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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23일 07시 40분 등록

 

10 

보이는가? 니케의 미소가..

 

모든 사람, 당신 생애의 모든 사건들은
 당신이 그것들을 거기에 끌어다 놓았기 때문에
거기에 있는 것이다.
당신이 선택하는 것과 그것들의 관계는
당신에게 달려있다.

-리하르트 바흐-


samothrace 의 niche.jpg 

"헤이그(Hngue)" 네덜란드 정치의 중심지, 많은 국제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의 북해 해안의 휴양도시 그리고 이준 열사를 기억하게 하는 도시, 나에게는 왠지 비장한 느낌이 드는 그런 도시였다. 그렇게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세계 선수권 대회는 막이 올랐다.

비행기로 암스테르담을 거쳐 헤이그로 가야했다. 14시간의 장거리 비행과 시차와 현지 적응을 위해서 우리는 개막일 사흘을 남겨 놓고 출발했다. 선수촌을 떠날 때, 촌장님은 눈을 마주치며 굳게 악수하며 ‘기대하겠네 !“ 라는 짧은 격려의 말을 했다. 공항엔 협회 관계자 몇 사람과 응원을 위해 함께 출발하는 대표선수 소속팀의 감독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짐을 부치고 기다리는 동안 모두는 말이 없었다. 애써 일상적인 화제를 꺼내다가도 숙연한 분위기에 수그러 들어 버렸다.

  날 개 뒷 쪽 창가에 앉은 나는 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비행기는 해를 거슬러 시베리아를 지나 서쪽으로 우랄 산맥을 넘어 가고 있었다. 나는 컴퓨터 켜놓고 시합일정과 훈련 계획을 검토하려고 훈련일지를 들었다. 일지를 들어 펼치려는 순간 그림엽서 한 장이 흘러내려 테이블위로 떨어졌다. 지금 결전을 하러 가는 이 순간에, 전략을 검토하려는 이 순간에 이 엽서가 내게 보였을까... 사진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각품인 samothrace 의 승리의 여신(niche)이었다.

옆에 앉아서 애써 오지 않는 잠을 청하던 재린이 뒤집어 쓰고 있던 담요를 거두고 나를 쳐다보았다. 재린은 심각하지 않고 즐거운 표정으로 엽서를 보고 있는 나에게 물었다.

“ 좋은 일 있으세요? ”

  함께 훈련하고 노력하면서 서로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었다. 새벽훈련을 하러 운동장으로 걸어 나오는 선수들의 걸음걸이만 보고도 어제 무슨 일이 있는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를 알 수 있을만큼 서로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갖고 훈련을 해 왔으므로 그럴 것이다.

“ 이 엽서 기억나니?”

“ 파리에서 훈련할 때, 휴일 날 들렸던 루브르 박물관에서 산 그림엽서잖아요?”

“그래!”

“재린아, 옛날에 전쟁에 나갈 때, 승리의 여신인 니케(niche :미국발음 나이키)의 미소를 보는 자는 승리한다고 그랬다 자! 니케가 미소를 짓고 있지 않니?”

재린은 엽서를 받아 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안 보여? 난 보이는데...”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에이~ 선생님! 얼굴이 없잖아요..”

그러면서 이리저리 엽서를 움직여 보았다.

“그럼, 여신은 본적이 있어?"

"아.니요!“

“ 이 조각처럼 여신이 날개를 달고 이런 몸을 하고 있을까? "

내가 다시 묻는 말에 재린이 대답했다.

“그건 뭐... 조각가의 상상이잖아요?”

“그럼 말야... 여기도 상상 할 수 있잖아?”

내가 사진 속의 얼굴 부분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 ...네..! 그렇죠..”

그러면서 재린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더니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멋 지쟎아? 그렇지?”

재린이 나를 보고 말 없이 씨익 웃었다.

“난 있잖아, 일정 때문에 훈련일지를 펼치려고 하는 데 그게 테이블위로 떨어져서 기분이 좋았다. 하필이면 시합을 하러 떠나는 지금, 그리고 우리가 마치 전쟁처럼 생각하는 시합의 구체적인 계획을 검토하려는 지금 말야...”

