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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6일 14시 58분 등록

중학생 큰아이의 PC방 출입은 어떻게 됐을까요?


딱 한 번 인상 쓰고 손편지 딱 한 통을 보냈을 뿐인데 아이는 다시 PC방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이는 PC방에 가지 않고 잘 자랐답니다.’로 끝나는 동화의 해피엔딩처럼 실제 상황이 유쾌하게 마무리되지는 않았습니다. 엄마인 저는 저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또 다른 고민이 이어졌습니다.


엄마 앞에서는 모범생코스프레를 했지만 늘 뒤에서 소소하게 일탈을 일삼던 십대 시절이 떠올라 아이도 그러지 않을까 걱정됐습니다. 반면, 엄마 기대에 부응하느라 방황해도 좋을 십대와 이십대에 금욕을 기획했던 게 안타까워 아이는 그러지 말았으면 싶기도 했습니다.


내가 나쁜 중독에 빠지면 어떡하지?”


아이는 게임, 도박, , 담배, 섹스 등이 즐기는 수준이 아닌, 스스로를 파괴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면 어떡하나 질문했습니다. 순간 머리가 아찔했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자해란 자기자신을 미워하고 자기 삶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죽지 못해 하는 것이지, 부모님 지지를 듬뿍 받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나쁜 중독에 빠지지는 않는다고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어린이를 넘어 어른이 되는 과정에 있는 아이에게,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좋은 삶과 나쁜 삶이 명백하게 구분되고, 착한 사람은 좋은 삶으로 나쁜 사람은 나쁜 삶으로 귀결되는 동화 속 이야기를 줄줄 읊어댄 겁니다. 자기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하며 자신의 삶이 입체적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한 아이를, 다시 이분법적 세계로 밀어 넣는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후회가 쓰나미처럼 몰려왔습니다.


설마 좋은 중독을 말씀하시려는 건 아니죠?”


아이는 한 걸음 앞에서 제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몸과 맘을 이롭게 하는 좋은 습관, 건강한 중독에 대해서 이미 학교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으니 엄마는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소위 나쁜 것들에 끌리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치기어린 일탈을 꿈꾸는 큰아이와 영화 레이디 버드를 봤습니다.

250px-레이디_버드.jpg


레이디 버드 2002년 미국 서부 새크라멘토에서 살아가는 18살 크리스틴의 성장 영화입니다. 크리스틴의 아버지는 유능한 프로그래머였으나 실직했고, 명문대를 나온 오빠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합니다. 임신한 오빠의 여친은 집에서 쫓겨나 좁아 터진 크리스틴네 집에서 함께 지냅니다. 사실 상 병원에서 일하는 엄마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직업의 수명은 짧고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이 힘든 시대, 안전을 추구하는 엄마는 크리스틴을 보수적인 가톨릭 고등학교에 보내고 집 근처 대학에 입학하길 바라지만, 크리스틴은 동부 뉴욕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해 집을 떠나겠다는 굳은 의지를 품고 있습니다.


어른이 되려는 문턱에서 엄마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크리스틴은 안간힘을 씁니다. 먼저,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버리고 자신을레이디 버드라고 지칭합니다. 차 안에서 말다툼을 하다 달리는 차 밖으로 뛰어내릴 정도로 엄마와 극심한 마찰을 빚고, 들통날 거짓말을 해대며 친구와 갈등 상황에 놓이고, 첫사랑 남친이 동성애자임을 알고 충격에 빠지고, 다른 남친과 섹스를 하고 실망하기도 합니다. 결국, 레이디 버드는 집을 떠나 뉴욕에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 레이디 버드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습니다.


나는 과연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 발버둥쳐 본 적이 있었나?’


‘”엄마, OO해도 돼요?”라는 질문으로 내 삶을 엄마에게 맡기지 않았던가?’


한 순간 고민에 빠졌던 저는 무조건 아이를 지지하기로 맘먹었습니다. 아이가 말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전과는 다른 내가 되는 거겠지요. 뭐든 경험해 보고 판단할게요. 이제부턴 제가 알아서 할게요.”


***

격주 월요일에 발송하는 마음을 나누는 편지 '가족처방전'은 필자와 독자가 함께 쓰는 편지입니다. 가족 관계가 맘대로 되지 않아 고민하고 계시다면 메일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마음을 다해 고민하고 작성한 가족처방전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김정은(toniek@naver.com)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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