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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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지 않으면 변화가 아니다
변화는
달콤한 과정만으로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변화 속에는
늘 피의 냄새가 난다.
형태상으로 아주 부드러운 변화도 있다.
코코 샤넬은 화장품의 개념을 바꿈으로써
부드럽고 향기로운 혁명을 만들었다.
그러나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든,
혁명은 언제나 기존의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만 가능하다.
그것은 당황스럽고 길을 잃게 하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 과정에서 늘 과거와의
분쟁이 그치지 않는다.
사랑만큼 우리를 달라지게 하는 것도 없다.
사랑에 빠지면서 눈조차 멀게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사랑이야말로 많은 흥분과 미움과 증오와
눈물로 짜여진 옷감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변화는 자신에 대한 치열한 사랑이다.
치열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다.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구본형, 휴머니스트, 336
거미 / 이면우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 이슬 반짝이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 오다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 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 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 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창비,2007
* 보내주신 시(時), 몇번이나 읽었는데... 좋습니다!
'밥'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는 '거미'가 처연하고, 애닮게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밥은 사부님 말씀대로 치열하고, 진지한 것 같습니다.
암튼 잠자리든, 파리든... 많이 잡고 싶은 세속적 욕망이 꿈틀거리네요.
요즘 왜 이리 안잡히는지... 잠자리채 하나를 새로 구입해야겠습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