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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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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3일 10시 18분 등록

엄친아. 엄마에겐 더 없이 바람직한 자식의 모델이자 나에게는 인간이 아닌듯한 그런 존재. 어찌 그리 그들은 못하는 것이 없는지 매번 나에게 열등감을 안겨줍니다. 엄친아 보다 더한 존재. 그것은 바로 우리 엄마 아들입니다.

공부도 잘했고 엄마 말도 잘 들었고 사회에 나가서는 좋은 직업까지 가져 걱정거리 하나 없는 엄마 아들. 그게 내 오빠입니다. 나랑 같이 까불고 놀던 오빠는 학창시절 공부를 참 잘했죠. 별것 아닌 공부 모양새인데, 나랑 다른 것도 없는 듯한데, 단 한 번도 오빠보다 나은 성적을 받을 수가 없었지요. 나에겐 최고의 성적이었던 달 오빠의 최악의 성적을 넘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주구장창 공부를 잘하던 오빠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과에 진학했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직업을 가졌지요. 현재 오빠는 행복한 가정을 잘 이루고 있고, 나는 사고뭉치 싱글맘이지요. 매번 오빠에 비교하던 나의 철저한 패배였습니다.

 

그래요, 이건 열등감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열등감이 든 보따리를 내밀었다면 난 절대 받지 않았을 거예요. 근데 왜 이건 나한테 있는 거죠? 언제부터 내 안에 있었는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는 이것저것 비교하고 있어요. 열등감은 승자처럼 웃고 나는 점점 작아지죠. 비교를 하나 할 때마다 나의 크기는 조금씩 줄어들어요. 보낸 사람이 있으면 반품이라도 할 텐데. 이건 내 속에서 자란 것, 받을 사람이 없으니 다시 돌려보낼 방법도 보이질 않네요.

 

얼마 전 아빠의 생일이 있었습니다. 가족들끼리 모여서 케이크라도 자르자고 합의를 보았지요. 언제가 좋을까 고민하는 가족들에게 난 첫 번째 주가 좋아.”라고 말했습니다. 사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빼도 박도 못할 사정은 아닌지라 두 번째 주도, 세 번째 주도 가능한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난 첫 번째 주가 좋았어요. 다른 사람의 사정도 고려한 결과 별다른 문제점이 없어서 우리들은 첫 번째 주말에 케이크 커팅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리고 속이 시원해 졌어요.

 

난 항상 모자란 존재였죠. 잘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일들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기대에 못 미쳤고, 예상에 미달이었죠. 나에게 이런 저런 매력이 있다며 큰 소리를 쳐 보아도 메아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나에게도 매력이란 게 있고, 잘 하는 것이 있을 텐데 왜 번번이 세상에 통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난 작아졌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별것 아닌 일이 되어갔고, 나의 사정쯤은 그다지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되었어요. 누가 그리 꼬집어 말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사람은 다들 나름의 인정의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아주 크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조금 작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작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인정의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는 누군가에게 쓸모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생각이 인정의 욕구를 일으킵니다. 나에게도 물론 있지요. 나의 매력이 마구 발산되어 박수갈채와 칭찬에 뒤덮인다면 이토록 작아지지는 않았을지도 몰라요. 한번, 두 번, 실패가 거듭되자 나는 인정받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의 사정을 고려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괜찮아.”라고 말하기 시작한 거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거다. 괜찮다고 말하면 정말 괜찮아 지는 거다. 나는 말의 마법에 빠져들었어요. 약속을 정할 때도 편할 때 보자.”, 밥을 먹으러 갈 때도 뭐 먹고 싶은데?” 뭔가 부탁을 받으면 그래. 알겠어.” 그리곤 상황에 나를 맞추었죠.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먹기도 했고, 약속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혹은 다른 이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밤을 새워 내 일을 처리하기도 했어요. 다음 날 졸려서 멍해진 상태로 하루를 보내면서도 불편하다 생각도 하지 못했죠. 적어도 나는 내 일로 인해서 다른 이들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이기주의자는 아니니까요.

  “지금은 힘드니 수요일은 어때?”, “오늘은 왠지 이런게 먹고 싶은걸?” “그 일은 도와주기 힘들겠다. 오늘 안에 해야 할 일이 있어.” 이렇게 말했더라면 난 먹고 싶은 것을 먹었을지도 모르고, 밤을 새워 내 일을 해낸 뒤 멍한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어요. 그건 자기 사정만 고려하는 이기적인 애들이 하는 말이니까요. 못할 게 어디 있어요?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열등감은 끊임없는 비교를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언제나 나를 낮게 만들죠. 그렇게 낮아진 나는 작은 결정권부터 큰 결정권까지 남에게 양보합니다. 다른 이들의 중요한 일을 도와주려 나의 사소한 일은 구석으로 밀어놓지요. 다른 이들이 더 훌륭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 생각하고, 그런 이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나의 작은(?) 수고로움은 감수하려 하는 거지요. 그러는 사이 우리는 생활의 주도권을 다른 이의 손에 넘겨주게 됩니다. 못난 나는 그리해도 괜찮다는 듯이.

