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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3일 13시 04분 등록

[자유학년제 인문독서 #06] 삼국유사 (1)

 

올 해 저희 가족의 프로젝트는 자유학년제를 맞이한 중학교 1학년 큰 딸과 아빠와 엄마가 함께 인문고전을 읽고 가족토론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이번 가족토론으로 선정한 책은 <삼국유사> 입니다. 큰 딸은 인문고전 학습만화 <삼국유사> (한지영 글, 이진영 그림, 주니어김영사)로 읽었고, 아내와 저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삼국유사> (고운기 글, 양진 사진, 현암사)로 읽었습니다.

지난 718,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전북 익산 쌍릉의 대왕릉이 서동요의 주인공 백제 무왕의 무덤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일제강점기때 일본학자가 쌍릉을 조사했고 이때 대왕릉에 남긴 인골함을 100여년만에 재조사하면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과 법의학 등 현대과학기술을 총동원하여 내린 결론입니다. 그동안 익산 쌍릉은 대왕릉이 무왕, 소왕릉이 선화공주 무덤으로 짐작되었습니다. 이제 둘 중 하나는 과학적으로 밝혀진 셈입니다. 내년부터 소왕릉 조사를 시작한다는데 어떤 과학적 결과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 전설은 삼국유사에 등장합니다. 앞으로 계속될 과학적 검증으로 삼국유사의 전설이 힘을 얻을 지 아니면 힘을 잃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근본적 가치는 과학의 영역과는 분명 다른 데에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인가?’라는 과학적 검증은 사실상 근대 이후에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과학적 검증보다 훨씬 오래된 인류의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혹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이른바 정체성을 묻는 질문입니다. 고대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개인과 공동체의 정체성은 신화와 전설 같은 이야기가 담당해 온 영역입니다. 삼국유사에는 고조선을 포함한 고대 국가들의 건국 신화 같은 강자들의 이야기 외에도 여자와 노비 같은 약자들의 이야기가 흘러 넘칩니다. 이 시대 한반도에서 태어나 살면서 나는 누구인가?’ 또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찾는 이에게 삼국유사는 분명 독보적인 길잡이 역할을 담당합니다.

오늘 가족토론은 각자 <삼국유사>를 어떤 시각으로 받아들였는지 돌아가면서 이야기도 하였고, 특히 아빠가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어째서 삼국유사를 아빠의 인생책으로 꼽는지를 길게 설명했습니다. 아빠의 설명을 듣고서 아내와 큰 딸이 삼국유사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엄마) 2014년에 삼국유사를 읽었는데, 사실 워낙 여려 이야기들이 줄지어 나오다 보니 어려웠습니다. 지금 삼국유사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음 3가지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첫째, 아빠는 어째서 삼국유사를 인생책으로 꼽는지 궁금합니다.

둘째,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삼국유사를 최고의 고전으로 꼽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최근 파주 교하도서관은 개관 10주년 행사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관련 강연과 행사를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습니다. 교하도서관에 열하일기 강의를 하러 오신 박수밀 교수님이 우리나라의 진정한 고전은 2가지입니다. 하나는 삼국유사이고 다른 하나는 열하일기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어째서 삼국유사가 이토록 중요한 고전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작년 교하도서관에서 표정옥 교수님의 근현대 한국문학 강의를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표정옥 교수님도 한국의 근현대 주요 문학가들은 삼국유사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하셨습니다.

셋째, 남편이나 전문가들의 생각과 달리 저에게 삼국유사는 흥미롭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도 삼국유사를 보다 깊게 알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읽은 삼국유사는 단군신화, 부여 건국신화, 박혁거세 탄생 이야기 등 주로 고대 국가들의 건국신화가 연이어 등장하는 책일 뿐입니다. 영웅들이 나라 세우는 이야기는 사실 그다지 흥미가 없습니다. 어느 나라이든 고대 국가 건국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신의 자식이거나 신비로운 탄생 설화로 미화시킵니다. 결국 나라 왕을 찬양하는 이야기입니다. 진실이 아닙니다. 진실이 아닌 이야기는 불신을 낳습니다. 그래서 재미가 없습니다.

