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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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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12일 06시 58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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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승님은 산과 숲을 베개 삼아 살기 시작한 내게이제 네가 있어야 할 곳에 있음을 알겠다하셨습니다. 검게 그을린 피부에 투박하고 거친 모습의 차림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이곳 나의 삶이 물을 찾은 물고기와 같다고 느끼신 듯 합니다. 그 짧은 말씀은 실로 정확한 표현이었습니다. 나는 이곳이 좋고 이곳에서 걷고 있는 지금 내 삶의 길이 좋습니다. 도회에서의 삶보다 훨씬 궁핍하고 불편하지만, 일상은 평화롭고, 그 평화 속에 기쁜 흥분이 함께 하는 삶입니다.

 

무당벌레가 있을 곳은 나무였고 풀이었습니다. 한낮, 마루 앞 뜰에 심어놓은 나무들에게 말을 걸다가 나뭇가지 여기저기에 붙어 볕을 쬐고 있는 무당벌레들을 보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나와 함께 이 오두막의 방 안에서 겨울을 난 녀석들을 아침마다 내보내주고 있는데, 녀석들이 뜰의 나뭇가지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한 것입니다. 날아다니는 벌이 많아진 걸 보면 조만간 무당벌레들이 좋아하는 진딧물도 나올 것입니다. 들과 숲에서 살아있는 농약이라 불리는 조절자 역할을 하며 한 시절을 보내기 위한 새 거처가 그들에게 참 좋아 보였습니다. 이제부터 그들이 있을 곳은 그곳이었습니다.

 

개는 늑대의 삶을 포기하는 순간부터 길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야생을 달리며 뿜어냈던 거친 울음소리는 길게 뻗어나가지 못하고 이내 소멸하는 짧은 울음소리로 변했습니다. 늑대의 희망은 주인이 던져주는 고깃덩이 앞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사냥을 내던지고 때가 되면 밥그릇을 바라보며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예속의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새장은 새가 있을 곳이 아닙니다. 야생의 자유를 추구하는 새에게 위험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새장 속에 갇혀 자유를 저당 잡히고 안전을 대가로 받아먹는 먹이는 새에게는 온전한 희망을 담은 먹이가 아닙니다. 매는 창공을 선회하면서 날다가 수직으로 내려꽂으며 뱀을 움켜잡을 때, 박새와 딱새와 오목눈이는 가시덤불을 헤치고 거미를 사냥하며 분주할 때 비로소 희망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은 저다울 수 있을 권리를 타고났습니다. 누구도 누구를 가둘 수 없습니다. 우리 또한 저다울 수 없는 삶이 지속되는 곳에 처해 있다면, 그것 때문에 삶이 힘겹고 피폐해진다면 그곳은 우리가 있을 곳이 아닙니다. 어깨 위가 묵직하게 결려오기 시작하고 그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날마다 무거워 온다면, 이제 기꺼이 떠나야 할 때가 멀지 않았음을 알아채야 합니다.

 

있을 곳에 있는 것. 그것이 또한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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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정 윤태희
2009.03.12 07:38:07 *.176.174.15
선생님,  매번 글을 읽으면서도 답글을 달지를 못했습니다.
오늘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있을 곳에 있는 것'이란 말씀이 떠오르는 태양빛처럼 저를 환하게 안아주는 아침입니다.  제가 있을 곳은 어디인가?를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산으로 가셨듯 저는 바다 가까이로  이사를 했습니다. 여러가지 번거로움도 있지만 이곳에서 일상의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즐길수 있어 좋습니다. 바다가 안겨 들어오는 거실에 앉아 글을 쓰고 있습니다.  떠오르는 태양 아래 반짝이는 은빛물결이 이 아침 저의 가슴을 뛰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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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3.13 17:47:44 *.229.196.214
바닷가로 이사를 가셨군요. 축하드립니다. ^_^
동해안 울진 근처에서 20개월 가까이 바닷가에 머물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참 좋았습니다.
글 속에서 고요와 평화가 느껴집니다. 이사의 수고로움이야 새로 얻으시는 그 고요와 평화의 가치에 어떻게 대비하겠습니까.
안부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곳에서 내내 행복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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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9.03.12 08:29:33 *.253.249.69
백오의 글은 한폭의 그림이다.
첫눈에 읽기 시작한 글이 마지막 꼭지를 다 먹고 난후에도 왠지 배고프다.
이제 생태의 글을 몇권 쓰고 난 후에는 세속과 함께하는 자연인의 글쟁이가 되었으면,
왜냐하면 그대의 글을 읽는 사람은 세속에 찌들린 어려운 사람이다. 그와 함께 숨쉬는 글이 되어야지 나혼자 고고한 경지에 앉아 있으면 ...
부처님이 도를 얻고 난 후에 어려운이를 구하기 위하여 세속으로 갔기에 이를 대승이라하였고
나반존자는 홀로 산골에서 자신의 도를 홀로 즐기다가 세상을 떠났기에 이를 소승이라 하였다.

白烏당!
대승의 길을 고려 해보지 않겠나...

