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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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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9일 09시 51분 등록

오늘은 제가 다니는 댄스 학원의 확장 이전 축하 파티가 있는 날입니다. 아쉽게도 저는 오래 전에 미리 계획한 일이 있어서 참가를 못합니다. 대신에 축하 케이크를 만들어 주기로 했습니다.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빵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제가 먹기 위해 만드는 빵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만드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고마움과 사랑의 마음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저에게 홈메이드 빵은 말을 대체하는 훌륭한 표현 수단입니다. 재료를 고르고, 반죽하고, 빵을 굽는 동안 먹을 사람을 생각하며 쏟았던 정성을, ‘먹는 사람도 느끼고 있구나라는 걸 알 수 있거든요. ^^

오늘은 치즈, 와인, 빵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빵의 기원과 역사적 의미를 신화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알로하의 맛있는 편지]를 쓰면서 답장이나 댓글로 피드백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치즈와 와인의 기원이 수천년 전이라는 걸 알고 놀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빵의 기원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인 2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간이 곡식을 재배하기 시작했던 건 신석기 혁명이 일어났던 기원전 1만년 전이 아니던가요? 맞습니다. 그런데 인류는 농사를 짓기 시작한 때보다도 1만년 쯤 전에 야생 곡물을 채집해 빵으로 만들어서먹었습니다. 물론 지금의 빵과는 매우 다릅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2만년 전에 먹던 빵은 갈돌과 갈판을 이용해서 밀이나 보리를 간 뒤에 물을 넣고 반죽해서 그냥익혀 먹는 형태였습니다.

오늘날처럼 반죽한 후에 발효 과정을 거친 빵은 6천년 전 이집트인들이 처음 만들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밀가루를 반죽해서 불에 구운 건 분명 인간의 발명입니다. 하지만 남은 반죽을 놔뒀더니 공기 중의 효모가 반죽에 들어가서 발효과정을 거쳐서 더 맛있는 빵이 된 건 역시 우연이라고 봐야겠지요.

비슷한 시기에 또다른 문명인 수메르에서도 빵을 먹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빵을 주식으로, 계급에 상관없이 누구나 먹었다면, 수메르 사람들은 문명화된 사람들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기의 옷을 둘로 나누어 한쪽으로 그의 몸을 가리고 다른 한쪽으로 자신의 몸을 가렸다. 그리고 마치 어린아이를 데리고 가듯 그의 손을 잡고 목장으로 가서 다시 천막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있던 목자들이 그를 보려고 몰려왔다. 그들이 그에게 빵을 내밀었으나, 엔키두는 다만 들짐승의 젖을 빨줄 알 뿐이었다.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빵은 어떻게 먹는 것인지, 독한 술을 어떻게 마시는 것인지 알지 못하여 쩔쩔매면서 하품만 하였다. 그때 여인이,

엔키두, 이 빵을 먹어 봐요. 생명을 지탱해 주는 것이에요. 그리고 술도 마셔 봐요. 그게 이곳의 풍습이랍니다.”

하고 빵과 술을 권하였다. 그는 결국 배부르도록 먹고 독한 술을 일곱잔이나 마셨다. 그러자 기분이 유쾌해지며 가슴이 벅차 오르고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자기 몸에 났던 곱슬곱슬한 털들을 싹 밀어버리고 기름을 발랐다. 드디어 엔키두는 한 남자가 되었다.

 

길가메시 서사시(The Epic of Gilgamesh)는 기원전 2000년경에 쓰여진 인류 최초의 서사시입니다. 기원전 2750년경에 실재했을거라 여겨지는 우루크의 전설적인 영웅이자 왕인 반인반신(伴人半神: 정확히는 1/3 인간, 2/3 ), 길가메시에 관한 다양한 신화를 종합해 엮은 하나의 장대한 서사시인데요, 여기에 나오는 엔키두(Enkidu)는 원래 짐승과도 같은 야만인이었습니다. 잘생기고 똑똑한데다 엄청난 힘까지 가진 길가메시는 점차 오만해져 백성들을 괴롭히고, 신들에게 도전해서 세상을 어지럽혔습니다.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해지자, 길가메시를 혼내라고 신이 보낸 괴물이 바로 엔키두입니다. 창조의 여신 아루루(Aruru)가 진흙과 물로 만든 엔키두도 길가메시 만큼이나 강했습니다. 그의 몸은 온통 털로 뒤덮여 있었는데 짐승처럼 들판을 돌아다니면서 풀을 뜯어 먹고 살았습니다. 길가메시는 그가 초인적인 힘을 가졌음을 알고, 그를 문명화시켜 친구로 삼으려고 했지요. 그리하여 여인을 시켜 그를 유혹한 후, 그에게 빵과 포도주를 먹게 했습니다. 엔키두는 여인의 권유로 빵과 포도주를 먹은 후, 몸에 난 털을 싹 밀어버리고, ‘문명인'이 되었습니다.

이집트와는 달리 수메르에서는 왕이나 귀족들만 빵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수메르인이 문명인이라고 부른 사람은 소수의 귀족이나 부자들만을 의미했습니다.

