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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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 78 - 내 청춘이 지나가네
덥다. 밤엔 춥다. 낮엔 너무 덥다. 저녁에도 덥다. 한 밤중 사방이 고요하고 차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 드디어 시원한 시간이 찾아온다. 몇시간째 꼼짝않고 미련하게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는 이제야 겨우 배도 고프고 발도 시려온다.
내 청춘이 지나가네
내 청춘이 지나가네
말라붙은 물고기랑 염전 가득 쏟아지는 햇살들
그렁그렁 바람을 타고 마음의 소금 사막을 지나
당나귀 안장 위에 한 짐 가득 연애편지만을 싣고
내 청춘이 지나가네, 손 흔들면 닿을 듯한
애틋한 기억들을 옛 마을처럼 스쳐 지나며
아무렇게나 흙먼지를 일으키는 부주의한 발굽처럼
무너진 토담에 히이힝 짧은 울음만을 던져둔 채
내 청춘이 지나가네, 하늘엔
바람에 펄럭이며 빛나는 빨래들
하얗게 빛바랜 마음들이 처음처럼 가득한데
세월의 작은 도랑을 건너 첨벙첨벙
철 지난 마른 풀들과 함께 철없이
내 청춘이 지나가네, 다시 한 번 부르면
뒤돌아볼 듯 뒤돌아볼 듯 기우뚱거리며
저 멀리, 내 청춘이 가고 있네
시인 박정대
박정대 시인,교사

[출처] 박정대 시인의 詩 5편 |작성자 마경덕
출생1965년 (강원도 정선)
데뷔 1990년 문학사상 등단 수상
2003년 김달진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시집 <단편들>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삶이라는 직업>
경력 그룹 '인터내셔널 포에트리 급진 오랑캐' 멤버
그 젊고 아름다운 아무르강의 시인이 부쩍 늙어 버렸다. 아마 시를 너무 많이 썼나보다. 그의 청춘의 격렬비열도에 눈이 내릴 때 잠을 자지않고 음악만 들었나 보다.
어제는 <아름다운 동행>에서 어떤 그림을 보면서 주인공을 한 복판에 크게 그려놓은 그림을 보고 나의 선생님이 한 말씀 하셨다. 사람이 자연에 대해 폭력을 행사한 것이라 하신다. 사람은 본래 한쪽 끝에 조용히 들어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자연이 사람에 우선 하거늘, 사람의 오만 방자함이 자기를 턱하니 중간에 말도 안되는 크기로 그려놓고 있습니다. 이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방금 쌍코피를 제물로 바치고 르네상스에서 돌아온 나는 또다시 새로운 각도에서 서서 그림들을 바라봐야하게 됐다. 무엇을 더 바쳐 성스런 지혜를 얻을 것인가....
내 청춘도 지나가네
내 청춘도 지나가네
말라붙은 쌍코피 염전 가득 쏟아지는 햇살들
그렁그렁 바람을 타고 마음의 소금 사막을 지나
오른발 왼발 가벼운 신발 위에 한 짐 가득 연애편지만을 싣고
내 청춘도 지나가네, 손 흔들면 닿을 듯한
애틋한 기억들을 옛 마을처럼 스쳐 지나며
아무렇게나 흙먼지를 일으키는 부주의한 발자욱처럼
무너진 글빨에 우히힛~ 짧은 웃음만을 던져둔 채
내 청춘도 지나가네, 하늘엔
바람에 펄럭이며 빛나는 빨래들
하얗게 빛바랜 마음들이 처음처럼 가득한데
세월의 작은 도랑을 건너 첨벙첨벙 찰랑찰랑
철 지난 마른 풀들과 함께 철없이
내 청춘도 지나가네, 다시 한 번 부르면
뒤돌아볼 듯 뒤돌아볼 듯 기우뚱거리며
저 멀리, 내 청춘도 가고 있네
별짓을 다 합니다. 아무래도 내가 돌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