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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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011년 8월 8일) 저녁, 볼로냐에 도착해 저녁을 먹기 위해 ‘버팔로’라는 레스토랑에 들렀다. 붉은색과 검은색을 사용한 실내 인테리어는 스페인 풍이다. 8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서 잠깐 이탈리아에서 맛본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음식은 대부분 다음과 같은 순서로 나왔다. 일차로 파스타 요리. 우리나라에서 주로 먹는 국수와 같은 스파게티는 딱 한 번 나왔다. (하지만 파스타를 돌돌 말아 먹는 숟가락은 주지 않았다.) 파스타는 주로 갈은 고기를 넣은 토마토 소스에 버무려 나오는데 굵은 빨대를 손가락 마디 길이로 잘라 놓은 듯한 펜네, 나미 넥타이 모양의 파르팔레, 굵은 면을 배배 꼰 푸질리 등이 나왔다. 한 번은 라자냐가 나오기도 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요리는 스테이크다. 굵게 썬 감자 튀김과 얇게 저민 돼지고기가 두 쪽 정도 나온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야채 샐러드가 나온다. 알렌에게 물어보니 이탈리아 사람들은 야채가 음식을 먹은 입과 위를 정화시킨다고 생각해 맨 나중에 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의 메뉴는 관광객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주로 점심엔 파스타, 저녁엔 스테이크를 먹는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먹은 피자 역시 생각한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야채와 고기가 푸짐하게 토핑된 미국식 피자보다는 도우에 치즈와 토마토 소스로 맛을 낸 소박한 피자가 대부분이다. 젤라또 아이스크림도 기대와는 달랐다. 단 맛이 강하고 우유가 많이 들어가 우리 나라 사람 입맛에는 다소 느끼하다. 아, 그리고 식사 전에는 항상 빵이 나오고 식탁엔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가 있었다. 그런데 오일과 식초를 찍어 먹기 위한 작은 종지가 없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같이 나오는 치즈 가루를 빵에 뿌려 먹었다.
저녁을 마치고 나니 10시가 넘었다. 늦은 시간이지만 볼로냐 시내를 잠시 둘러 보았다. 에밀리아 로마냐 주에 위치한 볼로냐는 중세 이래로 유럽의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로 유명하다. 11세기에 창설된 볼로냐 대학은 법학의 볼로냐와 함께 널리 알려져 있으며 17세기에는 회화에서 볼로냐 파가 크게 활약한 바 있다. 볼로냐는 풍요한 농업지대에 위치하여 상공업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공업으로는 기계, 자동차, 제조, 식료품 가공 등이 활발하다. 도시 전체가 아기자기한 세트장을 연상시키는 베로나와 달리, 볼로냐는 건장한 남성적 이미지를 풍긴다. 홍콩과 비슷하게 볼로냐의 상가들은 지붕이 있는 아케이드 식이다. 쇼핑객들은 횡단보도를 건널 때를 제외하고는 비가 와도 우산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우선 맛조레 광장을 방문했다. 지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800년에 걸쳐 볼로냐의 중심이 되고 있는 이 광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뜨인 것인 잘보로냐가 조각했다는 넵튠의 분수였다. 그 주변에 로데스타 궁전과 엔조왕 궁전이 있다.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분수 난간에 앉아 있으니 바람이 더욱 시원하다. 연세가 많이 든 이탈리아 할아버지가 분수에서 생수병에 물을 받는데 눈이 어두우신지 수도 꼭지를 자꾸 빗겨간다. 살짝 도와드렸더니 ‘그라치에’라고 하신다.
