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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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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30일 00시 43분 등록

 

왠수의 바른 말은 원수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왠수라는 표현을 택했어요. ‘원수라는 단어에 서려 있는 비장함 때문입니다. 이 단어에서는 10년쯤 칼을 갈고 닦아 반드시 갚아 줘야하는 어떤 신세가 있는 느낌이 강하게 들잖아요. 제가 말하고 싶은 왠수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때론 감사와 애정의 대상이며 때론 나를 지긋지긋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뗼레야 뗄 수도 없고 함께 하자니 복장이 터지는 그런 존재. 그것이 제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왠수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를 택하게 되었어요. 누구나 이런 왠수 같은 존재들이 있지요. 저의 왠수를 만나보실래요?

 

저의 왠수는 바로 엄마입니다. 30년을 같이 살아오다보니 이제는 제법 서로 피해야 할 부분을 알게 되어 예전 같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지만 어느 한 순간 폭발하면 그래. 언제 니가 내 말을 들었다고.”라거나 혹은 엄마는 늘 그런식이잖아. 난 아니라고.” 라는 식으로 끝나는 전쟁을 합니다. 싸우는 원인은 때마다 달라지지만 우리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이 흐르는 기분이 들어요. 아무도 없는 길에서도 빨간 신호등을 지키고 서 있는 엄마와 학생때 마시는 술의 기분은 그때 아니면 모른다고 몰래 숨어서 술을 마셔보는 딸. 기본 스타일의 단정한 옷차림을 선호하는 엄마와 해마다 바뀌는 유행이 좋다는 딸. 서로의 다른 점을 눈 질끈 감고 넘어가주는 부분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양보할 수 없는 문제로 신경전을 벌입니다. 바로 딸아이와 관계된 부분입니다. 그날의 사건도 이 문제 때문에 일어난 거지요.

니가 엄마라면 이 정도는 해야되는 거 아니냐?” 라고 말하는 엄마와 난 엄마와는 다른 사람이야. 그러니까 엄마가 생각하는 엄마의 모습을 나에게 강요하지는 말라구.” 라는 저의 말은 제자리를 돌고 있습니다. 별일 아니었어요. 그냥 이것저것 하다가 매우 늦게 잠든 제가 딸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시간까지 비몽사몽한 것이 전부였어요. 물론 아이를 봐줄 엄마가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사실이긴 하지만요. 더 이상 서로와 말을 하지 않아요. 이 문제의 간격을 바로 풀어낼 수 없다는 것이 우리 둘의 암묵적인 합의거든요. 말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궁시렁 거려봅니다. ‘나라고 내 모습이 다 옳다고 생각하는건 아닌데 그걸 그렇게 꼬집어서 말하면 나라고 뭐 방법이 있나?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거지. 아무 말 안해도 그리 잘 한거 아니라는 거 내가 알고 있다고.’ 정말 아침부터 꼭 이랬어야 하는건지.

 

생활을 많이 공유하기에 더 왠수 같은 걸까요? 어쩌면 그렇게도 시기적절하게 내 마음을 뒤흔드는 말만 골라서 하는건지. 서로에게 많이 익숙해져 있기에 최고로 효과적인 말로 나를 공략하는 걸까요? 왠수의 한 마디는 아주 정확하게 파고들어와 감정선을 크게 흐트러뜨립니다. 그렇게 흐트러진 나는 마이너스가 되는 말만 퍼붓고 돌아서지요. 나에게도 너에게도 상처가 되는 말을 하고 돌아와 잔뜩 나빠진 기분으로 상황을 곱씹어 보면 더 가라앉는 기분입니다. 아주 미워할 수만은 없는 존재기에 상처받을만한 말을 해 놓고 미안하기도 하고, 마냥 미안해만 하기에는 나 역시 상처를 받았다는 말이지요. 머리를 벅벅 긁으며 ~ 몰라.” 하는 말 외에는 할 말도 없고, 찡그린 표정은 풀어지지 않습니다.