수민) 저는 지난 한학기 동안 우리 역사 바로 알기를 주제로 친구와 둘이서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총 14강의 강좌를 열었습니다. 강연은 총 한시간 동안 친구가 주교사로서 약 40분 강의를 했고 제가 보조교사로서 10분 정도 강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강의 주제 선정과 주교사 역할을 제가 해보는게 좋겠다고 친구가 제안했습니다. 저는 삼국유사를 주제로 잡고 40분 정도 주교사가 되어 강의를 했습니다.

아빠) 수민이가 삼국유사를 강의 주제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지요?

수민) 한반도에 있었던 여러 고대 국가들의 건국 신화와 옛날 전설들이 대부분 삼국유사를 통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학기 동안 진행한 역사 강의 주제도 우리 역사 바로 알기이기에 삼국유사는 꼭 다뤄져야 할 고전 중에 고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빠) 수민이가 아주 정확하게 삼국유사의 중요성을 집어냈습니다. 흔히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물로 삼국사기를 꼽습니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국가중심적 사관과 유교적 입장에서 기록된 책입니다. 일찍이 공자는 실증할 수 있는 근거가 없으면 믿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요컨대 유교는 괴이하거나 귀신 이야기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삼국사기는 단군신화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보다 후대에 쓰이면서 삼국사기에 기록되지 않거나 소홀히 다뤄진 이야기들을 아주 많이 기록합니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전해져 오는 건국신화, 토속신앙, 노래, 전설 등등 다양하고 기묘한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실린 덕분에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삼국유사 덕분에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옛 모습과 뒷 모습을 생생하게 알 수 있습니다.

엄마) 좋습니다. 이번에는 아빠가 삼국유사를 인생책으로 꼽는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아빠) 제가 이야기하면 좀 길어질 것 같습니다. 그래도 충분히 이야기 하도록 들을 수 있겠습니까?

엄마, 수민) (고개를 끄덕인다)

아빠) 저에게 3대 인생책은 성경과 삼국유사와 자본론입니다. 삼국유사를 워낙 좋아해서 삼국유사 관련 책을 여러 권 보았습니다. 물론 집에 사 놓은 책도 여러 권 됩니다.

제가 삼국유사를 공부한 방법을 잠시 설명하겠습니다. 가장 처음 삼국유사를 입문한 책은 고운기 교수님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였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뭔가 가슴 속 깊이 전해지는 울림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더 깊이 파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구입해 읽은 책이 <삼국유사의 종합적 해석> (이범교, 민족사) 입니다. 두 권으로 구성되어 일천 페이지가 넘습니다. 삼국유사 관련 수백편의 논문이 깔끔하게 정리된 책입니다. 삼국유사를 읽다가 조금이라도 궁금하면 이 책을 펼쳐 학자들의 의견을 하나하나 집어보았습니다. 을유문화사에서 펴낸 <삼국유사> (김원중, 을유문화사)는 김원중 교수님의 번역이 깔끔해서 좋았습니다. 이 세 가지 책을 주교재 삼아 공부했습니다.

엄마는 기묘하고 신비로운 이야기가 거짓이기 때문에 흥미가 사라진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성당을 다니면서 성서의 여러 이야기에 친숙합니다. 성서에는 기묘하고 신비로운 이야기가 많습니다. 물론 때로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성서를 쓴 사람들이 기묘하고 신비로운 이야기 장치를 통해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는 것을 눈치 챘습니다. 삼국유사도 성경처럼 옛날 기록이다 보니 중요한 메시지를 기묘하고 신비로운 이야기 장치에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마) 아빠 말을 들으니 좀 이해가 갑니다.

수민) (말없이 고개를 끄덕임)

아빠) 삼국유사를 처음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이 있습니다. 지금도 이 대목을 생각하면 가슴부터 아파옵니다. 혜통이 출가하여 승려가 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책을 펼쳐 읽는다)

하루는 자기 집 동쪽 시냇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았다. 살을 발라내고 뼈는 동산에다 버렸다. 아침에 보니 그 뼈가 없어졌다. 핏자국을 따라 찾아보자 뼈는 제 굴로 돌아와 새끼 다섯 마리를 안고 쭈그리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고 오랫동안 놀라워하다가 깊이 탄식하며 머뭇거렸다. 문득 속세를 버려 출가하기로 하고, 이름을 바꾸어 혜통이라 했다.’ (604)

삼국유사를 처음 접했던 때가 2013년이고 저는 2012년에 140일이 넘도록 직장에서 파업을 했습니다. 파업을 하면서 마음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파업이 석 달 째 진행될 무렵 느닷없이 세상을 떠난 고향 친구의 장례식을 다녀왔습니다. 마치 제가 죽은 것 같았습니다. 파업기간 동안 다행히도 물리적 충돌은 없었지만 제 마음 속에서는 삶과 죽음을 여러 번 드나들었습니다.

