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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1일 20시 33분 등록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내 책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을까? 전직장에서 스티브 유라는 별명을 얻은 나의 내공을 이번 프리젠테이션에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그들에게 이 책이 여자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는 확신을 심어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발표 자료에 김제동 식 유머를 어떻게 버무려 넣어야 자연스러우면서 재미있을까? 북페어가 다가오고 있으니 고민이 많아진다. 늦은 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고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 속이 시끄럽다. 문득 주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서 그 결과를 발표자료에 넣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출판업자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고 대상 독자층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면 책의 내용을 구성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전략이 아닌가 

 

생각한 것은 꼭 해봐야 하는 나. 다음 날 아침 간략한 설문지를 만들었다. 우선 퀼트 교실에 있는 전업주부들을 대상으로 초벌 설문을 하고, 거기서 나온 답변을 참고해 보다 정교한 설문지를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전직장 동료와 여동생에게 부탁해 30~40대 워킹맘들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설문조사를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질문은 모두 6. 초벌 설문이므로 주관식으로 구성했다.

 

1. 당신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2. 당신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3. 휴식 시간에 주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4. 하루 동안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5. ‘여자의 휴식에 관한 책이 출간된다면 구입할 의사가 있습니까?

6. ‘여자의 휴식에서 꼭 다루어 주었으면 하는 주제는 무엇입니까?

 

모두 7명이 설문에 응답해 주었다. 대부분 40~50대 전업주부들로 자녀들은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이 많았다. 설문에 답한 7명 중 5명인 70%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물리적 시간은 있으나 어떻게 휴식을 취해야 할지 모르겠고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휴식을 방해하는 것들로는 아이들, 가사일, 남편 등도 있었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고민거리 때문에 쉴 수 없다고 답한 경우도 다수 있었다. 휴식 시간에 주로 하는 일은 TV 시청, 독서, 수면, 음악감상, 산책, 친구와 수다 떨기 등이 있었고 하루 동안의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여행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전체 응답자 7명 중 5명이 여자의 휴식에 관한 책을 구입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고(나를 의식한 답변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희소식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책에서 다루어 주었으면 하는 주제로는 유익한 여가생활, 취미, 2의 인생 준비 등을 들었다.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적, 환경적 여건이 되어도 걱정이나 고민 때문에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었다. 걱정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남미 과테말라 고산지대 인디언들의 풍습에서 유래했다는 걱정인형 한 세트라도 침대 머리맡에 입주시켜야 할까? 걱정인형 선물 세트에 들어 있는 걱정이 이야기를 들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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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는 걱정이 너무 많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겁쟁이랍니다.

걱정이는 세상사람들이 걱정없이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어느 날, 할머니는 걱정이에게 인형 다섯 개를 내밀며 이야기했습니다.

걱정아, 이 인형들이 네가 자는 동안 너의 걱정을 대신해줄 거야. 그러니 너는 이제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잠을 자렴.”

걱정이는 걱정인형에게 자신의 걱정을 맡기고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모 보험회사 광고로 유명세를 타게 된 걱정인형이 과테말라 인디언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닌가 보다. 다수의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걱정인형을 판매하고 있으며 많은 블로그나 카페에서 걱정인형 만들기라는 제목의 글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나에게도 걱정인형이 하나가 있다. 동기 연구원이 분양해 준 것으로 까칠한 검은 성냥머리에 주황색 얼굴, 하늘색 실로 만든 윗도리와 자주색 실로 만든 바지를 입고 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크기지만 걱정 인형 이야기를 듣고 나니 왠지 믿을만한 녀석으로 보인다. 나도 오늘 밤에는 이 걱정인형에게 나의 고민들을 털어놔 볼까?

 

세계적인 수면 전문가 매튜 에들런드 박사는 내 몸이 새로 태어나는 시간, 휴식에서 수면을 방해하는 걱정을 없애는 데는 인지치료 기법들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인지치료는 필라델피아의 정신분석가 아론 벡이 고안해 낸 것으로 1960년대에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더 우울해하는 환자들을 위해 그가 개발한 치료법이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다음과 같은 순서로 하면 된다.