 

왠수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저처럼 엄마를 왠수로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부인을 어떤 이는 남편을 가지고 있을테지요. 이제는 뜨거운 애정이 식어버린 오래된 연인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만날 때마다 한 구석씩 후회하게 되는 친구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지요. , 저희 엄마처럼 자식을 왠수로 가진 분도 계실꺼예요. 어떤 왠수를 가지고 계시나요? 어떤 모양새이든 이 왠수의 특징은 바로 떨어뜨리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럼 이 왠수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왠수를 보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어렵지요. 그 사람을 보지 않으면 더 이상 이럴 일도 없고, 또 아주 미워하기만 하는 존재는 아니기에 소중함을 깨닫고 더 나은 관계로 갈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현실은 이 왠수와 우리를 그렇게 딱 붙여 놓을 수가 없네요. 어떻게 보지 말라는 말이예요. 딸아이를 맡겨 놓고 어디로 여행이라고 가나요? 짐싸들고 친구집이라고 쳐들어가요? 아니면 엄마더러 멀리 다녀오라 할까요?

 

피할 수 없으면 맞서라 했습니다 저는 당당히 왠수에게 도전장을 내밀기를 권합니다. 이 왠수를 피할 방법이 없다면 이제는 맞서는 수 밖에요.

어떻게 맞서야 할까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으니 먼저 상대방을 알아야 겠습니다. 이제까지 알고 있던 모든 정보를 동원해서 상대방을 알아내보기로 해요.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알아낼 수 있을까요. 이 분야의 대가인 셜록 홈즈 경의 말씀을 조금 들어보기로 하지요.

 

인생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사슬이 되고 우리는 그 사슬의 일부를 보고 전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중략) 난해한 인간의 정신적 도덕적 측면에 눈을 돌리기 전에 보다 초보적인 문제에 통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좋다. 타인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역사와 직업을 첫눈에 알아보는 법을 배우도록 하자. 그러한 연습이 철없는 행동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그것을 통해 관찰 능력을 기르고 어디를 보고 무엇을 찾아야 할지 알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의 손톱, 코트 소매, 구두, 바지무릎, 엄지와 검지에 박힌 못, 표정, 셔츠 소매 이러한 것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상대의 직업을 쉽게 알 수 있다. <주홍색 연구>

 

아시다시피 셜록 홈즈는 영국의 작가 코난 도일이 만들어 놓은 가상의 인물입니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낳았으며 많은 팬층을 확보한 매력적인 인물이지요. 이 셜록 홈즈는 완벽한 변장술과 뛰어난 추리력을 내세워 사건을 해결하는데 여기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 바로 홈즈의 관찰력입니다. 예리한 시선으로 타인을 관찰하여 완벽한 변장술을 구사하고 사건을 관찰하여 뛰어난 추리력을 발휘하게 되는 거지요. 그러니 우리가 그의 지혜를 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 그가 친구인 왓슨을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을 보면 조금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 신사는 의사 같지만 그러면서도 군인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면 군의관이 분명하다. 얼굴및이 검은 것으로 보아 열대 지방에서 귀국한지 얼마 안 되는 것 같다. 손목이 흰걸 보면 살빛이 원래 검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얼굴이 해쓱한 것은 고생을 많이하고 병에 시달렸기 떄문이다. 왼팔에 부상을 입은 적이 있나보다. 왼팔의 움직임이 뻣뻣하고 부자연스럽다. 열대 지방에서 영국 군의관이 그렇게 심하게 고생하고 팔에 부상까지 입을 만한 곳이 어딘인가? 분명 아프가니스탄이다. <주홍색 연구>

 

홈즈에게는 이런 생각이 1초도 안되는 사이에 스쳐갔다고 적고 있습니다. 아마 관찰의 습관화가 일으킨 생각들일 것이겠지요? 우리는 홈즈가 되어 보는 거예요. 유명한 탐정이 되어서 상대방을 관찰하는 거지요.

 

저는 엄마를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왜 자꾸 나와 부딪히는 건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거든요. 그냥 다른 사람이니까라며 포기하기엔 함께 해야 하는 남은 시간들이 아직 많이 남았잖아요. 엄마의 취미는 있는 반찬에 밥먹기이며, 특기는 김치 하나에 밥먹기입니다. 설거지 한꺼번에 몰아서 하기도 있고, 냉장고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기도 있지요. 때론 말라 비틀어진 채소들이나 먹을 수 없이 상해버린 음식들의 영생을 기원하며 쓰레기통 위에 살포시 얹어주시는 일도 있으시지요. 그런가하면 자신이 배우는 일에는 또 얼마나 열심인지. 다들 잠든 시간에 수묵화 숙제를 하신다며 다시 일어나기도 하고, 이침일찍 인사동에 붓이나 종이를 사러 나가는 일도 있으십니다. 설거지는 안 해도 인사동으로 떠나시지요.

