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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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언어를 가졌다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행운이지만 많은 불행의 씨앗 또한 언어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신의 마음을 언어로 완벽하게 일치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의 글을 읽고 말을 들어서 그의 글과 말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책을 쓰고 책을 읽고 대화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자신의 그러한 한계를 알고 조금이나마 자신을 키워 나가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한다. “책을 읽는 방법”을 쓴 히라노 게이치로는 그런 의미에서 책을 읽으면서 오독을 즐기라고 말한 것 같다.
2008년 3월에 꿈 벗 프로그램에 참가했었다.
그 때 구 본형 사부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헤어지기 앞서 사부님께서 책에 “햇빛처럼”이라는 싸인을 해 주셨다. 그 “햇빛처럼”이라는 말을 써 주신 정확한 이유를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사부님의 책을 보면 햇빛에 대한 글들이 많이 나와 있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그 햇빛처럼이 어떤 의미인지를 많이 생각하면서 나의 아이디로 만들어 버렸다. 꿈 벗들의 봄 소풍때 사부님께서 햇빛처럼이라는 말을 많은 사람들에게 주었지만 너 처럼 그렇게 잘 쓰는 사람은 못보았다는 말씀을 주셨다. 몽치스의 연말모임에서 막내 현덕이가 저도 그 글을 받았었거든요 라고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을 보면서 착각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햇빛처럼” 이라는 아이디로 개명을 하고 그 이름을 생각하면서 내 주변 생활의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것이 나만의 “오독”이었음을 나중에서야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심코 던졌을 수도 있는 한마디의 말을 자신과 연결해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말로 받아들일 때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안다.
나는 여전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수 있는 한계가 있는 사람임을 잘 안다. 그러나 올해 내가 가장 바뀐 점을 들라면 책을 읽고 보면서 그 책에 다른 사람들을 비추어 보던 버릇이 이제 나를 향한 말들로 보이고 들려진다는 것이다. 나를 칭찬하고 나를 질책하고 나를 격려하는 저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다. 그러한 착각 속에 자유함과 기쁨이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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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마지막입니다.
먼 인생을 두고 보면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다를바 없지만 이렇게 연말과 연초가 존재하는 이유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을 하게끔 해주는 장치가 아닐까 합니다.
여기에 오시는 모든 님들.
올해의 기쁨과 절망, 그리고 성취와 아쉬움을 모두 돌아보면서 내일 또 멋진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독서가 외형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별로 없지만 자신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공자님이 지금으로 치면 갖은 궂은 일과 알바로 생활하시면서도 성인 성현의 반열에 오르신 것은 독서 혹은 공부의 힘이 아닌가 합니다. 이 부분이 다른 성현과 다른 점이라 여겨집니다.
독서를 통해 물질적인 발전을 이루기는 어렵지만 자신의 모나고, 못된, 악한 부분 까지도 다스려 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올해의 마지막 날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기축년 새해 원하시는 소망 다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