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미경
- 조회 수 2156
- 댓글 수 8
- 추천 수 0
‘나에게 신화란 무엇인가? 오 미 경
‘선택’의 순간은 살면서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과제이자 축복이다. 내 나이 서른 중반 전에는 선택이란 말 그대로 어느 것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책을 읽다가 ‘선택’이란 단어가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다르게 정의되어 있었다. ‘선택 이란 고르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다’라고. 선택하는 순간에 중요하지 않는 것들을 모두 버리다 보면 - 가치관과 그때 상황에 따라- 가장 중요한 것이 남는다. 그것을 선택하면 되는 거였다.
나는 이 문구 앞에서 얼어붙었다. 뭔가 새롭게 내 마음속에 와 닿았고 이 문구를 가지고 한 달 이상을 사유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나는 새로운 선택을 할 때마다 내가 생각한 것들을 모두 종이위에 썼다. 그리고 덜 중요한 것들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가장 나중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최근에 선택할 일이 생겼다. 예를 들어 보겠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지원하기, 화가들 만나면서 영업하기, 방학내내 수업 하기, 남편이 사는 시골에 가서 오랜만에 휴식도 취하고 놀고 TV보기, 부산 여행하기, 언니들이 사는 광주에 가서 며칠 놀다 오기, 읽고 싶은 책 읽다가 놀다가 자다가 음악 듣다가 맛있는 음식 해먹기, 그동안 못 만났던 지인들 만나기, 다른 학교 알아보고 이력서 내기, 생각해 둔 주제로 꼭지글 써보기 등등.
위에 쓰여진 것들 중에서 나는 하나 하나 지워가기 시작했다. 제일 나중에 남는 것이 ‘연구원 지원하기’였다. 다행이 일차 합격이 되어 2차 레이스를 하고 있다. 힘겹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수행하고 있다.
내게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버리고 가장 나중에 남는 한 가지를 선택했다. 연애가 그렇듯이, 한 욕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다른 욕망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순수한 나의 욕망을 위해 버리고 선택했다. 후회를 덜 하게 되고, 뒤를 돌아보지 않게 되었다. 과거에 대한 집착이나 미련이 없어지게 되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도 덜했다. 남과 비교하는 마음도 어느 덧 사라졌다. 오로지 나에게 주어진 길 위에서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나아진 나를 보면서 기쁨을 느꼈다.
지인과 수다 떠는 것을 버림으로써 책을 읽는 시간을 선택하는 것
운전하는 것을 버림으로써 걷는 것을 선택하는 것
TV가 없음으로 나를 보고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
편안하게 집안에서 뒹굴뒹굴 하는 시간을 버림으로써 특강 들으러 매주 서울에 가는 것
내가 말하는 순간을 버림으로써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선택하는 것.
화내는 것을 버림으로써 나를 통제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
카톡을 버림으로써 세상의 잡음으로써 벗어나고 나의 고요한 시간을 선택하는 것
새벽잠을 버림으로써 책을 읽고 글 쓰는 시간을 선택하는 것.
쇼핑하는 시간을 버림으로써 생활의 절제를 선택하는 것
술 마시고 해롱해롱 하는 것을 버림으로써 멀쩡한 정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선택하는 것.
나에게는 나만의 길이 있었다. 아모르파티Amor fati,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것. 오직 지금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하게 되고 즐기게 되고 충실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나의 신화는 현재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곳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렇다. 선택이란 선택하지 않은 다른 모든 것들을 버리는 것이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제외한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다.
로마의 시조가 된 아이아네스도 자신의 운명에 따랐다. 자신을 가장 사랑한 디도를 두고서 새로운 길을 떠나야 했다. 그도 모든 것이 다 갖춰진 편안한 삶과 사랑하는 여인을 뒤로 하고 길을 떠나고 싶었겠는가? 아이아네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을 받아들이고 고독하고 험난한 운명의 길을 나선다. 디도는 자결하는 삶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아이아네스에게 보여주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해 집착이다. 자아 학대이며, 관심받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자아 부족성에서 오는 자아 결핍 증후군이다.
나도 한때 떠나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결혼 한 지 3년이 지난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다.
‘인간이 이렇게 밥 먹고 놀고 자고 섹스하고 아이 키우면서 아무 생각 없이 일상의 나날을 살아간다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러저러다가 그냥 화장터에 보내지는 게 인생이란 말인가?’ 라는 생각이 미치자 섬뜩했다. 네 살 난 딸아이를 데리고 남편을 떠났다. 나도 아이아네스처럼 남편을 사랑했다. 사랑도 소중하지만 나 자신을 찾고 싶었다. 그 이후, 둥지를 떠난 새는 모험을 시작했다. 자신을 찾아가는 모험은 나만의 작은 왕국이 시작되었다. 자유롭지만 나 자신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길 위에 체험하는 모든 순간이 모나고 뾰족하고 울퉁불퉁한 나를 둥글둥글하게 만들었다.
나의 신화를 써나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매 순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 판단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선택이란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다. 판단하기에 앞서 충분히 생각한다. 선택하는 순간,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나에게 신화란 선택이다. 선택하지 않은 것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용기, 선택한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추진력, 선택한 것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닥쳐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지혜,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질문을 하고 마음을 열어두고 모든 것에 답을 구하는 현명함을 갖추고자 노력한다.
마음이 열리면 세상이 달라져 보인다. 햇빛처럼 따사로운 삶은 축제이다.
“오늘 그리스인의 이야기에서 그 행간을 읽어낼 수 있다면 우리 안에서 가장 위대한 힘을 이끌어내 스스로의 삶을 영웅의 행적으로 끌어올릴 용기와 방법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끊임없이 우리를 끌어올리는 힘, 즉 ‘엑셀시어Excelsior의 정신’은 우리를 도약하게 한다.”(17p)
삶은 누구보다 빨리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나의 경쟁자는 남이 아닌 바로 게을러지고 안이해지려는 ‘나’다. 나의 한계를 끝까지 밀어붙여 그 한계를 넘는다. 그 순간, 내안의 새로운 내가 탄생한다. 매순간 나의 신화를 써 나간다.
나에게 신화란 나 자신을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원망하지 않고 온 몸으로 품으면서 사랑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비교할 필요도 없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타인과의 비교에서 어제의 나 자신을 비교한다. 매 순간 가슴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의 신화를 창조해가고 나의 신화를 써나가는 것이다.
오~~오늘 하루 주어진 순간을 웃음과 유머, 여유로움으로 자유를 만끽하게나
미~~미래의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말며 후회스러운 과거를 되돌아 보지도 말지어다
경~~경이로운 순간들이 매번 너를 찾아와 삶을 축제로 즐기면서 너의 신화를 써나갈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