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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7일 07시 44분 등록

<꼭지24.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란 녀석 때문에 내 얼굴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던 것이? 대학생 때는 확실히 아니다. 부모님이 보내주신 용돈과 꾸준히 했던 과외로 가끔 엄마에게 선물을 해 줄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에 엄마는 종종 대학생 때를 떠올리며, ‘학교 다닐 때는 가끔 연극도 보여주고 하더니, 어째 직장 다니면서는 하나도 없냐?’라고 내게 말씀하시곤 했다. 첫 직장인 보험회사에서 보험영업을 시작하고, 급여 정책이 바뀌기 전까지는 기대만큼 많은 돈은 아니지만, 혼자 쓰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돈을 벌었다. 급여 정책이 바뀌고, 나의 실적이 널을 뛰기 시작하면서였다. 그리고 나는 먼저 쓰고 나중에 갚는 신용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의 소비와 지출은 번 돈만큼 쓰는 것이 아니라, ‘일단 쓰고 벌자로 바뀌게 되었다. 악순환의 고리가 시작된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염원이었던 치아 교정을 시작했고, 사촌언니가 아프다고 돈을 빌려달라는 큰어머니 전화에 카드사 대출까지 사용하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즈음부터 급여 체계가 바뀌었다. 보험회사 영업은 기본급이 없고, 계약한 건에 대한 커미션을 월급으로 받는 시스템인데, 입사 당시에는 커미션을 1년에 나누어 받았기에, 나처럼 일을 잘 못했던 사람도 처음엔 급여가 좀 적지만, 꾸준히 어느 정도의 실적이 있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매달 받는 급여가 늘어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중간에 슬럼프가 와서 실적이 좋지 않아도 생활하는 데 무리가 없는 정도의 급여는 받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1년치를 한꺼번에 주는 시스템으로 바뀌게 되면서, 불안해졌다. 매일 사람을 만나야 하고, 돈을 써야 했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계약이나 급여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고객관리를 위해서 쓰는 고정 지출도 있었다. 어느 새 나는 월급이 들어옴과 동시에 카드 값으로 빠져나가고, 또 다시 다가오는 한 달을 카드로 살게 되는 악순환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실적이 좋지 못하면, 카드 값보다 월급이 적어 카드회사의 독촉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이 독촉 전화가 너무 싫어서 카드값을 한 번에 정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하나도 없던 그 때, 처음으로 광고에서 자주 보던 고금리의 대부업체에 전화를 걸게 되었다. 그리고 연이율 50%에 가까운 이자의 대출을 겁도 없이 받게 된 것이다. 대출을 받으면서도 나는 생각했다.

 

이번 달부터 정말 미친 듯이 일해서 이 돈부터 빨리 갚아야지.”

 

