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우리가 도착한 곳은 경기도 양평의 한 펜션이었다. 한 인생 컨설팅사가 주관한 꿈 찾기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이다. 기자를 포함해 여자 셋, 남자 셋. 나이도 이력도 다 다른 사람들이었다. 이제 우리는 금연(禁煙).금주(禁酒)하며 오래 가슴을 짓눌러온 해묵은 과제들과 정면 대결할 것이다. 포도단식도 할 예정이라 레몬과 거봉 포도, 야채 등을 부엌으로 나르는 것이 첫째 일이 됐다

먼저 레몬즙부터 한 컵씩 마셨다. 오후 2시. 아침부터 굶은 터라 시디신 레몬즙도 넘길 만했다. 한 시간에 한 잔씩 1.5ℓ 한 병을 다 마셔야 했다. 짧은 단식을 위한 일종의 워밍업이었다. 둘러앉아 처음 한 일은 '내 사연 말하기'. 비로소 알게 된 참가자들의 면면은 이랬다.
  • 김진철. 48세. 중소기업 관리이사 "언젠가부터 '이렇게 살아도 될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아요. 그때그때 환경에 순응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죠. 마흔 넘어 가진 신앙이 큰 힘이 되고 있지만 문득문득 생애 마지막 모험을 떠나고 싶은 욕심 을 가누기 힘드네요."
  • 김영훈. 37세. '백수' "대기업 직원이었지만 늘 구조조정의 위기 속에 살았어요. 아들 쌍둥이가 태어나니 더럭 겁이 나데 요. 궁리 끝에 투자 공부를 시작했죠. 노력한 덕분인지 제법 수익을 낼 수 있었어요. 3개월 전 회사가 명예퇴직을 받기에 그 돈 믿고 사표를 냈지요. 지금은 배터리를 방전하는 중이에요."
  • 박소영(가명). 27세. 대기업 근무 "제 업무가 교통사고 손해사정이라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에요. 고3 시절, 서울대에 다니던 오빠가 오토바이 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됐어요. 입도 닫혔죠. 전 졸지에 집안의 기둥이 됐고요. 대학 졸업 뒤 서둘러 취직했어요. 적성이니 뭐니 따질 여유가 없었죠. 이젠 제법 유능한 직장인이지만 마음은 종종 먼 데를 떠돌아요. 더 슬픈 건 하고 싶은 일이 뭔지조차 모른다는 거예요."
  • 김준호(가명). 41세. 중견기업 팀장 "대기업 이벤트팀, 벤처 창업을 거쳐 지금 자리까지 왔어요. 평소 관심 있던 경영 혁신 업무를 맡아 나름대로 인정도 받고 있지만 이런 날이 오래 가리란 생각은 하지 않아요. 전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경험과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참 즐겁거든요. 언제나 월급쟁이 생활에서 벗어나 내 꿈대로 살 수 있을까요."
  • 강미영. 28세. IT 회사 근무 "부모님의 강권으로 고향 제주에서 대학을 나왔어요. 늘 대처가 그리웠죠. 졸업하던 해 가출 하듯 서울로 가 웹 에이전시에 취직했어요. 회사가 어려워져 임용고시 준비도 해봤지만 잘 안 됐죠. 집에 돌아와 있다 지금 회사에 들어간 거예요. 의욕은 많고 아이디어도 넘치는데 방향을 못 잡겠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물론이고요."

듣다 보니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왕성한 독서욕, 자아 실현에 대한 강렬한 욕망, 꿈을 못 이루는 것보다 꿈이 뭔지도 모르 는 게 더 괴로운 일이 라는 자각. 함께 배고픔을 참으며 속 생각을 나누는 동안 우리 사이엔 어느새 깊은 친밀감이 번졌다. 인생 2막 패스워드 꿈 2박3일 검색작전

10년 뒤의 나는...
3개의 원에 적힌 것은 첫날 각 참석자가 '마음 가는대로' 택한 직업들이다. 이후 심리검사와 토론 등을 통해 참석자들은 새 직업을 자신의 최종비전 으로 정했다.

전날 밤엔 오후 10시도 되기 전 잠자리에 들었다. 힘든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몹시 피곤했다. 단식으로 인한 일종의 명현현상(균형을 잃었 던 몸이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증상이 악화되거나 엉뚱한 반응이 나타나는 것)인 듯했다. 흡연자인 김준호씨가 가장 힘들어 했다.

오늘은 본격적인 포도 단식의 날. 오전 8시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거봉 포도를 10알씩 먹었다. 허기가 몰려왔다. 우리가 매일 먹고 배출 하는 양이 엄청남을 절감했다.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발버둥쳐 온 삶' 에 대해서도 각자 생각이 많은 것 같았다.

우리는 몇 가지 일을 더 했다. 각자 머리에 떠오르는 직업 15개씩을 적어 내놓고, 이어 지금은 없지만 언젠가 생길지도 모르는 직업 13개 씩을 더 보탰다. 모두 168개. 그중 실현 가능성을 떠나 '마음을 건드 리는 직업' 3개씩을 골랐다. 그리고 서로 겹쳐진 세 개의 원에 하나씩 적어 넣었다.

