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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1일 02시 53분 등록

[자유학년제 가족 독서 #04] 법구경 

 

올 해 저희 가족의 프로젝트는 자유학년제를 맞이한 중학교 1학년 큰 딸과 아빠와 엄마가 함께 인문고전을 읽고 가족토론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이번 가족토론으로 선정한 책은 <법구경> (전재성 글, 마정원 그림, 주니어김영사) 입니다. 주니어김영사의 인문고전 만화시리즈 중에서 45번째 책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작은 딸이 요즘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인 큰 딸도 초등학교 3학년때 열심히 읽었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에 딱 들어맞겠구나 싶어서 아내와 저도 <법구경>을 읽었습니다. 아내는 주니어김영사 만화책으로, 저는 법정스님이 번역하고 이레출판사에서 <진리의 말씀, 법구경>이라는 제목으로 낸 줄글책으로 읽었습니다. 법정스님 번역본은 현재 절판되었지만 중고책방에서 구할 수 있고 저도 최근에 파주 출판단지의 중고책방에서 우연히 구했습니다.  

 

법구경은 가장 초기에 쓰여진 불교 경전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경전입니다. 구전되어온 부처님의 말씀이 <담마빠다(Dhammapada)>라는 이름의 책으로 쓰여집니다. 담마빠다는 ‘진리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중국 오(吳)나라 유기란이 한자로 번역하면서 'Dhamma'는 법(法)으로 'Pada'는 구(句)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법구경(法句經)이라는 이름이 생겨났습니다.

 

기원전 6세기, 석가모니 부처님은 6년간의 수행 끝에 보리수 아래에서 인간이 괴로움과 비참함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르는 비밀을 깨닫지만 자신이 깨달은 지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걱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사람들을 가르치기로 결정하면서 가능한 분명하고도 간명하게 가르치십니다. 이때가 35세였습니다. 이후 80세에 열반하기 직전까지 무려 45년 동안 끊임없이 제자들을 가르치셨고 부처님의 제자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암송하여 후대에 구전하였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참으로 간단 명료하면서도 소박합니다. 그리하여 불경 중에서도 가장 초기에 저술된 법구경은 초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는 간단명료한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지금부터는 법구경을 읽은 후 저희 가족의 토론 내용을 정리하겠습니다. 큰 딸 수민이와 아빠, 엄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만 작은 딸 수린이의 이야기는 기록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수린이는 책도 읽었고 토론의 전 과정을 열심히 들었으며 최근에 경험한 가슴 아픈 경험과 관련한 자신의 의견도 이야기했지만 워낙 개인적인 사연이기에 공개적으로 기록을 남기지는 않겠습니다.  

 

엄마) 제가 법구경에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된 것은 순전히 두 딸들이 법구경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 전까지 저는 법구경이 민법이나 형법 같은 법을 구경한다는 뜻으로 생각했습니다. 요즘 작은 딸 수린이는 초등학교 3학년인데 법구경을 읽고 있습니다. 사실 요즘 수린이는 눈물이 많습니다. 음악을 듣다가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영화를 보가다 어느새 눈물을 흘립니다. 그런데 큰 딸 수민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도 작은 딸처럼 자주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그 무렵 수민이가 학습만화 <법구경>을 보여주면서 했던 말을 잊지 못합니다.  

 

“엄마! 내 인생에 지침이 될 책을 찾았어요!” 

 

초등학교 3학년은 흔히 ‘제2학령기’ 라고 불립니다. 제1학령기는 8세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초등학교를 보내는 시기가 바로 8세입니다. 그리고 2년 뒤 ‘제2학령기’인 10세, 즉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무엇인가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태어난 이후 최초로 독립된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입니다. ‘어떻게 살아가지?’라는 고민을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바로 이 시기에 큰 딸도 작은 딸도 모두 법구경을 읽으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에 감동을 받은 것 같습니다. 두 딸 모두 법구경을 읽으며 소용돌이 치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이야기합니다. 두 딸 덕분에 저도 법구경을 읽으면서 제 마음도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큰 딸 수민이에게 묻습니다. 수민이는 고민이 많은 스타일입니다. 10년 후에 일어날 일, 30년 후에 일어날 일을 지금 고민하는 성격입니다. 또한 10년 전 일을 지금까지도 고민합니다. 수민이는 법구경을 읽으면서 어떤 도움을 받았습니까?  