하지만, 나는 경제적인 압박이 심해지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사람 한 명 만나서 긁게 되는 카드가 다음 달 월급날에 갚아야 할 돈으로 돌아올 생각에 심한 압박이 느껴졌던 것 같다. 사람을 점점 만나기 힘들어하고, 그렇게 나의 실적도 덩달아 점차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매달 갚아야 하는 돈들이 점차 쌓이게 된다. 결국 돌려 막는 것, 끌어 쓸 수 있는 약관대출도 이제 바닥이 드러난 상황에 이르러서야 나는 결국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늘 나를 믿고 모든 것을 맡겨 두었던 엄마였기에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동생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무척 두려웠다. 하지만 더 이상은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살아야 했다. 엄마에게 모든 경제상황을 얘기하고, 도움을 받았지만, 당시에 매달 나가던 돈을 모두 갚을 수 있는 만큼이 아니었다. 엄마에게 빌린 돈으로 당장 급한 불을 끄기는 했지만, 이후에도 여전히 나는 계속해서 매달 월급이 통장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돈은 카드 값으로 모두 빠져버리거나, 카드값이 부족해 독촉전화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가 보험회사를 관두게 되었다. 빚은 여전히 그대로였으나, 이제는 고객을 만나야 하는 일도, 그로 인해 돈을 써야만 하는 일도 없었다. 그나마 쓰는 돈은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는 또 일을 벌이고 말았다. 3년 전부터 그토록 바라던 연구원이 되고, 돈을 내야 했다. 다행히 돈을 빌릴 수 있었다. 늘 이런 식이다. 무언가 돈 쓸 일이 생기면, 임시방편으로 그걸 매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고, 길이 생겼다. 카드는 리볼빙으로 계속 이자에 이자가 붙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술을 좋아했으며, 택시를 타고 집에 오는 날이 많았다. 어차피 당장 갚지도 못할 건데 그냥 써버리지. 자포자기의 심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스트레스를 돈으로 푸는 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명품 가방을 사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사람들을 만났고, 술을 마셨고, 그리고 술값을 카드로 계산하는 식이었다. 돈이 없어서, 갚아야 할 돈의 무게만큼 답답한 가슴이 만성의 스트레스가 되어 갈 무렵부터 그토록 좋아하던 사람들과의 만남과 술자리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내가 쓰는 돈은 책을 보거나 글을 쓰기 위해 카페에 가는 것으로 좁혀졌다. 물론 담배와 아주 가끔 만나는 친구들과의 가벼운 한잔은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싸다니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는 점차 돈을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간, 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던 카드값들을 오늘 드디어 완전히 청산이 되었다. 물론, 이번에도 역시 도움을 받아서 청산을 했지만 말이다. 빚이 싹 사라지고 나면 너무 좋아서 당장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수 있을 정도로 가볍고 상쾌한 마음이 들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나는 오늘 그간 쌓여서 매달 나를 힘들고, 숨막히게 만들었던 카드명세서를 싹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심지어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누워서 티비를 보는 내내 울었다. 분명한 것은 기쁨의 눈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우울하고 기분이 무척 안 좋을 때 흐르는 그런 눈물이었다. 아마 그 동안의 감정들이 한번에 떠 올라 북받쳐 오르는 눈물일 지도, 이런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 나는 눈물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한 번 도와주셨던 1년 전이 바로 오늘이었더라면, 지금과는 상황도 기분도 많이 달랐을 것이다. 작년에 엄마가 도움을 줘서 빚을 한번에 청산했다면 나는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돈을 막 써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 각서를 썼다.

1.     하루 만원씩 받은 용돈으로 생활을 하겠습니다. 월급날 전날이 되어 10만원 이상이 남아있다면, 50%를 적금에 넣겠습니다.

2.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필요한 돈을 모은 후에 하겠습니다.

3.     카드를 만들거나, 돈을 빌리지 않겠습니다.

 

나이 서른에 이런 각서를 쓰고 있는 나 자신을, 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있는 내가 재무상담 하겠다고 일을 했던, 부끄러운 그 순간들이 떠올라서 더 스스로를 견디기 힘들었나보다.

 

그래도 이제 정말 마음이 편하다. 월급이 들어오고, 여기저기 보내야 할 돈들이 빠져나간 다음에도 잔고가 남은 통장을 보니 말이다. 이런 날이 오기만을 나는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던가

 

<수정하기 #1.>

프롤로그 : 루카의 바람, 잊혀지지 않는

 

