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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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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4일 14시 25분 등록
11월 초 늦가을 섬이 많은 남해안 한 쪽 귀퉁이에 있는 자그마한 조선소에서 선상음악회가 있었다.
이조선소는 배를 만들기 위한 부분품으로 브록만 만들어 온 곳이다.그러다보니 조선소를 상대로 영업을 했을 뿐인데 이 배때문에 처음으로 선주와 직접 거래를 하는 것이다.이배는 자체무게가 7000톤쯤 되는 배로 우리나라 연안선이 보통 2-3천톤 되니까 그런배의 서너척이나 되는 큰배다.이배의 선주는 80년대 중반쯤 한국에서 싱가포로에 건너간 박사장이다.박사장은 우리나라 조선소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그곳에서 선박관련 부분품무역상을 해왔다. 그간에 그야말로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선주의 대행역할을 할 정도로 큰 장사꾼이 되었다.
박사장으로서도 이렇게 배를 통채로 거래하기는 이것이 처음이다.그러니 그저 감격스러울 뿐이다.

이배는 바다에서 원유를 캐기 위한 작업지원선이다.그래서 추진력은 필요가 없고 다른 것은 거의 다 갖추었다.
작업인원 3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고 보급품을 받을 수 있는 크레인과 헬기장을 갖추었다.좀 특수한 배다 보니 건조작업에서 많은 애로가 있었고 상당기간 동안 보완작업 내지 수정을 하면서  배의 완성도가 높아진다.그러면서  겪는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그래서도 이 박사장 한테는 이일이 자기 인생에서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다른 사람은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이배를 직접 운용할 방법은 없고 자기는 다만 배를 지어서 석유시추작업하는 말레이시아 회사에 넘겨주는 것이다. 실질적인 선주는 말레이시아 사람이지만 아직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이런 배를 짓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니 박사장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거기다가 박사장은 싱가포르에 가기전에 대형조선소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들중에 많은 사람이 이 조선소에옮겨와 계속 일하고 있어서도 박사장의 감회는 깊은 것이다.

이렇게 배를 처음으로 통채로 지어보는 이 조선소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지금도 계속 진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 명명식을 한다고 해서 적어도 곁으로는 멀정하게 만드느라 지난 한달 동안은 그야말로 벌떼처럼 근로자들이 이 배에 매달리며 일을 해왔다.그런 덕에 외모 만큼은 깔끔하게 페인트칠을 해서 박사장의 기분을 맞추느라 조선소에서 애를 쓴 흔적이 보인다.헬기장에 헬기 한대를 올려놓고 했으면 더 분위기가 좋으련만 그것까지는 안되는 모양이다.명명식을 한다지만 바닷가에 배를 대놓은 곳에서 50m정도 떨어진 작업장에는 계속해서 작업을 하느라 물건을 옮기고 용접하는 일 가스작업을 하느라 시끌 벅적한 분위기다.
 
박사장이 이 명명식 행사관련 협의을 할 때 선상음악회 얘기를 꺼낼 때 이 조선소에서는 농담이겠지 했단다.사실 보통의 경우에는 음악회는 엄두를 못내고 정이 기분을 낼려면 여자고등학교 합창단이나 불러서 하는 것이 고작인데 무슨 이런 요구를 하느냐고 고개를 저었던 것이다.뭐로 보나 격에 어룰리는 일이 아니고 상상이 안되는 일이다.그러나 이것은 진심이었고 박사장으로서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행사였다.부담이 된다면 관련 비용은 박사장이 다 부담하겠다고 했다.그리고 실제로 박사장이 부담을 했다.그러니 조선소에서는 선주가 요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다 들어주어야 한다.조선소에서는 난감했으나 잘 되든 못되든 선주가 고집을 피운일이니 그 결과야 알바가 없고 그냥 해보는 수밖에. 그렇게 해서 이 선상 음악회가 성사되었다.

명명식에서 박사장은 자기 마누라를 스폰서로 내세워서 배이름을 멍명하게 했다.여지껏 자기 마무라한테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었지만 믿지를 않았다..마누라 한테 다른 얘기를 해보았자 소용이 있나.이렇게 관련된 사람 백여명들 앞에서 직접 배이름을 마이크에 대고 큰소리로 호명하게 하는 것이다.
명명식은 선주와 조선소의 사장들의 얘기 그간의 선박건조 경위 고생한 사람들의 표창과 배의 모형을 만들어서 선주한 테 건네주고 마지막으로 선명을 명명하는 순서로 끝내고 다음에는 선상 투어로 들어갔다.그러고 나서 드디어 선상 음악회가 시작이 되었다.

