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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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2일 09시 54분 등록
pre-book fair (하루)


1. 저자 소개

도 명수. 한 공기업의 평범한 직장인이다. 중견 관리자로서 제도와 규범에 익숙해 있어야할 사람이다. 그러나 스스로 이에 억매이길 거부한다. 규율과 틀에서 벗어나 변화를 즐기길 좋아한다. 통념적 사고를 지닌 직장인의 눈에는 달리 보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추구하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을 더 즐긴다. 평범하고 고루한 삶을 추구하기 보다는 색다른 삶을 갈구한다. 상상의 나래를 펴며 미래로 가기보다는 미래를 다가오게 만든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 사회의 한가운데서 제2의 인생을 꿈꾸는 사람이다. 평생직장의 개념을 탈피하고 만년의 유희를 준비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 첫발걸음이 글과 친밀해지는 일이다. 글의 핵심요소인 글자들의 내면을 훑어 작가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한 사람이다. 인생을 걸어가는 모습은 다양하다. 하지만 어떻게 걸을지를 결정하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그 몫에 작가를 불러들였다. 조금 늦었다 해서 탓할 이유는 없다. 과거에 비축한 지식과 경험이 미래로 향하는 토양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사고로 가득하다. 세상의 밝은 면으로 빛을 발휘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삶의 90%는 어둠과 암흑으로 차있다. 10%만이 빛나는 태양이거나 어둠을 밝히는 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지불식간 어두운 밤을 선호한다. 밤하늘을 지키는 희미한 별조차 거부하려 한다. 이래서는 밝은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드높은 하늘의 빛과 밤을 밝히는 별이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인간의 위대한 창조물인 문자로부터 좋은 글자를 찾아 이를 각색한 책으로 승부를 건다.

인간은 빈 잔과 같다. 잔에 담긴 빛깔로 인해 인간의 품격은 결정된다. 품격 높은 글자를 잔에 담아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한 사람이다. 궁극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의 명수로 남길 바란다. 저자의 진면목이 여기에 있다. 저자는 향기를 품고 산다. 그래서 한 번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2. 주제 : 나는 왜 이 책을 쓰려고 하나?

사람에게 주어진 소중한 하루를 통해 풍요롭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의 발로에서 시작했다. 두 가지 가정을 전제하고 이 책을 쓰려한다. '첫째가 행복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둘째는 행복을 목표로 삼지 말라.'가 그것이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한다. 그러나 의외로 불행한 사람들이 많다. 세상이 행복한 환경과 조건만을 제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행복에 이르는 길에는 많은 장애물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은 외부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명예와 물질적 부가 행복을 보장한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행복을 언제까지 얻겠다는 목표의 대상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행복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행복은 지금 이 순간에서 얻어진다. 또한 행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내면에서 온다. 행복은 지금 행복한 느낌을 갖고 있으면 찾을 수 있기에 언제까지 달성해야 하는 목표는 아닌 것이다.

행복을 여는 열쇠는 오늘 주어진 하루에 있다. 하루를 보내는 방법에 따라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도 하고 불행한 삶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인간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오늘이 불행하기 때문이다. 오늘 이 하루가 즐겁고 희망차다면 불행은 인간에서 멀어진다.

하루를 행복으로 수놓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긍정적 사고를 가져라. 생각을 크게 하라. 몰입의 즐거움을 느껴라. 잠재의식의 힘을 믿어라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지만 행복은 추상적인 느낌만으로는 절대 찾아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시적이고 단세포적이다. 지금 주어진 24시간을 자신에게 가장 좋은 감정을 유발해 주는 글자와 친숙할 때 채워질 수 있다는 신념이 이 책을 집필하게 만든 결정적 이유이다.

이 책은 365개의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 세상에 모습을 보인 소중한 글자 365개를 골랐으며 독자는 하루 한 글자씩 가슴에 담아 좋은 감정과 정서를 이끌어내기만 하면 된다. 좋은 감정과 정서는 정신적 포만감을 통해 육체적 행동으로 인도한다. 하루를 보람 있고 정갈한 결실로 안내한다. 하루로 그쳐서는 달성할 수 없다. 지속적으로 한 달 아니 일 년간 실천해야 삶의 에너지가 샘솟는 느낌을 가진다. 사람은 과거의 환경과 경험으로 인해 글자가 주는 영향력을 충분히 알고 있다. 다만 영향력을 주는 글자가 어떤 것인지 모를 뿐이다.

이제 글자의 힘을 믿고 이를 찾아 작은 내면의 변화를 통해 행복에 이르는 색다른 체험을 해볼 필요가 있다. 저자가 제시한 글자는 통념적 기준에 의거해 찾은 좋은 글자이지만 예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의 글자와 독자가 필요로 하는 글자와 비교하면서 365일을 지나보면 글자가 주는 연상과 상상력으로 인해 내면의 변화를 겪고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글자에서 얻어진 작은 변화가 큰 행복에 이르는 길이 되리라는 확신을 독자들에게 심어주는 일이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3. 제목

하루(Haroo)-작은 변화를 통한 큰 행복 찾기

4. 목차

글머리

1월 : 풀뿌리와의 만남(코리아니티를 찾아서)
① 개천절
② 구정
③ 국보
④ 금수강산
⑤ 단군
⑥ 대한민국
⑦ 동방예의지국
⑧ 명당
⑨ 명절
⑩ 무궁화
⑪ 미풍양속
⑫ 백두대간
⑬ 백두산
⑭ 백의민족
⑮ 삼천리
⑯ 상부상조
⑰ 선비
⑱ 신토불이
⑲ 애국가
⑳ 얼
㉑ 우리
㉒ 정
㉓ 조국
㉔ 추석
㉕ 태극
㉖ 한겨레
㉗ 한글
㉘ 화랑
㉙ 홍익인간
㉚ 효
㉛ 흥

2월 : 자연과의 대화(인간을 살찌우는 토대)
① 길
② 꽃
③ 땅
④ 무릉도원
⑤ 물
⑥ 바다
⑦ 배산임수
⑧ 벽계수
⑨ 별
⑩ 보석
⑪ 봄
⑫ 불
⑬ 뿌리
⑭ 사군자
⑮ 산
⑯ 샘
⑰ 숲
⑱ 싹
⑲ 씨
⑳ 알
㉑ 양지
㉒ 열매
㉓ 요산요수
㉔ 우주
㉕ 은하
㉖ 주옥
㉗ 징검다리
㉘ 태양
㉙ 하늘
㉚ 향기
㉛ 흙

3월 : 내면을 밝히는 창(나를 찾고 키우기 위해)
① 가치관
② 감성
③ 강점
④ 계몽
⑤ 계발
⑥ 균형
⑦ 극기
⑧ 긍정
⑨ 기개
⑩ 끈기
⑪ 능동
⑫ 도덕
⑬ 목적의식
⑭ 몰입
⑮ 반성
⑯ 사색
⑰ 성실
⑱ 성찰
⑲ 신념
⑳ 원칙
㉑ 인격
㉒ 인내
㉓ 자아실현
㉔ 잠재력
㉕ 절제
㉖ 정념
㉗ 정직
㉘ 중용
㉙ 진리
㉚ 진실
㉛ 청렴

