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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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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8일 01시 44분 등록

<내 속에 무엇이 숨어 있는가? 무의식에 대한 한 고찰>

 

대학 4학년 한여름 밤이었다.

그때 나는 졸업 후 진로를 앞두고 한창 고민중 이었다. 집안 형편은 내가 졸업해서 취직해서 돈을 버는 것이 타당했지만, 그때까지 나는 내가 취직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며 사는 생활인의 삶과 나 자신은 거리가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수 있는 대학원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공부를 하고 싶다는 열망 또한 없었기에 공부는 지지부진한 그런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단순히 때가 되었다고 해서 내가 무슨 선택인가를 해야 하고, 그것에 따라 내 앞길이 갈린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 밤도 그렇게 이런 저런 고민을 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여름이라 열어둔 내 방의 넓은 창 사이로 환히 보이는 한여름의 둥근 보름달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 속에서 달을 바라보는 순간이 영겁처럼 느껴졌다.

한 순간 나를 잊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마음을 꿰뚫는 것이 있었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든, 공부를 하든, 지금 같은 이 몰입의 순간을 내게서 앗아가는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라는 암시.

, 내가 외적으로 무엇을 하든 나는 그대로 나일 수 있다는 깨달음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일기장에 한밤 달빛을 받으며 쳐다보고 있는 내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후, 나는 대학원 시험에서 실패하고 서울로 직장을 가지게 되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생활과 천연덕스럽게 계약을 한 내 모습을 스스로 비관적으로 볼 여지도 있었으련만, 다행히 나는 스스로의 모습을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위한 하나의 단계로 인식하며 계속 앞을 바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겐 너무나 당연하게도,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겨도, 나를 위한 그 마음의 자리는 남편이나 아이로 대체되지 않았다. 가끔 결혼하고 가정을 이룬 친구나 지인들이 이제 내가 뭘 하겠니, 우리 애들이 잘 되야지! 라고 하는걸 들을 때면, 내 스스로가 너무 개인적이고 때로는 이기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 속의 그것은 말한다.

네가 먼저 있고, 네 가족이 있는 것이고, 네 스스로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 주변인들에게도 행복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단지 세월이 흐르면서, 그 감각이 무뎌지고 퇴화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은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나 자신을 일깨우고,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면 그 의미를 파헤치려 노력했다.

 

가끔 좋은 사람들이 나에게서 무슨 열정, 하고자 하는 의지 같은 것이 읽힌다며 호의적인 눈길을 보낼 때, 정말 기분이 충만한다. 나에겐 뭔가 아직 이루지 못한 일이나, 공유하지 못한 나만의 방식으로의 공감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아주 흔하게 발견되는 시대적 감성의 뭉치이기도 하고, 그리고 특정 주파수 영역에선 아주 작은 것에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내 고유의 감성이기도 하다. 아이의 의견을 어른의 권위로 무시하던 그때의 행태에 부당함을 느꼈던 마음, 편파적이고 주관적인 결론을 강요하는 분위기를 혐오하는 기질이기도 하고, 느껴지면 적극적으로 행해야 하는 의지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세상의 편견과 무지로 의해 마음 아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는 괜찮다 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그런 마음을 어떻게든 공유하고픈 그런 열정이 아직 내 마음속에서 어떤 형태로 발현되어야 할지 몰라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유독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의 융의 고독과 예민한 감성에 눈길이 많이 갔다. 나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그의 마음 앓이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기억하는 장면의 선명함이 놀라웠다그는 내면에 영향을 미친 장면을 80세가 넘어서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나의 기억을 되돌이켜 본다. 그리고 무엇이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는지 유추해본다.