맨처음에는 무슨 묵직한 음악이 오케스트라로 나오는데 박사장이 모두들 일러나라고 손짓을 한다.앗뿔사 이것이 말레이시아 국가다. 이것을 우리들이야 알 수가 있나. 박사장은 이제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사람이 다되었나 보다.그리고 나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탁 트인 해변가에 울려 퍼진다.음악회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잡기 위한 것인지 젊은 머슴아들을 7-8명을 동원해서 퍼포먼스를 하게 한다.각자 자기들의 몸을 얼마나 학대를 하면서 온갖 얄굿은 짓을 해대는지 꼭 그렇게 까지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튼 그렇게 요란 법석을 떨고나니 어느정도 음악회 자리가 정돈이 된것 같다.

그다음 이어지는 음악회는 간간이 국악과 창 가곡을 넣었지만 나머지는 바하나 브람스 요한 스트라우스등 유명음악가의 왈츠 무곡 교향악 연주를 1시간 30분 정도에 걸쳐서 했다.악단을 소개를 하는 데 서울에서 이름있는 오케스트라인데 지휘자가 30대 후반은 되었을가 선진국에서 꽤 유명한 음악학교에서 박사까지 학위를 딴 음악인으로 젊음이 터저나는 듯하다.얼마나 열심히 지휘를 하는지 연주자들이 무시할래야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몸짓으로 주위를 꽉 잡아 나간다.이 젊음이 얼마나 부러운지 음악회가 그 덕에 펄펄 살아 숨쉬는 것 같다.그러면서 이 음악회에 모두들 빨려 들었는지 음악이 울려 펴지는 순간은 모두들 숨을 쉬고 있는지 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음악을 잘은 모르지만 무대 분위기가 잘 잡혀있는 곳은 아니지만 음악만큼은 어느 유명 오케스트라가 이만큼 감동을 줄 수 있을 가 싶다.

다 끝내갈 무렵 마지막으로 피나레순서를 하기전에 젊은 지휘자가 여느 연주회에서 보지 못하는 순서를 진행하는데 관중석에 내려와서 중간 중간 사람들과 악수와 포옹으로 감격을 나눈다.이 악단은 서울에서 이곳 남해안 작은 도시까지 내려와서 하는 연주회라 그리고 무대장치가 전혀 없는 어수선한 철공소 같은 바닷가에서 하는 연주회니 이상하기도 한것이다.그냥 밍숭 맹숭하게 끝내려니 뭔가 아쉬워 이를 감당하기가 쉽지가 않은가 보다.그러고 나서 피나레를 하고 나니 관중들이 가만히 둘리가 있나 뭐가 되었든 앙콜을 받아 달라고 일어서서 박수를 치면서 그치질 않으니 헐수없이 이 지휘자가 준비된 것이 마땅찮다면서 아리랑으로 답례를 한다.박사장은 눈물이 핑하고 돌지경이다.그간에 고생한 것이 아직 끝나지는 않았지만 순간 눈이 녹는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조선소 사장이 마이크를 잡았다.사장은 이렇게 멋진 음악회를 자기가 왜 처음에는 거북해했고 마지못해 받아드린 것을 깊이 사과하면서 이런 선상 음악회가 있다는 것을 아마 평생 잊기 힘들것이라고 하면서 악단과 박사장과 참석한 사람들테 고마음을 표했다.그러면서 이음악연주는 그야말로 명품이고 자기들도 이제부터는 이음악처럼 명품선박을 만들 각오를 새롭게 할것을 다짐했다.

박사장은 명명식도 음악회도 끝내고나니 그 흥분을 감당할수 없을 지경이다.가슴이 터져나는 것이다.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지 가슴이 터지지 못하도록 주위사람들을 보듬으면서 인사를 한참하고 나니 그것도 조금만 진정이 되는 것이다.우리 남자들은 결혼을 하지만 잘사는 것이 문제지 무슨 결혼식이 그리 중요하냐고 하지만 여자들은 그게 아니다.결혼식없는 결혼은 얘기가 안되듯이 의식이 없는 큰 일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가슴에 와닿았다.정말로 중요하고 의미가 큰 일은 의식으로 그에 상응하는 행위가 있어야 마음도 그 일자체도 감당이 된다.바로 그런 일을 한번 저질러 보고 싶은 것이다 우리 보통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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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8.11.18 16:42:42 *.190.122.154
참 좋으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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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2008.11.19 22:51:20 *.21.188.39
마지막 말씀에 동감합니다.
정말로 중요하고 의미가 큰 일은 의식으로 그에 상응하는 행위가 있어야 마음도 일 자체도 감당이 된다는.
더군다나 남이 아니라 자신에게 보여주고 행하고 싶은 의식을 할 때, 얼마나 행복할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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