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 조회 수 3104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9년 3월 19일 08시 46분 등록


나의 오두막에는 식구(食口)가 둘 있습니다. 녀석들은 경기도일산이 고향인 풍산개입니다. 그들의 이름은 ‘산’과 ‘바다’입니다. 아는 분이 산중의 적적함을 염려하며 보내주신 선물입니다. 그들은 젖을 떼자마자 어미를 떠나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처음엔 사료를 먹었다 하여 개 사료를 먹이로 주었으나 요즘은 나와 한솥밥을 먹습니다. 그러니 食口가 맞습니다.

‘산’은 흰색의 수컷입니다. 그는 용맹합니다. 이곳으로 온지 열흘도 되지 않아 처음으로 짖기 시작했습니다. 낯선 대상이 나타났을 때 갈색의 암컷인 ‘바다’는 슬슬 꽁무니를 빼지만, ‘산’이는 주저 없이 힘차게 짖습니다. 그는 또한 충직합니다. ‘바다’가 먹을 것을 주는 대상 누구라도 따라 나서는데 반해, 산은 항상 나의 곁을 지킵니다. 거실로 들어서는 문 앞에 거의 하루 종일 떡 하니 버티고 앉아 나의 동태를 살피는 것도 언제나 ‘산’입니다.

‘바다’는 약았습니다. ‘산’이 우직하게 문 앞을 지키는 것으로 나의 마음을 움직여 간식거리를 얻어내면, ‘바다’는 집에서 편히 쉬고 있다가도 어떻게 알았는지 쪼르르 달려와 먹을 복을 챙깁니다. 하지만 그녀는 더러 안쓰럽습니다. ‘산’에게 늘 힘에서 밀립니다. 나는 둘의 끼니를 하나의 밥그릇에 주는데 그때마다 ‘바다’는 ‘산’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맛있는 것은 늘 ‘산’의 차지이고 ‘바다’는 그가 남긴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맞서면 항상 ‘산’의 응징이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새우깡’은 녀석들의 간식이자 교육훈련을 통해 그들이 무엇인가 이루었을 때 제공되는 보상입니다. 문을 활짝 열어놓아도 그들은 절대 거실 문지방을 넘지 않습니다. 막대기를 던진 뒤, 찾아오라고 하면 멋지게 물고 돌아옵니다. ‘새우깡’은 녀석들의 잘한 일을 강화하는 훌륭한 특별식입니다. 나는 그들을 칭찬하며 ‘새우깡’을 던져줍니다. 그런데 이때 바닥에 떨어진 음식은 늘 ‘산’의 차지합니다. ‘바다’가 그것을 탐냈다가는 여지없이 ‘산’으로부터 응징을 당해왔습니다. 덕분에 ‘산’과 함께 있을 때 ‘바다’는 바닥에 떨어진 음식에 대해서는 아예 입도 대지 않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바다’가 놀라운 묘기를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던져주는 새우깡이나 과일을 강력한 점프로 낚아채는 능력이 생긴 것입니다. 곡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있는 먹이를 낚아채는 그녀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일품입니다. 반면 ‘산’이는 주는 먹이를 번번히 땅에 떨어뜨립니다. 그는 바닥에 놓고 먹는 일에 익숙합니다. 그들이 나란히 서서 먹이를 기다릴 때, 먹이를 던져주면 대부분을 바다가 낚아채서 먹습니다.

나는 ‘바다’가 보여주는 이 탁월한 능력에 매료되었습니다. 특히 그것이 그녀의 절박함을 딛고 개발된 능력이라서 더욱 그렇습니다. 힘과 용맹에서 ‘산’에게 뒤지는 그녀는 땅바닥에서 승리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늘 허기진 배로 ‘산’이의 자선을 기다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절박함의 표현이었을까요? 어느 날부터 ‘바다’는 ‘산’과의 동침을 거부하고 밖에 나와서 자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공중에서 강자가 된 것은 절박함을 끌어안고 찬바람을 맞으며 잠들기 시작한 이후부터였습니다.

어느 날 문득 희망이 저문 땅바닥을 버리고, 공중에서 새로운 길을 연 그녀에게서 나는 절박함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IP *.96.12.13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