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제산
  • 조회 수 948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8년 7월 2일 08시 52분 등록

초경을 맞이한 큰아이와 온 가족이 함께 ‘피의 연대기’를 관람했습니다. ‘피의 연대기’는 ‘본격 생리 탐구 다큐’라는 부제에 걸맞게, 역사, 종교, 세대, 인종, 지역, 문화에 걸쳐 ‘월경’에 관해 담론을 펼칩니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만큼 좋다!”


생리하지 않는 남편의 소감입니다. ‘피의 연대기’를 보지 않았더라면, 월경을 시작한 큰아이에게 외식 한번 사준 걸로 아빠로서 할 일 다했다고 여겼을 터이나, 이제는 세심한 관찰과 공감으로 대할 수 있겠답니다. 여성의 몸과 생리에 대해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며 좋아했습니다. 초경을 맞이한 사람을 비롯해 생리하는 사람과 생리하는 않는 사람 모두에게 ‘피의 연대기’를 권합니다.


‘피의 연대기’ 김보람 감독과 나눈 대화를 정리했습니다.


20180701_165542.jpg


Q. 제목이 왜 ‘피의 연대기’인가요?
A. ‘피의 연대기’의 ‘연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과 ‘여럿이 함께 서로 연결된’, ‘연대’를 중의적으로 사용했습니다. 


Q. 영화 속에 외할머니와 엄마를 비롯해 이모들이 생리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내밀한 경험을 공개하는 일이 부담스러울 수 있었을 텐데, 촬영 중 가족의 반발은 없었나요?
A. 예상과 달리,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많은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마이크가 혼선돼 녹화분을 영화에 삽입하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두 시간 가량 ‘생리 토크’를 마친 후에 온 가족이 눈물을 흘리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평생 처음 나눈 이야기로 가족들이 치유의 시간을 보낸 셈입니다.


Q. 영화 속에 일회용 생리대, 탐폰, 면생리대, 생리컵 등 다양한 생리 용품이 등장합니다. 영화를 만들면서 다양하게 사용해 보셨을 텐데 간단한 리뷰 부탁드립니다.
A. 일회용 생리대가 현실적으로 최선의 대안인 것 같습니다. 면생리대는 핏물을 빼는데 반나절이 걸립니다. 온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화장실에서 면생리대 핏물 빼기가 쉽지 않습니다. 생리컵은 물을 끓여 소독하고 말려서 사용해야 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부엌에 생리컵을 두는 게 불편할 수 있습니다. 비용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생리팬티가 한 장에 삼 만원 선이고 생리컵이 배송비를 포함해 대략 오 만원 선입니다. 한 번 하는 데 여러 개 필요하니까 십 만원이 훌쩍 넘는 초기 비용이 발생합니다.


Q. ‘깔창 생리대’ 사건과 관련해 생리대가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A. 영화를 만들면서 생리 용품 사용과 관련해 ‘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학력과 재력을 갖춘 부모를 둔 자녀들은 다양한 생리 용품을 사용하고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생리 용품에 대한 정보조차 얻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인류의 절반이 겪는 생리를 처리하는 생리대는 공공재가 돼야 하고요. 이에 앞서 공교육을 중심으로 ‘몸 교육’이 다시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 주세요.
A. 생리를 통해 자기 몸을 알아가는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피의 연대기’를 보고 저도 ‘연대’하고 싶어 졌습니다. 글 쓰는 엄마인 저는 아이에게 쓴 글로 동참하려 합니다. 2016년 8월 9일에 큰아이에게 보낸 편지를 공유합니다. 삼십 년이 넘게 한 달에 한 번 5일, 일 년에 60일, 십 년에 600일, 삼 십 년이면 1800일, 대략 5년 동안 피를 흘리며 축적된 나름의 경험을 나눕니다. 영화 속 사람들의 이야기가 저와 제 가족에게 와 닿았듯 제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가 닿길 바랍니다.


