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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8일 17시 21분 등록
 

내면의 관용과 불관용 사이, 그 미묘한 경계



2005년 2월 베이징 공항, 제일 먼저 나를 맞아 준 것은 부서질 것처럼 바싹 말라있는 건조한 베이징의 바람이었다.  게다가 하늘을 온통 황토빛깔로 물들인 모래 바람 덕에, 무시무시한 중국 황사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될 판이었다. 

검은 머리, 비슷비슷한 체격, 노란 얼굴색을 한 중국인들이 너무나 시끄러운 소음을 내며 공항을 활보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과 썩 구별되지 않는 한 젊은 여자는 분주한 이들의 움직임을 한참이나 응시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비행기로 고작 1시간이면 닿을 거리에 있는 곳이, 이렇듯 생소하고 낯선 느낌일 수 있는 건지 잠시 헷갈렸던 탓이다.

알 수없는 큼큼한 냄새가 공기 중에 흩어져 있었다.  나는 그 냄새를 쫓아내려고, 준비해 간 마스크를 귀에 얼른 걸었다.  바로 그때, 옆에서 누군가 “커억!” 하고 있는 힘껏 가래침을 올려 뱉었다.  그 곳은 정확히 중국의 수도, 베이징 공항, 그것도 공항 객사 내에 있는 커피숍 안이었다.

     

건조함, 질서 없는 분주함, 불쾌한 냄새.  이것은 내가 중국이란 나라를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이미지들이다.  그 후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떤 부분은 적응이 되기도 했고, 어떤 부분은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된 채 남아있기도 했다.

내가 가진 이 느낌들은 아마 에이미 추아가 처음 모국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당혹스러움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끈적끈적한 식당 바닥에 “퉤!” 하고 수박씨를 뱉던 연구소 소장의 모습이, 직접 보지 않았음에도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 광경을 보고 구슬프게 눈물을 흘리셨던 어머니의 심정을, 에이미 추아가 온전히 공감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그동안 부모님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중국의 위대한 문명에 대한 환상이,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국의 미래>를 읽으며 가슴 한켠에 자꾸만 연민이라든가 동정과 같은 안타까움의 감정이 일었다.  미국 주류 사회에 진입해 국제 관계를 논하는 세계적 지성인이 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모순과 혼란으로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제국의 미래를 염려하며 써 내려간 글이 결국, 자신과 그 가족에게 충분한 “관용”을 베풀어 주었던 미국에 대한 심심찮은 경의와 격려를 보내는 형국이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뿌리, 중국을 끝까지 외면할 순 없었던 듯하다.  중국이 결국 초강국의 지위까지 상승하리라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친절히 설명해 주는 에이미 추아였다.  더불어 서양 사회가 오해하고 있는 중국의 내면을 하나씩 벗겨내 주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녀에겐 중국인, 미국인 이라는 두 가지 이름이 있다.  미국이 베푼 “관용”으로 인해 미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게 된 중국인, 미국에서 미국인으로 살면서도 자신의 뿌리는 결국 중국, 한족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미국인.  미국의 눈부신 성장에 환호하지만, 5000년 웅장한 중국 역사와 문화의 우월성에도 자부심을 가지는 그녀는 과연 어디에 속해 있는 사람일까? 


두 가지 이름을 가진 에이미 추아는 관용과 불관용, 미국인과 중국인이라는 두 경계선상에서 끊임없이 이 모순과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에이미 추아가 주장하는 “상대적인 관용”의 필연적인 결과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관용”은 좀 더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의 것이다. 

정치적이고 정책적인 관용들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베풀어 질 수 있다.  그러나 이 관용의 결과로 인해 야기되는 개인의 “관용“ 문제는 좀 더 복잡하고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녀가 어디서부터 중국인이고 어디까지가 미국인 인지는 아무도 정의할 수 없다.  그녀 자신조차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모순을 평생의 과제로 이야기할 정도이니 더욱 그러하다. 


