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현 류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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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백수 5개월 차. 그 동안 나름 바빴다.
6월 : 큰애 학습 진단 및 준비, 전자시집편집
7월 : 아이들과 여행, 아트센터 서포터즈 활동시작
8월 : 뉴질랜드, 제주도여행
9월 : 청량산 시축제 준비
10월 : 어린이 책 참여
11월 : 하던 것 계속?
12월 : 모르겠다.
다달이 한 일은 있다. 나름 쉬는 게 쉬는 것이 아니었다.
이 말을 써놓고 보니 웃긴다. 나름 뭘 한 것이 있다고.
이 쉰다는 의미의 초점을 어디에 둔 것 인가. ‘쉬는 게 쉬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은 이 정도도 하지 않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생각하고 싶을 때 생각하고, 씻고 싶을 때 씻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것이었나 보다. 그런데 웃기는 건 이렇게 지내면 생각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싶을 때. 그 때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까지 약간의 일에 몰입했던 것 빼고는 그 때를 찾지 못하고 푸욱 쉬었다. 냉철하게 말 한다면 아주 조금 일하고 아주 많이 멍하게 보내고 있다.
다시 되돌아보니 잘 쉰 시간인 듯도 하다. 열심히 일 했던 당신 떠났으니 좀 본능에 충실하며 쉬는 것도 괜찮지.
아니다. 괜찮지 않다. 할 건 하고 살아야지. 그것도 안하고 사니 머릿속이 헝클어지지.
이런 나의 모습에 반성모드로 진입하라고, 하라고, 하라고 등 떠 밀었다. 등 떠미는 이가 누군지 몰라 모른척하고 있었는데 오늘 알았다.
<창조자의 생기로 숨이 트인 존재는 창조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웃음을 지을 수 없다.> 고운 그녀가 가르쳐 주었다. 내 안의 숨쉬고 있는 창조자의 존재였다.
이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급 반성 모드로 뛰어 든다.
어떻게 넌 회사를 다닐 때 보다 책을 읽지 않니?
어떻게 넌 회사를 다닐 때와 똑같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지 못하니?
어떻게 넌 회사를 다닐 때 보다 더 일기를 쓰지 않니?
어떻게 넌 회사를 다닐 때 보다 더 게으르니?
어떻게 넌 회사를 다닐 때 보다 더 한치 앞을 보지 못하니?
어떻게 넌 회사를 다닐 때 보다 더 멀티플하지 못하니?
어떻게 넌 회사를 다닐 때 보다 더 네 시간을 갖지 못하니?
어떻게 넌 회사를 다닐 때 보다 더 시간을 알차게 보내지 못하니?
어떻게 넌 회사에 다닐 때 보다 더 자신에 대해 계획적이지 못하니?
넌 어쩜 그렇게 빨래 널기, 빨래 개기를 싫어하니?
넌 어쩜 그렇게 회사를 다닐 때 보다 더 생각을 정리 못하니?
넌 계획 짜고 실천하기 좋아하잖아. 왜 그리 넋 놓고 있는 거지?
뭐가 문제야?
생각이 더 필요하다고? 무슨 생각? 생각해야지 하면서도 생각 안 하는 생각?
넌 그래. 넌 그렇게 느슨한 시간이 주어지면 안 되는 애야.
도통 생각을 안 해요. 문제는 그거야. 생각도 안 하면서 생각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 맞지?
왜 피하지? 왜 진지하게 대면 하지 않는 거야? 슬슬 피하기만 하고. 그러다 보면 세월 다 가는 거야. 말 안 해도 잘 알잖아!
내가 보기엔 넌 좀 굶어야 해. 너무 배가 불렀어. 낼 당장 레몬을 구해.
속도 비우고 머리도 좀 비워 봐.
그리고 그렇게 우왕좌왕 하지 말고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해 봐.
작은 애 책의 바다에 빠뜨리고 싶다면서? 이때 아님 언제 해주나 싶다면서. 그럼 출근하듯이 도서관에 가. 그러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해. 그렇게 하는 게 좋겠어.
요즘 슬슬 남편이랑 큰애 보내 놓고 잠자기 시작하더라. 아침 잠 안 자려면 기어 나가야 해.
좋잖아. 도서관가서 책 한 두 시간 읽어주고 값싸고 맛있는 도서관 식당밥 먹고 오면 밥 할 일도 없고.
매일 그렇게 해. 그러면 조만간 도서관 유아 책은 다 읽을 수 있겠다.
그리고 지척에 좋은 산책거리 두고 왜 운둔 생활이야. 애들 손잡고 한강 걸으면 계절 느낄 수 있고 살 빠져 좋고 상쾌하고 얼마나 좋아. 왜, 좋은지 알면서 한번 가지를 않아? 신선이 놀았다는 섬도 너무 좋아하잖아. 자주 가고 싶다면서. 왜 못 가? 왜 그렇게 마음의 여유가 없어.
애들하고 즐겁게 지내는 시간에는 거기에만 집중해. 마음 같이 않게 같이 놀아주지를 못하더라. 네가 좋아하는 게 일할 때는 집중해서 일하고 놀 때는 신나게 노는 거잖아. 애들한테만 말 할게 아니라 네가 직접 보여줘.
제발 하루 일과를 정리 해. 그걸 하지 않으니까 머리가 아프지.
그러면 네가 놓치는 일상에 대한 안타까움이 해소 될 거야. 아이들의 이야기와 변화, 순간 나오는 재치 있는 말들을 어록으로 남기고 싶다면서. 너의 생각도.
왜 못 하는 줄 알아? 하루가 정리 되지 않았기 때문이야. 모르겠어? 얼마나 그냥 지나가는 시간이 많은지? 너 빨래 널고 빨래 개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면서. 그렇다고 그 시간 영양가 있게 썼니? 하루 일과를 정리하면 그 시간도 생길 거야.
