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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3일 11시 08분 등록

“아니. 루미씨. 어떻게 일을 이렇게 해놨어? 잘 모르면 물어보기라고 하던지.”

이건 뭐죠? 어제 말을 했을 때에는 자기도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거든요. 그런데 오늘 일이 잘못되자 왜 다 내 탓이 되어 버리는 거죠? 아니, 이럴거면 어제 말을 해줬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랬으면 바로 일을 바로잡을 수 있는 거잖아요. 어제 고개를 끄덕이지나 말던지. “그랬어?” 라며 고개 끄덕여 놓고 지금 와서는 자기는 모르는 일인 양 나한테만 뭐라고 하는 이 상황은 도대체가 이해할 수가 없네요. 마치 조회시간의 교장선생님이 되어버린 듯한 장황한 연설 끝에 “아 나는 몰라. 루미씨가 한 일이니까 루미씨가 다 해결해 놔.” 이런 쐐기박는 한 마디도 잊지 않는 센스. 정말 최고예요.

 

아니. 그랬으면 어제 말하란 말이예요. 자기도 그냥 넘겼잖아요. 그 일이 있었을 때 바로 말해주면 서로 좋잖아요. 자기도 예상 못한 일을 자기는 마치 예상했다는 듯이 나만 잡을 일이 아니지요. 꼭 한 마디를 해주고 싶어요. “어제 말씀드렸을 때는 별 말씀이 없으셨잖아요.” 이런 한 마디를 날려주고 싶단 말이지요. 하지만 현실의 저는 아무말없이 “네”라는 대답을 남기고 나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해결하러 가지요.

 

일을 해결하러 가는 것은 하나도 억울하지 않아요. 정말 억울한 건 그 사람에게 단 한마디도 못하고 그저 나오는 내 모습입니다. 내가 처리한 일이니까 내가 바로잡는 건 하겠단 말이예요. 다른 표현도 많이 있잖아요. 어쩜 그런 말만 골라서 하는지. 그리고 자신도 어제 보고를 받은 일을 이제와서 크게 떠드는 이유는 뭐냔 말이예요. 아 진짜 한 마디 날려줬어야 하는건데. 나라고 할 말이 없어서 그냥 대답하고 나온 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은데. 하지 못한 말은 머릿속을 빙빙 돌고 일을 해결하는 동안 마음은 분노로 부글부글 끓어요.

 

영화나 드라마처럼 속 시원하게 따지다가 수 틀리면 “그러면 나가면 되잖아요.”라고 멋지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현실이 어디 그런가요. 그저 “네.”라고 말하고 조용히 수습하러 갈 수 밖에요. 이럴때면 정말 씁쓸해지고 초라해집니다. 바보도 아닌데 한 마디 말도 못 하고 나오는 내 모습. 더 짜증이 나는 건 이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로운 하루를 위해 오늘도 내가 참지만 화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참는 자가 이기는 거라더니 하나도 이긴 것 같지 않아요. 그 사람이라고 기분이 좋겠냐구요? 그 사람의 기분을 이해해 줄 생각은 들지 않아요. 그 사람 역시 나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거라구요? 그러면 그래도 되는 거예요? 지금은 그런 생각해 줄 여유도 없어요. 상황에 화가 나고 한 마디도 못한 내 자신이 짜증이 날 뿐이라구요.

 

하고 싶은 말을 얼마나 하고 사세요? 이런 직장 상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그런 상황들은 얼마든지 있지 않나요? 학생이라면 선생님에게 자식이라면 부모에게 연인이라면 상대방에게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있나요? 때로는 말문이 막혀서, 때로는 권위 앞에서 우리의 입을 닫아버리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래 내가 참는 게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진주를 보호하는 조개처럼 입을 꽉 다물어 버리는 거지요. 속 시원하게 말해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이 조용한 평화를 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나 하나만 참으면 되는 일일 때도 있고 저처럼 직장을 계속 다니기 위한 방법의 하나인 경우도 있을 테지요. 그런 하고 싶은 말들이 쌓여서 자신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지는 않나요? 자꾸만 말을 안 하다 보니 이제는 아무 말 못하고 있는 자신이 바보 같은 느낌이 들지는 않나요?