“진짜 그러게요...”

“그래서 내가 아까 웃고 있었다...”

“아..네에... 그러니까 선생님은 신의 축복을 받은 기분이셨겠군요!”

  아침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른 초가을인데 약간 무덥게 느껴지던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던 어제까지 와는 달리 소리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호텔 문을 나서 선수단 셔틀버스 쪽으로 가면서 느끼는 공기는 신선했고 시야는 선명했다.  셔틀버스 앞에서 선수들을 기다리는데 재정이 내게 다가 왔다. 대회기간동안 통역도 하고 선수단을 돕기 위해 파리의 펜싱학교에서 와 있었다.

  "선생님, 오늘 이길 수 있을까요?"

재정은 애써 희망이 없다는 표정을 감추며 물었다.

“난 말이야…… 내가 시합에 이기고 지는 것에 상관없이 변하지 않고 똑같이 행동할 수 있을까?.”

재정은 갑작스런 엉뚱한 반문에 무슨 뜻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 그랬다. 5분 앞을 내다보면 천하를 지배하고,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있으면 예언자가 되고 1년 앞을 내다볼 수 있으면 사는 게 재미없다고 그랬다. 나는 셋 중의 어느 것도 아니고 점쟁이도 아닌데 어떻게 앞을 내다볼 수 있겠냐? 앞 날을 아는 것은 신뿐이니 그저 이기고 지는 것은 신에게 맏기고 내가 할 수 있는 가능한 일을 기대하고 있다. 그건 스스로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니까, 오늘 누구든 우리와 싸울려면 죽을 힘을 다해 싸워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

  한국 팀이 단체전 7강에 들어간다는 것이 바늘구멍으로 낙타가 지나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재정은 알고 있었다. 개인전 결과에 의해 만들어지는 대진표에 따르면 한국 팀이 32강에서 미국을 이긴다고 해도 16강에서 세계최강 독일과 만나게 되어 있었다. 독일 팀에는 세계랭킹 1위, 3위, 5위, 7위의 선수가 포진해 있었다. 다른 국가의 선수들도 모두 독일의 올림픽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여기는 분위기였다. 재린이 그나마 개인전 32강에서 세계랭킹 1위인 독일의 나스를 꺾은 것 때문에 예선 첫 경기에서 예선 전적 1.2. 3, 4위의 팀을 피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까, 사람들은 설마,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재정이 물었을 것이다.

“죄송해요, 선생님! 저는 그저 이길까 질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어서 그만…… 오늘 시합 진짜 볼 만하겠네요.”

나는 셔틀버스 안에서 선수들에게 말했다.

"첫 게임은 명아가 뛰고 마지막 게임은 재린이 마무리한다. 세희는 중간에서 버틴다. 정영은 대기한다. 틀림없이 미국은 미시를 첫 게임에 내보내 승세를 잡으려고 할 거다. 첫 세 판은 훈련했던 것처럼 탐색한다. 득점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른 선수들이 남은 두 경기를 유리하게 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움직여 오늘 게임에 대한 상대 선수들의 많은 정보를 얻자. 그리고 중반에 승부하자. 미시는 잘 하는 선수지만 나머지 두 선수는 실력이 미시에 비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미시가 점수를 많이 벌어 놓으려고 할 거야. 참고하기 바란다. 그러니까 미시한테는 가급적 포인트를 내주지 말아야 하는데 그럴려면 좀 더 부지런해야 한다. 그리고 중반에 승부하고 후반에는 나머지 둘 중에 하나를 골라 집중 공략하자 어때 좋지?."
"네~" 선수들의 확고하고 분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미국과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미국은 올림픽 개최국이다. 개최국들은 국민적인 사기 때문에 더 나은 성과를 위해서 많은 지원을 한다. 우리가 서울 올림픽에서 그랬던 것처럼...

