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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5일 16시 12분 등록

중학교 1학년 큰아이에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중학생이 되고나니 용돈이 필요합니다. 버스를 타고 등학교를 하고 학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간식을 사 먹고 친구들과 노래방이나 만화방도 가야 합니다. 밴드부 동아리 활동과 동네 도서관 영어 스토리텔러 봉사 활동을 하면서 악기와 악보, 영어 책 등을 살 때는 목돈이 들기도 합니다. 초등학생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돈이 들자, 아이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먹고 싶은 간식은 많고 용돈은 한정돼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친구들과 함께 가고 싶은 곳은 많고 시간과 용돈은 제한돼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어른이 된다는 건 경제적으로 독립한다는 거라 는데 과연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엄마 아빠가 용돈을 주지 않으면 이 많은 비용을 어떻게 충당할 수 있을까?”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어느 날, 큰아이는 영화 <소공녀>가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영화 <소공녀>에서 지금 하는 고민의 해답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20180510010003536_1.jpg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는 비싼 등록금을 감당하지 못해 대학을 그만둡니다. 3년째 가사도우미로 일합니다. 하루 일당 4만 5천원은 월세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한 잔의 위스키로, 일상에 작은 쉼을 주는 한 모금의 담배로 치환됩니다.


2015년 미소에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담뱃값이 2천원 올랐고 집세도 5만원이 올랐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위스키와 담배를 포기했겠지만, 미소는 집을 포기합니다. 짐을 싸던 중 밴드부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하고 대학시절 밴드활동을 했던 친구들을 찾아갑니다.


더 큰 회사로 이직하기 위해 링거를 맞으며 일하는 A, 시댁 식구들 눈치를 보며 적성에도 맞지 않는 독박가사에 시달리는 B, 집을 짊어진 채 대출금 상환에 쩔쩔 매는 C, 늦은 나이에 부모님께 얹혀살며 어른아이 역할을 하는 D, 시부모의 저택에서 진짜 자신의 모습을 숨긴 채 육아에서 구원을 얻는 E를 만납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안정적인 삶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한 듯 보입니다.


“엄마, 대학 등록금이 그렇게나 비싸?”
“월세는 얼마나 하는데?”
“미소는 집을 포기했는데 나는 뭘 포기할 수 있을까?”
“미소가 행복할까, 밴드부 다른 친구들이 행복할까?”


영화 속 등장인물과 밴드부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인지, 큰아이는 미소와 미소의 친구들에 온전히 이입했습니다. 몇 날 며칠 결이 비슷한 질문을 반복했습니다. 아이말로는 중학생들 사이에 영화 <소공녀>가 화제라고 합니다. 열심히 공부해도 먹고 살기 힘든 시대, 중학생들은 이미 소유냐 존재냐의 고민을 시작한 것 같았습니다.


큰아이에게 박찬국 교수의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읽기>를 내밀었습니다. <소유냐 존재냐>를 읽다가 한계에 봉착한 저는 철학 전공자 남편에게 <소유냐 존재냐>의 가장 쉬운 해설서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고, 박찬국 교수의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읽기>를 추천받았습니다.


소유냐 존재냐.jpg

 
철학과 교수인 저자는 제자들이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읽기 어려워한다는 말을 듣고서 쉽게 풀이한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읽기>를 출간하게 되었고 이 책을 통해 <소유냐 존재냐>를 읽기를 바란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소유냐 존재냐>는 1976년 프롬의 나이 76세에 출간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그가 평생 개척한 사상을 집약한 책입니다. 프롬은 현대 사회의 위기가 현대인들의 삶과 사회구조가 철저하게 소유지향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데 있다고 보고 존재지향적인 삶과 사회구조를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큰아이 수민이와 엄마가 나눈 대화입니다.
수민) 대학에 꼭 가야 할까요? 요즘엔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면서요? 전 요즘 제가 커서 뭐가 될지 걱정돼요.
엄마) 이효리가 “아무나 돼!” 라고 말한 것이 유명세를 탔잖아. 프롬이 어릴 적 외할아버지께서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셨을 때, “늙은 유태인이요!”라고 대답했다고 하거든. 자신의 정신 세계를 가장 중요시하는 랍비의 삶의 태도가 담긴 대답 같아.
수민) 아무나 되라는 게 더 어려워요. ‘뭘 해내면 뭐가 된다’ 이런 공식이 있으면 좋겠어요.
엄마) 엄마는 프로그래머, 강사, 작가 등 여러 직업을 가지고도 특별히 ‘뭐가 됐다’고 말하기가 곤란해. 뭐가 됐다고 해서 먹고 살기 쉬워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야.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읽기> 속 프롬의 증조부 일화가 와 닿더라.


