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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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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16일 16시 39분 등록
이일과 신립이 이끈 조선군의 패배로 조선군의 전략은 그 허실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두 번 모두 전투다운 전투를 해보지도 못한 채 전멸하다시피 했다. 이일의 방어선과 신립의 저지선이 돌파 당하자 조선은 그 뒤를 받칠 군대가 없어 일본군의 북상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조선의 조정은 이일의 패전을 4월 26일에, 신립의 패전을 4월 28일에 접했다. 다급해진 조정은 이양원(李陽元)에게 서울 도성을 막게 하고 김명원(金命元)과 신각(申恪)에게 한강 방어선을 구축하게 했다. 하지만 5월 2일 김명원과 신각이 이끄는 7,000여 조선군은 강 건너 일본군의 위협사격에 놀라 달아나는 바람에 한강 방어선도 별다른 저항도 없이 붕괴되었다.

4월 30일 마침내 선조는 피난길에 올랐다. 당시의 상황은 혼란 그 자체였다. 다음은 당시 선조실록의 기록들 중 일부를 모은 것이다.

이때 도성의 백성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으므로 도성을 고수하고 싶어도 그럴 형편은 못되었다.
- 1592년 4월 28일

인심이 위구(危懼)해 하자 상이 대신들에게 이르기를, “세성(歲星: 목성)이 있는 나라를 치는 자는 반드시 그 재앙을 받는다고 하였는데, 이제 세성이 연분(燕分)에 있으니 적은 반드시 자멸할 r서이다.”하고 또 전교를 내려 안심시켰다.
- 1592년 4월 28일

선조는 민심을 잃었다. 민심이 떠나가고 있음에도, 고작 점성술로 안심 시키려고 하였다.

이때 파천(播遷: 임금이 도성을 떠나 난이나 전쟁을 피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결정되어 종실 해풍군 기(耆) 등 수십 명이 문을 두드리고 통곡하니, 상이 전교하기를, “가지 않고 마땅히 경들과 더불어 목숨을 바칠 것이다.” 하였다. 이에 그들이 물러갔다.
- 1592년 4월 29일

선조는 이미 피난 갈 생각을 굳혔다. 그럼에도 종친 대표들에게 지키지도 못할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런 선조를 믿고 따를 백성이 어디 있겠는가.

이날 호위하는 군사들은 모두 달아나고, 궁문(宮門)엔 자물쇠가 채워지지 않았으며, 금루(禁漏)는 시간을 알리지 않았다.
- 1592년 4월 29일

새벽에 상이 인정전에 나오니 백관들과 인마(人馬) 등이 대궐 뜰을 가득 메웠다. 이날 온종일 비가 쏟아졌다. 상과 동궁은 말을 타고 중전 등은 뚜껑 있는 교자를 탔는데, 홍제원에 이르러 비가 심해지자 숙의(淑儀) 이하는 교자를 버리고 말을 탔다.
궁인들은 모두 통곡하면서 걸어서 따라갔으며, 종친과 호종하는 문무관은 그 수가 1백 명도 되지 않았다. 점심을 벽제관에서 먹는데, 왕과 왕비의 반찬은 겨우 준비되었으나 동궁은 반찬도 없었다. (...) 저녁에 임진강 나루에 닿아 배에 올랐다. 임금이 신하들을 보고 엎드려 통곡하니 좌우가 눈물을 흘리며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 밤은 칠흑같이 어두운데 한 개의 등촉도 없었다. (...) 백관들은 굶주리고 지쳐 촌가에 흩어져 잤는데 강을 건너지 못한 사람이 반이 넘었다.
- 1592년 4월 30일

임금이 신하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정도로 당시 상황은 참담했다. 더 어이없는 것은 당시 조정은 피난 준비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할 정도로 무능했다는 점이다.

선조가 서울을 버리고 이틀 후 일본군은 한 번의 전투 없이 서울을 접수하는 데 성공했다. 5월 2일 고니시의 제1군이 동대문에 도달했고, 뒤이어 5월 3일 가토의 제2군도 남대문에 도착했다. 일본군도 예상치 못할 정도로 빠른 입성이었다.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면서 서울을 수도로 한지 200년 만의 일이다. 다음은 당시 상황을 기록한 선조실록 5월 3일의 기록이다.

적이 흥인문(興仁門) 밖에 이르러 문이 활짝 열려 있고 시설이 모두 철거된 것을 보고 의심쩍어 선뜻 들어오지 못했다. 10여 명의 군사를 뽑아 입성시킨 뒤 수십 번 탐지하고 종루까지 이르러 군병이 한 사람도 없음을 확인한 뒤 입성했다. 일본군 병사들은 발들이 죄다 부르터서 걸음을 겨우 옮기는 형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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