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우리가 도착한 곳은 경기도 양평의 한 펜션이었다. 한 인생 컨설팅사가 주관한 꿈 찾기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이다. 기자를 포함해 여자 셋, 남자 셋. 나이도 이력도 다 다른 사람들이었다. 이제 우리는 금연(禁煙).금주(禁酒)하며 오래 가슴을 짓눌러온 해묵은 과제들과 정면 대결할 것이다. 포도단식도 할 예정이라 레몬과 거봉 포도, 야채 등을 부엌으로 나르는 것이 첫째 일이 됐다
듣다 보니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왕성한 독서욕, 자아 실현에 대한 강렬한 욕망, 꿈을 못 이루는 것보다 꿈이 뭔지도 모르 는 게 더 괴로운 일이 라는 자각. 함께 배고픔을 참으며 속 생각을 나누는 동안 우리 사이엔 어느새 깊은 친밀감이 번졌다. 인생 2막 패스워드 꿈 2박3일 검색작전
10년 뒤의 나는...
3개의 원에 적힌 것은 첫날 각 참석자가 '마음
가는대로' 택한 직업들이다. 이후 심리검사와 토론
등을 통해 참석자들은 새 직업을 자신의 최종비전
으로 정했다.
전날 밤엔 오후 10시도 되기 전 잠자리에 들었다. 힘든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몹시 피곤했다. 단식으로 인한 일종의 명현현상(균형을 잃었
던 몸이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증상이 악화되거나 엉뚱한
반응이 나타나는 것)인 듯했다. 흡연자인 김준호씨가 가장 힘들어
했다.
오늘은 본격적인 포도 단식의 날. 오전 8시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거봉 포도를 10알씩 먹었다. 허기가 몰려왔다. 우리가 매일 먹고 배출
하는 양이 엄청남을 절감했다.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발버둥쳐 온 삶'
에 대해서도 각자 생각이 많은 것 같았다.
우리는 몇 가지 일을 더 했다. 각자 머리에 떠오르는 직업 15개씩을
적어 내놓고, 이어 지금은 없지만 언젠가 생길지도 모르는 직업 13개
씩을 더 보탰다. 모두 168개. 그중 실현 가능성을 떠나 '마음을 건드
리는 직업' 3개씩을 골랐다. 그리고 서로 겹쳐진 세 개의 원에 하나씩
적어 넣었다.
점심 무렵 심리상담가인 SMI코리아-드림빌더 유관웅 대표가 왔다.
참가자들은 일주일 전, 인터넷을 통해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테스트를 받은 터였다. MBTI는 카를 융의 심리 유형론을
근거로 고안된 성격유형 검사. 유 대표는 사람당 A4용지 10~15장에
달하는 분석 내용을 근거로 개별 면담에 들어갔다.
대화를 마치고 나온 이들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누군가는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을 털어버리지 않고는
독선적 인간이 되고 말 것"이란 섬뜩한 얘길 들었다. 또 다른 이에겐
"타고난 예술적 감수성을 평생 억누르며 살아왔다. 이젠 그만 자신을
놓아 주라"는 충고가 돌아왔다. 애써 덮어놓은 상처를 들쑤시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도려내지 않고서 어찌 치유를 바라
겠는가.
오후 7시. 본격적인 '꿈 발표회'가 시작됐다. 김진철씨는 "어부가 돼
선교 활동을 하며 글도 쓰고 싶다"고 했다. 첫 인상대로라면 우리는
그의 선택에 문제가 있다고 했을 것이다. 소심하고 무뚝뚝한 데다
갈 데 없는 책상물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는
매우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이미 시집 두 권을 자비출판했고, 기독교
신자로서 초심자 그룹을 이끄는 멘토 역할 또한 훌륭히 해내고 있
었다.
우리는 그에게 "생계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있느냐, 이왕 어부를
할 거면 베트남이나 태국 같은 동남아 지역에 가보라"는 제안을 했다.
원활한 집필 활동을 위해 정식 등단 절차를 밟고, 육체노동을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체력을 기르며, 여름휴가 중 가족들과 이주 예상지를
돌아보라는 조언도 했다.
김영훈씨는 "'행복 투자클럽' 운영자이자 재무설계사가 될 것"이라
했다. 투자자들이 맘 편히 들러 정보도 얻고 차도 마실 수 있는 '행복
투자카페'도 운영하고 싶다 했다. 김준호씨는 '미래경영 전문가'란
직함을 내놓았다. '상상력발전소장'이란 것도 있었다. "개인과 조직의
미래를 아름답게 디자인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갈고닦은 경영혁신 노하우와 글솜씨를 바탕 삼아 경영우화집을 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 말했다.
'프렌드 메이커'가 되겠다고 나선 강미영씨는 "가만 생각해 보니 내
바람은 사람들에게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을 선물해 주는 것"이라
했다. 직장 다니는 틈틈이 바텐더 교육을 받고 돈도 열심히 모아
언젠가 친구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카페를 열리라 다짐했다. '추억
관리'를 화두로 한 새 비즈니스 모델 창출에도 관심이 컸다.
박소영씨는 여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가 처음 고른 세 직업
엔 연관성이 없었다. "커피숍 주인이 그중 가장 현실적인 것 같다"며
영 자신 없어 했다. 누군가 말했다. "소영씨는 지금 하는 일이 너무
힘드니 무조건 쉴 수 있는 곳,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찾는 것 같
아. 그러지 말고 강한 리더십과 철저한 일처리 솜씨를 살려 보는 쪽으
로 다시 고민해 보면 어때요?"
박소영씨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손해사정 업무의 전문성을 살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의논했다. 그는 "눈앞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라
했다. 누군가 "강미영씨와 박소영씨는 아직 20대"라며 "혼란스러운
것이 당연하고, 그 혼란으로 인해 두 사람의 10년 뒤는 또래 그 누구의
그것보다 안정적일 것"이라고 다정히 토닥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