4월 : 인간관계를 맺는 길(나를 넓히기 위해)
① 감사
② 감정이입
③ 격려
④ 겸손
⑤ 경청
⑥ 공감
⑦ 공명
⑧ 관포지교
⑨ 만남
⑩ 배려
⑪ 보은
⑫ 봉사
⑬ 상담
⑭ 설득
⑮ 솔선수범
⑯ 신뢰
⑰ 약속
⑱ 양보
⑲ 용서
⑳ 유대감
㉑ 유종지미
㉒ 유연성
㉓ 융화
㉔ 의리
㉕ 정성
㉖ 축하
㉗ 친절
㉘ 칭찬
㉙ 포용
㉚ 협동
㉛ 후원

5월 : 미래를 여는 문(신천지를 향하여)
① 개척
② 꿈
③ 날개
④ 다양성
⑤ 등불
⑥ 디자인
⑦ 문명
⑧ 민주주의
⑨ 발명
⑩ 번영
⑪ 복지국가
⑫ 부흥
⑬ 상상
⑭ 서광
⑮ 선견지명
⑯ 선진
⑰ 소원
⑱ 역사
⑲ 예언
⑳ 운명
㉑ 인류
㉒ 자유
㉓ 지상낙원
㉔ 창의
㉕ 탐험
㉖ 통일
㉗ 평등
㉘ 평화
㉙ 혜안
㉚ 희망

6월 : 삶의 활력소(생의 비타민)
① 경사
② 글
③ 기쁨
④ 낭만
⑤ 놀이
⑥ 도우미
⑦ 독서
⑧ 돈
⑨ 매력
⑩ 명랑
⑪ 미소
⑫ 보람
⑬ 복
⑭ 부
⑮ 비결
⑯ 산책
⑰ 생기
⑱ 성공
⑲ 슬기
⑳ 승리
㉑ 여유
㉒ 오복
㉓ 웃음
㉔ 음악
㉕ 일
㉖ 재미
㉗ 춤
㉘ 취미
㉙ 풍요
㉚ 행운
㉛ 휴식

7월 : 내안의 보금자리(나를 감싸는 보물)
① 가족
② 가훈
③ 결혼
④ 고향
⑤ 그리움
⑥ 다정
⑦ 동반자
⑧ 마음
⑨ 만수무강
⑩ 명문
⑪ 명예
⑫ 모정
⑬ 미덕
⑭ 백년해로
⑯ 벗
⑰ 사랑
⑱ 생일
⑲ 수신제가
⑳ 아내
㉑ 애정
㉒ 양심
㉓ 온유
㉔ 우정
㉕ 집
㉖ 책
㉗ 천사
㉘ 축복
㉙ 한마음
㉚ 행복
㉛ 화목

8월 : 육체의 향연(정신을 지탱하는 기둥)
① 가슴
② 간
③ 건각
④ 건강
⑤ 고동
⑥ 기운
⑦ 농염
⑧ 눈
⑨ 도보
⑩ 두뇌
⑪ 땀
⑫ 머리
⑬ 몸
⑭ 미인
⑮ 박수
⑯ 박장대소
⑰ 발
⑱ 백미
⑲ 뼈
⑳ 살
㉑ 손
㉒ 숨
㉓ 심장
㉔ 얼굴
㉕ 입
㉖ 젖
㉗ 정력
㉘ 체력
㉙ 피
㉚ 회춘
㉛ 힘

9월 : 가슴에 남는 기억(아련한 과거 속으로)
① 감격
② 거북선
③ 건국이념
④ 국가
⑤ 금강산
⑥ 대상
⑦ 동창
⑧ 맛
⑨ 멋
⑩ 명심보감
⑪ 명언
⑫ 모교
⑬ 묘수
⑭ 민족혼
⑮ 보름달
⑯ 불사이군
⑰ 불세출
⑱ 상아탑
⑲ 선배
⑳ 순국선열
㉑ 스승
㉒ 신혼
㉓ 애인
㉔ 어머니
㉕ 연애
㉖ 은인
㉗ 좌우명
㉘ 청춘
㉙ 추억
㉚ 편지
㉛ 훈장

10월 : 물에 비친 자화상(나의 모습과 이상향)
① 군자
② 귀감
③ 대기만성
④ 명관
⑤ 명필
⑥ 박사
⑦ 성인
⑧ 애국자
⑨ 영웅
⑩ 영재
⑪ 왕
⑫ 위인
⑬ 유망주
⑭ 인재
⑮ 일류
⑯ 자선가
⑰ 자주성가
⑱ 주역
⑲ 지도자
⑳ 천재
㉑ 천하일색
㉒ 청백리
㉓ 청출어람
㉔ 총아
㉕ 출세
㉖ 충신
㉗ 쾌남
㉘ 풍운아
㉙ 현인
㉚ 혜성
㉛ 호걸

11월 : 행동을 이끄는 힘(나를 움직이는 동기)
① 개선
② 결단
③ 대담
④ 도전
⑤ 동기부여
⑥ 박력
⑦ 백절불굴
⑧ 사기
⑨ 신화
⑩ 야망
⑪ 열정
⑫ 용기
⑬ 일취월장
⑭ 의지
⑮ 자부심
⑯ 적극
⑰ 정의감
⑱ 직관
⑲ 진취
⑳ 집념
㉑ 추진력
㉒ 쾌거
㉓ 탁월성
㉔ 투지
㉕ 패기
㉖ 포부
㉗ 확신
㉘ 활력
㉙ 혁신
㉚ 혁명
㉛ 호기심

12월 : 나눔의 정신(베푸는 삶)
① 구원
② 기여
③ 기부금
④ 밀알
⑤ 박애주의
⑥ 보시
⑦ 부조
⑧ 분배
⑨ 산화
⑩ 살신성인
⑪ 선린
⑫ 선행
⑬ 시혜
⑭ 십시일반
⑮ 안배
⑯ 알선
⑰ 역지사지
⑱ 원조
⑲ 위문
⑳ 음덕
㉑ 이바지
㉒ 이심전심
㉓ 이타주의
㉔ 자비
㉕ 자선
㉖ 정담
㉗ 찬조
㉘ 헌신
㉙ 헌혈
㉚ 협찬
㉛ 희생

마무리

부록 : 1. 좋은 말 사전
2. 좋은 말 달력

5. 서문 (초안, 독자에게 던지는 첫마디 )

좋은 글자는 좋은 정서와 감정을 일으키고 긍정의 힘을 발휘하게 한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달리 문자의 발명을 통해 말을 하거나 글자를 가지게 된 유일한 동물이다. 이로 인해 다른 생명체가 경험치 못한 문명세계를 찬란하게 꽃피운다. 바야흐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런 배경에는 글자가 주는 막대한 가치 때문이다. 우선 글자는 서로 의사전달을 가능하게 한다. 일부 동물도 자신들만의 의사전달수단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단순하며 본능적인 소리에 의존한다. 인간이 쓰고 있는 언어나 글자에 버금가는 수단을 찾을 길이 없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글자는 분명하고 확실한 의사전달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이것이 글자가 주는 첫 번째 매력이다.