곧 초경을 맞이할 수민이에게.


오래전 어느 날이 떠오르는구나. 초등학생 엄마에게 초경이 찾아온 날 말이야. 준비되어 있지 않은 엄만 무척 당황했어. 엄마도 외할머니나 이모처럼 중학생이 되고서나 월경이 시작될 줄 알았거든. 곧 맞이할 수민이의 초경을 기대하며 엄만 ‘초경 가방’을 준비했어. 그날이 불시에 찾아오더라도 그 옛날 엄마처럼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야.


 초경가방 2.jpg


초경 가방 안에 생리대, 여벌의 속옷, 팬티라이너를 넣었어. 잠잘 때 뒤척여도 이불을 물들이는 일이 없도록 팬티형 생리대도 몇 장 넣어두었다. 조그만 손지갑 안엔 생리대가 몇 개 들어있으니까 그건 책가방 안쪽 주머니 속에 넣어놓으렴. 생리통이 올 때를 대비해 진통제로 몇 알 넣었어. 그리고 월경한 날을 기록해둘 작은 다이어리도 챙겼어. 매달 월경을 시작한 날을 표시해두면 내 몸 상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돼. 참, 책 한 권도 있단다. 여성 100명의 초경 이야기를 담은 《마이 리틀 레드북》이야. 낄낄대며 읽다 보면 어느새 초경과 굉장히 친해진 기분이 들 거야. 자, 이제 초경이 찾아와도 끄떡없겠지?


엄마의 초경은 무려 보름이나 계속됐어. 징글징글하고도 지긋지긋했던 날들이었지! 보통 3~7일 정도 한다고들 하는 데, 엄만 보름이나 하고도 2주 지나 또 보름을 했으니, 몸속에 있는 피가 죄다 빠져나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까지 했어. 그렇게 세 번의 긴 월경을 하고 나서 중학생이 됐지. 엄 마의 월경 주기가 28일, 한 번 할 때 5일 정도 하는 것으로 고정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어.


엄만 초경을 하고 나서 벌써 삼십 년이나 월경을 해왔구나. 한 달에 한 번 5일이면, 일 년에 60일, 십 년에 600일, 삼 십 년이면 1800일, 피를 흘리며 살았던 시간을 더해보니 5년의 세월이구나. 평균 폐경 나이인 쉰까지 월경을 한다고 예 상하면, 평생 대략 7년 동안 생리 중인 채로 보내게 되는 셈이네. 꽤 긴 시간이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엄만 월경할 때가 다가오면 온몸이 축 처지고 기분이 가라앉고 괜히 슬프고 불안해졌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짜증을 내거나 싸움을 걸기도 했지. 졸릴 때 한바탕 보채야만 잠이 드는 갓난아기처럼, 이 증상은 월경하기 일주일 전이면 어김없이 찾아왔어. 엄마 가장 가까이에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은 사람이 바로 네 아빠였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생짜증을 한 바가지 쏟아붓고 난 후엔 으레 속옷에 피가 맺혀 있곤 했 는데, 매번 “또 너냐?” 싶었어. 마흔이 넘어 대략 300번의 월경을 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이런 생각이 들더라. ‘언제까지 월경전 증후군의 지배를 받을 텐가?’


엄만 월경전 증후군을 극복해보자 결심했어. 월경 주기를 체크하고 월경하기 일주일 전에는 마음 단속을 했지. 나 자신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내가 되어 날 관찰했어. 슬금슬금 올라오는 우울과 짜증을 좋은 음악으로 다스려보기도 하고, 평소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면서 기분 전환을 하기도 했어. 칼로리 폭탄 초콜릿 무스 케이크나 초콜릿 퍼지 아이스크림, 진하게 내린 에스프레소를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뿌려 먹는 아포가토를 그날만큼은 칼로리 계산하지 않고 먹어주기로 했지. 무엇보다 허리가 아플 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기로, 월경 중 가장 힘든 날인 이틀째 날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날로 정했어. 그랬더니 월경전 증후군이 스르륵 사라지더라. 싫기만 했던 월경이 이젠 좀 할 만해졌어.