하고 싶은 말이 없을 수가 있겠어요. 자신이 잘못해도 할 말이 있는 것이 사람 아닌가요. 잘못했으면 말 안해야 되는 건가요. 핑계 없는 무덤이 어디 있나요. 잘했든 못했든 얼마든지 할 말이 있지 않나요. 아니 접시를 깨뜨려도 할 말이 있고, 신호를 위반한 차량 운전자도 할말이 있는데 우리라고 할 말이 없을 수가 있나요. 언제든 어느 순간이든 우리는 할 말이 있어요. 하지만 우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순간이 있지요. 소리를 질러서라도 우리의 말을 듣게 하고 싶은데 소리를 지를 수도 없는 순간이 있지요. 이런 순간 혹시나 화살을 우리에게 돌리고 있지 않나요? “에잇 바보 같아.”라는 말을 자신에게 내뱉고 있지는 않은가요? 할 말을 하지 못하는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그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고 있지는 않은가요. 그건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도 못하고 그렇다고 내 탓도 하고 싶지 않은 이런 순간 무엇을 해야 할까요.

 

널리 알려진 우화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미다스 왕의 이야기로 삼국유사에는 신라 경문왕의 일화로 알려져 있는 이야기지요.

............. 옛날에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님이 살았다. 임금님은 언제나 모자로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이발사 한 명이 임금님의 귀를 보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이발사는 비밀을 갖게 되었다. 임금님 귀에 대한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너무나 가슴이 답답했던 이발사는 대나무 숲으로 가서 크게 외쳤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

 

저는 그날 퇴근 길, 운전하며 계속 혼잣말을 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 저는 너무나 억울했거든요. 그래도 학창시절에는 학교에서, 부모님에게, 친구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잘 늘어놓던 사람이 이런 상황 앞에서 너무나 억울했거든요. 상사가 듣고 있는 것 마냥 1인극을 펼쳤습니다. 그 사람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또 했어요. 점차 할 말이 짧아지고, 집으로 돌아올 때 쯤에는 제법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요. 우리에게는 지금 대나무숲이 필요해요. 마음껏 내 마음을 털어놓을 공간이 필요한 거예요. 집으로 돌아와서 이야기하면 뻔한 위로나 그것도 참지 못했나냐는 화살이 돌아오고 제법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하더라도 “야, 그런 거 잊어버러.”하는 말만 돌아오지요. 하지만 우리는 잊지 못해요. 그 순간 우리는 너무 초라했기 때문이지요. 나의 대나무숲을 찾아 마음껏 이야기 해봐요. 마음이 후련해 질때까지 몇 번이고 되돌이표를 외치며. 내 눈앞에 있는 보이지 않은 그 사람에게 당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늘어 놔요. 합리화일수도 있고, 어쩌면 핑계일 수도 있지요. 그 당시 우리가 하지 못했던 말을 마음껏 늘어 놔 보아요.

이 일을 하다보면 그 사람의 반응도 상상이 된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그는 이렇게 말하겠지. 뭐 이런 정도의 반응 말이예요. 그 반응에 대답도 해 봐요.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다 꺼내놓아봐요.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그래도 속이 시원해지지 않으면 다섯 번이고 열 번이고 계속 해봐요. 내 마음이 후련해 질때까지 대꾸하지 못하는 그 사람에게 계속 말해봐요.

 

그렇게 이야기 하다보면 느껴지는 게 있어요. 이야기가 점점 짧아진다는 사실이지요. 하루를 짜증나게 만들었던 사건이 점점 짧은 이야기로 변해갑니다. 몇 번 하다보며 우리는 짧은 이야기로 변한 우리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어요. 잔 가지는 떨어져 나가고 커다란 줄기만이 남는 거지요. 우리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상황상황의 구체적인 설명이 아닌 커다란 하나의 줄기 잖아요. 나도 몰랐던 사실을 이렇게 발견할 수 있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몇 번 되뇌이다보면 우리는 왠지 후련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요.

