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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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몇년만에 심야영화를 볼 기회가 생겼다.
심야에, 대형 스크린으로 볼만한 대작을 훓어보다 바로 눈에 들어온 영화, "최종병기활"
사극과 활이라는 멋드러진 소재가 박해일, 류승룡이란 믿을 수 있는 배우들에 의해 어떤 매력을 발산하는지 궁금하여 바로 선택하였다. 결과는 대성공.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영화가 기대이상이란 느낌이 드는건, 상영시간 2시간이 30분정도로만 느껴진 스피디한 속도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영화가 끝나면서 물결처럼 다가오는 그 무언가가 있었으니, 아마도 힘없는 개인의 삶에 대해, 예나 지금이나 민초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삶에 대해 또 한번 생각하게 부분이 있어서인 것 같다.
스토리는 익히 알려진대로 역적의 자식 남이가 화를 피하여 아버지의 친구에게 여동생 자인과 몸을 의탁하여 성장한다. 양반이지만 결코 세상에 나갈 수 없던 그, 그런 그에게 유일한 희망인 동생 자인이 양반가와 혼인을 하게 되는 아주 경사스런 날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바로 혼사날 그날, 그 시기는 조선땅이 병자호란으로 청군에게 물들고 있던 시기였으니, 어느날 갑자기 그야말로 혼사를 치루던 그 순간 청군의 습격을 받고 신랑과 신부인 여동생이 다 끌려가고 만다.
숨어지냈지만 숨길 수 없는 신궁이던 남이는 여동생을 되찾아오기 위해 청군의 정예부대 뒤를 쫓으며 그들과 숨막히는 접전을 벌인다. 정말이지 2시간이 쏜살같이, 활처럼 지나갔다고나 할까. 결말 또한 박해일, 류승룡 투-톱 배우들이 정말 진한 연기를 보여주며 잘 마무리해주었다.
그런데 내 가슴이 울렁이기 시작한건, 모든 사건이 다 끝나고 마지막 혼자말이 올라오기 시작할 그 무렵이었다. 여지껏은 영화의 속도감에 묻혀 정신이 없었다면, 영화가 끝나자 비로소 마음이 울리며 생각이 풀어지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나는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이다. 말로만 들었지만, 결혼식날 혹은 농사짓다 혹은 밥을 먹다 적군이 눈 앞에까지 와 있을 수도 있다는것이 참으로 새로이 실감났다. 그랬겠지. 그 옛날에는 정보나 소식 전달이 늦었으니, 아주 잘 준비되던 좋은 시절도 아닌 나라의 힘이 약해져 혼란스러웠던 그 시절이라면 그야말로 일상의 어느날 우리 조상들은 갑자기 적군을 집앞 마당에서 맞딱뜨리기도 했겠지. 왜 지금까지는 이러한 사실이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도 한 사람의 삶이 외부의 커다란 흐름에 속수무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앞에 가슴이 떨렸다. 아마 임진왜란때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을 터이다..
다음으로, 어찌어찌 겨우 전쟁이 끝나고도 정부는 포로로 끌려간 이들을 데려오지 못했다 한다. 거의 항복하다시피한 나라였으니 포로 송환은 꿈도 못 꾸었을터. 그 와중에 아주 극소수의 개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사지를 탈출하여 살아 돌아왔다고 한다.
끌려가며 다시는 고향땅을 밟을 수 없을거라 절규하던 그네들의 모습에 온 마음이 접히듯 아팠다. 그래, 저분들은 정말 저리 끌려가면 두 번 다시 가족을 볼 수 없이 먼 나라, 낯선 나라에서 일생 종으로 살아야 했겠구나.. 세상에..
정말이지 몇몇 개인들만이 어찌 탈출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힘으로 돌아왔다하니, 고향이 뭔지 피붙이가 뭔지, 개인들은 늘 거기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것 같다. 전쟁처럼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도, 결국 스스로의 운명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현대 우리 사회모습도 어느 정도는 겹쳐서 보인건 비단 나뿐일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작은 땅. 중국이란 거대한 대륙 끝 한반도 땅, 우리의 조국.
난 극장을 나오며 지금의 내가 중국어가 아닌 우리 고유의 한국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에 무한 감사를 드렸다.
난 결코 우익민족주의를 지향하자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 세계가 어느 하나로 글로벌화하는건 절대 반대다.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꽃들과 아름다운 존재들이 공존하듯이, 사람들 또한 소수민족의 다양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이 획일적인 세계화보다 아름답다 여긴다.
그런 의미에서 자칫 거대 중국대륙의 물결에 휩쓸릴 수 있었던 한민족이 그 언어를 지키고, 그 고유 문화를 지켜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도 감사하고, 눈물나게 기뻤다.
수많은 전쟁에 시달리며 포기하고 싶었을텐데,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정말 힘겨웠을텐데, 우리 민족은 끝끝내 스스로를 지켜오고 있다. 그 사실이 너무너무 뿌듯하여, 나 또한 지금부터는 더욱 더 동양의, 그 중에서도 한국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나마 이어가는 일에 동참하고 싶어졌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으리. 언어 하나만을 지켜내도 민족의 혼은 살아남을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비즈니스에도 우리들의 아름다운 영혼의 불꽃이 필 수 있도록 애쓰고 싶어졌다.
실로 사람은 때때로 알 수 없는 곳, 예상치 못한 일에서 문득 한 줄기 서늘한 깨달음을 얻고는 한다.
단순히 깊은 어느 여름 밤, 그저 쫓고 달리는 액션 중에서 활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어찌 다뤘을까 궁금하여 찾아든 극장에서 난 예기치 못한 뜨거움을 안고 돌아왔다.
좋은 영화다. 만든 이들도, 배우들도.
단순히 쫓고 쫓기는 것에는 끝나지 않는 무언가를 깔고 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속한 곳에서 노력하며 우리 문화를 드러내고 있으니
나 또한 내가 속한 곳에서 문화지킴이가 되도록 애쓰고 싶게 만든 영화, "최종병기 활"이었다.
물론 영화만으로도 충분히 아깝지 않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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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앨리사의 북살롱
왜 김진명의 <고구려>를 읽어야 할까? http://blog.daum.net/alysa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