점심 무렵 심리상담가인 SMI코리아-드림빌더 유관웅 대표가 왔다. 참가자들은 일주일 전, 인터넷을 통해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테스트를 받은 터였다. MBTI는 카를 융의 심리 유형론을 근거로 고안된 성격유형 검사. 유 대표는 사람당 A4용지 10~15장에 달하는 분석 내용을 근거로 개별 면담에 들어갔다.

대화를 마치고 나온 이들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누군가는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을 털어버리지 않고는 독선적 인간이 되고 말 것"이란 섬뜩한 얘길 들었다. 또 다른 이에겐 "타고난 예술적 감수성을 평생 억누르며 살아왔다. 이젠 그만 자신을 놓아 주라"는 충고가 돌아왔다. 애써 덮어놓은 상처를 들쑤시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도려내지 않고서 어찌 치유를 바라 겠는가.

오후 7시. 본격적인 '꿈 발표회'가 시작됐다. 김진철씨는 "어부가 돼 선교 활동을 하며 글도 쓰고 싶다"고 했다. 첫 인상대로라면 우리는 그의 선택에 문제가 있다고 했을 것이다. 소심하고 무뚝뚝한 데다 갈 데 없는 책상물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는 매우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이미 시집 두 권을 자비출판했고, 기독교 신자로서 초심자 그룹을 이끄는 멘토 역할 또한 훌륭히 해내고 있 었다.

우리는 그에게 "생계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있느냐, 이왕 어부를 할 거면 베트남이나 태국 같은 동남아 지역에 가보라"는 제안을 했다. 원활한 집필 활동을 위해 정식 등단 절차를 밟고, 육체노동을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체력을 기르며, 여름휴가 중 가족들과 이주 예상지를 돌아보라는 조언도 했다.

김영훈씨는 "'행복 투자클럽' 운영자이자 재무설계사가 될 것"이라 했다. 투자자들이 맘 편히 들러 정보도 얻고 차도 마실 수 있는 '행복 투자카페'도 운영하고 싶다 했다. 김준호씨는 '미래경영 전문가'란 직함을 내놓았다. '상상력발전소장'이란 것도 있었다. "개인과 조직의 미래를 아름답게 디자인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갈고닦은 경영혁신 노하우와 글솜씨를 바탕 삼아 경영우화집을 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 말했다.

'프렌드 메이커'가 되겠다고 나선 강미영씨는 "가만 생각해 보니 내 바람은 사람들에게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을 선물해 주는 것"이라 했다. 직장 다니는 틈틈이 바텐더 교육을 받고 돈도 열심히 모아 언젠가 친구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카페를 열리라 다짐했다. '추억 관리'를 화두로 한 새 비즈니스 모델 창출에도 관심이 컸다.

박소영씨는 여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가 처음 고른 세 직업 엔 연관성이 없었다. "커피숍 주인이 그중 가장 현실적인 것 같다"며 영 자신 없어 했다. 누군가 말했다. "소영씨는 지금 하는 일이 너무 힘드니 무조건 쉴 수 있는 곳,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찾는 것 같 아. 그러지 말고 강한 리더십과 철저한 일처리 솜씨를 살려 보는 쪽으 로 다시 고민해 보면 어때요?"

박소영씨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손해사정 업무의 전문성을 살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의논했다. 그는 "눈앞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라 했다. 누군가 "강미영씨와 박소영씨는 아직 20대"라며 "혼란스러운 것이 당연하고, 그 혼란으로 인해 두 사람의 10년 뒤는 또래 그 누구의 그것보다 안정적일 것"이라고 다정히 토닥였다.

아침에 잡곡밥을 했다. 죽염으로 살짝 간한 야채 전골과 함께였는데 도무지 먹히지가 않았다. 과일로만 살살 달래놓은 배 속이 곡기를 거부하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둘러앉아 어젯밤 숙제 삼아 써놓은 글들을 발표했다. 이름하여 '10대 풍광-미래에 대한 회고'. 2016년의 내가 돼 지난 10년을 돌아보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2006년 이후 매해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를 10개의 장면으로 축약해 보여 주었다.

글 속에서 다섯 명의 남녀는 한껏 자유로웠다. 아름답고 자신감에 넘쳤다. 누군가는 "베트남 바닷가 2층 집에서 새벽 기도를 마친 뒤 산책을 하고", 누군가는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 줄 성공박물관을 개장"하며, 다른 이는 "한국인의 놀이 문화에 대한 책을 완성"했고, 또 다른 이는 "비즈니스 역량을 한껏 살려 굴지의 커피전문점 체인을 이끌고" 있었다.

서울로 출발하기 전 감자.고구마로 점심식사를 했다. 어느새 우리는 십년지기처럼 가까운 사이가 돼 있었다. 어떤 질투도 콤플 렉스도 없는, 순진하고 신뢰로 가득한 우정. 그러니 그냥 흩어질 수 있는가. 우리는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이름은 '참깨'라 정했다. '참으로 깨어라, 참답게 깨어라, 열려라 참깨!' 서로의 꿈이 활짝 열리기를, 늘 처음처럼 따뜻하기를, 돌아보면 행복한 10년이기를 간절히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