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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4일 07시 25분 등록

여행의 영향이 많이 있겠지만  생각들이 사라지기 전에 ...
7년간의 ...긴  여행이  마무리되기를 소망하면서...



길이 끝나는 곳에서

프롤로그

 

길은 없다.

아무도 가지 않았으므로

 

 

“상황은 최악이네만....”

부회장님은 나를 반기면서도 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첫마디가 그랬다. 그렇게 올림픽예선 최종선발전을 사람들은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길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협회 사무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날씨는 어두침침하고 무거운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와는 달리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펜싱에 입문해서 우승을 했던 모든 시합때마다 비가 내렸었다. 그래서 인지 몰라도 부회장님의 무거운 첫마디에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대만국가대표팀 총감독을 하다가 아틀란타 올림픽 출전권한을 확보하기 위해서 새로운 국가대표팀 코치진으로 임명받아 귀국했다.

‘사실 우리는 이기기위한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네, 자네를 부르기는 했네만...’ 그렇게 이어지는 부회장님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이 무슨 뜻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올림픽은 회를 거듭할수록 그 규모가 커졌고 그로인해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기점으로 예선전 따로 하지 않고  출전하던 펜싱도 예선을 거치게 되었다.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펜싱에 할당 된 총인원은 300명 이었고 5종목으로 나누면 한 종목당 50명이다. 단체전은 주최국을 제외한 7개 국가였다. 세계대회에서 7개국을 선발하고 그 후 각 대륙에 따라 1 장의 와일드카드가 주어진다.

50개국이상이 참여하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무조건 7위 안에 들어야 한다. 이것은 아시아,미주, 호주, 북유럽의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가진 국가들을 제외하더라도 독일, 헝가리,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에스토니아, 쿠바, 스위스, 스페인, 미국, 그리고 중국등, 당시 세계급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을 가진 선수를 한 사람 이상 보유하고 있는 강팀 중 4팀이상을 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합리적으로 생각하든 상식적으로 생각하든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국 펜싱은 1994년 일본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참패했다. 아시안 게임은 소련연방의 붕괴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서아시아의 국가들이 아시아 지역으로 편입되면서 경기의 판세는 달라졌다. 중국과 1,2위를 다투던 전과는 달랐다.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의 유력 종목이던 남자 에뻬는 카자흐스탄에 져서 3위에 그쳤으며, 여자 플러레는 약체라고 생각했던 일본에게 져서 결승행이 좌절되었다.  전 종목에서 기대이하의 성적을 거두게 되었었다.

애틀란타 올림픽에서부터 정식종목으로 추가된 내가 맡기로한 여자 에뻬팀은 상황이 더 나빴다. 그 동안에도 세계대회 출전 때나 겨우 시합전에 일시적으로 합동훈련을 했고, 아시안 게임에만 대표팀이 구성되곤 했다. 그러나 경험있는 대표선수들이 은퇴하고 2선으로 물러나 가능성없는 대표팀에 합류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후원을 하는 펜싱 협회 회장은 공석중이었고, 협회의 재정은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 필수적인 해외 전지훈련 조차 여의치 않은 것은 물론 대표팀 코치진의 급여도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

“난 펜싱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합심해서 대표팀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네만.... 자네는 이길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겠나....”

그렇게 무대포로 불리울만큼 자신만만하던 부회장님이 말끝을 흐리고 있었다.

만약에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한다면 ... 그렇게 되면 훈련예산을 비롯한 정책적 지원은 줄어들고 따라서 국제 경기 출전 기회는 없어져 다른 국가와 수준 차이가 점점 더 나게 될 것이다. 더 많은 선수들이 은퇴하게 될 것이고 결국 88올림픽 이후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여 온 것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나는 아무 말없이 이야기를 듣다가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비가 와서 시합에 이겼을까, 시합에 이겨서 비가 왔을까? 그러다가 문득 인디언 호피족의 기우제가 생각이 났다. 인디언 호피족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왔는데 그이유는 바로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심각한 표정을 하고 무겁게 앉아있는 부회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나도 모르게 차분하지만 검기(劍氣)가득 힘이 들어 간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IP *.8.23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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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1.09.05 11:43:47 *.237.209.28
운좋게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덕으로
초고를 읽을 수 있는 영광을 얻었었죠.

제게 원고를 넘겨놓고 주무시는 틈을 타
얼렁 노트까지 펼쳐놓고 필사해가며 읽었답니다.
그만큼 제 가슴을 무찔러 들어온 구절들이 많은 글이었죠.

말씀드렸듯이
선배님의 책이 세상에서 해야할 일이 참 많습니다.
얼렁얼렁 서두르시어 책꽂이에 소장할 수 있는 버전의 지혜로 묶어내 주셨으면 합니다. 

그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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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1.09.05 17:52:37 *.8.230.152
아이때문에 정신없을 텐데도 불구하고 ...
여행중에 엉뚱한 부탁을 해서  사실은 좀 미안했어.
거기다가 정리해주고 격려까지 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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