서 항상 무릎까지 흙탕이 되어가지고 있던 녀석... 어디가도 잘 지내려니... 고만고만한 녀석들 중에 풍산개 토돌이는 사람 손을 가장 안타는 수놈이었는데 뒷 다리 한 짝을 비켜 버티고 항상 멀리 쳐다보곤 했다. 저보다 등치가 훨씬 커버린 허스키도 꼼짝 못하게 하던 성깔있는 녀석이었는데.. 이제는 형집 옆 마당에 산다. 마음이 휑하다고 형이 그 중에 한 마리라도 데려다 놓았으면 좋겟다고 해서 토돌이를 데려왔다.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형은 큰 집이 자주 비어서 한 마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녀석을 다시 데려왔는데... 녀석은 이제 덩치만 소 만해졌지, 멍청이가 되어버렸다. 짖지도 않고 으르렁대지도 않고 풀어놓으면 동네와 산 속을 싸돌아다니다 온갖 풀씨들을 몸에 달고 개 집 앞에 서 졸고 있는 것이 가끔씩 보는 나로서 영 ...  좀 섭하다. 얌전하게 만들려고 혼을 냈었는데 ...  속내는 풍산개 성깔을 기대하면서도 내 앞에서 고분고분했으면 하지 않았을까...  내 앞에 앉아서 머리를 들이미는 순해져버린 녀석의 눈빛을 보니 마음 한켠이 마땅치 않다.

펜션을 관리하는 동호형님네가 예전에 내 연구실이었던 방에 아침을 차려놓고 부를 때까지 나는 옷도 안 갈아 입고 잠을 자고 있었다. 누나가 아침먹자고 부를 때까지... 흐릿한 의식속에서 늘어져 잠도 아니고  ... 깬 것도 아닌... 그러다 부스스 일어나 세수하고  아침을 먹었다.

예전에 나의 연구실이었던 그 방은 렛슨을 받기 위해 등을 모두 천정 모퉁이에 달고 한 껏 높인 천정은 방을 훨씬 크게 보이게 한다. 밤 마다  물어대고 있던 담배 냄새가 베어 있던 벽지나  직접 짜서 만든 커다랗고 무거운 테이블을 치워버린 방은 전혀 다른 느낌이다. 예전의 기억들은 그저 머리 속에 남아 희미하다. 이젠 그냥 단체 손님을 받을 수 있는 빈방일 뿐이다. 왜 그렇게 까마득하게 느껴지는가... 그 사이의 시간들이 얼마나 많은 의식과 체감하는 순간들로 채워져, 빽빽한 만큼이나 멀고 길게 느껴지는가,... 잠이 덜 깬 상태로 느닷없이 먹는 아침,  나는 커다란 테이블위에 놓인 융숭한 반찬들의 맛을 기억하는 대신 사라져버린 방안의 기억들로 채우고 있었다.

독실한 신자인 매형은 강력한 리더쉽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유모어와 재치가 넘치는 사람이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편안하게 해주는 나의 모델링 대상중의 한 사람이다. 안성에 처음 내려와 겨우 직원 아홉명인 공장의 공장장이었던 매형은 전역이후 인생의 모른 것을 회사에 바쳤다.  지금으로 치자면 경영학과 같은 상과 대학를 지망했던 매형은 일병으로 군대에 갔다가 선주였던 사돈어른이 위독하시자 휴가를 내기 위해 3사에 지원했다가  합격해서 그 뒤로 포병 장교가 되어  소령으로 학군단에 근무하다가 예편했다.  이 곳 저 곳 추천해준 기업을 마다하고 지금의 회사의 회장님이 좋아서 이곳으로 왔다고 말하곤 했다. 이젠 1000 명 가까이 되는 5공장까지 있는 회사의 상무이사가 됐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공장장님이라고 부른다. 지위나 권한의 권위적인 태도보다 친밀하고 근면한 매형은 그렇게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세월이 많이 지나서 이젠 은퇴 후의 생활을 준비하며 사는 것이 외롭지 않을려면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펜션을 물가에 지었다. 사람들에게 안성의 특별한 장소가 되게 해야한다면서 식당이나 돈 되는 장사를 마다하고 북카페와 펜션에 대한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매형은 명절이 되면 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사람들을 데려다가 점심식사를 대접하고 놀이도 하고 영화구경도 시켜주곤 했었다.  오늘도 교회에 초대해서 예배와 식사를 하고 영화구경을 시켜주려고 했지만 온다고 하던  사람들이 약속을 깨고 서울로 가버렸다고 한다.