수민이는 이제 곧 몸의 변화를 겪게 될 거야. 키가 더 크고 몸무게도 늘겠지. 초경을 하면 가슴과 엉덩이가 커질 거야. 사춘기에 몸이 달라지는 건 여성으로서 아기를 만들 수 있게 몸이 성숙해지는 거야. 갑작스런 몸의 변화 때문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겠지만, 몸이 변한다는 건, 나무가 자라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야. 엄마가 너만 했을 때 갑자기 볼록 나온 가슴이 어색하고 싫어서 척추가 휠 정도로 구부정한 자세로 어떻게든 가슴이 드러나지 않게 하느라 애를 썼는데, 이후에 나쁜 자세가 척추 건강에 무리를 주어 두고두고 후회했단다. 네 몸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주렴. 월경이 싫다면, 다음 달 다시 돌아올 그날이 끔찍하다면, 그 고난의 날들 동안만큼은 나를 위해 시간을 써보자. 맛있는 것을 먹고 산책도 하면서 말이야. 수민이와 수린이, 너희들이 있기에 사실 엄만 월경이 용서된다. 이 심정, 너희가 엄마가 되면 알려나? (엄마의 글쓰기 p227~230)


***
격주 월요일에 발송하는 마음을 나누는 편지 '가족처방전'은 필자와 독자가 함께 쓰는 편지입니다. 가족 관계가 맘대로 되지 않아 고민하고 계시다면 메일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마음을 다해 고민하고 작성한 가족처방전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김정은(toniek@naver.com) 드림


IP *.202.114.135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016 [금욜편지 45- 신화속 휴먼유형- 안티고네형 2- 정의속에 박혀있는 완고함] 수희향 2018.07.13 761
3015 인간관계의 위닝샷 [1] 운제 2018.07.12 767
3014 [일상에 스민 문학] 책 띠지 활용법 정재엽 2018.07.11 1437
3013 글쓰기 공간 <브런치>에서의 3년을 돌아봅니다 [2] 차칸양 2018.07.10 935
3012 [자유학년제 인문독서 #05] 자본론 제산 2018.07.09 755
3011 [금욜편지 44- 신화속 휴먼유형- 안티고네형 1- 자기고백] 수희향 2018.07.06 762
3010 상처받지 않고 나답게 사는 인생수업 [3] 운제 2018.07.05 783
3009 [일상에 스민 문학] 장국장님께. [2] 정재엽 2018.07.03 758
3008 “노을치맥” 한번 해보실래요? file [2] 차칸양 2018.07.03 780
» 가족처방전–‘피의 연대기’, 나의 연대기 file 제산 2018.07.02 948
3006 [금욜편지 43- 신화속 휴먼유형- 헤라클레스형 5- Q & A] 수희향 2018.06.29 766
3005 Again 2002! [1] 운제 2018.06.28 715
3004 [일상에 스민 문학] 광안리에서 다가온 감사의 인사 정재엽 2018.06.27 762
3003 덕분에 꽤 괜찮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차칸양 2018.06.26 729
3002 [자유학년제 가족 독서 #5]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읽기 file [1] 제산 2018.06.25 897
3001 [금욜편지 42- 신화속 휴먼유형- 헤라클레스형 4- 성장 포인트] [2] 수희향 2018.06.22 764
3000 목요편지 - 자존심과 자존감 [1] 운제 2018.06.21 917
2999 [일상에 스민 문학] - 2018 이상문학상 대상작 정재엽 2018.06.20 756
2998 캘리그라피를 배우며 차칸양 2018.06.19 794
2997 가족처방전 – ‘엄마의 글쓰기’ 동아리 file 제산 2018.06.18 7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