 

1)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한 후 작은 공책 하나를 펼친다. 

2) 당신을 귀찮게 하는 문제 다섯 가지를 적는다.

3) 각 걱정의 해결책, 즉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앞으로 할 일을 적는다.

 

에들런드 박사는 이러한 인지 치료가 도움이 되는 이유는 두뇌를 문제가 아닌 해결에 집중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인지치료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문제 때문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며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해준다. 더구나 끊임없이 새로운 해결책을 생각해 내다보면 비관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낙관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 이 인지치료를 저녁 식사 후에 하게 되면 늦은 밤 침대에 누워 나처럼 이런 저런 생각으로 잠을 설치지 않아도 된다. 고민을 하다 보면 그 문제는 벌써 해결책까지 마련해 두었잖아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에들런드 박사는 대부분의 문제를 이런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과거에 시도한 해결책을 확인해보고 효과가 없으면 다른 방법을 강구하면 된다. 걱정인형에게 자신의 걱정을 털어 놓듯 자신만의 걱정 공책을 하나 마련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결혼 초 남편은 내가 이런 저런 걱정을 하면 우리 하니(honey)가 오늘은 또 수퍼에서 걱정을 얼마어치 사오셨나?’라며 나를 놀리곤 했다. 남편의 논리는 간단하다. ‘걱정해서 해결되지 않는 일은 걱정하지 않는다.’ 하긴 내가 첫 아이를 낳고 심한 젖몸살로 열이 펄펄 끓어 대학병원에 입원했을 때, 자신이 뛰어 간다고 뭐가 달라지겠냐고 느릿느릿 걸어왔다가 우리 아버지의 미움을 한 몸에 받았던 남편이 아닌가? 남편은 참 속 편히 산다. 이제 마흔 중반인데 아이들은 아직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이다. 천만 다행으로 50대 중반까지 직장에서 살아 남는다 해도 큰 아이조차 대학 졸업도 시키지 못한다. 남편은 자기 사업으로 성공할 타입도 아니다. 결국 내가 벌어야 하는 것인가? 나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그런데 남편은 설 연휴 전날인 지금도 테니스 삼매경이다. 그에겐 걱정을 대신해주는 걱정 인형이 내장되어 있는 것일까? 아니면 해결책을 적어 놓은 걱정 공책이 따로 있는 것일까? 그런 것들은 결코 없을 것이다. 확신한다.

 

사람들의 걱정 거리를 분석해보면 정말로 걱정해야 할 것은 4퍼센트에 불과하다는 통계 자료가 있다. 96퍼센트의 일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거나, 이미 일어난 일이거나, 아주 사소한 일이거나,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나의 등줄기에 식은땀을 흐르게 하는 걱정 역시 지금 걱정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가능성이 매우 매우 매우 낮기는 하지만 천지신명이 도와 남편이 직장에서 승승장구해 임원이 되어 예순이 넘을 때까지 버틸 수도 있고, 그보다 가능성이 조금 아주 조금 높긴 하지만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나의 스승처럼 단시간에 1인 기업가로 우뚝 설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 걱정을 할 시간에 차라리 책 한 권 더 읽고 글 한 편 더 쓰며 나의 내공을 키우는 편이 더 낫다.

 

당신의 걱정 거리들도 잘 들여다 보라. 그것이 정말 걱정할 가치가 있는 것들인지, 그리고 당신이 걱정보다는 해결에 시간과 노력을 더 들이고 있는지 말이다. 걱정할 가치가 없는 일들이라면 걱정은 걱정 인형에게 맡기고 편히 잠들어라. 걱정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걱정 공책을 한 권 마련해 문제보다는 해결책에 집중해 보자. 걱정 인형이든 걱정 공책이든, 걱정은 그들에게 맡기고 오늘 밤은 푹 잘 자라. 어쩌면 내일 아침에는 기막히게 좋은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르니까.