둘째, 글자는 지식축적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이 오늘날까지 찬란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글자가 주는 가치에 힘입은 바 크다. 축적된 지식을 글자를 통해 후손에게 남기거나 전해줄 수 있었기에 인간은 진보와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다.

셋째, 글자는 인간을 계발시키는 절대적인 수단으로 작용했다. 스스로 나아질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는 문명국이라 말하는 선진국에서 문맹률이 낮다는 사실이 입증해 준다. 만일 인간이 글자를 체득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다른 동물 수준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글자는 인간을 개명(開明)시키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인간능력의 무한성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글자는 내면에 보이지 않는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자는 수천 년 동안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인간의 삶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 글자에도 깊이와 넓이 그리고 무게가 있으며, 철학과 사고와 생각의 차이를 가져오고, 선과 악을 구별해주며, 이로움과 해로움 그리고 좋고 그름을 판별해 준다. 특히 글자 자체에서 보이는 힘의 차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힘을 가진 글자와 그렇지 못한 글자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따라 인간의 삶이 확연히 구별된다는 사실은 더 이상 예스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우수한 글자를 보유한 몇 안되는 민족이다. 지리적으로 동북아에 위치해 있음에도 중국의 한자문화권에서 벗어나 순수 우리 글자를 가질 수 있었던 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글자의 보유는 한 나라의 주체성을 길러주고, 민족의 자긍심을 갖게 하며 찬란한 민족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 글자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담아 쉽게 만들어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표의문자인 한자와 달리 표음문자인 한글은 자․모음으로 이루어져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자로 알려져 있다. 글자의 접근용이성은 누구나 글자의 가치를 쉽게 체득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하지만 장점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글자의 힘을 느끼지 못하는 듯싶다. 바쁜 일상에 쫓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접하는 글자에 대해 스스로 인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글자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루 종일 글자를 읽고 쓰지만 의미 없게 흘러 보내고 있다. 각종 매스컴을 통해 쏟아지는 글자의 우산 속에서 의미를 찾는 일은 부질없어 보인다. 일과 중 글자와 부딪히는 일이 다반사인데 그 속에 어떤 의미를 갖는다는 생각은 불필요하기 짝이 없다.

늘 부딪히는 글자로부터 교감을 얻는 일은 이상해 보인다. 글자에서 정서와 감정 그리고 힘이 존재한다는 사고는 가당치 않게 들릴 수 있다. 일상 속에서 무한재로 비쳐진 글자가 어떤 느낌과 감정을 지녔는지 알 필요도 없을 뿐더러 설령 안다고 해도 중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글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심도 있게 보노라면 우리의 내면으로부터 솟아나는 느낌과 감정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오감의 하나인 시각을 통해 자신의 가슴속 깊이 들어오는 글자를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분명 글자에 대해 반응을 보인다. 글자에 대해 좋고 나쁜 감정이나 정서를 보임으로써 인식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좋은 느낌과 나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글자가 분명 존재한다는 말이다. 물론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이나 경험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글자는 분명 상이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물을 통해 언어의 힘을 생생하게 보여준 한 권의 책이 있다. 물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한 에모토 마사루는 그의 저서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물은 외부의 모든 물체에 반응한다고 말한다. 특히 말과 음악에 따라 감응하는 정도가 다르다고 한다. 물은 무생물임에도 말과 음악의 좋고 나쁨에 따라 선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즉 물은 좋은 신호에는 아름다운 결정체(육각수)로 변하는 데 반해 나쁜 신호에는 결정체를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보아 살아있는 동물이나 인간은 더 큰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물이 주요 구성요소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의 몸은 물이 70%를 차지하고 있어 외부의 신호에 따라 민감한 반응을 보이리라 예측할 수 있다.

이 책이 언급하는 외부 신호에 언어로 구성된 글자를 첨언코자 한다. 말보다는 글자가 주는 위력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은 청각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지만 글자는 시각을 통한 상상력과 함께 지속적인 영감을 준다. 글자의 탁월성이 여기에 있다. 글자는 글을 표현하는 도구이기에 말과 다르다. 말은 생각을 전제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글자는 생각을 전제한다. 생각을 전제하지 않으면 말을 형상화한 글자를 만들 수 없다. 글자의 발명은 삶을 변화시키고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또한 인간의 교화와 진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하지만 글자를 만들고 빚어내는 과정에서 심각한 우를 범하고 말았다. 글자가 주는 지대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좋은 정서를 유발하는 글자를 많이 만들지 못했다. 우리가 접하는 글자는 세 가지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인간 정서를 긍정적으로 이끌어 주는 글자이다. 좋은 글자라 할 수 있다. 이 글자는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달래주며 기쁨을 선사한다. 긍정적 힘을 창출하며 미래로 향하게 한다. 둘째는 인간 정서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글자이다. 중립적 위치를 차지한다. 좋은 글자와 나쁜 글자들의 가교역할을 담당한다. 이들이 없으면 글을 쓸 수 없기에 어느 정도 가치를 지닌다. 마지막으로 인간 정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글자이다. 이런 글자는 감정을 해치고 화를 유발하며 나쁜 정서를 자아낸다.

우리는 좋은 글자의 의미를 간과한다. 두 가지 시도를 해보았다. 하나는 과연 우리가 만든 좋은 글자는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우선 최신의 한글사전을 통해 좋은 글자를 찾아보았다. 이 작업은 장기간의 시간을 요했지만 우리가 만들어 쓰고 있는 글자 중 좋은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글자 수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모두 7,718개의 글자를 찾았다. 우리 글자는 대략 14만자에 이른다. 좋은 글자는 우리가 사용하는 글자 중 약 5%에 불과하다. 수많은 글자의 5%만이 좋은 글자라면 우리가 쓰고 있는 글자 대부분이 좋은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글자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좋은 글자의 선택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하지만 최대한 객관적 시각으로 이 작업을 추진했다. 놀랍게도 좋은 글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소수에 불과한 좋은 글자가 인간에게 주는 영향은 어떤 것인가?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좋은 감정을 유발하는 글자를 선정하여 그 효과를 알아보기로 했다. 우선 7,718개의 글자에서 365개를 글자를 선정했다. 1년 동안 실험하기 위해서다. 좋은 글자가 좋은 정서를 가져다준다면 하루에 한 글자씩 1년을 가져야 그 결과를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메모지에 나열하여 매일 24시간 동안 좋은 글자만을 지녀보았다. 1년경과 후 글자의 대단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글자에서 오는 위력을 만끽할 수 있었다.

