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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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표지판이 보이는 마을이 내 고향마을, 순창군 금과면 방축리)
(언제나 변함없는 어렸을 적부터 늘 봐오던 그 검문소 : 우리 동네는 전라북도와 전라남도의 접도구역에 있다. )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 동네에서 나고 한 동네에서 자라고 같은 학교 다니고 같이 소꿉놀이하면서 신랑각시하다가 결혼했다. 어려서부터 동네 뒷산 묏동(묘)에서 훈지(미끄럼)타고 구르고 뛰면서 놀았다. 거기서 고구마 쩌먹고, 거기서 대숲에서 자고있는 까마귀 잡아다가 구워먹고, 늘 거기서 놀았다. 그래서 아이들 등살에 그 묏동은 제 모양을 갖추지 못했다고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오랜만에 뒷동산에 올라 그 묘를 보니 어릴적에 거기서 놀던 것을 이야기 하신다. 지금은 그 묘가 제 모양을 갖추었다.
몇 발짝을 더 오르니 아버지께서 개간하셨다는 밭이 나왔다. 복분자가 심어졌을거라 했는데, 지금은 도라지가 심어져 있었다. 아버지와 어버지의 아버지가 개간을 했는데, 그 당시에는 국가에서 개간을 장려했다고 한다. 그때는 국가땅을 개간하면 명의를 이전해 주었다고 한다. 아버지 나이 20세 정도였을 것이다. 아버지 앞으로 이전하라고 했는데, 그때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결혼해서 21살에 애 낳고 25쯤에 고향을 떠나셨고, 같은 동네에 살고 계신 아버지 형제분들이 그 밭을 지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셋째 큰아버지도 몇 년전에 돌아가셔서 지금은 누가 짓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명의 이전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다가 그럼 지금이라도 하라는 말에 막내 이모부는 복잡하겠다 하셨지만, 아버지께서는 아직은 동네에 어르신들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것이 누구 밭이다 하면 그만이라고 하셨다.
시골 동네는 그런 곳이다. 누구집에 아이가 몇이고 나이가 몇 살이고, 그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고 밭둑을 기고 있는 호박덩쿨이 누가 심은 것인지도 아는 게 시골동네다. 그러니 밭이야 오죽할까.
그 동네에서 내 얼굴은 내가 누구 새끼인지 말해주는 이름표와 같다. 아버지 어머니 닮아서 이름표를 달지 않아도 누구 자식, 누구 손자, 외손자인지까지 다 아는 게 이곳이다.
산에서 밤을 좀 털고 내려오는 길목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아버지와 먼 친척이 되신다고 한다. 아버지가 외가 쪽으로 할아버지라고 불렀던 분의 누구라고 하셨다. 그집 어르신들 안부나 묻자고 들여다 보신다. 할머니는 호박이고 가지고 모두 따가라고 젋은 아낙에게 권하는데 아이들이 방안에서 밖을 내다보며 할머니를 소리쳐 부르고 있었다.
동네를 한바퀴 돌고 내려오는 동안 나는 왜 그동안 아둥바둥하며 살았나 싶었다. 자라고, 누군가를 만나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키우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결혼하고 또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살면서 늙어가는 게 사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넉넉하고 편안했다. 순식간에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나이를 먹어버린 듯 하다. 고향이라는 것, 막연하게만 여겼고, 명절때마다 늘상 어려워하며 잠깐 들렀다 갔던 곳, 그곳이, 아버지의 고향이 내 고향이 되었다.
내 삶이 달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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