엄마, 수민)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빠를 바라본다)

아빠) 진짜입니다. 별별 희한한 잡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때때로 죽어버릴까 고민도 했습니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엄마) 그래서 쌍용자동차 파업했던 노동자 분들이 자살하는 건가요?

아빠)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저는 자살한 분들 마음이 한편으로 이해도 갑니다. 법원에서 파업으로 인한 손해 배상 청구를 개인당 수십억 씩 배상하라고 판결해 버리면 저 역시 그분들과 비슷한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을 겁니다.

어쨌거나 제가 그 당시 파업 중에 못된 생각이 한번씩 들더라도 나에게는 아내와 두 딸이 있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지지대가 되었습니다. 삼국유사에서 혜통의 이야기에 나오는 수달은 비록 죽더라도 자식을 아끼는 마음을 버리지 못합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조차도 막지 못하는 게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라는 거죠. 이 대목을 읽으며 제가 마치 어미 수달 뼈를 바라보는 혜통이 된 것처럼 오랫동안 놀라워하다 탄식하며 머뭇거렸습니다. 혜통은 분명 삶과 죽음, 부모와 자식이라는 우리 인생에 주어진 분명한 경계에 묶이기 보다는 좀 더 근원적인 세계를 향해 자유롭게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래서 차라리 출가하여 승려가 됐을 겁니다.

혜통과 수달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혜통은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는 상태였기에 출가하였다. 지금의 나는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기에 출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출가하지 않는다고 삶의 보다 근본적인 질문들에 뛰어들지 못하겠는가? 나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고 답을 구해보려고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를 찾아왔다. 혜통이 승려가 되어 도전했지만 나는 지금의 내 주변 상황을 그대로 받아 안고서 도전하는 연구원이 되겠다!’

엄마) 아빠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됩니다.

아빠) 혜통과 수달 이야기 외에서 조신의 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조신의 꿈 이야기는 강원도 낙산사를 둘러싼 이야기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낙산사를 가봤습니다. 어쩌면 낙산사를 둘러봤던 기억 덕에 더욱 생생하게 느꼈을 수 있습니다.

낙산사 인근 지역 사찰의 관리자로 와 있던 조신이 태수의 딸을 사모하는데, 꿈에 사모하던 태수의 딸과 결혼하여 아이를 다섯이나 낳습니다. 그러나 가난과 질병에 징글징글하게 허덕이다 꿈에서 깨어납니다. 꿈속에서 어찌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하룻밤만에 수염과 귀밑머리가 하얗게 새었습니다. 비록 하룻밤 꿈이었지만 삶의 허무함을 가슴 깊이 깨닫고 평생 수행에만 정진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책을 펼쳐 506-507쪽 조신이 꿈 이야기를 읽는다)

앞서 읽었던 혜통의 수달 이야기는 짧으면서도 울림이 강했던 반면, 조신의 꿈 이야기는 묘사와 표현이 대단히 구체적이면서도 애절합니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스님은 이렇듯 여러 이야기들을 삼국유사에 기록하면서 불교의 가르침을 함께 담았습니다.

의상대사와 원효대사가 낙산사에서 관음보살 만난 이야기도 제가 아주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우선 두 분은 의상과 원효가 함께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가 원효가 우연히 해골 바가지 물을 마시고는 깨달음을 얻어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지요?

수민)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웃음)

아빠) 원효와 해골 바가지 이야기는 삼국유사에는 없고 다른 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삼국유사에서는 의상과 원효이야기가 낙산사를 중심으로 아주 대조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2부에서 계속됩니다.

 

유형선 드림 (morningstar.y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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