이탈리아 여행 8일째 되는 날이다. 나와 일행은 오페라투란도트를 보기 전 저녁을 먹기 위해 루카로 향했다. 마을 안으로는 커다란 버스가 들어갈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마을에서 1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서부터 걸어 가기 시작했다. 내리쬐는 햇빛에 인상을 찌푸리며, “아니 무슨 동네에 버스도 못 들어가?”라며 투덜대며 걷는다. 길을 건너고,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골목길에 들어서자마자 너무나 고요하게 늘어서 있는 정성스레 손질한 정원과 잘 어우러진 예쁜 집들이 보인다. 그리고 더 걷다 보니, 저기 멀리 왠 성벽이 보인다. 몇 천년 전 선조들이 만들어 놓은 피조물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여느 이탈리아의 도시들처럼 루카도 이천년 전 로마의 성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저 성벽 안으로 들어가면 로마 사람들의 살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것만 같은 곳이었다. 루카로를 둘러싼 커다란 성벽 위로 작렬하는 햇빛과 시원한 바람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조깅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치형 문으로 들어갔더니 파란 잔디가 넓게 펼쳐져 있다. 드넓은 잔디 위를 걸어가는데, 어떤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서울 시내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차 소리도, 음악 소리도, 사람들 소리도 없다. 사부작 사부작. 사람들이 잔디 위를 걷는 소리와 온 몸을 골고루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전부다. 나는 두 팔을 벌려 바람을 온 몸으로 느껴본다. 팔을 스치는 바람의 촉감. 그리고 눈을 감아본다. 팔과 목, 다리 그리고 온 몸에 감기는 바람이 온 몸, 온 마음으로 루카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나에게 루카의 첫 인상은 너무나도 평온함, 그 자체였다. 루카는 곧 자연이고, 루카의 바람은 마치 내가 수 천년 전에 이 곳에 살면서 느꼈던 그 무엇인 것만 같았다.

 

눈을 뜨니, 다시 현실이다. 홍대 놀이터 앞 2층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놓고, 뜨거운 태양 아래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또 다시 이탈리아에서 만났던 루카가 생각났다. 카페 아래 좁은 길에서 들려오는 차와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 멀리 들려오는 북소리, 사람들 소리에 루카의 바람이 또 다시 그리워졌나보다. 이탈리아 여행의 후유증이 쉽게 끝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바람과 태양만 있으면 루카에서의 느꼈던 바람이 금새 나를 찾아온다. 단순히 여행 후유증이라는 단어로 이 느낌을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많이 부족하다. 루카의 바람과 마주했던 그 순간에 내가 수 천년전에 그곳에 살았던 로마인이었던 것처럼 느껴지듯이, 이태리 루카와의 만남과 그곳으로의 끌림은 내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탈리아로 어떻게 떠날 것인지 계속 궁리 중이다.

 

신치가 미나에게 들려주는 첫 번째 이야기.

행복을 찾으려면,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잘 관찰하고 그것을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내가 여기에서 행복하다고 하는 것은, 들떠서 행복한 상태, 흥분해서 행복한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 행복한 상태, 그윽한 행복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렇게 행복을 관찰하는 데는 약간의 자기 분석 기술이 필요합니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면, 남이 뭐라고 하건 거기에 머물면 되는 겁니다. 내 식으로 말하자면, ‘천복을 좇으면 되는겁니다.

(조셉 캠벨, <신화의 힘>, p287)

IP *.38.2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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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7 22:29:27 *.138.53.71

뿌듯한 이야기로구나. 마음이 편해졌다니 좋구나. 축하해~^^

 

<신치가 미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인용구가 와닿는다.

오프수업에서 이야기했던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지는 인용문 찾기'를 벌써 시작했어.

미나는 참 부지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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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8 10:51:07 *.32.193.170

ㅎㅎㅎ.. 오라버니 감사감사.. 그러게요. 이렇게 마음이 편한날도 오는가 싶어요. 물론 한편으론 또 엄마에게 돈을 갚아야 하는 무거움이 있긴하지만.. ㅋㅋㅋ

 

아.. 저 인용구를 보는 순간, 이 글에 붙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사부님이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지는 인용문'을 찾으라 하셨을 땐 사실 과연 찾아질까? 어떻게 알아보지? 이런 걱정했는데, 어떤 느낌으로 찾는건지 조금 알 듯도?? ..

 

그냥 꾸준히 읽고 써내려가다보면, 하나씩, 퍼즐 맞추듯 맞춰질 것 같아요~!!!

 

오라버니, 지금 머리 속에 하고 싶은 것들 때문에 마음이 급해서 빨리 해치워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는 중.ㅋㅋㅋㅋ.. 얼른 시작해야지!!! 팟캐스트!! ㅋㅋㅋ.. (얼마나 갈지는 모르지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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