첫 선수 미시는 A급 국제경기에서 우승한 적이 있는 경험도 많은 장신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미시는 최대한 점수를 얻어 놓기 위해 계속해서 밀고 들어왔다. 명아는 158센티미터, 미시는 178센티미터, 겉만 보아서는 대학생과 초등학생의 대결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경기는 예상과 전혀 다르게 진행되었다. 명아는 특유의 강력한 안쪽 방어를 하면서 바깥쪽으로 한 바퀴 회전해 감아서 날아 들어가 찌르는 플래시 공격을 감행했다. 명아의 플래시는 남자 선수들만큼 빨라서 미시는 번번이 실점했다.  세희도 잘 싸웠다. 중간에 나서서 실점 없이 하나씩 하나씩 보태 주었다.

중반의 여섯 번째 게임이 끝났을 때 이미 경기는 우리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미국 선수들은 악착같이 달려 들었으니 6점차를 따라잡기을 수 없었다. 재린이 막 판에 나가 미시에 대한 미국팀의 기대를 완전히 꺾어버렸다. 시합은 45:36으로 마무리 되었다. 시합을 끝내고 서로 교환하는 코치들의 악수... 미국팀 감독의 손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내 손을 꽉 쥐면서 패패를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good luck ! next match!"

  독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한 식사를 했다. 대부분 많이 먹지 않고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말들도 없었다. 선수들은 긴장해 있었다. 아니 약간 흥분해 있었다. 독일이라고 해서 기가 꺾인 것은 전혀 아니었다. 주장 재인이 개인전에서 나스에게 이겼을 뿐만 아니라 전지훈련 기간에 있었던 보쿰 시합에서 다른 두 선수에게도 이겨 보았기 때문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나도 따로 특별히 말을 하지 않았다. 말없이 선수들을 지켜보다가 경기를 시작하기 위해 상호 인사를 하고 돌아오자. 편안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다함께 손을 모았다.

“자, 가자! 하나, 둘, 셋, 파이팅!”

독일 팀 쪽에서는 아침부터 방송사 카메라맨이 녹화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느긋한 표정과는 달리 독일 팀 감독은 코치와 함께 서성이며 무엇인가 큰 소리로 외쳐댔다. 그들은 긴장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시합은 비등하게 가고 있었다. 초반 3게임에서 1점 뒤지다 중반 3게임에서는 4점 차이로 벌어졌다. 마지막 3게임 시작된 후반경기에서 명아가 1점을 따라잡고 세희가 1점을 따라잡고 았었다.

남은 시간은 1분. 2점차.

펜스 밖에서는 경기를 끝낸 다른 팀들이 모두 와서 지켜보고 있었다. 한 포인트 한 포인트 득점이 일어날 때마다 탄성을 질러댔다. 두 선수가 한 판 붙은 뒤에 다시 중앙대기선으로 돌아가 준비 자세를 취할 때는 응원 소리, 작전지시 등 온갖 소리들이 쏟아졌다.

나는 꿈쩍 하지 않고 서서 선수들을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었다. 선수가 한 동작 한 동작 움직일 때마다 지나온 훈련의 장면들이 책갈피 넘어가듯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나는 세희와 함께 또 다른 경기를 하고 있었다. 기억 속의 훈련 장면들이 빠르게 지나가더니 어느 순간 딱 멈추었다. 상대방의 앞 발에 공격하는 장면이었다. 상대방과 동시에 앞 발이 내디뎠을 때 세희의 기습적인 무릎 공격은 성공율이 높았다.

“세희, 발!”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치 동시에 이루어진 것처럼, 세희의 칼끝이 상대의 무릎을 향해 날아갔다. “삐이~” 하는 심판기의 울림과 함께 함성이 체육관을 흔들고 지나갔다.

“끝내자 세희! ”

여덟 번째 판을 1점 차로 남은 5초를 마무리지었다.

IP *.8.230.133

프로필 이미지
백산
2011.09.23 15:40:40 *.8.230.133
재동 ! 왜 그림이 안 보여?
프로필 이미지
2011.09.24 06:24:22 *.46.245.45

아마 bmp파일이라 바로 보이지 않나 봅니다.

jpg나 gif로 포맷을 변경해서 다시 첨부하시면 될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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