좋은 글자는 분명 좋은 정서를 가져다주고 좋은 느낌과 긍정적 사고를 유발한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하루가 좋은 글자로 채워질 때 일상의 황홀을 맛보게 된다. 늘 주변을 맴돌고 있는 부정적 사고가 발들일 틈이 없다. 자신의 뿌리를 찾게 해주고 자연과 호흡하게 만든다. 특히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해주며 인간관계를 넓혀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스스로 미래로 다가가며 오는 미래를 경험한다.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삶을 활력소로 작용한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보금자리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며 정신을 지켜주는 육체의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 과거의 참 기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게 해주고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주기도 한다. 현재 이 자리에 서있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나침반의 역할을 수행한다.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이 베품의 삶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우리의 하루가 이 같은 생각으로 가득하다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환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의 끈질긴 자기부정심리를 뒤집고 무한한 잠재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글자의 힘을 통해 어렵기만 한 행복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희망도 갖게 되었다. 행복에 대한 잘못된 시각이 있다. 첫째가 행복은 외부에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질적 풍요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얻게 되면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사실이 아님이 들어났다. 행복은 외부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온다. 둘째는 행복에도 목표가 있다는 생각이다. 행복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언제까지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은 공염불이 되곤 한다. 행복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쉽게 행복에 이르는 방법은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다고 느끼면 된다. 바로 행복을 여는 열쇠가 오늘에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하루가 행복한 삶과 불행한 삶을 극명하게 그려낸다.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오늘이 불행하기 때문이다. 오늘 이 하루가 즐겁고 희망차다면 불행은 인간으로부터 멀어진다. 좋은 글자로 하루를 보낼 때 행복이 하루를 수놓을 수 있다는 믿음을 얻게 되었다. 하루의 소중한 24시간을 자신을 채우는 글자와 함께할 때 행복이 찾아온다는 신념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결정적 이유이다.

1년은 12개월로 채워지고 365일로 구성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글자 365자를 매달 주어진 테마에 30여개씩 채웠다. 매월 주어진 테마는 우리 삶을 이끌어주는 기준으로 구성되어 있다. 12개 테마는 한 달을 표상한다. 풀뿌리에서부터 나눔의 정신으로 이어지는 12개월과 이를 엮어주는 365개의 글자가 오늘의 나를 내일로 인도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하루에 한 글자씩 활용한다. 그리고 좋은 글자를 통해 자신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감정과 정서를 유출하면 된다. 이는 정신적 충만을 통해 육체적 행동으로 안내한다. 하루를 보람 있고 소중한 결실로 이끈다. 물론 하루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일 년 간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삶의 에너지가 샘솟는 느낌을 갖는다.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책속의 글자와 다를 수 있다. 이를 위해 별책으로 '좋은 말 '사전'을 첨부하였다. 또한 하루의 기억을 생생히 해 주는 '캘린더'도 마련했다.

자신에게 필요한 글자의 힘을 믿고 하루를 채운 글자로 내면의 변화를 통해 행복이 이르는 색다른 경험이 되었으면 한다. 이 책에 제시한 글자는 저저 자신의 삶을 꽃피워준 글자로서 예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글자를 찾고 이 책과 비교하면서 1년 365일 지내보면 글자가 주는 연상과 상상력으로 인해 일상에서 벗어난 자신을 보게 되며, 내면의 변화를 통해 진정한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작은 변화가 큰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책이었으면 한다. 책과 우연한 만남으로 삶의 전체가 바뀌고 진정한 행복을 얻게 된다면 더 없는 보람이 될 것이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위대한 변화를 위한 밀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6. 본문 1 꼭지 ( sample - 아주 매혹적인 맛보기)

1월 : 풀뿌리와의 만남(코리아니티를 찾아서)

구정(나를 설레게 하는 명절)

구정(舊正)은 설의 또 다른 표현이다. 신정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설이 두 번 있다. 신정과 구정이 그들이다. 신정은 양력으로 한 해의 초하루이다. 달력의 첫 날이 신정이다. 하지만 신정은 설로서 가치를 잃었으며 명절이 아니게 되었다. 한 해의 계획을 잡는 날 정도로 쇠락하였으니 말이 신정이지 사람들의 가슴에 남는 날이 아닌 것이다.

진정한 명절은 구정이다. 3일간 연휴로 지정되어 있으며 한가위와 더불어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이다. 민족 대이동이 시작된다. 한 해의 시작이니만큼 차례를 지내고 부모나 웃어른을 찾아 절을 드리고 덕담을 나누는 날이기도 하다.

구정은 우리나라 민족의 정통성을 이어온 명절 중에 명절이었다. 이 날은 차례를 지내는 것은 물론 아이들은 새 옷으로 단장하고 어른들을 찾아 세배를 드렸다. 이 날은 떡국으로 이웃을 맞았고, 시루떡을 올려놓고 신에게 빌기도 했다. 윷놀이로 감흥을 즐겼고 아낙네는 널뛰기로 마음을 부풀렸으며 사내들은 연날리기로 몸과 희망을 날렸다. 민족적 정기를 지피우는 날이 바로 이날이었다.

1910년 우리나라를 강점한 일제는 민족적 동질감을 단절시키기 위해 구정을 말살하고자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다 한다. 서양의 태양력을 사용하자 양력설로 바꾸고 음력설에 대해 각종 박해를 가하였다. 그러나 수 천 년을 이어오며 민족의 가슴에 서려온 관행이 쉽게 바뀔리 만무했다. 구정은 나라 없는 설움조차 초연하는 위대한 명절이었다. 그럼에도 광복이후 신정을 명절로 유도하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이내 돌아왔고 1985년 민속의 날로서 공휴일로 지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는 3일 연휴의 명절로 안착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들의 품으로 들어온 구정에서의 설은 무슨 뜻인가. 설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설이라는 글자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좋은 뜻도 담겨있지만 어설픈 뜻도 그에 못지않다. 우선 이 말이 '서럽다'에서 왔다는 주장이 있다. '서러워서 설 추워서 추석'이라는 속담도 있듯이 추위와 가난 속에서 맞는 명절이라서 서럽기도 하고 차례를 지내면서 떠나신 조상에 대한 서러움이 가득해서 그랬다한다. 분명한 것은 추위와 가난이 일상사였던 그 옛날이기에 이러한 해석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물질적 풍요로 대변되는 오늘의 우리에게 어설픈 해석임에 틀림없다.