매형은 먼저 아직 남아있는  몇 사람들을 태우러 나가고 그 바람에 빈차가 된 조카의 스타랙스는 할 일을 잃었다. 나는 머뭇거리는 조카를 데리고 누나와 함께 교회로 갔다.

매형은 교회에 가자고 항상 적극적이지만 누나는 크게 권하지 않는다. 누나는 교회 일에 열심이고 믿음도 크지만 신앙심에 대해 논하지 않는다.  전출명령에 따라 전국을 누비고 다니던 장교부인 생활이 몸에 밴 누나는 활동적이고 원래 성격대로 여전히 일을 만들어 바쁘게 산다.  

백성교회라고 이름지은 개척교회 목사님은 깡마른 체구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기세를 가지고 계신다. 가끔씩 들리게 되는 이 교회... 항상 웃고 계시지만 보이지 않게 근심이 깔린 표정... 환경운동을 하고 반제도권인사인 그는 시당국에서 많이 불편해 하시는 분이지만 그에 대해 나쁘게 평하지는 않는다. 그의 인품 때문에  많이 어려워할 뿐이다.

모이는 사람들도 그렇게 신분이나 지위가 높기는 해도 전혀 관심이 없고 농민활동을 하고 봉사와 헌신을 하는 사람들이다. 푼푼이 모아서 교회를 세우고 작지만 세상과 나라와 사회를 걱정하는 것은 거대한 성전을 가진 사람들보다  더 한 것 같다.

안식년을 온가족을 데리고 지구를 순례한 목사님은 신자들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잘 어울리지 못한 공백기의 목회자 때문에 얼굴에 그늘이 지셨다. 

 어려서 방학 때 일요일 싸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형이랑 누나를 따라 교회에 가고 부흥회가 있는 저녁에   동화속 이야기를 들으며  별표를 받기 위해 열심히 외웠던 사도신경은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지만 나는 무엇을 받았는지는 자세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기억에 남는 것은 교회에 가면 항상 사람들이 웃고 있었으며 커다란 목소리로 노래부르던 찬송가에 대한 기억만 있을 뿐이다...

교회는 엄마등에 업혀서 가던 절의 고즈넉한 분위기와는 사뭇다르다. 통통한 스님이 앉아계시고 마루위에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중얼거리던 엄마를 ... 부처님 뒤로 돌아가 부처님 어깨위에서 제상을 바라보며 빨리 끝나기만 기다리며 지루해하다가 잠이 들고... 눈을 뜨면 총총한 하늘에 별이 흐르는 엄마의 따뜻한 등이 기억나는 ... 그렇게 엄숙하고 향내나는 절과는 사뭇다르다.

엄마가 무엇을 위해 그렇게 두 손을 비비며 빌고 또 빌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쪽진 엄마의 가지런한 머리와  저고리 치마폭에 머리를 묻고 자다가 부시한 눈을 뜨는 나를 바라보시며 두 손으로 정성스레 내 얼굴을 쓰다듬으시며 .. ‘내 새끼..’ 하시던... 어머니의 눈빛만이 한 없다.

그래도 어린시절에는 또래들이 많고 왁자한 교회가 더 좋았나보다. 누나는 공책을 받는 것을 좋아했지만 나는 고개를 내밀어 ‘오다마’라고 부르던 커다란 눈깔 사탕을 쳐다보며 손에 꼭 쥐고 있던 별표를 내밀곤 했었다...

멋쩍어하는 조카랑 어정쩡하게 서서 찬송가를 꺽꺽대다가 교독문을 읽고... 앉아 있다. 명절이라 고향을 찾아간 신도들로 인해 한산한 일요일 점심나절을 나는 목사님의 설교로 머리 속을 채우지는 못했다. 식곤증에... 담배도 안피고.. 밤을 달려온 나는  버티기 힘든 시간이었다 

목사님의 설교를 기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앉아있는 내 머릿속에서는 유럽을 떠돌 때, 일요일마다 가던 독일의 본에 있던 ... 교회의 제단이 생각났다. 제단 뒤로 십자기 대신에 걸려있던 커다란 천위에 그려진 추상화... 그 성령이 내리는 광경을 한없이 바라보며 앉아있던 기억이 밀려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슴 먹먹함과 울컥 밀려오는 눈물... 여러 달을 그렇게 보냈던 기억이 있다.  의지할 곳 없는 그 시절에... 칼 한자루에 의존하던 삶의 무게를 걸러주던 카타르시스... 그랬을지도 모른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절박함속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던 맹세를 하고 또 하던 그 일념에 불타던 젊은 아니 어린 날의 열망 속에 타던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얼핏 타락한 자들의 흥함을 한탄하며 길을 묻는 자에게 답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요즈음의 세태를 한탄하는 ... 목사님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리고 그러다  한 구절이 귀에 들어왔다.


