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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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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30일 18시 14분 등록

멀리 본 것을 기억할 것

 

 

나는 산이 내게 준 선물들을 매주 이야기하고 있다. 산은 우리를 빈 손으로 내려 보내지 않는다. 요컨대, 산은 나에게, 멀리 가려면 둘러가고, 정상은 한 걸음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다시 오르려 거든 지난 봉우리는 잊어야 하며 같이 오르려 거든 자기희생은 필연적임을 내 귀에 조용히, 그러나 명징하게 속삭인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얻기 힘든 것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오른 이에게 산이 주는 깨달음은 없다. 얻기 힘든 것을 쉽게 얻었다면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얻기 힘든 것을 쉽게 얻으려 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다른 것을 잃는다. 기억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산이 아니라 하늘이 주는 계명이라도 소용없는 것이니.

 

높이 올라가 넓은 시야로 본 것은 초라한 지금을 극복하는 힘이다. 에베레스트(세계 최고봉)와 데날리(북미대륙 최고봉)를 오르며 역설의 현장에서 나는 난해한 부조리와 직면했다. 그것은 마치 삶의 종국에 미리 간 듯했고 나라고 부르는 내가 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이었다. 오르려는 나와 내려가려는 나, 같이 오른 산악인의 죽음에 슬퍼하는 나와 신은 나 대신 그를 선택했다는 생각으로 안도하는 나, 먹으면 속을 뒤집어 놓는다는 걸 알면서 음식만 보면 아귀처럼 달려드는 나, 먹지 않으면 오를 수 없지만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나, 잠이 와 죽을 것 같은 나와 추워서 잠을 잘 수 없는 나, 숨 쉬고 싶은 나와 숨 쉴 수 없는 나, 내 안에 동시에 존재하는 이 어이없는 역설을 부둥켜안고 하늘에 대고 욕지거리 퍼 부으며 신에게 개새끼라 욕하는 나와 조금이라도 두려우면 신에게 엎드려 비열하게 빌고 있는 나.

 

내 안에 있는 동물성을 보았고 내 안에 서식하는 야만성을 보았다. 나조차 내가 구차하고 졸렬한 놈인 줄 미처 몰랐고 내가 하고 있는 생각, 행동을 보며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는 줄 깜짝 깜짝 놀랐다. 내 안에 기생하는 타인을 보았다. 저 멀리 시원에 있는 나라는 인간에게 한 발짝 다가 갈 수 있었던 건 에베레스트가 나에게 보여준 많고 많은 인간 설계도 중 한 페이지였다. 나는 나의 동물성과 야만성과 타인성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나의 야비함을 똑똑히 기억하고 기억해서 내 어깨 위로 오만함이 튀어나오려 할 때, 조금 더 긁어모으려 아귀 눈빛을 보일 때, 남보다 나은 나를 스스로 대견해 하며 겸손을 밥 말아 먹으려 때 에베레스트가 준 설계도를 펴 놓고 하자보수, 재시공에 들어갈 테다.

 

멀리 보는 것은 미리 가보는 것이다. 생의 종국에 미리 가 본 사람은 다시 지금 여기로 돌아와 이 따위로 살 순 없을 테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 사는 게 아니라 다 산다는 것, 그것은 지금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숱한 상처 안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려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몰락을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일찍이 원효는 대승기신론소 별기에서 열반에 이른 자는 열반에 머물 수 없다고 말한다. 생멸生滅에 급급한 삶을 살다 연이 닿아 진여眞如를 알게 되면 다시 생멸의 삶으로 돌아가 진흙에서도 꽃피울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一心二門, 한 가지 마음에 두 개의 문은 언제나 존재하지만, 멀리 본 진여문과, 지금 사는 생멸문을 자유롭게 들락거리기를 나는 바란다.

 

산이 보여주는 것은 많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사실 산의 진심이 아닐지 모른다. 산을 산이게 하는 것은 밤하늘 빽빽하게 흐르는 장구한 은하수도 아니고, 숨막히는 준봉들의 바다도 아니다. 회상해 보건대 산을 산이게 하는 것은 사람, 그것도 먹을 것으로 싸우기도 했고, 차가운 눈밭에 노숙을 하며 내 온기를 빼앗아 가기도 하고, 느린 발을 다그치며 욕지거리 퍼붓기도 했던, 그 존재 자체가 부담이기도 했던 사람, 그러나 자기 한 몸 건사하지도 못하지만 동상으로 썩어 가던 내 발가락 때문에 밤을 지새우고, 자기에게 남은 마지막 물을 기꺼이 내미는 사람이 산을 산이게 한다.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아무런 스크린 없이 오로지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 대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산이 보여주는 위대한 풍광이자 가장 멀리 보여주는 진심이다. 그것이, 산의 영혼이다.



IP *.161.53.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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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5 20:39:08 *.52.45.248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은 그냥 거기에 있다. !" 


한계를 넘어 선  재용님의 세계, 잘은 모르지만 조금은 이해할 수 는 있을 것 같습니다.


가끔씩 고개 들어  저 만치 바라보다가   눈 앞의 오늘,  그 가능한 하루 하루를 몸과 마음을 다해 살았습니다.

 필요한 순간에 힘과 지혜와 용기를 달라고 자신있게 기도할 수 있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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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내 안 깊숙히 다가와  내 안에 누군가를 꿈틀거리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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