 

 

IP *.64.148.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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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3.08 08:18:35 *.209.229.83
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면모가 드러나는,
깔끔하고 참한 글이 좋네요.
몇 가지 일이 겹쳐 동시에 해내느라 힘도 들었겠지만
'다 해냈다'는 역량감이 쭉 늘어나지 않았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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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2010.03.08 20:56:29 *.64.148.199
미탄님,
네.. 바쁜 일은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네요. 4주차 과제를 제출함으로써...
생각해보면 그런 맘을 먹었다는 것 자체가 솔직히 무리였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오늘 월요일부터 바로 다음 SITE 일하는 곳으로 출근했답니다. 
비록 회사가 다르긴 하지만, 얼마나 그 일하는 분위기가 어색하게 느껴지던지요.
몇달 간 쉬고, 다른 생각들로 채워진 머리로 예전 패턴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조만간 프리랜서 일도 그만둬야 될까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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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3.08 22:45:21 *.186.57.173
달빛, 참 좋지요.
세상 모든 그리움이 모여서 달이 됐다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달이 참 밝기도 하다"라고 한다지요.
달빛과 달빛을 쳐다보는 자신. 달도 영숙님을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가슴 속에 달빛같은 그리움을 잊지 않고 산다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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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3.08 23:06:27 *.186.57.173
제가 궁금해서요... 같은 사람을 만나고, 같은 글을 읽고서도
서로 다른 빛깔과 모양으로 빚어내는 ... 참 신기하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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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2010.03.08 23:01:23 *.64.148.199
지원자들의 글을 꼼꼼하게 읽고 댓글 달아주는 정성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되든 안되든 한번 뵙고 얘기 나눠보고 싶네요..^^

고생하셨습니다.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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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희
2010.03.09 00:27:57 *.108.158.238
4주간 고생 많으셨고요.
좋은 결과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만나서 좋은 말씀  듣고 싶네요.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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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2010.03.09 23:09:18 *.64.148.199
윤인희님께서 이번주제에 관련해 올려놓은 글을 보노라니,
웬지 제가 제출한 개인사의 한 페이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순전히 제 개인적인 느낌..)
직접 만나뵈면 그 기운을 느낄 수 있겠지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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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2010.03.09 00:44:01 *.83.68.7
글이 항상 촉촉해요.
오늘도 달빛에 젖어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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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2010.03.09 23:12:24 *.64.148.199
안녕하세요. 이은주님.
이번 주제글을 읽으며, 사람마다 얽힌 사연이 참으로 가지가지라고
여겨졌습니다. 저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너무 대단해보이셨습니다.
무의식에서의 긍정의 힘.. 정말 무서운 힘이지요.

오랫동안의 레이스..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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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옥
2010.03.09 05:28:42 *.53.82.120
님들의 글속에서
나를 찾아내는 즐거움에 시간을 잊습니다.

같고 또 다른 우리들이 만드는 화음은 어떤 색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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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2010.03.09 23:13:23 *.64.148.199
박미옥님의 서정적인 글에서도
또 다른 풍경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고생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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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3.09 09:08:45 *.236.3.241
한여름의 둥근 보름달이 한순간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군요 ㅎㅎ
그거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마법의 거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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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2010.03.09 23:14:28 *.64.148.199
그러게요..
아쉽게도 그런 순간이 자주 오지는 않더군요.
자주 왔더라면 제가 이미 도를 터득했을텐데 말이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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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주
2010.03.09 21:23:03 *.203.200.146
환한 달빛 속의 깨달음~ 달빛속에 고요히 있으면 내면에서 어떤 희망의 메시지가 울리는 느낌을 가끔 받곤하는데..김영숙님의 느낌과 비슷한 걸까 상상해봅니다^^
열정가득한 모습이 그려지는군요~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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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2010.03.09 23:17:08 *.64.148.199
쓰신 글을 읽으며 참 가슴깊은 곳에서 울림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사연이란 것이 얼마나 많은것을 말없이 담고 있는가?
손짓 하나의 의미란 또 무엇인가?
뭐, 그런것들 말이지요..

4주동안 힘드셨죠.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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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희
2010.03.11 13:46:59 *.142.217.230
2차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뵐 수 있게 되어 반갑네요.
좋은 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저와 비슷한 개인사를 갖고 계신 분이라니 너무 반갑군요
너무 신나겠네요. 참으로 뵙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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