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빛처럼
- 조회 수 2978
- 댓글 수 7
- 추천 수 0
독서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하면서.
요즘 참 많이 바빴다. 연일 밤을 새는 강행군에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다. 아주 작은 일에도 신경질을 부리는 나의 모습을 알아차리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
올해만 해도 도랑을 파놓고 시냇물로 만들어 나가지 못한 수많은 것들이 있다. 도랑물이 현재 흐르고 있는 위치가 도랑이나 개울에 지나지 않음을 잊어버리고 큰 강이나 바다와 같이 되지 못함을 한탄 하면서 흐르기를 주저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차림이 비관적이 아님은 바로 강과 바다를 마음에 품고 수많은 난관을 헤쳐서 나아갈 꿈을 품었기 때문이다. 또한 도랑에서 개울을 만들고 강물을 만들고 바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함을 알고 그것을 인내하면서 기다릴 마음의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1.
예전부터 좋아했던 법정 스님의 책을 읽었다. 읽고 나서 또 한 번 읽었다. 먼저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책 제목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내가 가장 마음에 두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아름다운 마무리 이기 때문이다.
스님은 이렇게 나를 질책한다.
“좋은 책을 읽으면 그 좋은 책의 내용이 나 자신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 때 문자의 향기와 서권의 기상이 움트고 자란다” p. 239
또 이런 말씀도 주신다.
“옛 스승의 가르침에 “심불반조 간경무익”이란 말이 있다. 경전을 독송하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으로 돌이켜 봄이 없다면 아무리 경전을 많이 읽더라도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P. 238
이 말씀을 하나로 요약해 주시기까지 한다.
바로 “책에 읽히지 말라” 이다.
그 동안 나는 수많은 책에 읽혔던 것 같다.
책에 읽힘은 책의 저자의 생각만 있고 자신의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책에서 얻은 한 자락의 알아차림조차 생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책에 읽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제 책에 읽히지 않고 책을 읽기 위해서 끊임없이 가슴을 후려치는 구절을 만나면 그것을 삶으로 끌어들이도록 노력할 것이다.
2.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을 책을 통해서 책을 소개 받을 때 참 기분이 좋다. 저자가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자신의 책에 써 놓은 것은 출판사의 홍보성 서평보다 몇 배의 가치가 있는 것 같다. 특히 읽고 있는 저자의 생각이 마음에 들 경우에 그의 생각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배경이 되는 책들을 만나는 것은 하나의 기쁨인 것 같다.
이 책에서도 몇 권의 책을 소개 받았다. 아직 식견이 짧아서 읽어보지 못한 책이 다 지만 그래도 좋은 분에게서 책을 소개받아서 참 기쁘다.
책에 소개되고 있는 “장익” 주교님과의 교제 또한 참 아름다워 보인다. 특히 요즘 배타성이 강한 종교인들을 많이 보는 세상에서 그런 교류의 모습만으로도 참으로 아름답게 여겨진다.
3.
홀로 산중에 사는 분이셔서 그런지 유난히 자연에 대한 사랑이 지극해 보인다. 특히 꽃과 나무를 좋아하시나 보다. 나 또한 그렇다. 심지어는 그런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죽음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이라고 까지 말씀을 하신다.
삶은 과거나 미래에 잊지 않고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고 있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삶의 비참함은 죽는다는 사실보다도 살아 있는 동안 우리 내부에서 무언가 죽어간다는 사실에 있다. 가령 꽃이나 달을 보고도 반길 줄 모르는 무뎌진 감성, 저녁노을 앞에서 지나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줄 모르는 무감각, 넋을 잃고 텔레비전 앞에서 허물어져 가는 일상등, 이런 현상이 곧 죽음에 한 걸음씩 다가섬이다. P.89
바쁘다는 핑계로 무엇이 중요한지를 잊고 사는 경우가 참 많다. 오늘 출근길에 공원을 지나다가 잎을 떨어뜨린 나목들 위로 산등성이를 보았다. 푸근한 곡선이 눈에 들어온다. 이 고장에 산지 여러 해 건만 어찌 그 모습을 보지 못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수없이 걸었던 길이었지만 그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였음은 스님의 말씀처럼 죽어 있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나무들을 보면서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목이 무엇이 아름답다고 그러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 추위를 앞두고 모든 것을 떨어내고 추위와 당당하게 맞서는 그 진실한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길을 가다가 나무를 보면 한번씩 나무를 올려다 본다. 저번에 구본형 선생님이 산방에 기념식수를 할 때 수형이 이쁘다 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하는데 수형이 무엇인지 지금도 모르지만 같은 종류의 나무도 여러 모습이라는 것이 조금씩 느껴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름다움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참 좋을 것 같다. 특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의 아름다움을 알아차리고 싶다. 그 아름다움을 손으로 글로 음으로 표현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먼길 생각하고 이제 줄긋기를 하는 정도이지만 언젠가는 그 아름다움을 내 손으로 그려낼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한 십년을 잡으면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