미국의 관용으로 말미암아 한 개인은 경제, 문화를 넘나드는 더없이 큰 혜택을 받게 되었지만, 그 결과는 조금 서글프다.  고대 페르시아부터 현대 미국의 방대한 역사를 구슬 꿰듯 섭렵하고 있는 에이미 추아 박사지만, 정작 자신의 역사에 있어서는 몸을 움츠리고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  그녀는 과연 누구“였으며” 누가 “될” 것인가?  아이러니 할 수밖에 없다.


검은 머리, 비슷비슷한 체격, 노란 얼굴색을 한 중국인들이 너무나 시끄러운 소음을 내며 공항을 활보하고 있다.  그들의 모습과 썩 구별되지 않는 한 젊은 여자는 분주한 이들의 움직임을 한참이나 응시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건조함, 질서 없는 분주함, 불쾌한 냄새가 가득한 중국의 공기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꽤나 걸릴 지도 모를 일이다.  낯설고 생소한 느낌을 가진 한 젊은 동양 여자는 잠시 주춤했다. 



거기 있던 한 젊은 여자는 나였을까?  그녀, 에이미 추아였을까?    


IP *.78.10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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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8 17:43:20 *.78.105.123
고맙습니다!  2차 과제를 무사히 마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요일 저녁을 맞이합니다.
제 자신에게 먼저 잘했다 칭찬해 주고 싶고, 함께 하신 지원자 여러분을 역시 잘하셨다 칭찬해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아직은 부족함이 많이 보이지만 앞으로 조금씩 채워가려 합니다.
완벽함이란 더이상 버릴 것이 없는 상태라고 했던가요!
주섬주섬 뭘 많이 달아 놓지도, 억지로 꾸며 놓지도 않을 겁니다.
더이상 버릴 것이 없을 때까지, 더 많이 버리고 버릴 겁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포기하지 않아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환하고 맑은 얼굴로 뵐 수 있기를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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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8 22:49:45 *.234.77.175
저자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시네요. ^^
나리님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불꺼진 삼실에서 넘 놀라셨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늘 그 열정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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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2009.03.09 00:17:01 *.168.109.134
작년에 저도 중국 뻬이징에 갔던 기억이 새롭게 나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점이 천안문 광장을 들렸을 때였는데 하필 방문한 날이 5/1 노동절 공휴일 이었습니다.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중국의 저력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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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부
2009.03.09 15:04:10 *.167.143.73
저도 중국에 갔을때 프라스틱 물병을 뺐는 중국인들을 보면서 많이 속상했었어요.
그런데 그사람들이 한때는 세계를 뒤흔들었던 제국의 왕이었다니 현실감이 없죠.
중국여행 때 많은 걸 보고왔는데 허탈하고 허무하고 뭐 그랬었어요.
제국의 미래를 통해서 그리고 저자가 중국계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중국과 미국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가게 하네요.
저는 무엇이든 새롭게 알아지는 지식들은 모두 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답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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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영
2009.03.09 15:24:30 *.124.157.231
스스로에게 먼저 격려하는 모습이 넘 좋습니다.
실은 나도 많이 지쳐있었는데 나리님 글보고 힘을 얻습니다.
나리님의 모습 중 내 모습도 보이고 서로 관용이 필요한 이유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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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9 21:59:53 *.145.58.201
멋진 글입니다
눈앞에서 중국의 광경이 펼쳐지는 것 같네요^^
저역시 에이미 추아라는 개인을 연구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예전에 알던 화교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인과 한국인의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었지요
에이미 추아와 그녀의 가족은 필리핀에서도 미국에서도 그런 경험을 했겠지요
그래서 '관용'이라는 거대한 테마를 역사로 부터 끄집어 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멋진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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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9.03.10 23:40:10 *.254.7.115
2기 연구원입니다. 깔끔한 문장력이 인상적입니다. 한 달간 정말 애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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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6 11:36:58 *.43.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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