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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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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6일 10시 06분 등록

역 주행 

 

무료한 주말이었다. 그야말로 할 게 없어 무작정 차를 끌고 나섰다. 비엔티안(라오스의 수도) 시내를 생각 없이 이리저리 돌다 역 주행을 했다. 구차하게 변명하자면 일방통행이 어찌나 많은지 딱 3m 거꾸로 갔다가 다시 돌아 나왔는데 적발 다. 마침 그날은 미합중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ASEAN Conference를 위해 삼대구년만에 이 곳을 방문하기 전날이라 이 나라 경찰이 모두 동원되어 시내에 깔려 있던 터였다. 곳곳에 진을 치고 나같은 놈을 잡으려 혈안이 된 경찰에 안 걸릴 수 없었다. 인사도 없이 검지 손가락을 까딱거린다. 내리라는 말이겠다. 나를 끌고 어디론가 가더니 차 안에서 낮잠 자던 자기네 대빵을 아주 예의 바르게 깨우신다. 몇 차례 그들끼리 대화를 주고 받은 뒤 대빵은 제대로 걸렸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고개 돌려 나를 쏘아보고는 700,000LAK, 우리 돈 약 10만원을 내란다. (물론 '대빵'이 자의적으로 부른 벌금이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벌금액수는 다르다. 또 경찰관마다 부과하는 벌금 또한 재 각각이다. 그렇다 보니 법규 위반 시 물리는 벌금을 놓고 흥정하는 일이 다반사다. 대부분의 벌금은 경찰 개인 주머니로 들어간다) 나는 폴짝 뛰었다. '말이 되느냐, 내 듣기로 200,000LAK 이면 충분하다 들었다.' 나름 억지를 써 보지만 서로가 말을 알아 듣지도 알려 하지도 않았다. 규정을 펴 보이고는 딴청만 피운다. 역 주행은 내 잘못이다, 그러나 외국인이고 초행이라 표지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다시 생각해 달라, 700,000LAK은 너무 과하지 않은가, 라는 내 말에 이 놈은 끝날 것 같지 않다 여겼는지 내 주머니의 모든 돈을 꺼내 보란다. 20달러가 조금 넘게 있었다. 대빵은 20달러를 가리키며 자신의 책을 펴더니 128페이지에 넣으란다. 넣었다. 고개를 사선으로 긋는다. 가라는 말이겠다.  

 

잘못은 했다만 기분이 상했다. 어디 말할 때도 없고 사나운 정신을 이끌고 근처 미용실에 갔다. 덥수룩한 머리를

정돈하고 나면 괜찮아 질까 싶었다. 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터라 엄지와 검지를 닿으며 Not too much 라 했다. 조금만 잘라 달라했는데 까까머리를 만들어 놨다. 이날 누가 내 뺨을 때렸다면 길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하며 울었을 테다. 40년 가까이 살았던 나라를 떠나오며 마냥 순탄하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어느 순간 말 못하는 어린애가 되어 있었다. 모든 게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다. 깊이 잠들면 다시 한국으로 가있는 나를 상상하다가 눈을 뜨면 여기가 어딘가 싶고 이게 뭔 일인가 싶은 것이다. 매일 벌어지는 낯선 역외감에 어디 도 속하지 않는 경계인이 된 매일이 당혹스럽다. 40여년 삶의 관성은 무섭다. 싸바이디(라오스어, 안녕하세요), Hello를 외쳐야 하는 아침 인사가 왜이리 거북한가. 결정적으로 이 당황을 아무에게도 말 할 수 없다는 건 가장 황망한 일이다.  

 

해외 생활은 만만치가 않다. 안녕하세요부터 배우는 어린 아이가 된 기분, 지난 내 삶이 부정당하고 움켜쥔 주먹에 내 삶이 바람같이 빠져나가는 느낌,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어 아무것도 아닌 것을 향해 돌진하는 인생의 역 주행을 겪게 되리라. 웃고 넘길 수 있는 일 따위가 외로움이라는 내생변수와 불안이라는 함수로 인해 슬픔과 물의 자승으로 치환된다. 한국을 떠나며 누구보다 외롭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역 주행으로 경찰에 잡혀가고 다 잘려나간 까까머리를 쓸어 올리며 문득 내 삶이 역행하는 것 같다 느꼈다. 그날 밤, 돌아가신 스승을 붙잡고 '나 어찌 살아야 하나'며 질질 짜며 징징댔다. 뜬금 없는 놈한테 느닷없이 소환되는 스승께는 늘 죄송하다. 어찌 되었든 외로움 타지 않고 편안하게 잘 살아보리라던 자신감은 오래 기다릴 틈도 없이 보기 좋게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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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6 20:32:45 *.129.18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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