두 번째가 '삼가다'의 '살'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다. 설은 신일(愼日)이라 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라고 한다.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경거망동을 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있다. 정초부터 조심하고 신중하는 일은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예(禮)를 국가의 근간으로 삼았던 시절에 항상 품행을 방정하게 하는 것은 그 어떤 덕목보다 우선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윷놀이와 널뛰기 그리고 연날리기 등 다른 날보다도 역동적이었음을 든다면 이 설(說) 또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설은 소극적 움추림이 아니라 적극적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가 나이를 댈 때 몇 살(歲)하는 '살'에서 비롯됐다는 말이다. 우랄 알타이어계통인 우리 말은 산스크리트어, 퉁구스어, 몽고어와 같은 계통인데 산스크리트 말에서 '살'은 해가 돋아나듯 '새로 돋고 새로 솟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다. 정초와 직접 관련이 있고 '몇 살 몇 살'하는 살이 나이를 뜻하는 연세와 관련이 있음을 이해하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 하지만 왜 살이 설로 바뀌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살날'하면 되지 굳이 '설날'로 변경할 이유가 없다. 멋과 맛이 엄청난 차이가 있고 너와 나가 극과 극을 달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설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견해는 '설다. 낯설다' 의 '설'이라는 어근에서 나왔다는 주장이다. 처음 가보는 곳, 처음 만나는 사람은 낯선 곳이며 낯선 사람이다. 따라서 설은 새해라는 정신·문화적 시간의 충격이 강하여서 '설다'의 의미로, 낯 '설은 날'로 생각되었고, '설은 날'이 '설날'로 정착되었다. 곧 묵은해에서부터 분리되어 새해로 통합되어 가는 전이과정에 있는 다소 익숙하지 못하고 낯설은 단계라는 의미이다. 그럴듯하다. 아직 접하지 못했으니 익숙할 리 없고 익숙하지 못하니 설익은 날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설은 설레임의 '설'이 아닐까 한다. 새 해의 첫 아침이기에 설레인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웅대한 계획을 세우는 날이기에 설렌다. 변화의 단초가 이때 시작된다. 보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만남도 이 날에 이루어지기에 가슴이 설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새로운 바람이자 희망도 이날 작성되기에 그 어떤 날보다도 벅차고 격동적이다. 과거의 흔적을 지우며 미래의 나래를 펼치는 날이기도 하다. 설은 몸과 마음의 용틀림을 올곧게 세우는 날이다. 그래서 설레고 또 설레는 날이다.

글자가 주는 영향력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인성(人性)의 차이로 인해 커다른 간극을 맛볼 수 있다. 설의 하루가 설레임으로 가득할 때 변화는 시작되고 작은 혁명은 일어날 것이다. 그 설날이 오늘이라면 삶의 활력소로 작용되리라 확신한다.

2월 : 자연과의 대화(인간을 살찌우는 토대)

길(인생의 영원한 등불)

길은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다. 길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 방향을 모르기 때문이다. 길은 육지에 한정되지 않는다. 저 높은 하늘에도 길이 있어야 한다. 항로가 없으면 비행할 수 없다. 한 치를 벗어날 때 오는 참혹함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길은 육안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 바다에도 길이 있다. 항해는 뱃길을 담보한다. 길에서 벗어나면 성난 파도를 만나고 해일과 조우한다.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세상은 길이 없으면 운신할 수 없게 되었다. 길은 모든 사람의 햇불이 되었다.

인생에도 엄연한 길이 있다. 삶의 길에 들어선 순간 우리는 헤매게 된다.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길을 찾는 일이 간단치 않다. 기나긴 시간동안 길을 찾지만 만만치가 않다. 물론 자신의 재능을 미리알고 일찍 길에 접어든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수많은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고, 글을 써보기도 하고 직장에 다녀보기도 하면서 인생길을 찾는 일에 상당한 시간을 허비한다.

설령 인생길을 찾았다 하더라도 가는 길이 순탄치 않다. 고난과 역경이 기다린다. 이를 파헤치고 뚫고 나가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다. 가다가 지치면 이 길이 아닌가 의심해보기도 한다. 잘못 들은 길이 아닌가 원망도 한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회한과 후회가 마음을 뒤덥는다. 그만큼 인생길이 험하고 고단하다는 방증이다.

이런 갈등과 번민을 적절하게 표현한 시가 하나 있다. 바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The Rord not Taken)'이다. 제목이 그렇듯이 자신이 걸어온 길보다는 걷지 못했던 길에 대한 미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생길은 늘 두 갈래 이상이다. 우리는 길 모두를 갈 수는 없다. 선택의 기로에 서야만 하는 순간이 닥친다. 바로 여기에서 인생의 고뇌가 싹트고 한계를 느낀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자연의 길과 인생의 길을 통해 외연적 풍광으로 내면적 음영을 비춘다. 그러나 인생은 선택함으로써 가능성을 갖게 된다. 선택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절에 있는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면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라는 시구에서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끝없는 연민을 느낄 수 있지만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해 후회하지 않음을 은연중에 비추고 선택한 길로 인해 나의 인생이 달라졌음을 암시한다.

'길'은 인생의 주제이다. 우리의 삶을 제약하기도 하고 꿈을 펼쳐 보이기도 한다. 길을 가다가 겪는 시련과 좌절, 그리고 꿈과 희망이 엇갈리면서 인생이 빛나기도 하고 추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선택한 길에 대한 깨달음이다. 자신이 걸어야만 하는 길에 대한 성찰만이 본질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다. 이 길밖에 갈 수 없음을 안다는 것은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를 밝히는 일이다. 결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를 두지 않는다는 전제만 있으면 말이다.

수많은 선현들이 길에 대해 논했다. 길은 철학의 화두요, 사상의 첨병이다. 철학자의 재료요, 사상가의 원료였다. 한 나라의 미래였고 조직의 사명이었다. 오늘을 사는 모든 논객들의 입방아 오르내렸다. 이데올로기에서도 길은 중요한 시금석이었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예견한 다니엘 벨은 탁월했지만 이데올로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변형되었을 뿐이다. 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제3의 길'을 쓴 영국 최고의 석학인 앤서니 기든스는 이렇게 썼다. 민주주의라는 구호아래 신자유주의자들은 국가의 축소를 원했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국가의 확장을 원했다. 제3의 길은 '정부를 적이라 말하는' 우파와 '정부를 해답이라고 말하는' 좌파를 넘어서 국가를 새로운 사회민주주의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에 의한 부의 축적을 옹호하되 공공부분과 시장부분의 윈윈을 강조했다. 제3의 길은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적절한 조화를 표방한다. 이 길만이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길임을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지나친 부의 축적은 빈부의 격차를 초래했고 이질감을 키웠다. 지나친 평등을 강조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창조성과 생산성을 간과했고, 시장경제를 무시했다. 자본주의의 편향성과 사회주의의 획일성은 합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프랑스의 세계적 석학 자크 아탈리는 인간적인 길을 모색한다.

그의 명저 '인간적인 길'에서 앤서니 기든스가 말하는 사회민주주의의 새로운 건설이 바로 인간적인 길이라 말한다. 좌파니 우파의 정치는 끝났다고 단언한다. 토머스 모어가 예언했던 유토피아가 300년이 흐른 지금 영국에서 실현되었듯이 자신의 신유토피아도 언젠가는 이 세상에 빛으로 환하게 발할 것이라고 예단한다. 그 신유토피아가 바로 새로운 사회주의의 건설이며 이것을 인간적인 길이라 명명한다. 인간적인 길이란 체제건설에 앞서 개인에 대한 모색이며 개인 모두가 '양질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지상에서 허용된 시간을 최대한 올바르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로 개인 스스로가 인간적인 길로 접어들 때 새로운 유토피아가 건설된다는 것이다.

