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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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미터 달리기를 하면 죽을힘을 다해서 뛴다. 대부분 1대 1로 하는 게임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모든 책임과 권한이 주어져 있는 1대 1 게임과는 달리 '불특정 다수' 가운데 한 사람일 때에는 전력투구하지 않는다. 익명성이라는 환경 뒤로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여러 명 중의 한 명, 주목 받지 못하는 조직의 한 명으로 취급 받을 때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반대로 혼자만의 책임일 경우 상황은 반전된다.
독일의 심리학자 링겔만이 집단에서 개인의 공헌도를 측정하기 위해 줄다리기 실험을 했다. 1대 1 게임에서 한 명이 내는 힘을 100으로 할 때, 자기 팀의 숫자가 늘면 개개인들이 어느 정도 힘을 쏟는지 측정했다. 실험 결과 팀이 두 명이면 93으로, 3명이 되면 85로 줄었고, 8명이 함께 할 대 한 사람은 49의 힘, 즉 혼자 경기할 때의 절반밖에 힘을 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집단 속에 참여하는 개인의 수가 늘수록 성과에 대한 1인당 공헌도가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를 링겔만 효과라고 한다.
이것이 경영자들의 오랜 과제가 되었다. 익명의 커튼 뒤로 숨으려는 구성원들을 무대 앞으로 나오게 하여 조직이 원하는 바에 공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경영의 오랜 숙제가 된 셈이다.
개인별 보상이 최선인가
이런 숙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도입된 것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개인 성과주의 제도'이다. 기업의 이익에 기여한 바에 따라 구성원에 대한 대우를 달리하는 정책이다. 이 개념을 기본으로 하여 조직의 평가, 보상, 직제, 교육, 복지 등 모든 인사제도가 톱니바퀴처럼 물려서 운영되고 있다. '사랑을 받고 싶거든 너의 충성심을 성과로서 먼저 보여다오' 하며 외치는 아우성 같다.
하지만 이 제도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금방 오류 하나를 눈치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종모양으로 나타나야 하는 사랑의 모습이다. 구성원 전체의 사랑은 하트가 아닌 종모양이다. 구성원의 사랑과 능력을 평가하여 정규분포의 모양으로 늘어놓아야 이 제도는 유효하게 된다. GE의 전 CEO이자, 스타 경영자인 젝 웰치가 복음처럼 전파했던 2 : 7 : 1의 '일하게 하는 마법' 또한 이런 '차별정책'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런 방식은 경쟁과 공포를 기반으로 한다.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그래서 실적을 올리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위협이 암암리에 가해진다. 회사는 구성원들 가운데 꼬리의 10%는 평균 이하이고, 이들은 마치 죽은 나무처럼 회사 전체를 위해 마땅히 잘려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조직은 자발적인 사랑과 협력을 잃게 되고 삶의 무대는 삭막한 경쟁이 지배하는 사막으로 바뀐다. 사막에서는 꽃이 피지 않는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게 된다.
협력을 생각하자
나는 승리에서 다음과 같은 이미지를 떠올린다. 김연아가 트리플 악셀을 멋지게 성공하고 시상대에 섰을 때 같이 눈물 흘리는 순간을, '나는 가수다'에서 바비킴이 2주간의 긴장을 이겨내고 막춤을 출 때 다 같이 환호하고 들썩이는 순간에서, 영원한 산 사나이로 슬픔처럼 산에 묻힌 박영석 대장의 탐험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승리, 함께 감탄하는 위대한 승리의 느낌을 접한다.
이렇듯 승리는 박수 받는 것이며, 감탄하는 것이다. 위대한 승리는 모두를 공감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제러미 리프킨이 <공감의 시대>에서 "깨달음의 핵심은 '내'가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유일한 '우리'가 수없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라고 했듯이 진정한 승리는 나를 잊고 '우리'라는 우주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어떠한가. 직장에서의 승리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개인의 성공은 철저하게 개인의 성공일 뿐이다. 성과라는 목적을 위해서 우리는 너무나 쉽게 '협력'이라는 가치를 벗어버리고 '경쟁'이라는 외로운 옷을 해 입고 있다. 그래서 승리의 순간에도 우리는 화려한 트로피를 홀로 들고 미안하게 기뻐한다. 축하는 사라지고 감탄과 환호의 자리에 질시만 남아있다.
회사는 개인들이 각자 활동할 때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만들어진 집단이다. 즉 시너지 효과를 전제로 해서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시너지 효과란 <1+1=2>라는 개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하지만 '경쟁'의 최대값은 절대 "2"를 넘어서지 못한다. '협력'이라는 열쇠를 가질 때에만 우리는 "3"이상의 성취를 얻을 수 있다.
멘즈웨어하우스(Men’s Warehouse)는 미국에 600여 개의 점포를 보유하고 연 매출 8억 달러 이상을 올리는 남성의류 사업 업체이다. 미국 내에서 사양산업이고, 우수인재가 꺼려하는 소매업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지속하는 데는 뿌리 없는 경쟁의식을 부추기기보다는 "협력"이라는 가치를 알게 하는데 그 이유가 있다.
멘즈웨어하우스의 판매 직원들은 기본 연봉 외에 1인당 손님 수와 매출을 기준으로 인센티브를 받는다. 그러나 공평하지 않은 무조건적인 경쟁은 벌칙을 받는다. 개인의 능력을 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팀워크’라는 원칙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의 CEO짐머 사장은 “모든 직원들은 동료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계발할 수 있도록 도와 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각종 교육을 통해 강조한다.