엄마는 살림에는 정말 취미가 없으셨던 겁니다. 정말 하기 싫은 일들 이었던거죠. 그래도 엄마는 그 일을 30년을 해 오셨더군요. 취미와 특기 어느 것에도 부합하지 않은 직장을 30년이나 꾸준히 다니셨어요. 알약하나만 먹어도 배부르면 좋겠다는 말을 해가며 작은 물건쯤은 언제나 찾는 행위를 반복해가며. 아이들은 다 키웠다며 한시름 놓을 때쯤 어린 손녀를 맡아서 다시금 30년 전의 일을 반복하게 되셨지요. 사실 엄마는 다른 배우는 일에만큼은 언제나 우등생이셨지요. 멸치볶음을 아직도 자신없어 하지만 매화나무는 잘 그리시는 분입니다. 모두가 그렇듯 자신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고 싶었을 텐데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얼마나 많이 자신의 욕구를 누르고 있었을까요. 엄마도 저와 같은 사람이었군요.

 

당신의 왠수도 이런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도 지긋지긋하던 우리의 왠수들은 많은 부분이 닮아있는지도 몰라요. 내가 엄마에게 지긋지긋하다며 왠수같다고 엄마 역시 그렇게 생각했겠지요. 뭔가 한 마디 쏘아 붙여 놓고 조금의 미안함과 짜증이 섞인 감정에서 혼란스러워 할 때 엄마도 그랬겠지요. 나와 같은 것을 느끼고 같은 생각을 했는지도 몰라요. 어제는 저놈의 화상 확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가도 오늘은 안쓰러워 바라보는 것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지긋지긋한 왠수도 사람입니다. 우리가 고민하는 것을 고민하고 아픈 것을 아프다 느끼는 같은 사람이지요. 오랜 시간 함께 지냈다면 아마도 우리와 많이 닮아있는지도 모르지요.

왠수를 관찰해 보세요. 무언가를 물어보거나 파고들어서 인간적으로 완벽한 공감대를 형성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냥 그 사람을 바라보세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것에 즐거워하고 어떤 일에는 소질이 없는지. 그냥 그런 것만을 바라봐 주세요.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도 없어요. 무언가를 해줘야 한다는 강박도 던지세요. 그냥 관찰해요. 왠수의 정체를 밝히세요. 하나씩 왠수에 대해서 알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뭐가 얼마나 달라졌냐구요? 글쎄요. 우리는 여전히 투닥투닥 싸웁니다. 가끔은 말을 안하기도 하지요. 그 횟수가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얼마만큼의 인내심이 생겼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가끔 그 왠수를 안아주고픈 생각이 듭니다. 그 어깨에 올려진 짐의 무게를 인내의 크기를 조금은 알게 되었거든요. 아주 조금이겠지만요. 전쟁은 제가 엄마의 나이가 되더라도 계속되겠지요. 아마 끝나지는 않을 겁니다. 그게 왠수니까요.

 

1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찰이 쉽지 않은 당신에게

이 방법은 시간과 노력과 저항에 대한 극복이 필요한 방법이라서 꼭 권해드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관찰법이기는 하지요. 바로 그 사람의 이야기를 적어보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쓰듯이 그 사람의 이야기를 적어보는 것이지요. 왠수‘s story 랄까요? 아무리 눈을 부릅떠고 관찰하고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때 이 방법을 써보길 권장할께요. 앞서 말씀드렸듯 이건 쉬운 방법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또 앞서 말씀드렸듯 이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지요.

IP *.14.9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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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30 09:36:28 *.166.205.132

나에게도 뗄레야 뗄 수 없는 왠수가 있지 ㅋㅋ

루미의 처방에 푹 빠져 드는구나.

나도 마음이 좀 풀어졌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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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30 10:36:18 *.163.164.177
루미야, 관찰하기 좋은 방법이다.

꼭 왠수가 아니라도 아내나 자식을 관찰하여 기록해보는 것은

좋은 의미가 있을 것같아. 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구체적으로 나열해보려면

쉽지 않을듯,

대상이 부모님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도전장 내밀기, 맞서기라는 표현보다는

조화, 함께 살아가는 방법 터득하기 와 같은 내용에서 검토해보는 것은?

 

그리고 내용을 다 읽고나서 제목을 다시 보면

제목의 느낌이 조금 쎄다는 생각도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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