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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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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16일 06시 48분 등록

부우웅~ 끼익!~”

 

속도를 높여 제 자전거를 추월하려던 버스가 순식간에 덮쳐왔습니다. 버스의 우측 앞 부분이 옆으로 다가오는가 싶더니 어깨와 팔꿈치를 치고 커다란 초록색 몸통을 비비며 달려나갔습니다. 충격으로 핸들이 심하게 흔들렸지만 필사적으로 중심을 잡았습니다. 튕겨나가면 옆 차선에서 달려오는 차와 부딪칠 것이 뻔했고, 안쪽으로 넘어지면 버스 바퀴에 깔릴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비틀거리는 사이에도 버스는 한참을 더 나아가고서야 겨우 멈췄습니다. 저는 자전거와 뒤엉켜 나가떨어졌습니다.

 

주섬주섬 몸과 정신을 챙겨서 일어섰습니다. 이 정도면 버스에서 누군가가 뛰어나와볼 법도 한데, 아무런 기척이 없었습니다. 왼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운전석이 있는 앞쪽 문으로 걸어갔습니다. 문은 여전히 닫혀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주먹으로 몇 차례 두드리고서야 문이 겨우 열렸습니다. 그리고 기사님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한 마디가 튀어나왔습니다.

아니, 이 양반아. 그러길래 자전거가 왜 찻길로 나와?”

 

최소한 다치지 않았냐고 물어볼 거라고 생각했던 제 기대는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말의 두서는 사라지고 격한 감정만 남았습니다. 도로 교통법상 자전거도 엄연히 차라는 뻔한 이야기도 했던 것 같고, 추월하면서 충분히 공간을 확보하지 않고 지났으니 그 쪽 과실이라고 소리도 질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들이 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출근 시간의 버스 안에는 손님들로 가득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무작정 기다리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차량의 번호와 기사님의 이름만 확인한 채 나중에 연락하기로 하고 그 자리를 떠나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하루 종일 심란했습니다. 나이 많은 기사님께 소리를 질렀던 것도 마음에 걸렸고, 혹시라도 제가 신고할까 싶어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기사님의 처지도 신경이 쓰였습니다. 버스 회사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기사님의 연락처는 가르쳐줄 수 없다고 하기에 제 핸드폰 번호를 남겼습니다. 전화를 기다리는 내내 어떻게 이야기를 풀지 고민했습니다. 기사님이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해주면 나름 쿨하게 사과를 받아들이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뒤에서야 전화를 걸어온 기사님은 또 한번 제 기대를 무너뜨렸습니다.

 

전화는 왜 하라고 그래? 법대로 해.”

 

배신감 때문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았습니다. 기사님의 처지를 걱정한답시고 주책을 떨었던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당장 신고를 해서 그를 불편하고 어려운 궁지로 몰아넣고 싶은 마음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시간이 조금 지나자 화가 가라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던 기사님의 목소리가 몹시 떨리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렇지요. 아마 그 분도 많이 걱정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저 그걸 말로 풀어 표현할 수 없었던 거지요.

 

그렇게 생각하자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용서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인생의 가장 숭고한 기쁨 중 하나를 맛보지 못한 것이라는 라바터(Lavater)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칩니다. 용서라는 것이 결국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신에게 주는 선물인가 봅니다. 작은 분노에서 스스로를 건져낸 제 자신이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많이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살 빼는 것도 좋지만, 조금 더 조심해야겠습니다. 이제는 몸을 더 소중히 돌봐야 할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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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03.16 07:01:33 *.220.176.79
축하를 드려야겠군요. 작은 아픔에 큰 깨달음의 기회를 잡았으니 말입니다..

그날 사부님이 강의시간에도 그 비슷한 교통사고 상황에 대하여 말씀을 하신 적이 있지요.

좋은 한주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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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영
2009.03.16 10:46:15 *.125.171.123
많이 다치지 않아 다행입니다. 
기사님에게 베풀었던 용서의 마음이 우리를 치유하는 힘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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