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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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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17일 18시 42분 등록
부산진성과 동래성을 접수한 일본군은 조선 침략을 위한 중요한 교두보를 확보했고, 곧 이어 일본의 대군이 조선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런데 서울의 조정은 일본군의 침입을 4월 17일에야 알게 되었다. 일본군의 부산포 도착은 4월 13일 오후이다. 즉시 봉화가 올랐다면 그날 저녁에는 서울 남산의 봉화대에도 불이 밝았을 것이다. 그러나 남산의 봉화대는 조용했다. 봉화대 조직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조정은 허겁지겁 이일(李鎰)을 경상도 지역의 요충지인 상주로 보내 일본군과 맞서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신립(申砬)에게 충주를 지키도록 하여 서울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방어선을 쳤다. 이중 방어선이었다. 이일과 신립은 당시 조선 최고의 장수로 꼽히는 인물들이었다.

문경을 거쳐 상주에 도착한 이일은 서둘러 병사를 모았다. 군대를 정비하며 진을 치는 훈련을 병행했다. 하지만 4월 25일 장천을 통해 상주로 접근한 일본군은 조총을 앞세워 이일의 군대를 급습했다. 모양은 급습이었지만 조선군은 경계도 서지 않은 상태였다. 이일의 방어선은 쉽게 무너졌다. 조총 소리에 놀란 조선군은 도망치기 바빴다. 이일의 군대는 평소 군사 훈련 한 번 받지 않은 800여 명의 농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장수도 병사도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경계를 서지 않을 정도로 군율도 없었다. 이일의 조선군과 일본군의 대결은 오합지졸과 정예병 간의 대결이었던 셈이다. 그러니 완패는 당연한 결과였다.


일본군은 거침없이 북진을 거듭하여 4월 26일 문경을 넘었고 4월 28일에는 충주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신립이 이끄는 8,000여 정예 기병대가 전투를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신립은 ‘새도 넘기 어려운 높은 고개’라는 조령(鳥嶺)의 험준한 지형을 마다하고 탄금대(彈琴臺)에서 배수진을 쳤다. 그러나 이것이 결정적인 실책이었다. 북방 여진족을 상대하던 야전 출신인 신립은 기병대의 힘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로 험난한 지형의 조령을 피했으나 그것은 천혜의 요새지를 스스로 포기한 격이었다. 여러 부하장수들이 조령의 험준함을 이용하여 적의 진격을 막자고 제언했지만 신립은 따르지 않았다. 그가 선택한 탄금대는 주변이 논이 많은 저습지대여서 기병대는 물론 보병들도 기동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며칠 전의 비로 땅은 더욱 질었다. 유성룡이 쓴 ‘징비록(懲毖錄)’에 따르면, ‘일본군은 조령을 앞에 두고 그곳에 조선군이 지키고 있을까 두려워하여 쉽게 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키는 군사가 없다는 것을 안 일본군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지나갔다.

왜 신립은 방어에 유리한 조령의 지형을 이용하지 않고 탄금대를 택한 것일까?

신립은 방어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승리를 원했고, 조선의 조정 역시 승전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조령의 지형을 이용하여 방어전에 돌입한다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일본은 어떻게든 북진을 해야 하고, 조선군은 그들을 막아야 하는 데, 조령은 공격은 불리하고 수비는 유리했다. 일본군이 조령을 넘을 때 매우 신중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령을 넘는 것을 서울 함락의 마지막 관문으로 여겼던 것도 같은 이유다. 당시 조선의 조정은 일본군의 규모나 조총의 위력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전쟁이 터진지 4일이 지나서야 일본의 침략을 알았을 정도이니, 더 볼 것도 없다. 선조는 특별히 신립을 불러 일본군에게 조선의 힘을 보여줄 것을 명했다. 이런 명령을 받은 신립이 장기간의 방어전을 펼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음은 선조실록의 1592년 4월 17일의 기록이다.

상이 친림하여 전송하면서 보검(寶劍) 한 자루를 하사고 이르기를, “이일 이하 그 누구든지 명을 듣지 않는 자는 경이 모두 처단하라. 중외(中外)의 정병을 모두 동원하고 자문감(紫門監: 청사 보수, 각종 기물 제작 등의 일을 맡았던 관청)의 군기(軍器)를 있는 대로 사용하라.”하였다.

만약에 신립이 방어전을 선택했더라도, 머지않아 선조는 돌격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선조는 임진왜란 동안 여러 번 무모한 돌격 명령을 내렸다). 게다가 장기전이 되면, 이미 적의 손에 떨어진 경상도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조정이나 신립이나 ‘하루 빨리 이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몰아내려면 전면전을 피할 수 없었다.

조선의 정예병이었건만 충주 전투는 싱겁게 끝이 났다. 고니시가 이끄는 1만 6천의 일본군은 신립이 허허벌판의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 것을 알고 쾌재를 불렀다. 일본군은 후미에 3,000여명의 조총 부대와 주력군을 숨겨두고 신립을 상대로 유인작전을 펼쳤다. 기마전에 자신감을 갖고 있던 신립은 여지없이 돌격 명령을 내렸고 일본군은 조선군의 포위하여 조총으로 집중 공격했다. 조선군의 머리위로 수천의 조총에서 발사된 탄환들이 조밀한 망을 형성했다. 3천 여명의의 조총 부대가 3발씩만 사격했다고 봐도, 모두 합하면 9천 발이다. 포위된 조선군은 9천 발의 파괴력을 그대로 받았을 것이다. 기병대는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덫에 걸린 노루마냥 꼼짝 못하고 몰살당했다. 신립은 포위를 뚫고 탈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달천 월탄(月灘)가에 이르러 부하를 불러서는 “전하를 뵈올 면목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강에 몸을 던졌다.

신립은 조총의 위력을 얕잡아 보고 무모한 돌격전을 선택했다. 신립은 최소한 전투 전에 일본군에 대한 정찰을 철저하게 해야 했다. 정찰을 제대로 하지 않은 그는 일본군의 규모와 사기, 무기체계 등에 아는 것이 없었다. 부산진성과 동래성, 게다가 이일의 군사들까지 모두가 신무기인 조총에 무너졌다. 그럼에도 신립은 조총을 무시했다. ‘징비록’을 보면, 유성룡이 신립에게 “일본군들은 조총이 있는데 그들을 어떻게 만만히 볼 수가 있단 말입니까?”라고 물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질문에 신립은 다음과 같이 되물었다. “일본군들이 조총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그게 어디 쏠 때마다 명중되겠습니까?” 유감스럽게도, 일본군은 오랜 내전을 통해 기병대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집중 사격 전술을 익히고 있었고 조총은 가늠자와 가늠쇠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유효사거리 내에서 명중률은 상당히 높았다.

신립은 적을 알지 못했다. 적의 강점(1만 3천의 정예 병력과 조총)은 생각지 않았다. 주변의 상황(조령과 탄금대의 지형)도 분석하지 않았다. 부하장수의 말(‘방어하기에는 조령이 최선’)에 귀를 막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강점(기병대)만 보고 임금의 말(‘조선의 힘을 보여주라’)만 기억했다. 한 마디로, 신립은 정보를 수집하지 않았고 분석하지 않았으며,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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