아무나 빵을 먹기 어려웠던 이유는 빵을 만드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빵을 만들려면 먼저 밀을 가루로 만들어야 하는데요, 당시의 제분 기술이라고는 갈판에 밀을 놓고 갈돌로 비비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노예나 여자 하인들이 하루 종일 무릎이 닳도록 고생해서 가루를 낸 뒤에야 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노예나 하인이 없는 집에서는 빵을 먹기 힘들었겠지요.

bread_Egyptian.jpg

출처: http://www.touregypt.net/featurestories/bread.htm

 

와인과 치즈와 마찬가지로 빵도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로 전파되었는데요, 그리스에서도 가루를 내거나 빵을 굽는 고된 노동은 여자들의 몫이었습니다.

 

백성들의 군주인 맷돌들이 있었지요.

열 명도 넘는 여자들이 고생하며 밀과 보리를 빻아 여자들은 모두 잠들었건만, 가냘픈 소녀 혼자 끊임없이 일했답니다. 맷돌 돌리던 손을 놓고 소녀는 외쳤지요.

만인의 아버지시여! 인간과 모든 영원한 것의 주인인 위대한 제우스여, 별이 반짝이는 드넓은 하늘에 당신이 내리는 천둥소리는 정말 크군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아요! 누군가에게 내리는 불길한 재앙이겠지요. 불쌍한 저를 굽어 살피셔서, 제 소원을 들어주소서. 오 그들은 모두 즐겁게 매일 잔치를 벌이는군요. 여기 오디세우스의 집에서 구혼자들이 잔치를 벌이는군요.

보세요. 저의 무릎은 맷돌을 돌리는 고된 노동으로 짓물렀습니다. 제발 저들의 잔치를 영원히 끝내게 해주세요!”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고향으로 가는 길에 10년 동안이나 바다를 헤맸던 오디세우스를 기억하시죠.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고향에 도착했지만, 그를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여 그의 아내인 페넬로페에게 끊임없이 구혼했습니다. 그녀와 결혼하면 오디세우스가 지배하던 나라, 이타카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정체를 들키면 구혼자들에게 죽을 수도 있기에, 오디세우스는 거지로 변장하여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자신의 아내에게 구혼하는 자들의 행동을 목격한 뒤, 지치고 절망에 빠진 그는 신에게 용기를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동트기 전 제우스는 번개로 오디세우스에게 화답했습니다. 그 직후 밀가루를 내기 위해 맷돌(갈판과 갈돌)을 돌리는 하녀의 한탄과 기도가 바로 위에 인용한 글입니다.

뻔뻔한 구혼자들이 매일 파티를 벌이며 맛있게 먹는 빵 뒤에는 어린 소녀의 무릎이 짓물릴 정도의 고된 노동이 있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변덕스러운 신들의 엽기적인 행각이나 영웅의 모험담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하층민의 고통과 그들에 대한 지배계층의 연민도 보입니다.

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오디세우스는 기지를 발휘하여 구혼자들을 물리쳐서 아내를 되찾고 이타카에는 평화가 찾아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오긴 했네요. 그리스 신화에서는 보기 드문 해피엔딩입니다.

20190309_092750.jpg


오늘 파티를 위해 스무명 정도가 먹을 수 있는 가나슈 브라우니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큰 브라우니는 처음이라 오븐에서 꺼내다가 군데군데 금이 갔습니다. 겉은 타고 안은 좀 덜 익은 듯도 하네요. 그래도 위에 가나슈 초콜렛을 뿌리고 장식을 올리니 그럴 듯해 보입니다. 무릎이 짓물리는 노동은 아니었지만 밤을 새는 노력이었습니다. 오늘 파티를 하는 친구들이 저의 정성을 느낄 수 있겠지요. ^^



* 이탈리아 피렌체 근처의 빌라치노 유적(기원전 23000년 전으로 추정)과 이스라엘 갈릴리호 부근의 오할로 유적(기원전 21000년 전으로 추정)에서 곡물을 갈아 먹는데 사용하는 갈돌과 갈판 사이에 보리, , 귀리가 끼어 있고, 갈돌 근처에서 불에 그을린 돌무더기 발견. 이런 유적은 인간이 당시에 밀이나 보리를 갈아서 빵을 만들어 먹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참고자료

<역사학자 정기문의 식사> 정기문, 도서출판 책과함께, 2017

<빵의 역사> 하인리히 E. 야콥, 곽명단, 임지원 옮김, 우물이 있는 집, 2009

<빵의 지구사> 윌리엄 루벨, 이인선 옮김, 휴머니스트, 2017

<길가메시 서사시> N.K. 샌더스, 이현주 옮김, 범우사, 2000

<그리스 로마 신화 The Age of Fable> 토머스 불핀치, 박경미 옮김, 혜원출판사, 2017

<잘 먹고 잘사는법055, 빵과 과자> 김정원, 김영사, 2004

브라우니가 초코를 입다! 가나슈 브라우니 https://blog.naver.com/nothing114/80182202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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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odbbang.com/ch/15849?e=22855268

 


IP *.180.15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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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1 08:27:39 *.36.133.47

와우,,정말로 몰랐던 빵의 기원과 그리스신화를 잘 보았습니다.

짜장면 만들때 (예전에 집에서) 제가 만든 짜장면을 먹을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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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2 23:52:46 *.180.157.29

맞아요. 그래서 요리하는 게 힘들지만, 고된 노동이라기 보다는 즐거운 작업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늘 따뜻한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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