 

수민) 저는 물그릇과 소금의 비유가 특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책을 찾아 읽습니다) 

 

‘작은 그릇의 물에는 소금을 조금만 넣어도 짜. 그러나 큰 대야의 물은 왠만큼 소금을 넣어도 짜지 않아. 그릇은 사람에, 물은 선행에, 물의 양은 공덕에, 소금은 악행에, 짠 맛은 악행의 과보에 비유해 보자. 착하고 건전한 행위의 공덕이 작은 사람은 작은 그릇과 같아 조그마한 잘못으로도 그 결과가 악하게 나타나겠지? 그러나 착하고 건전한 행위의 공덕이 많은 사람은 큰 그릇과 같아 왠만한 잘못을 저질러도 그 결과가 악하게 나타나지 않는 거야.’ (<만화 법구경>, 주니어김영사, 112~113쪽)  

 

저는 예전에 제가 저질렀던 나쁜 일이 자꾸 생각이 나서 몹시 괴로웠습니다. 과거에 잘못한 일이 있어도 이제부터 잘하면 되는데 이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법구경에서 이 대목을 읽으며 용기가 났습니다.  법구경 원문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전에 방일했던 사람도 뉘우쳐 방일하지 않으면 마치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이 세상을 비춘다. 악한 행위를 했어도 착하고 건전한 것으로 그것을 덮으면 마치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이 세상을 비춘다.’ (<만화 법구경>, 주니어김영사, 110쪽) 

 

아빠) 제가 읽은 책에서 수민이가 읽은 구절을 찾았습니다. 법정 스님은 이렇게 번역하셨네요.  

 

‘어쩌다가 못된 짓을 했더라도 착한 행동으로 덮어 버린다면 그는 이 세상을 비추리라.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진리의 말씀, 법구경>, 이레, 98쪽) 

 

저는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이라는 표현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근심에서 벗어나 절대 자유에 다다른 마음의 상태를 일컫는 참으로 멋진 표현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출처를 모르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법구경이 출처이며 부처님 말씀인 것을 알았습니다. 부처님은 멋진 시인이셨나 봅니다.  

 

법정스님이 번역한 법구경을 읽으며 저 역시 몇몇 구절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자기야말로 자신의 주인이고 자기야말로 자신의 의지할 곳. 그러니 말장수가 좋은 말을 다루듯이 자기 자신을 잘 다루라’ (<진리의 말씀, 법구경>, 이레, 188쪽) 

 

‘방종하지 말고 자기 마음을 지키라. 늪에 빠진 코끼리처럼 어려운 곳에서 자기를 구하라’(<진리의 말씀, 법구경>, 이레, 168쪽) 

 

이전에 읽은 <숫타니파타>나 이번에 읽은 <법구경> 모두 자기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구절이 많습니다. 자신은 자기 자신을 잘못된 방향에서 구하여 옳은 길로 가게 해야 합니다. 늘 자기 자신을 아끼며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괴로움과 시기 질투에 빠져 있는 자기 자신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을 뿜으며 날뛰는 자신의 마음에 놀랍니다. 두 딸도 분명 이상하게도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자신의 마음을 만나서 놀랐던 경험이 법구경을 읽으며 생각이 났을 겁니다.  저 또한 똑같습니다. 한 순간 불을 뿜으며 날뛰는 말처럼 걷잡을 수 없는 분노 혹은 괴로움에 물든 제 자신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면서 숨을 천천히 고르면서 몸에서 힘을 빼면, 마치 놀라서 버둥거리던 말이 주인에게 고삐가 잡혀 안정을 찾는 것처럼 서서히 진정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또 한가지, <법구경>은 좋은 친구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생각이 깊고 총명하고 성실한 지혜로운 도반이 될 친구를 만났거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하고 마음을 놓고 기꺼이 함께 가라’ (<진리의 말씀, 법구경>, 이레, 168쪽) 

 

‘지혜로운 수행자가 처음 할 일은 감각을 지키고 만족할 줄 알고 계율에 따라 절제하고 맑고 부지런한 친구와 사귀는 일이다’ (<진리의 말씀, 법구경>, 이레, 187쪽) 

 

좋은 친구라면 기꺼이 함께 하고, 홀로 있는 시간에는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바라보며 아껴주라는 가르침을 부처님께 배웁니다.  