 

누군가는 말합니다. 그래서 뭐가 바뀌는데? 결국 너는 말 한마디 못한 사람 아니니? 그래요. 말 한마디 못했어요. 어떤 이유가 있든 핑계가 있든 우리는 말 한마디 못하고 왔지요. 그것이 직장을 유지하기 위한 눈치이든, 누군가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소심함이든 우리는 그 상황에서 아무말 못하고 왔어요.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의 연습을 하는 겁니다. 이런 경우가 오면 이렇게 말 하리라. 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지요. 그 연습을 하고 하고 또 해서 내가 들어도 웃긴 나만의 핑계가 아니라 줄기가 제대로 잡힌 하나의 논리를 구성하고 있는 거예요. 누가 들어도 그럴싸한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말을 할 수 있는 때가 오는 순간 우리는 훌륭하게 정리된 말을 당당하게 내뱉을 수 있는 거지요. 우리는 그 준비를 하는 거랍니다.

 

우리는 오늘 그 말을 하지는 못했어요. 상황이 그러하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당신이 그 말을 하지 못했더라면 그럴만한 상황이었을 거예요. 그렇다고 우리가 앞으로도 말을 하지 못할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형을 앉혀놓고서라도 우리의 할 말을 해봐요. 우리의 할 말을 다른 사람이 들어주지 못한다고 하더라고 우리가 하지 못하란 법은 없어요. 남들이 들어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오늘 우리의 할 말을 해봐요. 우리가 우리의 말을 들어줘요. 당신의 대나무숲 그곳은 어디인가요?

 

팁1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 말의 숨은 부분을 알고 계시나요? 이 말은 지극한 사실입니다. 단 하나의 의견도 포함하고 있지 않아요. 만약 이발사가 “임금, 그리 못된 짓만 하더니 내가 그럴 줄 알았지. 당나귀 귀? 쌤통이다.” 라고 말했더라면 우리는 과연 이 이야기에 얼마나 공감이 느껴졌을까요? 인신 공격은 피하도록 해요. 어린시절 엄마에게 둘러대려고 노력했던 아주 합리적인 말들로 자신의 할 말을 구성해요. 감정을 쏟아내는 말로는 화난 상대의 공감을 일으킬 수 없는 법이랍니다.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말들을 생각해 내기로 해요. 그럴 수 있을만한 충분한 말들로 우리의 할 말을 정리해요.

팁2

생각하면 됐지. 라는 마음이 들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정합니다. 꼭 말로 할 필요가 있는거야? 이런 마음이 드실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꼭 입으로 내뱉기를 권합니다. 생각은 엄청나게 빠릅니다. 그리고 간단히 정리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그것을 말로 하려면 힘이 듭니다. 생각은 엄청난데 말로 하려면 지극히 단순한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좀 더 좋은 표현을 찾고 내 마음을 잘 말해 줄 수 있는 표현을 찾는 방법은 말하기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생각을 말로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예요. 그래야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방을 날릴 수가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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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3 17:42:17 *.201.21.69

루미체가 이제 정착의 단계를 걷고 있구나 ^^ 새해 복 많이 받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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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3 21:19:22 *.166.205.131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말에 그런 깊은 뜻이 숨어있을 줄이야.

루미의 통찰력이 날로 깊어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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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4 16:59:24 *.246.70.231
나한테 당나귀귀는 글인것같아. 근데 이 글을 보니 말로 쏟아내고나면 엄청 시원할것같네. 난 사실. 내 감정들을 말로 솔직히 표현하는것에너무 익숙하지가 않아서 그것조차 연습이 필요하단 말이지. 내 방에서 한번 해봐야겠다. 문 닫아놓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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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08:49:17 *.163.164.177

루미야, 새해 복 많이 받어~~

좋은 방법이군요. 나도 루미가 이야기한 방법을, 미나의 적용처럼 글로 써보는 것이 맞을 것 같군요.

하지만 정석은 아니라는 것이죠?

제대로 된 나만의 표현을 잘 다듬어서 어영부영 뒤돌아서는 일이 없도록 해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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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19:46:32 *.143.156.74

뭐야, 루미가 아무말도 못하고 혼나기만 하고 나온 적이 있었던 말이여?

나는 '뭐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그렇더라구요'라고 쿨 하게 말할 줄 알았지.

 

나는 뭐 그 상사의 마음도 이해가 안되는 바는 아니지만 ㅋㅋㅋ

루미의 민간요법도 마음에 드네. 나도 잘 활용해볼게.

루미야, 작년에 큰 도약을 했으니 올해는 큰 결실을 거두길 바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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