  열등감의 해결책은 다른 이와의 비교를 멈추는 것입니다. 비교를 하더라도 기준점을 타인에게서 옮겨와 어제의 나와 비교해서 경쟁해야 하는 거지요. ‘비교의 자라는 게 손에 잡힌다면 참 쉬운 일 일거예요. 밖에 있는 자를 덥석 집어 들어 내 안으로 밀어 넣으면 되는 거니까요. 불행히도 이 자는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손에 잡힐리는 더더욱 없지요. 이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 입장을 생각해 보기입니다. 순간의 상황에서 재빠르게 나의 입장을 정리하는 거지요. 나의 기분과 상태를 묻는 거예요. 그리고 대답을 하는 거죠. “혹은 아니

 

 배려라는 말은 참 좋은 말입니다. 다른 이의 입장을 생각하고 도와주고 보살피려는 마음이죠. 배려를 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를 배려하기 위해 지금 나를 배려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운 거죠. 그렇게 나를 배려하지 못하는 사이 가장 중요한 내가 찌그러지게 됩니다. 한껏 구겨져서는 어느 순간 내 힘으로 펴지지 않을지도 몰라요. 단 하나뿐인 소중한 내 인생, 그 주인공인 나. 당연히 가장 먼저 배려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닌가요.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말이예요.

 

 열등감에 시달려서 비교를 끊임없이 하는 순간, “비교를 멈추겠어.”라고 선언하는 대신 생활에서 나의 기분을 알아봐 주어요. 끊임없이 비교하는 사고가 순간 정지하고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지요. 그 순간 우리의 비교의 자는 내 안으로 파고듭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색다른 매력을 지닌 유일한 존재. 이런 존재에게 비교에 의한 열등감이라니요. 우린 각자 존중받아야 할 존재인걸요아무거나 상관없어.” “난 괜찮아.” “네 뜻대로 하자.” 라는 말을 내뱉던 순간에 잠시 호흡을 멈추고 난 어떻게 하고 싶지? 내가 원하는 건 뭐지? 지금 기분은 어떻지?’ 물어봐 주세요. 처음에는 연습이 필요할지도 몰라요. 우린 다른 이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것이 더 익숙해 있으니까요. 그렇게 서서히 내가 나의 의견을 들어주는 순간 열등감은 작은 글자로 변해 있을 거예요.

 

 나는 여전히 오빠보다 못한 부분이 더 많아 보이는 사람입니다. 이제는 내 입장을 주장하기까지 하는. 나는 아주 오랜만에 오빠를 같은 높이에서 바라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엄마 아들에게 나도 의견을 말할 수 있거든요. 내 사정도 충분히 고려받아야 하는 사정이니까요.

 

 

 

다른 사람을 배려해 줘야 하는 순간도 있잖아요.

물론 그렇지요. 그건 당연하지요. 하지만 아무 말 없이 있다가 결정된 안건에 “(힘들지만) 괜찮아.” 라고 말하기 보다는 우선은 내 의견을 던져 놓고 그렇다면 그렇게 하자.” 라고 말하는 편이 더 멋지지 않나요? 나의 착한 배려심도 더 빛날 거구요. 무조건 내 주장대로 밀어 붙이자는 말이 아닙니다. 나의 의사를 표현해서 거절해야 하는 순간은 거절하고, 수용해야 할 부분은 수용해야겠지요. 우리는 우리의 의사를 밝힐 필요가 있다는 것뿐입니다. 열등감에 구겨진 나의 의견을 잘 다림질해서 펼쳐 보일 필요 말 이예요. 내 의견도 다른 이들의 의견처럼 고려 대상이 되어야 하니까요. 내 의견을 말하고 착한 척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요? 내 의견대로 되는 것도 좋은 일이구요. 이래저래 나는 손해 볼게 없는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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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3 13:57:15 *.143.156.74

루미야, 오빠보다 잘 하는 거 있잖아.

연구원 과정을 통해 영재가 되었고 연구원 2년차 과정에 총무도 되었잖아.

오빠랑 엄마랑 아빠한테 막 자랑해.

하은이한테도 마구마구 자랑해.

내가 아무나 안 시키는 거 알지?

이 언니의 신임을 얻었다는 건 엄청난거다.

가족들에게 그리 이르거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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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3 17:45:30 *.138.53.71

루미는 땡7이들의 신임뿐 아니라

사부님의 엄청난 신임을 얻었잖여~!

대단한거다.

난 물탱이라는 얘기를 듣고 산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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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4 07:02:32 *.35.244.10

루미의 경험과 생각만으로 한편의 글이 썼구나.

늘어난 내공에 박수를 보낸다.

 

한편에서....작은 염려하나는...

루미의 글에서 뭔가 자꾸 가르치려는 것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길.

그대가 전해주는 느낌이 팔할이 되었으면...강요하지 않은 느낌!!

그게 루미 글의 생명력이자, 최대 장정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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