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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23일 09시 43분 등록


파우누스(Faunus: 삼림의 신)들이 젊은 디오니소스를 따라간다.

아폴론처럼 이마가 높고, 영원한 젊음을 간직한 그 얼굴에는 담쟁이가 관처럼 자라 있다.

그의 주위에는 아름다운 신도들이 손에 손에 바라와 피리와 주신장을 들고,

낙소스 숲이나 자퀸토스 포도밭에서 미친 듯이 술잔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술잔치 노래(Drinking Song)>, 롱펠로우(Longfellow)


인문학을 얘기할 때 신화를 빠트릴 수 없겠죠. 음식에 관한 인문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은 와인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그리스 신화의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이야기로 <알로하의 맛있는 편지> 시작하겠습니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세멜레는 헤라의 질투로 인해 임신한 채로 죽었다. 제우스는 그녀의 여섯 달 된 태아를 꺼내 자신의 허벅지 속에 넣었는데, 그렇게 태어난 아들이 바로 디오니소스다.

그는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포도 재배를 시작했다. 어느 날 지하 동굴을 걷다가 실수로 포도가 가득 담긴
함지박을 밟고 지나갔다. 며칠 뒤 함지박에서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마셨는데, 그 맛이 상큼하고 달콤하며 기분도 좋아졌다.


많은 음식의 기원이 그렇듯이 와인도 실수, 또는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술과
풍요, 그리고 황홀경의 신인 디오니소스가 실수로 밟은 포도가 발효되어 최초의 포도주가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포도주는 언제,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만들어 먹기 시작했을까요?


농부인 노아는 포도밭을 가꾸는 첫 사람이 되었다. 그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은 채 자기 천막 안에
누워 있었다. 그때 가나안의 조상 함이 자기 아버지의 알몸을 보고 밖에 있는 두 형제에게 알렸다. 셈과 야펫은 겉옷을 집어 둘이서 그것을 어깨에 걸치고 뒷걸음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알몸을 덮어 드렸다. 그들은 얼굴을 돌린 채 아버지의 알몸을 보지 않았다.

<창세기 9 20~24>


또 다른 '신의 이야기' 구약성서에 따르면 와인을 처음 만든 사람은 "노아"입니다. 맞습니다. '노아의 방주'의 바로 그 노아입니다. 노아는 와인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많이 마시고 취해서 벌거벗은 채로 잠들었다고 하니 인류 최초의 '취객'이기도 하겠네요.

대홍수가 끝나고 노아가 배에서 나와서 정착한 곳은 터키 북동부에 위치한 아라라트 산(Mount Ararat) 근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가 최초로 포도를 재배한 흔적이 발견된 곳이 바로 터키, 아르메니아, 이란 사이에 위치한 코카서스 남부지역입니다. 기록으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유적, 유물 등에 따르면 기원전 7,000
경부터 재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연일까요?

포도는 당도가 높고 껍질 속에 천연효모가 있어서 포도를 따서 그냥 놔두면 저절로 발효되어 포도주가 됩니다. 포도주는 인간이 처음부터 만들어 먹었던 것은 아닙니다. 9,000년 쯤 전 어느 날, 한 인간이 "우연히 발견한" 포도더미가 발효된 액체를 맛있게 먹고 기분이 좋아진 뒤, 와인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고 보는 거죠. 이후 문명의 전파 경로를 따라 와인도 중동 지역에서 그리스로 전해집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얼마나 와인을 좋아했는지는 술과 황홀경의 신 디오니소스를 만들어 내고 이를 바탕으로 한 축제와 공연 등을 발전시킨 것만 봐도 알수 있겠죠. 실제로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선물 중 와인만큼 위대한 가치를 지닌 것이 없다"며 와인을 극찬했습니다. 히포크라테스는 "적당량의 와인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하며 와인을 옹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적당량'을 넘은 와인을 마시면 어떻게 될까요? 인류 최초의 취객 노아는 적당량을 넘겨서 마시는 바람에 취해서 벌거벗고 잠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적당량을 훨씬 넘겨서 마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디오니소스는 에리고네를 유혹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이 포도송이로 변하였다. 에리고네의 아버지 이카리우스는 아티카에 온 새로운 신 디오니소스를 환대하고, 그가 지시한 대로 이웃사람들에게 포도주 마시기를 권장했다. 아테네 사람들은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셔 취했고, 술에 중독되었다. 그런데 포도주를 마신 사람들이 취해서 쓰러지나 그들은 이카리오스가 자신들에게 독을 먹이려 했다고 여겨 몽둥이로 그를 때려죽였다. 에리고네 역시 아버지의 무덤 곁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 신들은 에리고네 부녀와 충견 마이라를 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어 주었다. 에리고네는 처녀자리, 이카리오스는 목동자리, 마이라는 큰개자리가 되었다.


이카리오스는 자신이 담근 포도주를 나눠준 이웃사람들에게 맞아 죽었습니다. 그가 자신들을 독살하려 했다고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지나친 음주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폭력성을 일으켜 끔찍한 비극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신의 가장 위대한 선물이 저주가 되는 순간이죠.

오늘 <알로하의 맛있는 편지>에서는 와인의 기원에 대해서 역사적, 신화적 관점에서 알아봤습니다. 미친 듯이 노래 부르며 술잔치를 벌이는 디오니소스와 파우누스를 떠올리다보니 와인이 땡기시지는 않나요? 저는 오늘처럼 추운 겨울에는 과일과 시나몬, 정향 등의 향신료를 넣고 끓인 와인 '뱅쇼(vinchaud)'가 끌리네요. 유럽 사람들은 몸이 으슬으슬하고 감기 기운이 있을 때 감기약 대신에 뱅쇼를 마시고 기운을 차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감기약 대신에 생강차를 마시는 것처럼 말이지요. 끓이는 동안 대부분의 알코올이 날아가기 때문에 맘껏 마셔도 노아처럼 될 염려는 없을 것 같습니다.



참고 문헌

<그리스 로마 신화 The Age of Fable> 토마스 불핀치, 박경미 옮김. 혜원출판사 2017

<잘 먹고 잘 사는 법 97, 와인> 김국, 김영사, 2007

<와인에 담긴 역사와 문화> 최영수, 북코리아, 2005

<올 댓 와인> 조정용, 해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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