 ‘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다. ’


누가 말했는지는 기억 못해도 낮 익은 문구는 머릿속을 휘젖고 기억의 문을 열고 아스라한 순간들을 쏟아 내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먼 길을 달려오게 했는지 나는 모른다.  철 없는 소년 같은 내 가슴 속에 일고 있는 불꽃 같은 열망들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겁 많고 눈물 많은 애송이가 먹은 것을 토하며 길길이 날뛰고 뜬눈으로 밤을 새며 가슴깊이 맹서를 새기고 새겼는지 나는 모른다. 송곳으로 찌르는 듯 저려오는 통증도 철사줄로 얽어 놓은 꿰메 놓은 근육의 통증도, 손 안의 옹이가 헤지고 또 헤져서 손금이 바뀌도록 몸부림을 치게 했는지 나는 모른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 그 믿음이 어디서 왔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 믿음이 그 젊은 날의 ‘살아있음’의 하루를 살게 했다는 것이다.


아직 배가 꺼지지도 않았는데 또 점심을 푸짐하게 먹었다. 그냥 먹어야 될 것 같아서 젓가락으로 돼지 삼겹살에 김치보쌈에... 그렇게 들이밀어 넣고 있었다.   앞머리가 훤한 매형 친구의 생일파티 케익의 폭죽을 터뜨리고 굵직한 안성 거봉포도를 먹고...


그렇게 나는 슬그머니 허리 수술을 핑계로 목사님께 작별인사를 하고  조카와 함께 펜션으로 돌아왔다.  텔레비전을 켰다가 부른 배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마당으로 나섰다.

깨끗하게 치워진 마당을 배회하다가  가로지른 길 빨래줄 위로 잠자리 두 마리가 저만큼 간격을 두고 내려 앉는 것을 보았다. 한 참이나 서성이며 담배를 물고 화장실을 기다리고 있는데... 여전히 거기 있었다.  바람이 멈 춘 오후 따뜻한 태양아래 날 개를 펴고 꼬리를 편채 졸고 있는 것일까... 문득 생각이 나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는데,,, 눈이 부셔 핸드폰의 촬영화면위로는 보이지가 않는다. 그래도 가까이  한 걸음씩 다가가서 버튼을 누르자 에고... 핸드폰의 수식음이 요란하게 들려왔다. 어라... 녀석들이 꿈적도 안 한다... 아마도 잠자리 녀석들은 깊은 잠에 빠졌나보다 여전히 거기 그대로 있다. 아주 가까이 소리없이 손을 내밀어 날개를 잡으려다 ... 그래서 어쩌게? 하는 생각에 그냥 손을 내렸다. 그래 그냥 내비 둬... 이대로 기억 속에 이 장면만 묻어 두는게 좋겠다 싶었다.

팔뚝 보다 작은 강아지 두 마리가 이사와서 현관문 앞에 자리 잡았다. 녀석들이 내려와서 마당가를 홀딱거리며 종종거리고 다니다가 내게 달려와서 뒤뚱뒤뚱 비켜서면서 앞 발짓을 하고 바지가랑에 엉기면서 얼룩얼룩한 털과 눈을 덮은 털 사이로 똥글 똥글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너무 가벼워서 만지기가 무섭다. 다리 밑으로 손을 넣어 들어올리는데 큼직한 내 손바닥에 녀석의 심장이 콩콩거린다. 꼭 쥐면 부서질 것 같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아직은 뛰어내리기는 무서운 듯 내려다보다가 뒷걸음질쳤다. 저 쪽을 헤매고 다니던 나머지 한 놈마져 들어올려 놓았다. 쥐면 부서질것 같아서... 검지 손가락으로 이마를 쓰다듬는데 녀석이 벌렁누으며 양 발을 휘저으며 좋댄다... 

작은 조카가 내려왔다. 형을 만나러 왔는데 형은  귀경 길이 막혀서 오는 중이라고 했다. 큰녀석은 펜션을 청소해 두고 서울 갈 생각을 해 둔 모양이다. 큰 녀석이 가는 길에 더려다 달라고 해서 그러마 하고 대답하자 먼저 간다고 .... 내일 예약 손님이 있으니 청소 미리해 두고 올라 가겠다며 먼저 광혜원의 펜션으로 갔다.

17변 국도를 타고 용인에서 영동선으로 갈아 타 신갈에서 경부선을 통해 서울 톨게이트를 지나 분당에서 서울로 가는 내곡동 길을 타고 들어가기로 했다.

