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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5일 09시 14분 등록

 ‘저는 외동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입니다. 아이는 곧 중학교 2학년이 돼요. 여태 사교육을 시킨 적이 없지만 학교 성적은 좋은 편입니다. 아이는 겨울방학 내내 도서관에 틀어박혀 세계문학 전집을 읽고 있어요. 초등학교 때까지는 책 많이 읽는다고 칭찬하곤 했는데, 요즘엔 한숨만 나옵니다. 한창 공부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책만 붙들고 있으니 제 맘이 불안해요. “책 좀 그만 읽고 공부 좀 하지?”라고 하면, 아이는 “엄마,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해요”라면서 더 책에만 몰두합니다. 이대로 책만 읽어도 될까요? 공부는 하지 않고 책만 읽는 아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녀를 믿고 지켜봐 주세요.


예비중학생을 포함해 한창 사춘기를 지나는 중학생과 그들의 부모님께 읽어주고 싶은 그림책이 있습니다. 바로 노석미 작가의 <왕자님>입니다.


14. 왕자님.jpg


<왕자님> 속 왕자님은 막 사춘기를 맞은 아이 같습니다. 웬일인지 왕자님은 늘 외롭습니다. 부모님인 왕과 왕비, 친한 신하와 친구인 이웃나라의 왕자와 대화를 나누어도 왕자님의 외로움은 오히려 더욱 깊어져 갔습니다. 왕궁에서 기르는 개와 고양이도 왕자님의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자님은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는 벌레를 발견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혼자 꿈틀대는 애벌레에 이끌려 왕자님은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계속 애벌레를 찾아갔습니다. 하루는 애벌레가 꿈틀꿈틀하더니 껍질이 벌어지고 그 껍질 사이로 노란색 날개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놀란 왕자님은 숨을 죽이고 애벌레를 지켜봤습니다.


 “안녕, 왕자님!”


‘나비가 되는 일은 꽤 힘이 들지만, 결국 나비가 되었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나비는 왕자님 머리 위로 날아갔습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을 지켜본 왕자님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았습니다. 자신도 길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춘기란 무엇일까요? <왕자님>을 읽고서, 사춘기란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나비가 되기 위해 꿈틀대는 애벌레의 몸짓처럼,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고행의 시간이 바로 사춘기라고요. 그 누구도 애벌레의 일을 도와줄 수 없습니다. 오직 애벌레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죠.


“너는 이 나라의 왕자이니라”나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하신 분이십니다”와 같은 타인의 규정은 왕자님을 오히려 더 외롭게 만들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왕자님이 애벌레를 지켜봤듯이,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해요”라고 말하는 자녀를 믿고 지켜봐 주세요.


사춘기 자녀의 ‘학습권’을 보호해 주세요.


‘한창 공부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자녀가 책만 붙들고 있어서 마음이 불안한’ 엄마에게 묻습니다. 엄마가 정의하는 공부란 무엇인가요? 대학이라는 과녁에 집중하는 것인가요? 도서관에서 세계문학 전집을 읽는 시간에, 교과서 한 번 더 읽고 문제지 한 장 더 풀라는 의미인가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도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부르는 젊은이들을 보세요. 공부의 정의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뇌과학자 김영훈은 보상중추 기능의 저하를 들어 사춘기의 뇌는 초등학교 시기의 뇌와 다르다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뇌는 칭찬에는 반응을 보이지만 처벌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반면에, 사춘기의 뇌는 보상중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칭찬에도 처벌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사춘기 자녀가 부모의 조언을 따르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오직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한, 내적인 동기부여만이 사춘기의 자녀를 행동하게 만드는 거죠.


사춘기의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다가 ‘학습권’이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교육학용어사전에서 학습권을 ‘인간은 누구나 자유로운 성장과 자아의 실현을 위하여 필요한 학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학습을 가로막거나 제한할 권리는 없다’라고 정의합니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학습자로서의 아동과 청소년은 되도록 국가의 방해를 받지 아니하고 자신의 인격, 특히 성향이나 능력을 자유롭게 발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공부할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면, 사춘기의 아이들에게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요? 또한 입시라는 한 가지 과녁에 집중돼 있는 학교 교육이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학습자의 학습권 보호는 절실해 보입니다. 학습자인 학생이 주체가 돼 자신의 적성과 취향에 맞게 커리큘럼을 만들고 학습 방식을 결정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 공교육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지만, 시스템이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테지요. 사춘기 자녀에게 ‘도서관에서 세계문학 전집을 1권부터 순서대로 읽기’라는 자신만의 학습법이 있다면, 가정에서 먼저 아이의 방식을 존중해 주세요. 사춘기 자녀의 학습권을 보호해 주세요.


자녀가 읽는 책을 따라 읽으며 자녀와 소통을 시도해 보세요.


사춘기 자녀와 소통하기 위해 자녀를 따라 하면서 사춘기 자녀가 되어보기를 시도해 보세요. 자녀가 읽는 책을 따라 읽어 보세요. 아이가 고른 책에는 아이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습니다. 아이가 현재 고민하는 문제, 아이의 관심사, 앞으로의 계획 등을 알 수 있답니다.


몇 해 전에,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교수와 강의, 시험이 없는 대신 부지런한 독서와 치열한 토론이 있는 대학, 독서와 토론 후에는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한 에세이를 써내야 하는 대학, 이러한 과정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법과 평생 공부하는 습관을 배울 수 있는 대학인 세인트존스가 우리 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좋은 대안으로 회자된 적이 있어요.


입시 중심의 공교육을 거쳐 취업 중심의 대학 교육을 받아야 하는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 중 한명인 저도 세인트존스의 공부법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어요. 하지만 원서를 읽고 영어로 토론을 하고 영문 에세이를 제출할 정도의 어학 실력을 갖추어야 하고 값비싼 유학비용을 마련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우선 충족해야 가능한 일이기에 씁쓸해지기도 했습니다.


우리집 큰아이는 이제 곧 중학생이 됩니다. 그림책과 아동문학, 청소년용 고전이 빼곡한 아이 책장에 완역본 고전을 한권씩 사다 꽂고 있습니다. 스스로 공부하고 스스로 가치관을 정립하는 세인트존스의 공부법이 좋다면, 지금 당장 독서와 토론, 나의 생각을 정리한 에세이 한 편을 써 보는 것 어떨까요? 모국어인 한국어로 해서 좋고 멀리 가지 않아서 더 좋습니다. 우리집 거실을 세인트존스의 강의실로 만들어 보세요. 아이가 좋아하는 세계문학 전집으로 시작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


격주 월요일에 발송하는 마음을 나누는 편지 ‘가족처방전’은 필자와 독자가 함께 쓰는 편지입니다. 가족 관계가 맘대로 되지 않아 고민하고 계시다면 메일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마음을 다해 고민하고 작성한 가족처방전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김정은(toniek@naver.com)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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