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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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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7일 01시 33분 등록

“아빠 친구 딸은 이번에 임용고시 붙었다더라. 그러게 내가 너보고 공부 열심히 해서 교대가라고 하지 않았니?

 선생하면 얼마나 편하고 좋냐.”

“......”

 

대학교 때 어쩌다 아빠와 함께 식탁에 앉게 되는 시간이면 아빠는 어김없이 이런 이야기를 던지곤 하셨다. ‘지금에 와서 어쩌라고, 수능을 다시 볼 수도 없고, 무엇보다 난 선생님은 싫다고...’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들이 마음속에서 무심히 울릴 뿐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엄친아, 엄친딸 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빠가 유별나게 비교를 많이 한다고만 생각했을 뿐 다른 집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축어가 보통명사처럼 익숙하게 사용되는 것을 보면 이건 어느 몇몇 집의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왜 그토록 우리 주위에는 잘난 자녀들을 둔 부모들이 많은 걸까? 그리고 엄친딸, 엄친아 운운하며 자녀들을 자극하면 자신의 아이들도 엄친아, 엄친딸이 되어 줄 거라 기대하는 것일까? 물론 그 말에 자극을 받아 현재상태보다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아이들도 없진 않다고 본다. 하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은 그런 비교로 인해 점점 위축될 뿐이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엄친아, 엄친딸의 활약으로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녀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다.

 

최근 타계한 스티브 잡스는 이런 말을 하였다.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니 남의 인생을 사느라 삶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 낸 결과에 얽매어 갇혀 있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여러분 내부의 목소리를 잠식하도록 놔두지 마세요.”

 

물론 알고 있다. 자신의 자녀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런 비교를 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 비교가 꼭 타인이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이 각자 가지고 있는 재능은 다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엄친아, 엄친딸 그들은 한 가지 이상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에 만능이거나, 공부도 잘하는데 성격까지 좋다. 하지만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자랑을 하고 싶어 하고 거기에 어느 정도의 과장은 하게 마련이다. 잘난 자녀를 두고 있다는 것은 부모에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하는 자랑스러운 일이기는 하다. 그런데 무엇을, 누구에게 그렇게 자랑하고 싶은 것일까? 또 그 잘났다는 기준은 무엇인걸까? 어느 대학에 갔다더라, 무슨 대회에 가서 어떤 상을 받았다더라. 어느 대기업에 취업 했다더라. 자랑거리가 되는 것들은 이와 같이 다 표면적인 것뿐이다. 대학이, 대회 수상경력이, 취업한 회사가 그들의 평생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남 앞에 드러내기에 좋은 그저 허울 좋은 간판일 뿐이다. 학교나 상장, 회사 이름으로만 개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비교하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에 불과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 이지 어떤 옷을 입고 있느냐가 아니다. 엄친아, 엄친딸이란 말이 등장한 것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자식을 통해 이루려고 하는 욕심을 가진 부모가 많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식을 통해서라도 이루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그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자신의 삶이 아닌 부모의 아바타가 되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 또한 적지 않다.

이 모든 것의 발로가 다 부모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가 내세울 것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자식을 통해서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결국 자녀를 통해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 하는 욕구 때문이다. 원하는 공부를 다 마치지 못하셨던 아빠는 자식을 통해 못 다한 꿈을 이루려고 하셨다. 하지만 나와 동생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요즘은 안 하시지만 내가 20대였던 때만해도 가끔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하셨다.

 

 

“아빠는 지금 이 위치에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으니깐 너희들이라도 더 올라갔으면 하는 마음에 공부 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라고 한 거 아니니.”

 

 

우리가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면 아빠의 한이 어느 정도는 풀어지셨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완전히는 아니라 생각된다. 그것이 완전히 해소되려면 방법은 하나, 아빠가 직접 대학에 들어가시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건 지금 당장 현실화되기는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고 누구에게나 앞뒤 상황 따져보고 추측할 수 있는 생각으로 끝없이 비교하는 부모를 덮어놓고 이해하라고 할 수도 없다.

학교에 대한 이야기도 더 이상 하지 않으실 무렵의 어느 날 아빠의 작업 공간에 단 둘이 있게 되었을 때, 문득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 고등학교 때, 아빠가 싫었지?”

“그때 아빠가 맨날 남하고 비교하고 그러니깐 그게 싫었지.

아빠는 모르지? 내가 그때 오기로 공부 더 안 한거.”

“그런 것 같긴 하더라. 그런데 그땐 아빠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 그런 거야.”

 

아빠 입에서 이런 말을 하시다니, 뜻밖이었다.

사실 남부럽지 않게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았지만, 그 모든 환경을 제공해주는 아빠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과거에 아빠로부터 받은 스트레스의 보상정도 라고 가볍게 여겼을 뿐이다. 사회라는 곳에 발을 담그게 되면서 그제야 내가 누린 모든 것들이 아빠의 얼마나 많은 땀을 통해 얻게 된 것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고, 아빠는 뭐 하나 제대로 마무리 짓지 않고 변덕부리며 사는 나를 그저 묵묵히 지켜만 보셨다는 걸, 나만 아빠를 견디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빠는 그보다 더 나를 많이 견디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을 자주 들락거릴 때 아빠는 어느 날 운전을 하시다가 사소한 대화 끝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희는 모를 꺼다. 아빠가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빠는 정말 너희들을 사랑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당연한 것이라 여기고 있었던 나였지만, 그날 아빠의 이 말은 가슴 한 구석을 울렸다. 방법이 나와 맞지 않았을 뿐이지, 아빠의 그 끝없는 비교도 자기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자녀에게 거는 기대가 없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대가 어디서 시작됐느냐에 대해서는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한다. 과연 100% 아이를 위해서라고 할 수 있을까? 거기에 아이를 통해 보상받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 마음에 상처들이 하나 둘씩 생기고 그로 인해 점점 모든 것에 자신 없어하며 마음이 점점 찌그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갑자기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 평소 안하던 행동을 하며 닭살스럽게 아이에게 “애야, 너를 사랑한단다.” 또는 갑자기 부모님을 뒤에서 와락 껴안으며 “그동안 저 때문에 참느라 힘드셨죠? 지금까지 절 견뎌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며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기회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보라고 권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이해의 폭을 조금씩 넓혀 보는 것은 어떨까? 그 이해의 폭은 자식의 입장에서는 인생을 경험하는 만큼, 머리가 커지면서,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조금씩 늘어나게 된다. 부모라면 그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지 않을까?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이 잘 되라고 하는 모든 말이나 행동들을 아이입장에서 듣게 된다면 어떨까? 하며 잠시라도 아이의 마음으로 한번 들어보자. 그 다음엔 왜 내 마음에 드는 것은 하나도 없고, 부족한 부분만 확대되어 눈에 보이는 건지. 도대체 자신의 마음에 꼭 들기 위해서는 아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한번 그려보자. 혹시 모든 것에 만능인 인조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현실을 꿈꾸고 있을 지도 모르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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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7 08:52:02 *.143.156.74

미선아, 글이 훨씬 좋아졌다.

메시지도 잘 정리되고 아버지와의 다른 에피소드가 들어가면서 더 감동적이야.

미선이가 날로 성장하는구나.

이렇게 미선이도 자신의 문제를 조금씩 해결해가는구나.

미선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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