IP *.143.15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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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1 20:40:00 *.143.156.74

내일부터 가족 온천여행을 떠나 미리 글을 올립니다.

모두들 즐거운 설 연휴 보내시고 다시 맞는 새해는 걱정 없는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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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3 00:19:17 *.138.53.71

남편의 이야기가 왜이리 웃긴지. ㅋㅋ

 

설문조사의 내용은 더 정교하게 정리해서 많은 표본을 대상으로 해보면 좋겠네요.

책의 앞부분을 장식할 만한 자료가 될 것 같아요.

 

걱정인형, 걱정공책을 이용한 휴식 방법은 책의 뒷부분에 넣으면

두 꼭지가 나오는 칼럼이 되겠는걸요!

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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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19:34:44 *.143.156.74

그지? 설문조사에 공을 좀 들여야겠어.

요즘은 글을 너무 책 꼭지로만 쓰는 것보다 나의 일상이 묻어나게 쓰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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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3 17:46:38 *.201.21.69

재밌다 언니 ^^ 나도 도입해 봐야겠어~~~ 

즐거운 온천여행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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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19:35:39 *.143.156.74

사샤야, 발 다 나으면 3개월 묵은 때 같이 벗기러 가자꾸나.

기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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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4 17:47:59 *.140.216.250

ㅎㅎㅎ.. 형부는 정말 쵝오!!!

 

형부의 저런 면을 보면, 걱정 많은 언니에게 형부가 온 것은 어쩌면 신의 섭리인가?라는 생각도 들고.ㅎㅎ.(물론 언니는 많이 괴로웠겠지만.)

 

법륜스님한테 어떤 분이 질문을 했어요. "몸에서 종양이 발견되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양성이면 다행인데, 악성일까봐 걱정이 됩니다. 스님, 제가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요?"

 

법륜 스님 왈,

"그 종양은 과거에도 계속 몸 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전에는 어땠어요? 마음 편하게 잘 살았죠? 그런데, 그것의 존재를 알고 나서부터, 걱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양성이면, 감사의 기도를 하면 되는 것이고, 악성이어도 더 심해지기 알게 되어서 제거했으니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고."

 

자세히 기억은 안나는데.(들은지 좀 되서.ㅋㅋ) 아무튼. 요지는.

 

세상에 걱정을 하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며 걱정을 하는 사람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 그냥 잘 받아들이며 '지금 현재'에 충실하면서 살라는 말씀이었던듯..

 

2012년은, 언니도 걱정에서 조금씩 해방될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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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19:33:30 *.143.156.74

미나야, 좋은 말 고맙다.

나도 걱정 공책에 뭘 써봐야겠다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쓸 걱정이 없더라.

북페어는 최선을 다하면 될 것이고, 졸업여행은 훈 오라버니가 잘 할테고, 8기 면접 여행은 경수가 알아서 할테고

두 번 남은 오프수업은 선 시스터즈가 할거고, 미나는 뭐든 맡기면 믿을 수 있잖니. ㅋㅋ

나도 그동안 마음 공부를 많이 했나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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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09:42:40 *.163.164.178
재경아. 서방님 진짜 웃긴다. 시장 멘트는 기막힌 창조성!! 부럽기까지.

형님에게 글 써보는 것...어떠신지 물어봐...그 정도 창조성이라면..대박!

설문의 내용과 걱정의 내용이 쫌더 연관성을 갖게 된다면

책의 한 꼭지로서 훌륭할것 같군요!!

나도 모닝페이지 하면서 그대가 소개해준 방법을 한번 피드백해드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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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19:30:41 *.143.156.74

오라버니, 조언 고마워요.

너무 책의 꼭지로만 글을 쓰려니 마땅치않아 그냥 좀 후리(?)하게 쓰고 싶었어요.

울 남편 너무 귀엽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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