길은 미래를 결정하는 척도다.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며 개인의 삶을 결정한다. 가지 않은 길을 갈 수는 없다. 이미 다른 길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개인의 운명은 개인의 몫이기에 길 또한 자기의 몫이다. 제3의 길로 들어섰건 인간적인 길로 들어섰건 궁극적인 길은 개인이 결정할 일이다. 어떤 길로 들어섰건 선택한 길에 의해 중대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길을 결정하는 일은 중요하다. 우리는 어느 길에 들어서야 하는가. 선택은 독자에게 달려있다.


3월 : 내면을 밝히는 창(나를 찾아서)

가치관(세상을 바라보는 눈)

가치관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자신을 포함한 세계나 만물에 대하여 가지는 평가의 근본적인 태도 또는 견해를 말한다. 가치판단의 기준이요, 가치평가의 틀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저 막연하게 태어나지는 않았다. 무엇인가 가치를 갖고 태어났을 것이다. 이미 잉태할 때 수천 수억대의 경쟁률을 뚫었으니 오늘날 대학이나 입사철의 경쟁률에 비할 바 아니다. 태어난다는 자체만으로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의 가치를 발하지 못하는 사람이 비일비재하다. 이는 자기만의 가치관을 정립하지 못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현상은 왜 일어날까.

우리는 지금 가치의 혼동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바람직한 기준을 갖지 못하니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판단이 흐려지기 십상이다. 이 같은 가치혼란의 발생은 현대사회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필연적이다.

우리나라는 짧은 시간동안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농경사회에서 공업화 그리고 정보화사회로 이동하면서 물질적 풍요를 구가한 반면 정신적 발전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농경사회를 중심으로 확고하게 이어져 온 전통적인 가치관은 깨어지고 정보화사회에 상응하는 새로운 가치관은 형성되지 못한 채 가치의 상실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한 사회병리현상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범죄의 급격한 증가, 부조리와 비리의 만연, 청소년 비행, 질서의식과 공중도덕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살인, 강도, 인신매매 행위, 마약중독 등의 상상을 뛰어넘는 폭력과 범죄행위가 만연하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가장 급선무가 국가의 교육시스템을 통해 개인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방법을 읽히도록 하는 일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러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일찍이 서구문명을 꽃피운 나라들의 공통점이 개인들에 대한의 확고한 가치관을 청소년시절부터 심어주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서구 여러 나라와 같은 경험을 갖지 못했다 해서 주저할 수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개인의 확고한 가치관 정립이 필요하다. 가치의 혼동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임이 분명하다. 무엇에 가치를 두고 인생을 살아가느냐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 있어야 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며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다. 인간은 현재의 다른 사람과 더불어 과거와 미래를 염두에 두고 그의 삶을 설계하고 경영해 나갈 때, 그의 궁극적인 목적이 성취될 수 있다.

이를 위한 가장 소중한 가치는 인간존중이다. 과거 인간관은 수단이요, 도구였다. 21세기는 달라져야 한다. 이미 인간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일갈한 학자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인 칸트(I. Kant)는 인간최고의 가치를 인격의 존엄성에서 찾았다. 지금도 이 말은 진리이다.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범죄나 비행은 인간 존엄성의 부재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가치관 정립의 부단한 노력이 요구된다.

따라서 인간존중을 받쳐주는 가치관 정립은 인생의 바람직한 삶에 필수가 되었다. 이 점에서 가치관 정립에 탁월한 기준을 제시한 철학자 막스 셀러(Marx Sheller)의 말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는 가치기준의 척도로 다섯 가지를 제시하는 데 매우 의미 있게 다가온다.

제1척도가 ‘지속성’(duration)이다. 영속적인 가치가 우선된다.
제2척도는 ‘분할가능성’(divisibility)이다. 분할되어도 감소되지 않는 가치가 높다.
제3척도는 ‘근거성’(foundation)이다. 하나의 가치가 다른 가치의 근거가 되면 높은 가치를 가진다.
제4척도는 ‘만족의 심도’(the depth of satisfaction)이다. 물질적 만족을 가져오는 ‘돈’보다는 정신적 만족을 충족시켜주는 ‘예술’ 등이 만족의 심도가 높다.
제5척도가 ‘상대성’(relativity)이다. 의존하지 않는 가치가 높다.

이 같은 척도에 근거하여 인간존엄성을 지켜주는 가치를 뽑는다면 나는 다음의 다섯 가지를 꼽고 싶다.
첫째, 타인에 대한 이해와 존경
둘째, 열린 마음과 창의적 사고
셋째, 개별성과 다양성
넷째, 미래지향성과 세계화
다섯째, 예술적 감각과 미의 추구가 그것이다.

가치관을 정립하고 이를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자신의 가치를 세상에 드러내고 알리는 일은 가치관 정립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치관을 정립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며 삶의 궁극적인 설계도이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삶, 그리고 올바른 삶 그리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가치관을 정립하는 일은 절대 미루어 두어서는 안 되게 되었다.


4월 : 인간관계를 맺는 길(나를 넓히기 위해서)

감정이입(타인과 하나 되는 길)

감정이입이란 예술 작품이나 자연물에 자신의 감정이나 정신을 투사하여 자기와 그 대상과의 융화를 의식하는 정신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객관적 대상물을 마치 자신과 동일시하는 행위를 말한다. 상대가 주로 무생물과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감정이입은 무생물에 한정되지 않는다. 모든 대상이 감정이입과 연관지울 수 있다.

감정이입이란 용어는 사실 독일에서 발달됐다. 독일의 헤르만 로체가 1858년에 처음 예술과 관련지어서 아인필룽(Einf lung, 감정을 넣어줌)이란 말을 썼고, 후에 테오도르 립스가 예술의 이론으로 정립시켰다. 예를 들면 일몰(日沒)을 장엄하다고 느끼는 것은 일몰을 바라보는 자신의 감정을 투입(投入)하는 것이거나 일몰의 장엄함이 자신 속에 들어오는 것이라고 한다. 립스는 이를 일종의 유추작용(類推作用)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M.셸러는 이를 유추와 같은 간접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직접적인 공감(共感:sympathy)이라고 보고, 어떤 사람의 얼굴빛에서 그 사람의 따뜻함이나 심술궂음을 직접 느끼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공감은 감정이입과 다소 차이가 있다. 공감은 타인의 의견이나 행위에 같은 느낌을 피력하는 것이다. 공감은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나란히 서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이입은 타인의 가슴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즉 자신의 의사나 뜻을 투입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공감은 지적이며 정신적인 반면 감정이입은 육체적이며 본능적이다.

