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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일 18시 58분 등록

지난주에는 도서관과 초등학교에서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과 <엄마의 글쓰기>로 강연했습니다. 이번 주 편지는 강연장에서 받은 질문에 대한 답장을 준비했습니다.  


초등 6학년 남자 아이입니다. 책을 좋아하던 아이인데 요즈음 책을 읽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초등 저학년 때처럼 독서 습관을 이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초등학생이었을 때까지 책 읽기를 좋아하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책을 읽지 않는 현상을 종종 목격했습니다. 요즈음 이 현상이 초등 고학년으로 내려왔습니다. 대학입시 준비 시기가 고등학교에서 중학교와 초등 고학년으로 당겨진지 이미 오래입니다. 자녀가 초등 고학년이 되면 주변으로부터 책은 그만 읽히고 공부 시키라는 충고를 듣기도 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갑자기 책을 싫어하게 됐을 리 없으니, 초등 고학년이나 중학생 자녀에게 책을 못 읽게 하는 부모가 있지 않을까 짐작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 큰아이가 중학생이 되고나서 알았습니다. 아이들이 책 읽기 힘들어진 건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책 읽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란 걸 말입니다.


초등고학년부터 중고등 선행학습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중학생이 되면 과목이 많아지고 수업시수가 늘어나며 지필고사니 수행평가니 학교생활만으로 할 일이 너무 많아집니다. 여기에 학원 스케줄까지 더하면 학교 숙제하랴 학원 숙제하랴 바쁜 아이에게 책까지 읽으라고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부모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아이 스스로 느끼는 성적에 대한 압박감도 커집니다.

우리 집은 큰아이가 일곱 살 때부터 온가족이 함께 책을 읽었습니다. 혁신초등학교여서 숙제를 내주지 않았고 시험을 치르지 않았고, 초등 내내 학습지나 학원 등 사교육을 일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시간이 많아서 책 읽을 시간이 충분했습니다. 초등 1, 2학년 때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로알드 달, 시공주니어)과 <마틸다>(로알드 달, 시공주니어) 등 초등 저학년용 어린이문학을 아이 스스로 읽었고, 초등 3, 4학년 때는 <모모>(미하엘 엔데, 비룡소)와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라헐 판 코에이, 사계절)등 중학년 어린이문학을 아이 스스로 읽었습니다. 초등 6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아이의 관심사가 확장되어 <법구경>(전재성 글, 마정원 그림, 주니어김영사)과 <갈릴레오의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오철우, 사계절),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윤동주, 정음사) 등 다양하게 읽었습니다. 이대로 ‘책 읽은 사람’으로 자라기를, 아이의 독서가 지속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 큰아이에게도 독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요즘 초등학교 졸업식은 12월에 하는 추세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12월 말에 졸업식을 하면 중학교 입학식을 하는 3월 초까지, 아이는 초등학생도 아니고 중학생도 아닌 시기를 맞습니다. 이 시기 대부분의 아이들은 중학생이 될 준비를 합니다. 선행학습을 하지 않았고 보습학원에 다녀본 적이 없는 우리 집 큰아이는 중학교 공부가 걱정이 되는 눈치였습니다. 대형서점 문제집 코너에서 EBS 교재를 들춰보기도 하고, 인터넷 강의을 찾아서 듣기도 하면서 예비 중학생으로서 준비를 했습니다. 성적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레 책 읽는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중학생이 되고나서 아이는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갖게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이 독서의 적이라는 걸 잘 알기에 사주지 않았습니다. 중학교는 버스로 통학을 해야 해서, 버스 앱을 사용하고 등하교 시간에 팟캐스트를 들으면 좋겠다 싶어서 스마트폰을 사 주었습니다. 덕후 기질이 다분한 큰아이는 곧 좋아하는 게임을 다운로드 받아 친구들과 게임을 하고 유튜브 동영상을 보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스마트폰을 갖게 되면서 책 읽는 시간은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시간이 나면 아이는 책읽기보다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친구들과 카톡을 주고받았습니다. 친구들과 수다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영상을 보는 걸 즐겼습니다.

이처럼 책을 좋아하는 아이도 독서 위기를 맞습니다. 이대로 ‘책 읽는 사람’으로의 성장을 포기해선 안 되겠기에 대책을 마련해 보기로 했습니다. 책을 읽는 행위가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스마트폰보다 더!), 책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성적을 잘 받는 것보다 더!)를 경험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온가족이 함께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하루 한 시간, 책 읽는 시간
주말 두 시간, 가족 독서토론 시간

아이들이 책을 읽으려면 책 읽을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책 읽을 시간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자녀가 독서를 할 수 있도록 아이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책 읽을 시간부터 마련해야 합니다. 학원 일정이 빽빽하다면, 꼭 필요한 과목만 남기고 사교육 줄이기를 먼저 실천해야 합니다. 아이가 스마트폰과 게임으로 여가 시간을 보낸다면, 저녁 8시 이후 스마트폰 셧다운제, 토요일 오전에만 게임하기 등 대화를 통해 규칙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주말에는 책구경을 합니다. 대형 서점도 좋고 동네 책방도 좋습니다. 헌책방이나 만화방도 좋습니다. 책이라는 물성을 만지고 느끼고 실컷 책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습니다. 아이가 책을 골라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줍니다. 책을 고르는 안목은 실패를 통해서 길러지므로 직접 고르고 사는 경험을 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루 한 시간 시간을 정하고 아이가 직접 고른 책을 온 가족이 함께 읽습니다. 주말에 가족 독서토론을 합니다. 처음에는 엄마나 아빠가 토론 진행을 맡지만 점차 토론의 주도권이 아이에게 전해지며 아이가 토론을 이끌 수 있도록 합니다. 모두가 경청합니다.

중학교 1학년 자유학년 1년 동안, 하루 한 시간 책을 읽고, 주말에는 책구경을 실컷 했으며, 주말 저녁에 온가족이 모여 독서토론을 했습니다. 온 가족이 재미있게 책을 읽었습니다. 가족 독서토론은 회가 거듭될수록 다양하고 풍성한 대화거리로 토론의 질이 좋아졌습니다. 그리하여 중학생 큰아이가 독서 습관을 잃지 않고 유지하고 있습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독서 위기는 앞으로도 계속 찾아올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좋은 성적에 우선순위를 둔다면, 아이는 점점 더 책과 멀어질지 모릅니다. 자녀가 ‘책 읽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부모가 먼저 성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책 읽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책 읽을 시간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김정은(toniek@naver.com)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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