차가 밀리는 것... 걱정이 되는지라.. 다같이 머리를 쓰다가 둘째 녀석이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선택한 길이다.  큰 녀석은 운전을 하기 때문에 먼저 하라고 했다. 얼른 선수를 친셈이다. 길은 38선 국도에 진입하면서부터 밀렸다. 중부선이 밀려서 일죽 인터체인지 진입이 곤란해서 인줄 알았는데 거의 대부분의 차들이 17번 용인 양지 국도로 진입하려고 좌회전을 기다리는 바람에 밀린 것이다.

죽산 삼거리에 있는 ‘ 안마 ... ’라고 커다란 간판은 아직은 불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깊은 밤 영동선을 타고 안성으로 갈 때마다 깜깜한 밤을 밝히는 커다란 네온은 늘 인상적이다. 시골사람들도 안마를 하러가나? 하긴 뭐 그 동네 사람이 아니라 38번 국도를 타는 사람들을 부르는 거겠지...  조카는 죽주산성이 있는 용인쪽으로 좌회전을 받은 뒤에 차를 시원하게 몰았다.  용인대학에 다니는 녀석은 거기까지는 길이 훤하니까...  그 핑계로 녀석에게 운전대를 들이밀어서 나는 옆자리에서 명절 귀경길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게 된 셈이다.

길가의 꽃잎들... 들국화,, 코스모스..  그러다  뭔가 적어야 겠다는 생각에 필기도구를 찾아 선반위와 서랍속을 뒤적거리다가 걸어둔 윗 옷 속주머니에서 수첩과 볼펜을 꺼냈다.


목사님의 이야기를 잊지 않으려고 그렇게 적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다 

새들은,   가을 하늘은..  나르고

구름바다에서  황금빛 태양은....

 잠자리.. 

중추절 잔잔한 호수의 달빛...

일렁이는 길가의 코스모스...

창 밖으로 시선을 내려 놓자 길 가의 코스모스들이 눈에 들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서 큰 집에 들러 송정리 역에서 한 참을 걸어 들어가는 선산 가는 논둑 길과 무등산의 할아버지 산소로 가는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에도 ... 항상  코스모스가 있었다. 너무 흔해서 시큰둥했었지만  그래도 친구랑 같이 걸을 때 손으로 어루만지며 노래부르던 ... 
‘ 코 스 모 스 한들 한들 피어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 갑니다... ’ 아직도 그 가사와 음정을 기억하다니... 흠...

그러다 어둠이 밀려오는 동쪽 하늘이  새 들 몇 마리... 녀석을 쫒아 앞 유리창을 지나 서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눈이 부셨다. 한참이 지나 눈부심이 가신 눈으로 하늘바다 구름섬을 본다.  여행을 떠나요라는 유행가의 가사 속의 나오는 황금빛 태양... 그 태양이 하늘바다 구름 섬 사이로 잠기는... 

갑자기 생각이 끊겼다. 

돌이켜 보면 그것들,,,, 차창으로 흐르는 모든 것들... 온 하늘,, 금빛 햇살... 조카의 옆 모습까지...  가끔씩 느끼는 이 싱싱함... 어떤 순간이 지나면 그것들은 2차원의 평면적 시야에서 갑자기 3차원의 입체적인 영상이 되어 내게 통째로 밀려오는 ... 아니 그냥 나도 그 일부인 ... 구분이 잘 안되는.. 순간... 그냥 있는 그대로 좋은 ...  마치, 호숫가 깊은 밤 달빛 아래에서 처럼...  몽블랑 맞은 편의 높은 산 마루에서 처럼... 그렇게 ...   
   ....
   ....
    ....

눈을 떳을 때는 차는 영동고속도로 용인 신갈 방향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빠르게 지나는 차들을 보며 조카의 안심석인 목소리가 들려오고...  ‘ 10시 전에 충분하겠네...’ 맞장구를 쳤다.  이미 어둠이 내린 길 위를 지켜보며 서울 톨게이트를 지날 시간을 계산하고 있다.

톨게이트를 지나 조카와 교대하여 운전대를  쥐게 되면 나는 다시 세상 속의 길위를 달리고 있겠지...

그래도 그 구절은 잊지 말아야지...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다....’


그래! 

그 믿음은 내가 원하는 것에 이르는 길이요 보이지 않는 미래에 이르는 구체적인 길이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

 

중추절 !

 ‘부모와 스승과 신에게 경배하며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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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9.16 07:13:44 *.72.153.57
살아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살아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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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yixiaozi
2010.10.12 15:07:55 *.141.2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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