"无平不陂 无往不復 艱貞 无咎 勿恤 其孚 于食有福"
세상에는 비탈도 평평함도 없다 감도 없고 옴도 없다. 세상을 끝까지 살려면 어려움은 일상이다. 그렇게 살아도 허물은 없다. 믿고 끝가지 가면 그대의 복은 그곳에 있을 것이다.

자네와 같이 교보문고에서 신윤복씨의 강의를 보여 주었을 때 주역부분을 펴을 때 보인 구절이다.
나는 이 구절을 멀리보이는 지평선은 바르고 평온해 보여도 실재는 비탈도 시궁창도 그곳에는 있는 법이다. 라고 해석해 준때가 우리가 몇번 만나지 않았을 때이다.

용규!
좋은 글은 자네의 맘의 향기이다. 아침에 일어나 그대의 진한 향기를 느끼고 일상을 가네, 잘 읽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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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3.13 17:53:33 *.229.196.214
선생님. 오늘 따끔한 가르침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호를 흰 까마귀라 주셨으니 흰 까마귀처럼 사는 걸까요? 하하.
이제 뵈올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날을 기다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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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분
2009.03.12 10:20:47 *.82.103.11
있을것들이 제자리에 있을 때
그 때는 희망이 그립지 않은 때
언제 부터였을까요
누가 맨처음에 제자리에 있는 것들을 옮기었을까
왜 옮기었을까?
짐승으로 보면 어미가 새끼를 물고 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는 생각
사람으로 보면
갑자기 몸이 섬찟해 옵니다.
사람만이 자르고, 뜯어내고, 상채기를 내어서 옮깁니다.
그동안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우리는 모르는 척해도
저 칼날이 언젠가는 우리를 자르고 동강내리라는 두려운 마음 끝에 희망을 찾습니다.
제자리를 찾아가는 '다움'의 그리움!
오늘 아침
그래도 우리에게는 님과 같은 든든한 파숫꾼이 있다는 생각에
먼산 보며 감사함을 전합니다.
뭐가 보이시거든 또 얼른 알려 주세요!
제가 정신차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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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3.13 17:57:01 *.229.196.214
달아주시는 댓글을 통해 저는 항상 제 짧은 생각을 확장해 보게 됩니다.
"언제 부터였을까?, 왜 옮겼을까?"
"제 자리를 찾아가는 '다움'의 그리움!"

보시거든 제게도 얼른 알려 주세요!
저도 정신 차리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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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
2009.03.13 01:25:13 *.102.118.92
뜰앞의 나무들에게 무슨 말을 건네셨는지요?
선생님께 자연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겠습니다.
있을곳에 있어 행복하시다니 부럽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있을 곳이 어디인지 조차 찾지 못해 해매고 있을텐데 말입니다.
매주 숲에서 오는 편지를 읽으며 정말 있을 곳이 어딘지 찾아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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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3.13 18:01:49 *.229.196.214
지난 가을 뜨락에 새로 심은 나무들에게 "힘을 내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이곳으로 옮겨진 후 처음 맞는 봄에 몸살을 앓는 녀석들이 있어서
그들을 쓰다듬고 그렇게 말을 건넸습니다. ^ ^

무당벌레에가 겨울 동안 있어야 할 곳은 찬바람 피할 수 있는 곳,
봄이 오면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숲과 들.
우리 역시 있어야 할 곳은 그러한 곳 아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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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03.14 00:47:01 *.220.176.209
글을 이미 보고도 오늘에서야 답을 달아봅니다.

있어야 할 곳 그것을 아는 것...그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촌놈이 되어갈 자격이 있으신 분 같습니다.

요즘 보니 겨울을 보내고 하루 하루 다르게 싹들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겨울의 추움을 이겨낸 싹들이 잠시 따뜻해진 날씨에 방심할까봐

자연이 여지없이 마음을 다지라는 추위가 한창입니다.

어쨌든 그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아는 것.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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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3.15 22:42:57 *.229.221.203
촌놈이 아니라 아예 산적이 되었습니다.
책을 마무리하느라 농사철이 시작되었는데 거름도 못나르고 있습니다.
스승님이 왜 매일 조금씩 쓰고 매일 조금씩 읽으라 하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꽃샘추위가 아무리 추워도 오는 봄은 막지 못하는 법,
아름다운 봄날 만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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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영
2009.03.15 16:58:34 *.124.87.44
처음으로 몇자 적습니다.
작년 꿈벗 가을모임에 초딩 아들 데리고 가서 아궁이에 불때는 법 가르쳐주셨죠.
그 때 숲에서 삶을 이어가는 나무들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생명의 경이로움과 삶에 희망이 왜 존재함을 보았습니다.
그 산방의 오두막이 또하나 내 마음의 고향이 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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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3.15 22:45:18 *.229.221.203
아궁이 말씀을 하시니 그때 그 장면이 떠오릅니다.
숲 생명들의 이야기가 좋으셨다니 저도 좋습니다.
다시 뵈올 날 까지 행복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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