(프롬의 증조부에 대한 일화를 소개합니다.)
탈무드 연구가인 프롬의 증조부는 자그마한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수입이 너무 적어서 가족을 부양하기 어려웠습니다. 한 달에 사흘 동안 외지에 나가 일을 하는 조건으로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사업 제안을 받지만 이를 거절했습니다. 한 달에 사흘씩이나 연구시간을 빼앗길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는 하루 종일 가게에서 탈무드를 연구했는데 손님이 와도 연구에만 몰두했다고 합니다. 프롬의 증조부는 독일 바이에른 주의 유태인 사회에서 가장 유명한 랍비였고 프롬은 평생 동안 그를 흠모했으며 그의 삶의 양식에 따라 살고자 노력했다고 합니다.


엄마)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사라졌고, 지금은 없지만 미래에는 존재할 ‘무엇’이라는 직업명으로 내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것보다 프롬의 증조부처럼 ‘삶의 자세’가 곧 그 사람, 즉 그 사람의 ‘존재 양식’이 바로 그 사람 자체라는 생각이 들어.
수민) <소공녀> 속 미소가 ‘대학생’이나 ‘가사도우미’가 아닌, 생각과 취향이 있는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가진 존재라는 것과 통하는 면이 있네요?
엄마) 집이 없지만 ‘나’로서 존재하는 미소와 집은 있지만 ‘나’로서 존재하지 못하는 미소 친구들의 대비가 극단적이긴 했지만 울림이 큰 영화였어. 수민이는 어땠니?
수민) 미소처럼 살기에는 소유하고 싶은 게 너무 많고, 그렇다고 미소 친구들처럼 소유를 위해 다른 건 포기하며 살 순 없을 것 같아요.
엄마) 프롬은 우리 개개인에게 소유지향적인 면과 존재지향적인 성향이 함께 존재한다고 봤거든. 프롬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볼까?


(다음을 읽습니다.) 
소유양식의 삶에서 나는 자신을 세계와 대립된 것으로 파악하며 세계를 가능한 한 나의 소유물로 만듦으로써 세계 안에서 나의 안전을 확보하려고 한다. 따라서 삶의 소유양식에서 세계와 나의 관계는 소유나 점유의 관계가 되며, 이 관계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과 모든 물건을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소유물로 만들고 싶어 한다. 나는 심지어 나의 육체까지도 나의 소유물로 만들고 싶어한다. 따라서 현대인들은 자신의 육체를 기계를 사용하듯 혹사하며 자신의 육체를 성능 좋은 기계처럼 만들려고 한다.


이에 반해 존재양식에서 나는 자신을 세계와 대립된 관계로 보지 않고 세계와 자신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고 느낀다. 존재양식에서 나는 다른 인간들이나 사물들과 대립되는 협소한 자아에서 탈피하여 다른 인간들과 사물들에 대해서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며 다른 인간들과 다른 사물들의 성장을 도우려고 한다. 이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 자체에서 충만한 만족을 느끼면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자연물에 대해서 사랑을 느낀다. 프롬에게 사랑은 인간을 비롯한 자연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우리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책임, 그리고 존경이다. 소위 사랑에 ‘존경’이 결여되어 있을 경우,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책임은 쉽게 지배와 소유로 타락한다. 존경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의 독특한 개성을 아는 능력이다. 이러한 존경은 상대방에 대한 통찰을 전제한다.


소유양식에서 행복은 타인에 대한 우위 속에, 자기의 힘 속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정복하고 빼앗고 죽일 수 있는 자신의 능력 속에 있다. 이에 반해 존재양식에서 행복은 사랑, 공유 그리고 주는 행위 속에 있다. (p52~53)


엄마) 아빠 오시면, 소유양식의 삶에서 존재양식의 삶으로 전환하기 위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더 나누도록 하자.


남편을 기다리며 [자유학년제 가족 독서 #5]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읽기를 마칩니다.


***
올 해 자유학년제를 맞이한 중학교 1학년 큰아이와 초등학교 3학년 작은아이, 아빠와 엄마가 인문고전을 함께 읽고 토론한 내용을 담아 마음을 나누는 편지 '자유학년제 가족 독서'를 발송합니다.


김정은(toniek@naver.com)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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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5 18:50:02 *.212.217.154

소유와 존재 사이에서 고민하는

해맑은 아이의 눈이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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