이런 원칙을 지키기 위해 멘즈웨어하우스는 매달 모든 판매 직원이 작성한 전표의 수를 확인한다. 만약 한 점포에서 특정 직원이 다른 직원들보다 훨씬 많은 전표를 작성한 것으로 나타나면 일단 다른 직원들의 고객을 가로챈 것으로 보고 면담을 한다. 그래도 고쳐지지 않으면 과감하게 해당 직원을 해고한다. 실제로 멘즈웨어하우스는 자사 직원 중 판매 실적이 가장 높은 ‘스타’ 직원을 해고한 적이 있다. 다른 직원들의 고객을 가로채고 회사의 경영 철학과 방침을 따르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 결과는? 해당 점포에서 그 어느 누구도 해고 당한 직원만큼의 실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점포 매출은 오히려 30% 정도 증가했다. 개인의 실적보다 ‘팀’을 앞세운 경영이 기업의 성과에 더욱 도움이 되고 있는 사례다.
결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 직원들의 그림자 속에 묻혀있는 팀웍이라는 공동체 정신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개인 성과주의의 확장'에서 교왕과직(矯枉過直)의 느낌을 받는다. 한편에서는 '경쟁'의 논리를 외면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을 모르는 우(愚)를 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쟁의 진정한 가치는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순간에도 모두가 성장 발전했다는 뿌듯함이 공유되어야 하고 함께 박수칠 수 있어야 한다. '패자 = 루저'가 되는 현실에서의 경쟁은 구성원들을 지치고 소모되게 할 뿐이다.
다니엘 핑크는 삶의 조화를 이야기 하면서 "클로버는 세 잎이면서 여전히 한 잎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것은 온전히 존재하는 하나하나가 '공존과 협력'이라는 우산아래서 함께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상징한다. 우리가 일하는 현장은 공동체이다. 공동체는 협력을 전제하고 만들어지는 유기체이다. 협력이 상실되는 순간 유기체의 숨은 멎는다.
'개인별 성과주의'의 확대는 우리를 '일과 성과'라는 무대에서 춤추게 하였지만 '삶'이라는 무대에서는 덫이 되어 보폭을 좁히게 한다. 제러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에서 진리는 자율적 사실이 아니라 만물이 서로 관계를 맺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진리는 객관적이거나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공통의 경험적 기반을 함께 만들기 위해 모이는 틈새 영역에 존재하는 이해라는 것이다.
우리의 직장 문화는 진리에 가깝게 있는가. 아니면 멀어지고 있는가.
<끝>

사부님이 얘기하셨던게 어떤건지 오라버니 글을 읽으니 알겠음.ㅋㅋㅋ..
팀웍, 공동체, 사람 중심이란 중요한 키워드를 위대한 승리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어요. 정말 사막처럼 삭막한 느낌 때문에 책 읽으면서 힘들었다는..
참, 얼마전에 건너건너 아는 분이 쓴 책을 선물 받았는데, '기업문화 오디세이'라는 책이에염..
주말에 잠깐 읽어봤는데, 좋았음. 뭔가 지금까지 다니엘핑크나 게리 헤멀과는 또 다른 접근방식이라 신선했다고 할까.. 추천합니다.ㅋ^^

링겔만 효과를 개인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러겠지만
개인의 공헌도가 줄어드는 이유는 전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요소들간의 개인차때문에 상대적인 균형을 갖추기 위해서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지유?
전체이면서 하나인가? 하나이면서 전체인가? 하는 문제는 전체로서 하나는 역할, 하나이면서 전체는 개별 속성의 문제인 것으로... 그 균형은 관계와 질서의 평형에서 오지않는가? 공감은 통합인가? 진리는 그 균형잡힌 통합으로 부터 오는 가치와 의미인가?
뭐 이런 저런 생각...
나는 개인운동인 펜싱을 하기때문에, 개인과 조직이라는 입장이 아니라 부분과 전체라는 입장에서 개인과 조직을 통합해서 보는 것인데 ...
최근에 요청받은 선수의 훈련에서
'이 선수는 뭐 이렇다할 특별한 기술이 없어요? ' 라는 질문에
'이 선수는 특별히 못하는 것도 없지!' 라고 말했다.
'자신있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 라고 말하자 그렇게 대답했다.
'아니, 맘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니?' 라고 ...
나는 그 선수에게 특별한 기술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상황에 적절한 선택을 할 수 있는가를
가르쳤다. 자네가 이야기하는 멘즈웨어하우스의 성과하고 비슷한거 같아....
그 선수는 2년만에 한 번 있는 대만 전국체전에서 우승했고 포상금으로 1000만원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은 힘들어... 오빠의 칼럼도 힘들어,,ㅋㅋㅋㅋ
근데 이번 칼럼은 쉽다. 쏙쏙 들어와~
결국은 다 개인을 생각하게 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빠의 칼럼은 반성을 일으키는 군
그래 우린 팀이지????
쉽지 않다고 하여 오빠의 그간의 칼럼이 좋지 않았다는 뜻은 아님ㅋ
좋은지 좋지 않은지 판단할 만하지도 않았다는 거지 ㅋㅋㅋ
그냥 난.. 조직의 문화와 용어를 잘 모르기에 뭔말 인지 잘 모를 뿐이야.
사부님께서 오빠에게 HR의 길을 제시하셨을 때 난 HR이 뭔 말인지 몰랐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