 

아내) 저는 법구경에서 지붕의 비유가 특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잘못 엮여진 지붕에 비가 새듯, 잘 닦이지 않은 마음에는 탐욕이 스며든다. 잘 엮여진 지붕에 비가 새지 않듯, 잘 닦인 마음에는 탐욕이 스며들지 않는다.’ (<만화 법구경>, 주니어김영사, 54쪽)  

 

저는 그동안 목표를 위하여 제 자신의 욕망은 철저하게 차단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을 하면서 제 자신의 욕망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구본형 선생님은 직장인으로 살면서 회사라는 시스템에 갇혀버린 자신의 욕망을 이제는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고 욕망을 따라가며 기록하고 관찰하라는 가르침을 남기셨습니다. 인생에 처음으로 제 마음 속 욕망에 관심을 가지고 그동안 쌓아 온 마음의 두터운 벽에 구멍을 내어 욕망이 흐르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욕망은 한 순간 매력적인 것을 보면 탐욕으로 변하였고 혐오스러운 것을 보면 분노로 변하였습니다. 탐욕과 분노 사이에서 방황하는 제 자신이 무섭고도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법구경은 버리는 노력과 수행의 노력을 강조합니다. 제 자신의 마음을 잘 닦으면 탐욕이나 분노를 소멸시킬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탐욕과 분노를 버리고 마음을 수행하며 살아보려 합니다.  

 

아빠) 엄마는 이제 탐욕과 분노를 버리며 수행자로 살겠다는 말씀 이군요.  

 

엄마, 수민) (동시에 눈을 크게 뜨며 손사래를 친다)  

 

엄마) 수행자가 아니라 수행하며 살겠다는 말입니다.  

 

아빠) 수행자로 살겠다는 의미가 수행하며 살겠다는 뜻 아닌가요? 

 

엄마) 아닙니다. 둘은 의미가 다릅니다. ‘수행자’라는 카테고리에 제 자신이 묶이는 게 싫습니다. 답답합니다. 수행하며 살고 싶지만 ‘수행자’라는 이름이 붙는 것은 싫습니다.  

 

아빠) 그렇군요. 저는 거꾸로 ‘수행자’라는 이름에 제 자신을 세우고 싶습니다. 법구경을 읽으면 ‘수행자’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옵니다. 아주 좋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좋은 이름 속에 제 자신을 두고 일으켜 세우는 것이 저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행자’라는 이름과 비슷한 것이 바로 ‘연구원’이라는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에 지원하면서 ‘연구원’이라는 이름 속에 제 자신을 묶어 두고 싶었습니다. 평생 살면서 제 인생을 제 스스로 결정한 카테고리 속에 세운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십대 시절에 동산중학교에서 중학생으로 살았지만 제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저에게 동산중학교 학생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이후 충남고등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이 역시 국가가 저에게 충남고등학교 학생으로 살라고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처음으로 ‘연구원’이 되어 남은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고 꿈꾸었습니다. 요컨대 ‘연구원’이라는 카테고리 속에서 제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싶습니다.  

 

엄마) 온 가족이 하나의 책을 읽고 이렇게 마음을 나누어 보니 참 좋습니다.  

 

아빠) 저도 참 좋습니다. 오늘 토론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 씻고 잠자리에 들기로 합시다.  (일동 박수 치며 토론을 마감한다)  

 

이상으로 파주 인문학 가족의 자유학기제 독서토론 네번째 정리를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형선 드림 (morningstar.yoo@gmail.com)

IP *.202.114.135

프로필 이미지
2018.06.11 08:52:16 *.36.139.152

좋은 책과 독후감 내용을 공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프로필 이미지
2018.06.13 08:05:33 *.210.112.106

가족이 함께 읽으니 더 없는 행복이 느껴집니다. 

이 책들, 저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만화 먼저, 그리고 일단 중고서점을 뒤져서.. ㅋ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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