광장에서 조금 이동하니 그 유명한 볼로냐의 사탑이 눈에 들어온다. 중세 이탈리아에서 탑은 가문의 위상과 힘을 상징하는 것이어서 당시 볼로냐에는 200여 개의 탑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가리젠다 탑은 48m, 아지넬리의 탑은 97m로 12세기 초 각 탑을 소유했던 일가의 이름이 붙어 있다. 단테는 당시 60m였던 가리젠다 탑의 기울기에 매료되었어 <신곡 지옥편>에서 거대 안타이오스를 가리젠타 탑을 예로 들었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한 석비가 탑 아래 묻혀 있다고 한다. 알렌에게 탑들이 기울어져 있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지반에 모래가 많이 섞여 불안정한대다가 지진이 자주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당이나 궁전과 같은 경우에는 지반 공사를 넓은 범위로 하기 때문에 기울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으나 탑의 경우는 그렇게 하기가 어려워 기울어진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탑 옆에는 산 페르토니오 성당이 있다. 볼로냐의 수호 성인 성 페트로니오에게 봉헌된 성당으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성당이라고 하는데 10시가 훌쩍 넘은 탓에 성당 안에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2011년 8월 9일 화요일 아침이 밝았다. 아씨시로 떠나기 전 어제 둘러보지 못한 볼로냐 대학을 본격 탐방하기로 했다. 볼로냐 대학은 1088년 설립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하지만 현재의 대학 캠퍼스와는 달리 대학 건물들이 도시에 산재되어 있었다. 광물학 박물관 건물 근처에 내려 알렌의 설명을 들었다. 이 때 사부님이 손을 들어 다음과 같이 제안하신다.
“근처 경찰관에게 물어 볼로냐 대학의 시초였던 법대 건물을 찾아가 보는 모험을 해봅시다.”
알렌이 경찰관에게 물어보았지만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할 수 없이 우리는 대학 캠퍼스를 걸어서 둘러보는데 만족하기로 했다. 얼마 걷지 않아 물리학과 건물과 고색창연한 도서관 건물이 보였다. 도서관 로비에 들어서니 오래된 책 냄새와 함께 은은한 조명이 정겹다. 이런 곳에서 단테의 <신곡>을 읽으면 아주 잘 읽힐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얼마간의 캠퍼스 투어를 마치고 이제 버스로 돌아갈 시간. 버스에서 인원 파악을 해보니 사부님과 승완이가 없다. 마냥 그 자리에서 기다릴 수가 없다. 이탈리아의 교통 법규는 매우 엄격해 정해진 정차 시간을 넘기면 큰 벌금을 물게 되어 있다고 한다. 드라이버 스테파노가 안절부절 한다. 나와 로이스는 약속된 자리에서 사부님과 승완이를 기다리기로 하고 백산 선배가 이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스테파노는 버스를 돌려 그 자리로 돌아오기로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도무지 돌아올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백산 선배의 전화기로 사부님께 전화를 걸었다.
“사부님, 지금 어디세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전화기 너머로 사부님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린다.
“근처다. 다 왔다.”
1시간이 넘게 우리의 일정을 늦추어 버린 사부님이 일행의 환호를 받으며 버스에 오른다. 이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내 아내가 이번 여행 떠날 때 약속 시간에 늦지 말고 일행들 잘 따라 다니라 했는데 오늘 사고를 치고 말았네. 허허허. 조금 변명을 하자면 말이야, 나와 승완이가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에게 법대 건물을 물었거든. 그러니까 자기도 잘 모르겠대. 포기하고 돌아갈까 하는데 갑자기 이 청년이 아이폰을 쨘~~하고 꺼내잖아. 그러더니 지도 서비스에 ‘로스쿨 인 볼로냐’라고 치는 거야. 그러니까 로스쿨 위치가 딱 떠. 여기서 몇 백 미터 떨어져있대. 그래서 그 곳까지 물어서 찾아갔지. 도착해서 물어보니 이젠 더 이상 법대건물이 아니래. 여러분들에게 법대 건물을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정말 아쉽네. 어쨌든 미안해.”
이렇게 볼로냐에서의 사부님 실종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이후로도 사부님은 일행 중 가장 늦게 버스에 오르는 사람이 몇 번 더 되셨지만 이 때와 같이 장시간 실종되시지는 않았다. 소중한 물건을 다시 찾았을 때의 안도감(?)을 느끼며 우리는 그렇게 볼로냐를 떠나 성 프란체스코의 도시 아씨시로 향했다.
파란색 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잘 생기지는 않았어.
약간 삐리 같았지만 아주 친절했고 착했지.
법대 건물이 어딘인지는 알았지만 법대는 옛날 오리지널 빌딩을 쓰고 있지 않고 다른 빌딩으로 이사해 왔다는거야. 원래 가장 오래된 최초의 법대 건물은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었고 그건 그전 날 밤 찾아갔던 볼로냐 사탑 근처에 있었지. 내친 김에 갈까도 했지만 일행을 다시 이끌고 가기에는 적당치 않다고 여겼어. 그래서 그래도 빨리 온것이야. 내가 거기까지 갔다면 너희들은 버스를 타고 두 번 시내를 돌았을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