넌 충분히 빨래 널기도 아이들과 게임 하듯이 애들한테 시킬 재능이 있잖아.
그리고 하루 종일 쓴 그릇 물에 담궈 두면 어때. 저녁때 한번 식기세척기에 하면 되지. 그릇 죄다 꺼내 쓰면 어때. 찬장에 있는 그릇들 아껴 두면 뭐 할거야. 걔네 들도 찬장 속에만 있는 것 보다 나와서 각자의 그릇에 맞게 쓰임을 당하는 걸 좋아 할거야. 이젠 야단 치시는 엄마도 없잖아. 죄책감 갖지마. 그 대신 시어른들 오심 제때 제때 하는 센스. 알지?
그럼 말 나온 김에 함 짜보자. 너의 일과 말야.
잠자는 것부터 하자.
7시40부터 아침 식사 준비를 해서
그리고 너네 그이 아침 출근 준비할 땐 머리 무스는 말라 줘.인상쓰지 말고. 너네 그인 싫어하는 것이지만 너 그때가 가장 좋다면서. 집에 있어서 매일 해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이렇게 해서
그러니까
책 대여 해 오는 것은 잊지 말고. 큰애의 책은 양질의 책 목록을 만들어서 빌려다 주기.
그리고
그럼 간단히 집안청소를 하는 거야. 이때 빨래를 너는 거지. 그러려면 도서관 가기 전에 빨래를 돌려 놓고 가야겠다. 탈 수 전까지의 기능을 선택해서 말야. 그럼 바로 탈수해서 널면 되잖아. 어때? 좋은 생각이지? 이제 웃는구나. 치! 거 봐 생각을 하면 정리가 된다니까.
이걸
그리고 이 시간에 작은 애가 방해 할 수도 있는데 뭘 주거나 시키면 걔도 집중할까?
그건 네가 연구해봐. 아마 컴퓨터나 DVD를 보게 하면 조용할 텐데… 그런데 너무 노출 시켜도 좀 그러니까 잘 생각해 봐. 엄마 공부시간에는 건들지 말라고 정신교육도 시키고. 아님 걔가 좋아하는 바나나나 고구마를 계속 먹으라 하던지.ㅋㅋ
이때까지 하는 걸 보면 더 늦어 질 수도 있을 거야. 늦어도
공부 마치는 대로 책가방 챙기고 내일 입고 갈 옷 챙기도록 할 것.
빨래 개기를 놀이로 시켜도 되겠다.ㅋㅋ 빨래개기도 다 공부야. 옷 아귀맞춰야지, 쫙 펴야지. 누구껀지 분류해야지... 미안해 하지 마.
너는 그때 뭐하고 싶어? 네 책보고 싶다고? 네 일을 하고 싶다고? 그래 그게 좋겠다. 그래. 그것도 괜찮겠다. 이때 좋아하는 사이트들 들어가서 보고 글 남기기도 하고. 아! 아이들 이야기, 칭찬 블로그 착실히 하고 싶다면서. 이 때 그걸 하면 되겠다. 아이들이 같이 놀아 달래면 놀아 주기도 하고.
그냥 자유시간이라고 정할까?
와~ 암튼 아이들의 규칙적인 생활이 잡혔네. 무리한 시간표는 아닌 듯 한데 못 지키거나 힘들어하면 칭찬으로 용기 충전시키고 당근으로 동기유발 하길.
저녁 먹고 둘이 얘기할 때 빨래 개면 되겠다. 어때? 시간 제일 절약 할 수 있는 방법이지 않아? 얼굴은 너네 그이보고 입으론 말하고 손으론 빨래개고. 그래. 좋아할 줄 알았어. 빨래 안 개도 되는 날은 이 때 옷 다리면 되지. 그렇지?
그러다 보면
어때? 정리가 좀 됐어? 이 정도 시간 계획도 못하고 살다니… 누가 보면 웃어.
그래도 얼굴이 좀 펴져서 다행이야. 사실은 내가 더 속이 시원 해.
이건 기본 틀이야. 특별한 날은 특별하게 보내면 되지. 뭐.
한강공원에 매일 가보는 것도 좋은데 짬이 안 나네. 가깝다 해도 시간 많이 잡아 먹잖아. 그러면 신선이 논다는 섬이랑은 주말을 이용해서 가 봐. 주말에는 애들 공부도 전혀 안 시킨다면서.
아, 참. 한가지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애들하고 있을 땐 애들한테 집중해.
넌 요즘 그게 잘 안되더라. 누가 그랬잖아. 자세히 보는 게 중요하다고.
하루라도 빨리 생활의 리듬을 찾아. 엄마가 행복해야 애들도 행복하다는 거 알잖아.
이젠 하루가 정해 졌으니 한 주, 한달, 1년은 금방 나오겠지?
그리고, 너 이렇게 밤 낮 바뀌게 앉아 있는 것도 오늘로 마지막이다. 네가 말한 내일이 벌써 오늘이야. 오늘부터 하고 싶다면서. 그럼 빨리 들어가 자. 오늘부터 못하면 이때까지 내가 떠든 게 허사가 될 수도 있어.
오늘부터 꼭 하기.
해보면서 사이사이 비는 시간이나 타이트한 일정 등은 네가 알아서 운영의 미를 살려. 알았지?
아깐…… 좀 심하게 말했지? 알면서도 하지 않으니까 그렇지.
난 뭘 해야 되는지 알면서 겉으로 빙빙 돌기만 하는 사람이 젤 밉더라.
내가 지켜 볼 거니까 제대로 잘 해.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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