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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17일 18시 25분 등록
강남순 교수의 페미니즘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남순 교수는 신학자이면서 철학자입니다.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한국의 여러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좋은 책을 여러 권 출간했습니다. 이번 겨울 방학 기간 중에 한국에 와서 특강을 하고 있는데, 지난 2월 초에는 변경연과 인연이 깊은 여우숲 인문모임에서도 강연을 했습니다. 저는 최근 청담역 6번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한 페미니즘 멀티 카페 <두잉>에서 진행하는 강의를 수강하고 있습니다. 

강남순 교수의 글은 지성과 감성과 영성이 스크럼 짜고 돌진하는 느낌입니다. 이번에 강의를 수강하면서 강남순 교수의 전작읽기에 도전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참고로 강남순의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페미니즘에 관한 7가지 질문>(한길사)이 조만간 출간될 예정입니다.

강남순 교수의 페미니즘 입문 강의 내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강남순의 페미니즘 입문 강의 강의록을 마음편지로 띄웁니다. 페미니즘을 소개하는 강의록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려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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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강. 세계를 거꾸로 뒤집은 혁명으로서의 페미니즘>
일자 : 2020년 2월 14일 (금)
장소 : 페미니즘 멀티 카페 ‘두잉’
강연자 : 강남순 교수

여기 온 분들은 배고픈 사람들입니다. 지금 있는 현상에 만족하는 사람은 배고프지 않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것을 추구하고 갈망하는 사람은 배고픕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카프카는 인간만이 자살한다고 했습니다. 강남순은 인간은 정신적 배고픔을 느낄 때 동물적 배고픔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회는 남성을 caretaker로, 여성을 caregiver로 여겨왔습니다. 사회는 성별에 따라 요구하는 게 다릅니다. 철학자들 역시 각자 연구해온 중심 주제들이 여성의 일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저 멀리를 본다’는 뜻입니다. 칼 만하임은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를 쓰면서 유토피아를 새롭게 복권시켰습니다. 또한 에른스트 블로흐 (E. Bloch)는 ‘not-yet consciousness’(아직 아닌 의식)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배고픔을 이야기했습니다. 배고픔을 해결하려고 더 확장된 세계로 갈수록 배고픔은 강해지는데, 결국 낮꿈을 꿉니다. 낮꿈 꾸는 사람은 day-dreamer 입니다. 낮꿈을 꾸는 사람은 변화하려는 주체가 됩니다. (강남순의 서울신문 칼럼 연재 제목을 ‘낮꿈꾸기’로 삼았습니다) 유토피아(Utopia)의 U는 no-place 뜻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절대 불가능한 유토피아. 두 번째, 상대적으로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 인류의 모든 변화는 두 번째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들 덕에 가능해 졌습니다.

데리다는 ‘유산으로 받은 것은 과제로 받아들일 책임이 있다’고 했습니다. To be is to inherit - not given, but task. 이때 task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affirmation 긍정. 두 번째, contestation 문제 제기. 세상 모든 것은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받은 유산입니다. 유산으로서 인정을 하면서도 동시에 문제제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강의 중에 영어나 독일어를 화이트보드에 적는 이유는 낯설게 하기 효과 때문입니다. 외국어로 접할 때 익숙했던 개념이 낯설어지면서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익숙함은 곧 위험합니다. 물론 서구가 무조건 옳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유럽인들의 제국주의 때문에 인류가 곤혹을 치러왔습니다. 그러나 프란츠 파농의 말처럼 자유, 평등, 연대 같은 정신은 유럽이 인류에 기여한 공헌이기도 합니다)

나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지금 이 시대를 통찰하는 세 가지 개념을 반드시 공부할 것을 요구합니다.
첫째, 포스트콜로니얼리즘 Postcolonialism
둘째,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
셋째, 페미니즘 Feminism
이 세 가지는 이 시대 모든 것과 연결된 개념들입니다. 반드시 공부하시길 권합니다.

서구 역사를 고대, 중세, 근대, 포스트모던으로 구분해 보겠습니다. 고대는 우주가 중심인 시대였습니다. 중세는 신이 중심인 시대였습니다. 근대에 개인이 등장했습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명제는 근대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감히 인간 개인이 생각할 수 있음을 천명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제 ‘나’라는 사유하는 주체 (thinking subject)가 등장했습니다. 포스트모던에서 post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after. 둘째, beyond. 포스트모던 대신 탈근대라는 표현을 쓰면 첫째 의미(after)만 기억하게 됩니다. 그래서 둘째 의미(beyond)도 함께 기억하려는 뜻으로 탈근대라는 말 대신 포스트모던을 사용합니다.

1789년. 여성 참정권이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된 해입니다. (‘일, 칠팔구’로 끊어 읽으면 외우기 좋습니다) 여성이 사유주체에서 발화주체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점차 판단주체로 변화하며 행동주체가 됩니다. 여성이 사유주체에서 발화주체로, 다시 판단주체에서 행동주체로 변화하는 과정이 페미니즘의 역사입니다.

페미니즘은 ‘여성도 인간이다’라는 급진적인 주장이었습니다. 급진적이라는 말은 radical이라고 합니다. radical은 '뿌리로 간다'는 어원을 가졌습니다. Why를 끝까지 캐묻는 작업이 급진적이란 뜻입니다. 하버드대학교는 개교 후 243년 만에 여성 입학을 허용했습니다. 여성이 참정권과 교육권을 얻는데 이토록 오랜 시간과 투쟁이 필요했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언행을 종합해 보면 예수는 종교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는 기독교라는 이름도 몰랐습니다. 예수는 오로지 타자에 대한 책임과 환대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타인을 환대할 수 있는 사람은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자본주의는 환대를 산업화하여 호텔산업으로 변형시켰습니다. 이제 환대는 교환가치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철학자 예수’라는 책을 쓰고 싶어서 목차도 정해 놓았습니다. 기회가 되면 꼭 쓰고 싶습니다.

언어는 의식 세계를 형성합니다. 단어 하나에도 현실이 반영되어 나타납니다. 우리가 아는 they는 2명 이상을 가리키는 3인칭 복수형 대명사 ‘그들’이지만, 2019년 미국의 메리엄 웹스터 사전은 they를 단수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제 he나 she로 구분할 수 없거나 이런 구분을 거부하는 사람을 부르는 3인칭 단수 대명사로 they를 사용합니다.

transman의 상대어는 man이 아니라 cisman입니다. transman의 상대어를 man으로 보면 man은 중심, transman은 주변이 되면서 차별이 발생합니다. cisgender는 타고난 성별과 자신이 선택한 성별이 동일한 사람을 지칭하고, transgender는 타고난 성별과 자신이 선택한 성별이 다른 사람을 지칭합니다.

페미니즘의 출발점은 ciswoman도 인간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페미니즘의 도착점은 ‘모든 사람은 인간이어야 한다’는 급진적 주장입니다. 만일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혐오한다면 이것은 페미니즘이 아닙니다. 모든 인문학의 주제는 ‘나’로부터 시작하여 ‘타자’와 관계 맺는 ‘사회’로 확장됩니다. 그리고 신(beyond being, 너머의 존재)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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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선 드림 (morningstar.yoo@gmail.com)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습니다 시리즈를 좋아하는 분만 초대합니다.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습니다, 스물아홉 번째 이야기
https://blog.naver.com/toniek/221812637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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