오늘날 창조적 사고와 상상력을 키우는 데 있어 감정이입은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의 그의 저서 『생각의 탄생』에서 창조적으로 살아간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의 도구가 있는데 그 중 하나로 감정이입을 들고 있다. 감정이입은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을 통해 세계를 지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문제 속으로 들어가 그 문제의 일부가 되는 것”을 말한다.

연극이나 영화배우가 진정한 배우로 남기 위해서는 극중 인물의 인생을 살지 않으면 흉내낼 수 없다. 감정이입의 본질은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은 타인의 눈으로 보기 위해 ‘시대의 현장’으로 돌아가곤 했다. 사냥에 성공하려면 사냥감처럼 생각해야 한다. 나무를 그리려면 먼저 내 안에서 그것이 자라나게 해야 한다. 가장 완벽한 이해는 ‘자신이 이해하고 싶은 것’이 될 때이다.

감정이입의 핵심은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다. 감정이입이 갖고 있는 힘에 대해 독일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다음과 같이 썼다. “감정이입은 자신의 느낌을 가지고 어떤 대상, 예컨대 기중이나 수정 혹은 나뭇가지, 심지어는 동물이나 사람들의 동적인 구조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며, 스스로의 근육감각을 통해 대상의 짜임새와 움직임을 이해하여 그 구조를 내부에서부터 추적해가고자 하는 것이다. 감정이입은 자신의 위치를 ‘여기’에서 ‘저기’로, 혹은 ‘저 안으로’ 옮겨놓고자 하는 것이다.”

현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이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도구로서 감정이입은 필수가 되었다. 감정이입은 자아(自我)가 타아(他我)가 되는 지름길이다. 내가 남과 하나가 되는 길은 있다면 그보다 아름다운 삶이 있을 수 있겠는가. 조직에서도 감정이입은 많은 문제를 해결한다. 이기적 사고를 제거한다. 투쟁적 장면을 일소한다. 진정 고객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더욱 감정이입이 필요한 것은 기업문화발전에 일익을 담당한다는 사실이다. 조직구성원이 ‘자기’가 아니고 ‘우리’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가장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도구가 감정이입이다.

감정이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을 타인에게 투입하여 또 다른 ‘자기’를 경험하기에 창조적 사고와 상상력을 키우는 데 적격이다. 오늘날 기업에서의 생산성과 효율성은 또 다른 창조성의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획일성과 유아독존식 사고에서 벗어나 모든 대상이 나의 다른 나가 될 수 있다는 사고가 펴질 때 세상은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감정이입은 새로운 감각으로 다가올 것임이 틀림없다.

5월 : 미래를 여는 문(신천지를 향하여)

날개(상상력의 보고)

날개는 인간의 꿈이었다. 날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강렬했다. 하늘에 몸을 맡기고자 했던 열망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출발한다. 다이달로스라는 발명가와 그의 아들 이카루스가 깃털과 왁스로 만든 날개로 하늘을 날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이카루스는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왁스가 녹아 바다에 빠져 죽고 만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은 꿈을 접어야 했다.

날겠다는 인간의 의지는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다. 유럽의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르네상스시대에 천재라 일컬어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500여년 경에 새처럼 날개를 퍼덕여서 날 수 있는 비행기를 설계했다. 하지만 실재 비행기를 만들지는 못했다. 과연 인간이 날개를 퍼덕여 날 수 있을까. 1680년 이탈리아의 수학자 조반니 보렐리는 인간의 근육은 너무 약해서 자신의 몸무게가 공중에 뜰 만큼 큰 날개를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렇다고 인간이 날고자 하는 소망을 접지는 않았다. 인간 스스로 날 수는 없었지만 다른 수단을 이용해 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1785년 드디어 인간이 하늘을 처음 정복하게 된다. 프랑스의 몽골피에 형제가 더운 공기를 채운 열기구를 이용해 하늘을 난 것이다. 그러나 기구는 바람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특수목적 이외에는 이용할 수 없었다.

그 다음에 등장한 것이 글라이더였다. 1804년 영국의 조지 케일리경이 요크셔에서 처음으로 글라이더 비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것은 동력이 없어 자연의 바람을 이용한 활공에 그쳐 멀리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인간은 글라이더에 동력장치를 달려는 끊임없는 시도를 이어갔다.

그 이후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1903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키티호크 해안에서는 인류 최초의 비행기가 이륙했다. 바로 월버 라이트와 오빌 라이트 형제가 만든 플라이어호가 12초 동안 36m를 난 것이다. 이 날 플라이어호는 59초 동안 290m를 나는 첫 기록을 세웠다. 플라이어호는 4기통 13마력의 가솔린엔진을 단 최초의 동력비행기로 기록되었다. 지금의 비행기 모습을 갖추었고 이로 인해 인간은 마음대로 하늘을 나는 시대를 열 수 있었다.

날개는 인간에서 시간을 선물했다. 머나먼 공간에 빠른 속도로 다다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으며 지구촌 어디에나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지구촌을 하나의 울타리로 만들어 준 것이다. 날개가 인간에서 제공한 가장 커다란 결실은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상상은 현실이 되었고, 크고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다주었다. 인간의 한계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또한 날개는 인간의 심성을 아우르는 도구를 제공해 주었다. 천사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세상의 어두운 그림자를 거두는 데 날개를 이용하곤 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다가오는 천사는 인간의 안식처를 제공해 주었고 멀리 날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을 천사가 대변하곤 했다. 날개는 나는 수단에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날개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개인의 가능성에도 날개는 있다. 날개를 달아주었다는 말은 인간에게 사기와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말이다. 희망을 심어주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날개를 피지 못한다는 말은 운신의 폭이 좁아 앞으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기가 죽어 자신의 앞날을 점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날개를 펴는냐 펴지 못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미래가 결정되기도 한다.

날개는 지구촌에 머물지 않는다. 날개를 단 인간들은 끝없이 지구촌을 벗어나고 있다. 달나라를 정복하고 태양계를 주름잡는다. 그토록 논란이 많았던 지구 모습이 둥글다는 사실을 한눈에 입증한 것도 날개다. 날개는 이제 시공을 초월하는 타임머신을 꿈꾼다. 언젠가 하늘 천지를 수놓은 별들과도 조우할 날을 만들 것이 틀림없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실체를 옮겨 놓는 중대한 일도 날개의 몫이다. 그런 상상은 독자들에게 끝없는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다양성(미래를 보는 눈)

세상에는 다양한 종들이 서식하고 있다. 생물의 다양성은 일반인의 상상은 넘는다. 50억년 이상을 버티면서 존재해온 지구상에서 수많은 종들이 명멸했다. 아직도 이 지구상에는 140만종(75만종의 곤충, 25만종의 식물, 35만종의 무척추 및 미생물, 4만1천종의 척추동물)에 달하는 생물들이 넘실거리고 있으며 치열한 약육강식 속에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종의 다양성으로 인해 여전히 지구촌은 수많은 생물로 우글거릴 것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인간으로서는 단일 종이지만 다양하기 그지없다. 피부색이 같지 않고, 성격이 다르며 지문이 동일하지 않다. 똑같은 모양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일란성 쌍둥이라 하여 예외일 수 없다. 다양성은 인간의 태생적 기초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획일화하고 단순화하려는 움직임에 끊임이 없었다. 인간을 하인 취급하고 노예화하며 멸시와 학대로 몰아넣었던 시절이 있었다. 인류의 역사는 다양성 회복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초에 약육강식이 극에 달했던 시절, 인간의 다툼은 다양성을 전제하지 못했다. 상대를 죽여야 생존할 수 있다는 단순논리로 인해 수많은 피의 역사를 이어왔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다양성을 무시한 처절한 역사의 시작은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모험과 이상을 쫓아 인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는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다. 달걀이라는 생명의 근원을 무참히 깨면서 시작한 독선으로 인해 인간의 다양성을 무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신대륙에 도착하자마저 저지른 인종학살은 인간의 존엄성을 한 번에 날려버리기에 족했다. 이때부터 세상은 인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시작된다. 강대국이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인간은 다양성을 상실한 채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다행히 인간의 근원적 본질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시하며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탄생이 영국에서 시작되면서 인간의 존엄은 회복되고 다양성이 빛나는 듯 했다. 하지만 제국주의라는 희대의 권위주의적 정치인들로 인해 파쇼, 나치즘, 군국주의가 횡행하게 되면서부터 또 한 번의 회오리가 지구촌을 강타한다. 인간의 다양성이 이처럼 말살된 시기도 없었다. 오로지 인간에 대한 압제와 폭력 그 자체였다. 히틀러의 민족우월주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이나 일제의 대동아경영권이라는 허울아래 저질러진 만행은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가장 심각한 도전에 다름 아니다.

인간의 다양성과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어떤 제도나 체제도 장기적 존속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제국주의로 대변되는 국가들은 짧은 시간내에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렸다. 인류역사에 오점만을 남기면서 말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인간의 다양성을 무시한 이데올로기가 등장했다. 바로 공산주의가 그것이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낳은 소외와 고독을 빌미로 인간의 획일화와 사상의 단일화를 요구했다. 인간의 다양성을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다.

이 또한 70여년의 실험 끝에 실패한 사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소련에서 시작한 공산주의의 망령은 동유럽을 휘어잡고 중국과 베트남, 그리고 우리의 한편인 북한에 이르기까지 퍼져나가는 듯했지만 20세기 말 붕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은 본원적으로 다양성에 매료된다. 우리의 짧은 근대사가 그를 대변하고 있다. 독재자로 대변되는 군사정권이 장기화 될 수 없었으며 권위적 정권이 존속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처절한 역사를 뒤로하고 우리는 지금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와 다양성을 기초로 한 자유시장경제 속에서 오천년 역사에 경험하지 못한 경제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물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한다. 부의 편제와 경쟁심화는 인간을 더욱 소외시키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다양성이라는 인간의 본원적 기초를 능가하지는 못한다. 다양성은 한 나라의 장래를 이끄는 힘이며 미래를 보게 하는 눈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화를 통해 다양성의 우수함을 만끽하고 있다. 문화의 다양성을 논하면서 세계는 지금 '문화 다양성 협약'을 통해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있으며, 종교의 다양성을 통해 또 다른 9.11테러방지에 노력하고 있다. 우리만큼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국가도 없다.

다양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교육에서도 다양성은 요구된다. 획일화된 교육은 창의성을 말살한다. 세계교육으로 우뚝 서기위해서라도, 한국인의 세계화를 위해서라도 다양성은 교육계에서도 필수다. 기업에서도 다양성은 필요하다. 법령과 사규에 얽매인 사고는 인간의 다양성을 간과한다. 획일적 사고는 유연성을 전제한 세계적 기업에 끌려 다니기 십상이다. 세계적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조직원의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개인에게도 다양성은 없어서는 안 될 기질이 되었다. 전문가의 시대는 여전하지만 진정한 전문가는 한 가지 지식으로 끝내서는 안 되게 되었다. 모든 지식을 아우른 전문가만이 세상을 밝히는 인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다양성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키워드다. 앞으로 21세기를 빛낼 국가와 위인은 다양성의 세계와 심오한 깊이를 모르고는 알 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다양성은 과거의 잘못된 인간관을 바로잡고 오늘의 세계를 하나 되게 하며 미래의 세상을 바로 보게 하는 혜안이 될 것이 틀림없다.


6월 : 삶의 활력소(생의 비타민)
7월 : 내안의 보금자리(나를 감싸는 보물)
8월 : 육체의 향연(정신을 지탱하는 기둥)
9월 : 가슴에 남는 기억(아련한 과거 속으로)
10월 : 물에 비친 자화상(나의 모습과 이상향)
11월 : 행동을 이끄는 힘(나를 움직이는 동기)
12월 : 나눔의 정신(베푸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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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22 12:42:00 *.36.210.80
특이한 연구이다.

1. 저자 소개: 강력한 의지가 멋지다.
2. 주제도 설득력 있다.
3. 제목은 언뜻 하루살이가 생각난다. (나의 이미지는 글짜와 놀기, 신념의 하루, 오늘 하루 동안, 햇빛 산책, 내 안에 글있다.(ㅋ), 글자의 탄생, 내면의 글자, 위대한 낱말, 꿈 그리는 단어, 영혼을 일깨우는 글자, 원래대로 글자의 힘)
4. 목차: 평소에 글을 볼 때보다 목차에서 심드렁한 반응이 생겨난다. 왜 그럴까? 순간 따분해 진다는 느낌도 들었다. 나의 길들어진 반응?
5. 서문 : 뜻과 신념이 묻어난다.
6. 본문 : 너무 논리적이다.

하루를 가뿐하게 시작하고 싶은데 단어에 글을 끼워넣은 느낌이 든다.
이대로 쓴다면 1000페이지가 넘을 것 같다.^^

선배가 부적처럼 글자를 써서 가슴에 부착하며 하루를 신나게 즐겼듯이 그렇게 독자들도 시작하고 싶을 것 같다. 그렇다면 긴 설명보다 마음으로 나누는 편지처럼 짧고 감동적인 몇 마디로 함축해야 하지 않을까요? 일단은 그 단어의 글자를 딱 보는 순간 힘이 나고 명확하게 오늘 하루는 이것만 생각해야지 하는 짧고 강한 임팩트여야지 365가지가 주는 목차가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듭니다. 지금은 좀 딱딱하지 않나요?

본문을 읽다보면 처음의 의도가 잘 부합된다는 느낌보다 다소 이질적 감. 시집 한권 들고 산책하러 갔다가 논문 보고 나온 느낌.(상처받지 말고요.)

그래도 쓰면서 진화해 나갈 것을 믿어요. 참으로 애쓰셨네요.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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